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의 무소불위 영향력… 선동적인 ‘직설의 미덕’ 평가 엇갈려
김대중(金大中). 한자 이름까지 똑같은 두 사람이 현직 대한민국 대통령과 현직 <조선일보> 주필로 앉아 있다는 건 기이한 우연의 일치다. 가령, 미국 대통령과 <워싱턴 포스트> 주필 이름이 같다 한들 이들의 인연보다 기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들이 두 김대중씨만큼 거의 숙명적인 ‘악연’으로 맺어지지는 않았을 터이니 말이다. 김 주필은 김 대통령과 같은 건 이름 석자뿐이라는 사실을 애써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김 대통령이 야당 총재이던 시절부터 줄기차게 그를 공격해왔다.
한국의 두 김씨와 미국의 상상 속 두 사람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건, 다분히 <조선일보> 주필 김대중의 탓이 크다. 정작 중요한 건 이름의 같고 다름이 아니라, 위상과 역할의 같고 다름이다. 두 나라 대통령의 자국 내 위상과 역할이야 어슷비슷하겠지만, 두 나라 주필 사이의 그것은 결코 같을 수 없다. 변수는 역시 김 주필이다. 김 주필의 위상과 역할은 워낙 독특해, 딱히 언론인이라고만 하기에는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게 있다고 느껴진다.
언론인이라는 평가만으로는 부족한 인물
‘1등 신문’ 주필인 김대중씨가 사주의 탈세에 연루된 혐의로 검찰수사까지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하지만, 그를 ‘경제범죄의 그저 그런 종범’쯤으로 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한국의 ‘영향력 있는 언론인’ 여론조사에서 10년 이상 부동의 1위를 지켜온 인물이다. 물론 <워싱턴 포스트> 주필이 10년 넘게 미국 언론인 가운데 최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향력도 나름이다. 김 주필에게 붙여진 1위의 의미는 ‘2위보다 앞선다’가 아니라, ‘다른 언론인과는 차원이 다르다’로 보는 게 옳다.
그가 주필로 있는 매체가 한국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 수와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그에게 적잖은 프리미엄이긴 하다. 그가 다른 매체에서 주필을 했다면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갖추기는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두 설명되지는 않는다. <조선일보> 류근일 논설주간이나 최청림 논설위원실장은 조선일보사 사내는 물론 일반독자들에게도 김 주필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의 영향력은 어디까지나 그 자신에게서 비롯된 바가 더 크다.
김대중 주필은 다른 언론인들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조선일보>가 지난 97년 3월5일치 창간 77주년 기념 특집 ‘조선일보의 명칼럼니스트들’에서 김 주필을 이렇게 평가했다. “논리적이고 직선적인 글을 쓰는 김 주필은 법학도의 전통적 풍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점과 점 사이를 잇는 최단거리는 직선’이란 수학 원리는 김 주필의 글에 대한 적확한 표현이다. 그는 쓰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쾌속으로 나아간다. 이 직선의 미학이야말로 김 주필을 당대 제일의 논객으로 만드는 개성이다.”
그러나 내부에 대한 자체평가는 아무래도 주관성이 개입할 수 있다. 김 주필이 지닌 ‘직설의 미덕’에 대해 바깥에서는 사뭇 다른 평가를 내놓는다. “아닌 게 아니라 김 주필의 글은 대단히 직선적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일에 대해 곧이곧대로 말한다는 의미의 ‘직필’이냐 하는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강준만 <인물과 사상 4>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을 해부한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김 주필의 ‘생산성’만큼은 높이 산다. 그러나 그 생산성은 “그가 ‘직필의 달인’이어서가 아니라 ‘처세의 달인’이어서 가능하다”는 게 강 교수의 주장이다. 중요한 건 그의 보수적 이념이 아니다. 강 교수에 따르면, 김 주필의 처세는 ‘언술적 처세’다. 인간관계에서의 처세가 아니라 글에서 나오는 처세라는 뜻이다.
80년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표현하며 직접 기사를 쓴 김 주필은 97년 <5·18 특파원 리포트>(기자협회)라는 책을 통해 5·18 당시의 글쓰기에 대해 나름대로 ‘고해성사’한다. “검열 당국은 ‘폭도’라는 단어를 쓸 것을 통과조건으로 냈다. 승강이 끝에 안 쓰는 것보다는 쓰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는 것이 보였다’는 표현으로 고쳐썼다… 결국 기사는, 신문은 그 시대 그 상황의 산물이며 기록일 수밖에 없다는 초라한 자위를 하면서 말이다.” 그 글의 제목은 ‘악연으로 만났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광주’다. 이게 직필인가.
