“노동강도가 너무 세서 쉴 틈이 없다 보니 화장실에 못 가고 눈치 보다가 작업 중에 소변을 찔끔찔끔 해결하는 일도 있다.”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에서 일하는 경력 14년차 노동자 ㄱ(38)씨는 “창피하니까 서로 쉬쉬하고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작업 중에 ‘큰일’을 보는 낭패를 겪은 직원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새로 출범한 르노삼성차 노동조합의 간부들은 지난 9월 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견학 가서 깜짝 놀랐다.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나 작업 분위기가 르노삼성차와는 비교가 안 됐기 때문이다. 박종규 노조위원장은 “‘현대차 정도만 되면 우리도 아무 불평 안 할 텐데’ 하고 모두들 너무 부러워했다”며 “르노삼성차는 일이 힘들다 보니 수당이 더 붙는 토요일 특근조차 싫다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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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라인에서 ‘큰일’ 보며 일한다
생산라인에서 바로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비명이 나올 정도로 르노삼성차가 필요한 인력 충원에도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르노삼성차는 2009년 금융위기 여파로 실물경제까지 위축되자 매출이 줄고 영업이익은 42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해 하반기부터 회복세를 보여, 2010년에는 매출·판매·수출 등 모든 면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 9월 본사로 복귀한 장마리 위르티제 사장은 이임 기자회견에서 “르노삼성이 한국 시장에서 성공했다”는 말을 자신 있게 했을 정도다. 매출은 사상 처음 5조원을 돌파했다. 자동차 판매대수도 27만 대를 넘어 전년 대비 43%나 급증했다. 수출도 11만6천 대로, 전년 대비 100%를 넘는 증가율을 기록했다. 올해도 지난 9월까지 판매대수가 모두 19만3천여 대로,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르노삼성은 2000년 르노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며 출범했다. 초기 몇 년간은 수출을 제대로 못해 고전했지만, 수출이 본격화한 2006년 이후 중기 실적 추세를 봐도 신장세가 확연하다. 지난 5년간 매출은 2배로 늘어났고, 판매는 1.7배, 수출은 2.8배로 증가했다. 수출 비중은 26%에서 50%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이런 뛰어난 성장세와 달리 수익성은 2008년 이후 급락했다. 2006년 이후 7.7~8.7%의 높은 수준을 구가하던 영업이익률이 2008년에 3.6%로 곤두박질쳤다. 금융위기 여파로 -1.2%를 기록한 2009년은 예외로 하더라도, 지난해에는 매출·판매·수출에서 최대 실적을 거두고도 0.06%에 그쳤다. 적자를 겨우 면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이는 지난해 이익이 급증한 다른 경쟁사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각각 8.8%, 7.2%로 사상 최고 수준이었다.
결국 르노삼성차가 인력 충원에 소극적인 것은 수익성 악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급속한 신장세 속에서도 수익성은 떨어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르노삼성차는 르노닛산에서 부품을 사들여 국내에서 조립한 뒤 르노닛산에 되파는 독특한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 르노닛산은 르노삼성차가 만든 차를 세계시장에 판매한다. 르노삼성차의 생산이 늘어날수록, 르노닛산으로부터의 부품구입액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르노삼성차가 르노닛산으로부터 사들인 부품값은 1조644억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르노삼성차 홍보본부의 김범석 팀장은 “2008년 이후 엔화와 유로화의 가치 급상승(원화 환율 급등)으로 인해 부품 수입 부담이 커졌다”고 설명한다. 르노삼성차의 판매가 늘어나고, 환율마저 올라 부품수입액이 늘어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관건은 부품수입액 증가의 적정성이다. 지난해 르노삼성차의 대당 부품수입액은 392만원이다. 2006년의 130만원에 비해 200%나 급증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엔화와 유로화 대비 원화 환율의 상승률(연평균 기준)은 각각 61%, 28%에 그친다. 환율 상승폭에 비해 부품수입액 증가율이 과도하게 높다. 자동차업계에서 르노삼성차로부터 르노닛산으로 자본 유출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내수 490억원 이익에 수출 457억원 적자?
