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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개념 구라 전성시대

MB시대, 스마트한 구라들이 떴다…아이튠즈 팟캐스트 압도적 1위를 달리는 ‘나는 꼼수다’와 <직설> 등의 신명나는 씹고 뱉고 쏘기 한 판
등록 2011-09-28 08:57 수정 2020-05-02 19:26
» ’나는 꼼수다’ 녹음 현장을 취재하려 했으나, 나꼼수 쪽은 “비밀주의·신비주의가 우리 마케팅 전략 중 하나”라며 공개를 꺼렸다. <한겨레> 인터넷 방송 하니TV ‘뉴욕타임스’의 정봉주 전 의원(왼쪽)과 김어준씨. 한겨레21 김경호

» ’나는 꼼수다’ 녹음 현장을 취재하려 했으나, 나꼼수 쪽은 “비밀주의·신비주의가 우리 마케팅 전략 중 하나”라며 공개를 꺼렸다. <한겨레> 인터넷 방송 하니TV ‘뉴욕타임스’의 정봉주 전 의원(왼쪽)과 김어준씨. 한겨레21 김경호



‘나는 꼼수다’는 마당놀이와도 닮은 구석이 있다. 동네의 넓은 마당이나 장터에서 풍자와 해학을 버무린 재담과 노래로 구경꾼들의 흥을 돋우는 마당놀이는, 민중의 애환과 현실 비판이 ‘앙꼬’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실제 마당보다 넓은 마당을 열고 나꼼수의 구라들이 신명나게 놀자 수백만의 청취자들이 폭소와 댓글로 추임새를 넣고 있는 셈이다.

1970~80년대를 관통해 살았던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말이 있다. ‘조선의 3대 구라’, 재야운동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소설가 황석영, 미술평론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을 일컫는 말이다. ‘거짓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는 구라의 사전적 의미는 잠시 잊어도 좋다. 집회나, 술자리나, 강의실이나, 답사 여행을 가는 전세버스 안에서 조선의 3대 구라가 입을 열면 역사와 삶과 문화가 술술 풀려나와 듣는 이들을 사로잡았다. 백구라, 황구라처럼 각자의 성 뒤에 구라를 붙여 부른 것은 이들의 입담에 대한 최고의 헌사였다. 박정희 유신체제와 전두환 군사독재는 구라들이 혀를 벼린 배경이었다.

무한 소재의 근원은 MB식 ‘저질 정치’

언젠가는 ‘MB 시대 ○대 구라’라는 신조어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추석 연휴 직전 한 방송사와의 대담에서 ‘안철수 현상’에 대해 설명하며 ‘스마트 시대’를 언급했는데, 스마트 시대 문명의 이기를 100% 활용한 스마트한 구라들이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말 첫 방송을 시작한 ‘나는 꼼수다’(나꼼수)가 대표적이다. ‘ 총수’ 김어준씨와 정봉주 전 국회의원(민주당), 주진우 기자와 라디오 PD 출신인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매주 구라를 푼다. 아이폰으로 아이튠즈 팟캐스트 사이트에서 내려받거나 홈페이지를 통해 접근이 가능한 나꼼수는, 최근 인터넷 방송계의 ‘안철수’에 비견될 정도로 인기가 치솟고 있다. 한 번 ‘감염’된 청취자가 중독된 뒤 ‘전도’에 나서 확산돼왔는데 다음회가 업데이트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열성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주부 박은미(42)씨도 그런 경우다.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가지고 놀다가 우연히 첫 방송을 듣게 됐다는 박씨는 “여러 명에게 전도했는데 100% 성공이었다”고 말했다. 박씨를 포함해 열성팬들이 우선적으로 꼽는 것은 재미다. 정치·사회 등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접한 뉴스들은 복잡하고 딱딱한 데 비해, 김어준씨 등 독특한 캐릭터들의 입을 거치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초창기에 들은 내용은 2007년 대선 이슈인 BBK 사건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연루된, 뭔가 문제가 있는 사건 정도로 어렴풋하게 알았는데 맥락과 배경을 짚어주며 쉽게 설명해주니까 찾아서 듣게 됐다. 적절하게 터져나오는 거친 표현에서도 후련함을 느낀다. 나 대신 욕을 해주니까.” 박씨의 나꼼수에 대한 평이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선배의 소개로 ‘나꼼수’를 접하게 된 직장인 이승오(32)씨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부모님 성향을 따라 보수적인 편이었는데 나꼼수를 들으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나꼼수의 구라를 100% 믿는 건 아니지만 인천공항 매각이나 자원외교를 소재로 한 방송을 들으며, 이 대통령이 기업을 운영하듯이 국가를 끌어간다는 출연자들의 주장에 공감하게 됐다. 이씨는 “나꼼수가 끊임없이 웃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예능 프로그램과 닮은 면도 있지만, 우리 삶, 우리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을 가지고 노는, 개념 있는 구라여서 더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와 박씨 등 여러 명의 열성팬들의 소감을 묶으면 바로 나꼼수의 인기 비결이 된다. 구라의 기본은 재미다. 아무리 좋은 얘기도 재미가 없으면 10분 이상 듣기 어렵다. 나꼼수 구라는 거침이 없다. 노골적으로 편파적이다. ‘이명박 대통령 헌정 방송’이라는 수식어를 달지만 그 의미는 거꾸로다. 웃으며 ‘칼질’해놓고 “우리 가카께서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야!”라고 능청을 떤다. 또 개그맨 빰치는 ‘언어의 연금술사’들이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대해 “보수의 아이콘이 되려다 꼬깔콘이 되고 말았어. 아무나 다 씹어”라고 씹는다. 이명박 시대에 농도가 짙어진 ‘저질 정치’는 이들에게 무한대의 소재를 제공한다.