그는 직필의 달인인가, 처세의 달인인가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공동대표인 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신문방송학)도 “김 주필은 탁월한 재주를 지녔다”고 추어올린다. 그러나 곧바로 반전이 시작된다. “그의 글은 논리도 없고 논거도 취약하다. 하지만 가정법과 추측으로, 주관적인 주장과 억측으로 독자를 현혹하는 재주가 뛰어나다.” 재주가 뛰어나기는 하되 언론인의 덕목에는 맞지 않는다는 얘기는 강 교수의 평가와 일치한다.
김 교수는 <조선일보>의 다른 논객과 비교해 김 주필의 ‘경쟁력’을 설명하기도 했다. “선동성만 놓고 보면 류근일 주간 같은 다른 사내 논객들과 다르지 않다. 아니, <조선일보> 자체가 선동적이다. 그러나 류 주간이 지식인의 언어로 선정성을 포장한다면 김 주필은 시중의 언어를 써서 직접 드러낸다. 그게 막강한 <조선일보>의 주필이라는 지위와 맞물려 우리 사회에 먹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김 주필은 엉터리 이데올로그이지만 탁월한 선동가”라고 규정했다.
김 주필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건 여론조사만이 아니다. 그의 글은 ‘펜의 위력’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를 늘 현실로 증명해왔다. 대선을 앞둔 97년 9월20일 김 주필은 ‘대통령의 건강과 세금’이라는 제목의 매우 오묘한 칼럼을 발표했다. “대통령의 심신이 건강하지 않으면 우리는 나라 전체로서 파국이나 파행을 면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민은 대통령이 육체적으로 얼마나 건강한지, 집안에 국정수행에 영향을 미칠 유전성 질환 같은 것은 없는지… 알 권리가 있다. 객관성을 띠는 의료진을 다수로 구성해서 정밀 건강진단을 받도록 하고 그 결과를 공개토록 하자는 것이다.”
이 글이 누구를 겨냥해서 쓰여졌는지는 굳이 물을 필요가 없다. 그가 말한 ‘건강’ 안에는 ‘질병없는 몸’뿐만 아니라 ‘나이’ 또는 ‘신체장애 여부’ 따위의 매우 중의적인 뜻이 포함돼 있었다고 보는 건 너무 문학적 해석일까. 어쨌든 이 글이 나간 뒤 대통령 후보의 건강문제는 한동안 대선의 주요 이슈 노릇을 했다. 최연소 대통령 후보는 “40kg짜리 쌀가마니를 누가 많이 드는지 해보자”고 치고 나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김 주필은 펜의 위력 못지않은 혀의 위력까지 갖고 있는지 모른다. 같은 해 12월 편파보도에 항의해 조선일보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하던 국민신당 당원들에게 김 주필은 “너네들, 내일 모레면 끝이야. 너희는 싹 죽어. 까불지 마”라고 외쳤다. 그리고 국민신당은 이듬해 감쪽같이 사라졌다. 김 주필의 위력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선견지명인지는 알 수 없으나, 똑같이 취중발언을 하고도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앉은 것과 달리 김 주필은 그때나 지금이나 주필이다.
조선일보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자신의 기교에 찬 글쓰기에 제 발등을 찍기도 한다. 그 자신도 천변만화하는 자신의 논리의 궤적을 빠짐없이 기억하지 못하거나, 바깥을 향해 내뱉는 직설만큼 자신에게는 직설적이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일종의 ‘사고’다. “납세는 대통령의 기초적 자질이다… 세금을 과연 내기나 했는지, 냈다면 자신의 재산과 수입 규모에 맞게 제대로 냈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는 자료의 공개도 필수적이다… 중요한 것은 그 재산의 형성과정이며, 더 중요한 것은 세금을 냈느냐의 문제다.”(97년 9월 칼럼 ‘대통령의 건강과 세금’)
그의 ‘언술적 처세’야 일찍이 검증돼온 바다. 그러나 그는 이번 국세청조사와 검찰조사 과정에서 세속적 처세에 대한 구체적인 의심을 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의 글은 그의 언술적 처세와 세속적 처세가 실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일지 모른다. “그의 세속적 처세는 자연인 김대중이 아니라 <조선일보> 주필 김대중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평범한 월급쟁이도 아니었고, 그와 조선일보 모두 깨끗하다는 주장도 동시에 무너졌다.” 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는 “검찰수사에서 어떤 개인적 혐의가 드러나든 김 주필은 조선일보의 혐의에도 연대책임을 져야 하고, 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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