르노삼성차의 부품구입비만 급증한 것이 아니다. 배당, 기술사용료, 연구비, 용역비, 광고판촉비 등의 명목으로 르노삼성차가 르노닛산에 지급한 돈(이하 기술사용료 등의 총지급액)도 덩달아 급증했다. 지난해 기술사용료 등의 총지급액은 1792억원에 이른다. 이는 2006년의 557억원에 비해 222%나 급증한 것이다. 이처럼 부품수입액과 배당, 기술사용료, 연구비, 용역비, 광고판촉비 등을 모두 합쳐 르노삼성차가 르노닛산에 지급한 총액은 지난 5년간 무려 3조4475억원에 달한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급증세를 보여, 최근 3년간 총지급액이 그 가운데 81%를 차지한다. 르노삼성차가 르노닛산에 지급한 돈이 기형적으로 많다는 것은 여러 대목에서 확인된다. 지난해 매출액 대비 총지급액(부품구입비 포함) 비중은 24%로, 2006년(10%)의 거의 2.5배 수준으로 껑충 뛰었다. 또 자동차 한 대당 르노닛산에 지불한 돈은 지난해 458만원으로, 2006년의 165만원에 비해 178% 급증했다. 자동차업계의 한 전문가는 “국내 완성차업체들도 해외 공장과 거래할 때 부품이나 설비의 가격을 한국 쪽이 유리하게 책정하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르노삼성차는 과도한 수준인 것 같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차의 지난해 내수영업이익은 490억원이었다.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이 33억원임을 고려하면 수출영업이익은 457억원 적자를 봤다는 얘기다. 르노삼성차가 지난해 적자 수출을 했다는 것은 다른 자동차업체들에서 수출이 효자 노릇을 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환율 상승에 따른 수혜 규모는 부품 국산화율에 따라 자동차업체별로 차이가 날 수 있다. 르노삼성차는 현대·기아차에 비해 부품 국산화율이 낮기 때문에 환율 상승에 따른 수혜 폭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 하지만 환율 상승으로 부품 수입 부담이 늘었다고 해도, 완성차 수출경쟁력 강화에 따른 수혜보다 클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이처럼 르노삼성차로부터 르노닛산으로의 자본 유출이 급증한 것을 2008년 이후 세계경제 위기로 르노닛산의 경영이 급속히 어려워진 것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르노 본사는 2009년 4억유로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순이익 역시 30억유로의 적자를 면치 못했다. 르노삼성차로부터 자본 유출을 늘린 덕인지는 몰라도, 지난해 르노 본사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11억유로와 34억유로를 각각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한지원 연구실장은 “세계경제 위기로 르노닛산의 경영 상태가 안 좋아지자 의도적으로 부품 판매와 연구비 등의 명목으로 르노삼성차의 이익을 빼내간 것 같다”고 지적한다.
생산성은 최고, 노동 조건은 최악
르노삼성차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르노닛산으로부터 4358억원의 연구·개발비를 지급받았다”며 자본 유출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르노삼성차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에서 르노닛산과의 내부거래 내역을 보면, 르노삼성차가 르노닛산에 지급한 기술사용료나 연구비는 나와 있지만, 반대로 르노닛산이 르노삼성차에 지급한 연구·개발비는 나타나 있지 않다. 은 이에 대해 르노삼성차에 추가 답변을 요청했으나 받지 못했다.
르노삼성차 노조는 르노닛산이 빼내가는 돈은 결국 노동자가 희생한 대가라고 주장한다. 르노삼성차의 노동생산성은 국내 자동차업계에서 최고 수준이다. 르노삼성차의 생산직 노동자(사내하청은 제외) 한 사람당 연간 자동차 생산대수는 94대로, 현대차의 65대나 한국지엠의 80대보다 훨씬 많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한지원 연구실장은 “시간당 생산대수도 르노삼성차는 66대로, 한국지엠 부평2공장의 34대, 현대차 울산2공장 1라인의 24대보다 훨씬 높다”며 “노동강도가 다른 자동차업체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은 공정별로 소요되는 표준 작업시간이 너무 짧아, 작업 중간중간에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여유도 없다고 하소연한다. 또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은 소형차, 중형차, 스포츠실용차(SUV) 등 차종을 가리지 않고 같은 생산라인에서 6종류의 차를 만들 수 있는 혼류생산 방식이다. 조립라인의 한 노동자는 “작업자가 수행해야 할 공정이 한 차종에 20개라고 하면, 6종류의 차를 동시에 만드는 혼류생산의 경우에는 120개 공정을 숙지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강도가 훨씬 세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차의 엄격한 노동 통제는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논란까지 낳는다. 한 노동자는 “현대차의 경우 노동자들이 작업능률을 높이려고 일을 하며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듣기도 하는데, 르노삼성차에서는 꿈도 못 꿀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또 “노동자들의 개인 휴대전화까지 작업시간 중에는 사용을 금지해서, 일률적으로 보관함에 보관하고 작업이 끝난 뒤 찾아가도록 한다”며 “사무직 노동자들도 일하는 시간에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느냐”고 되물었다. 르노삼성차는 “경쟁사들에 비해 효율성이 높은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효율성은 설비, 작업환경, 작업자 숙련도, 시설 배치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단순히 노동강도가 세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반박했다.