“조·중·동으로 표현되는 보수신문과 이 대통령 측근들이 장악한 방송 등 기존의 매스미디어가 대중이 요구하는 사회 비판, 의제 설정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안적 매체가 절대 권력을 비판하고 촌철살인을 하는 한국적 현상.” -이창현 국민대 교수(신문방송학)

구걸하지도, 쫄지도 말자는 애티튜드

그런 점에서 나꼼수는 마당놀이와도 닮은 구석이 있다. 동네의 넓은 마당이나 장터에서 풍자와 해학을 버무린 재담과 노래로 구경꾼들의 흥을 돋우는 마당놀이는, 민중의 애환과 현실 비판이 ‘앙꼬’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실제 마당보다 넓은 마당을 열고 나꼼수의 구라들이 신명나게 놀자 수백만의 청취자들이 폭소와 댓글로 추임새를 넣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나꼼수에 풍자와 해학, 비꼼과 비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9월19일 업데이트된 나꼼수 19회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과거와 현재가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나꼼수 진행자 김어준씨는 위키리크스로 폭로된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발언(“이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다”)을 계기로, 1964년 한일협정 체결 반대 시위에 나섰던 대학생 이명박의 기고문을 추적해 이 대통령의 과거 행적에 의문부호를 찍는다. 또 출연자 주진우 기자는 이 대통령이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아 부인 김윤옥씨와 입을 맞춘 장면이 이 대통령의 설명과는 달리 연출된 것이라고 취재 후일담을 밝힌다. 주요 일간지나 방송이 다루지 않았거나 소홀히 한 대목이다.

그래서일까. 이창현 국민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나꼼수를 “소셜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저널리즘”이라고 극찬했다. 이 교수는 “조·중·동으로 표현되는 보수신문과 이 대통령 측근들이 장악한 방송 등 기존의 매스미디어가 대중이 요구하는 사회 비판, 의제 설정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안적 매체가 절대 권력을 비판하고 촌철살인을 하는 한국적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호평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편부당성을 접고 들어가는 만큼 정치 성향이나 사안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은 등을 돌린다. ‘품격 제로’를 불편해하는 이도 있고, 사실로 확정되지 않았거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힘든 부분에 대한 과도한 단정이 지나치다는 쪽도 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문제를 다룬 17회에 대해 “닭장 속에서 닭들이 부흥회 하는 분위기”라는 소감평을 자신의 트위터에 남겼다.

» 아이튠즈 팟캐스트

» 아이튠즈 팟캐스트

김어준씨는 “애티튜드(Attitude·사안을 다루는 태도나 정신자세)부터 콘텐츠다. 구걸하지 말자. 쫄지 말자. 이런 애티튜드는 이 시대에, 그 자체로 위로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다”라고 말했다. 이창현 교수는 “대중매체 시대에 대중 저널리즘은 많은 독자와 시청자, 그리고 많은 광고를 확보하기 위해 객관성과 불편부당성을 표방하지만 나꼼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후원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미디어와 다른 길을 가고 있다”며 “위키리크스가 서양 저널리즘을 대신하고 있는 것처럼 김어준식 개념 있는 구라가 사회적 의제의 부재를 성토하고 고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계의 파격 대담,

대중적 인기 면에서는 나꼼수에 비할 바 아니지만 출판계에도 손꼽히는 구라들이 있다. 지난해 5월부터 1년 동안 우리 사회의 주요 인사 50여 명을 초대해 파격적인 대담을 진행한 ‘걸어다니는 한국 현대사’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와 ‘여러 가지 문제 연구소장’이란 별명으로 더 유명한 소설가 서해성씨가 그 주인공이다. “거룩한 먹물 매체 종이신문”의 엄숙주의를 깨고 추임새가 들어 있는 입말투를