르노삼성차의 생산직 노동자는 지난해 말 현재 2899명이다. 2006년의 2430명에 비해 19% 늘어났다. 하지만 연간 판매대수는 같은 기간 16만 대에서 27만2천 대로 70%나 급증했다. 사람이 늘어난 것에 비해 작업량이 훨씬 많이 늘어난 것이다. 한 노동자는 “하루 9~10시간씩 주야 2교대 근무를 하는데, 토요일 야간조의 경우 일요일 새벽에 퇴근해서 몸의 생체리듬이 제대로 회복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바로 월요일 아침에 주간조로 투입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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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체불임금 지급 소송 제기
르노삼성차의 노동자들이 이렇듯 경쟁사보다 훨씬 높은 노동강도 속에서 일하지만 급여는 훨씬 적다. 금속노조의 조사에 따르면, 르노삼성차의 지난해 1인당 월평균 임금은 468만원으로, 현대차의 666만원, 한국지엠의 547만원의 70~86% 수준에 그친다. 이에 대해 르노삼성차 쪽은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가 다른 업체보다 짧은 편이어서 임금 수준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며 “또 각사별 시장점유율, 생산, 판매, 이익 규모 등에 의해 지불 능력에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복리후생을 포함한 총임금 수준은 타사에 비해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조는 “회사 쪽의 주장대로 복리후생을 포함하면 현대차 등 다른 회사와의 임금격차는 더 벌어진다”고 반박했다. 또 노동자들이 아프더라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하소연이 많다. 한 노동자는 “위에다 아프다고 호소하면 ‘너만 아프냐. 일하다 보면 그 정도는 당연한 것이다’라거나 ‘네가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그런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제대로 아프다는 얘기도 할 수 없다”며 “업무 연관성을 입증해야 하는 산재 신청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차 노동자들이 이처럼 인력 충원과 적절한 치료를 절실히 바라고 있는데도, 그동안 노조 대신 단협이나 임금협상을 맡아온 사원대표자위원회는 노동자 대표기구의 구실을 제대로 못해왔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 노동자는 “오히려 경쟁사보다 회사 규모가 작고 경쟁력이 떨어져 어쩔 수 없다며 회사 경영진 쪽 논리를 대변해왔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차는 임금 체불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노조는 지난 10월18일 62명의 노조원 명의로 회사를 상대로 법원에 체불임금 지급 소송을 제기했다. 노조에 따르면, 회사는 각종 시간외수당과 특근수당, 상여금 지급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을 축소해 계산해왔다. 회사가 통상임금 계산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중식대보조비, 문화생활비, 교대근무자수당, 하계휴가비, 명절상여금 등과 같이 법적으로 성격이 명확한 것들이다. 노조는 지난 3년간 회사에서 덜 받은 임금이 노동자 한 사람당 적게는 700만원, 많게는 3천만원에 달하고, 노동자 전체로는 최소 17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소송을 맡은 민주노총 법률원의 박경수 노무사는 “법적으로 성격이 명확한 부분에 대해서도 통상임금 계산에서 빠뜨린 것은 회사의 의도성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노조 이전에 근로자 대표 구실을 한 사원대표위원회도 이런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회사에 지급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함께 제기된다. 노조 관계자는 “회사와 사대위 간의 이전 임금협상 과정에서 사대위가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르노삼성차 쪽은 “통상임금의 포함 대상에 대해서는 다른 기업에서도 노사 간에 이견이 많은 사항”이라고 해명했다.
르노삼성차는 인력 충원과 함께 추가 공장 설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르노삼성차의 생산량은 지난해 이미 27만 대를 넘어서, 최대 생산능력인 30만 대에 육박한 상태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2공장 설립 계획이 나오지 않고 있다. 프랑수아 프로보 신임 사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제2공장 증설은 향후 진행되는 프로젝트와 판매량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원론적인 말만 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무리하게 제2공장을 설립했다가 충분한 가동 물량이 없으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라는 악순환을 겪어야 하고, 제2의 쌍용차 사태가 날 수 있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제2의 먹튀’ 될까 두려운 노동자들
르노닛산은 중국 공장이 없다. 세계 유수의 자동차업체들이 대부분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에 현지 공장을 가동하는 현실과 대비된다. 금속노조의 조경석 미조직·비정규직사업국장은 “지금처럼 르노삼성의 자본 유출이 계속되고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심화를 방치하다가는 경제위기의 장기화와 르노닛산그룹의 글로벌 전략 변화에 따라 한국 공장 철수와 대규모 해고라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져도 속수무책이 될 것”이라며 쌍용차에 이은 (외국자본에 의한) ‘제2의 먹튀’ 위험성을 제기했다. 노조에서는 “지난 9월 M&A(기업 인수·합병) 전문가인 한국계 외국인이 영입됐다는 소문도 있어 노동자들이 더 긴장하고 있다”는 말도 한다. 이에 대해 르노삼성차 쪽은 “쌍용차 사태는 애초 기술력이 없는 중국 기업이 인수해 문제가 시작됐지만, 르노삼성차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세계적 자동차회사인 르노가 직접 인수한 것으로 시작부터 전혀 다르다”며 “르노삼성차는 르노그룹의 글로벌 전략에서 ‘아시아 허브’ 구실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언젠가 역사가 밝혀주겠지만, 당장은 노사 간 상호 불신과 대화 부족부터 해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보인다.
곽정수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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