아이튠즈 팟캐스트

아이튠즈 팟캐스트

지향했던 이들은 첫 회에 를 ‘씹고’ 시작했다. 이들의 ‘곧은 혀’(直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설화 필화를 입기도 했지만, 깊은 통찰력과 해박한 지식, 그리고 구라에서 빠질 수 없는 입담으로 한국 사회를 씹고, 뱉고, 쐈다. 최근 책으로 묶여나온 을 보면 서해성씨와 한홍구 교수의 ‘개념 구라’에 응한 이들의 면면이 간단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추석을 전후해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서울시장 도전에 나선 시민운동의 아이콘 박원순 변호사, 범야권 통합운동에 발 벗고 나선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등장한다. 문 이사장이 을 통해 밝히기 전에, 그가 공수부대 특전사 출신임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직설을 통해서였다.

시인 고은과 ‘조선 3대 구라’의 ‘백구라’와 ‘유구라’도 출연했다. ‘나는 가수다’에서 중도 하차한 ‘딴따라 PD’ 김영희, ‘개념 개그맨’ 김제동, ‘거리의 사제’ 김인국 신부 등도 만났다. 인터넷 라디오방송 나꼼수는 개성이 강한 고정 출연자들의 입담이 눈부신 반면, 서해성과 한홍구는 초대 손님들과 더불어 놀며 떠든 뒤에 화려한 구라를 입말로 풀어낸다. 한 교수는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김진숙 선수(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와 ‘고공 직설’을 날리지 못한 게 아쉽다”며 “의 직설 연재는 끝났지만 우리는 형식을 달리해 계속 떠들 것”이라고 말했다.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와 소설가 서해성씨가 박원순 변호사와 ‘직설’ 대담을 하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와 소설가 서해성씨가 박원순 변호사와 ‘직설’ 대담을 하고 있다. 한겨레 류우종

기존 매체와 다른 방식으로 대중과 교감해

‘꼼수 구라’ 김어준은 ‘직설 구라’ 서해성에 대해 “클래스 있는 구라”, 한홍구에 대해 “지식인 구라”라고 평했다. ‘직설 구라’ 서해성은 김어준에 대해 “디지털은 매개일 뿐 가장 아날로그적 존재”라고 화답했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정보력과 지식으로 무장한 개념 있는 구라들”이라며 “매체 환경의 변화를 잘 읽으면서 태동한 ‘개념 구라’들이 기존 매체의 빈 공간을 파고들며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개념 구라들의 전성시대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체면차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스마트폰·인터넷의 인기 절정 구라 채널들
인기 절정의 인터넷 라디오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스마트한 시대와 MB식 저질 정치가 빚어낸 부조화가 만들어낸 공간에서 대박을 터뜨렸지만, 모든 발명품이 그렇듯이 나꼼수에도 사회적 경험과 지식이 축적돼 있다.
형식 면에서 가장 닮은꼴은 인터넷 방송 하니TV의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이경주 PD 연출)다. ‘ 총수’ 김어준씨, 정봉주 전 의원,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고정 출연하고 정치인과 정치평론가, 기자들을 간혹 초대한다. 2009년 5월 첫 방송을 시작해 꾸준히 시청자가 늘어왔는데, 스마트폰 사용자와 더불어 시청자가 늘더니 나꼼수 열풍이 더해지면서 서버가 버티지 못할 정도로 접속자가 폭발했다. 아이튠즈 팟캐스트 ‘뉴스 및 정치’ 분야에서 나꼼수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나꼼수가 뜨기 전, 부동의 1위는 문화방송 라디오 이었다.
총수 김어준씨는 나꼼수와 뉴욕타임스에 모두 출연한다. 김씨는 “‘뉴욕타임스’를 진행하면서 오래전부터 구상해왔다”며 “인터넷과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탄탄하게 결합할 시점과 정치적 타이밍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내용적으로 뿌리를 찾아 내려가면 1999년 9월 의 인기 연재물 ‘쾌도난담’(김어준·김규항 진행)에 가닿는다. 초창기의 ‘김구라 황봉알의 시대대담’도 정치권에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구라를 푸는 코너였다.
정파성이 뚜렷하면서도 장수하는 인터넷 라디오는 ‘라디오21’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운동 방송으로 시작한 라디오21은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 구현’을 목표로 해 진보적 성향의 청취자를 많이 확보하고 있다. 구라 측면에서는, 시사 전문 인터넷 방송 ‘망치부인’도 체면 차리지 않는 말펀치로 유명하다.
나꼼수처럼 스마트폰에 기반을 둔 인터넷 라디오가 소통의 수단으로 인기를 끌자 구라에 자신 있는 인사들이 이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다.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대표는 지난 6월부터 ‘유시민의 따뜻한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도 ‘경제판 나꼼수’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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