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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일은 사람이 할 짓 아니다”

산업·작업장별 천차만별인 야간노동… 간호사·환경미화원·공장 노동자·마트 노동자의 한목소리 “아침 퇴근하면 잠 안와”
등록 2011-07-14 06:59 수정 2020-05-02 19:26
» 대형마트들의 경쟁이 격화돼 24시간 영업을 하는 매장이 늘고 있다. 사진 속 영업장은 기사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 한겨레21 윤운식

» 대형마트들의 경쟁이 격화돼 24시간 영업을 하는 매장이 늘고 있다. 사진 속 영업장은 기사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 한겨레21 윤운식

야간노동의 종류는 산업에 따라, 작업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고용노동부는 2008년 야간노동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는 사업의 공공서비스적 성격 때문에 야간노동이 불가피한 경우다. 전기, 가스, 수도, 운수, 통신, 병원 등이 이에 해당한다. 경찰과 소방·구급 인력도 여기에 속한다. 둘째, 생산기술 또는 업무의 성격에 따른 야간노동이 있다. 철강, 석유정제, 합성화학 산업 등이다. 쉽게 말해, 업종 특성상 공장 불을 끄기 어렵고 그래도 끄면 손해가 막대한 산업 분야다. 셋째, 단순히 기업의 경영 효율을 높이려고 사업장의 불을 밝히는 경우다. 앞선 두 번째 경우와 달리, 불을 꺼도 되는데 생산량을 높이려고 밤에도 사업장을 돌리는 경우다. 사업장마다 밤샘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애로사항은 조금씩 다르고, 근무 형태도 조금씩 달랐다. 업종과 업체가 각각 다른 4명의 노동자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봤다.


#공공서비스 부문 이순자(34·여)
서울의 한 사립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다른 사업장들은 2교대 또는 3교대 식으로 야간노동을 일정한 패턴에 따라 한다. 우리 병원에서는 그렇지 않다. 일이 변화가 많고 인력 구성도 유동적인 탓에, 달마다 야근 일정이 바뀐다. 수간호사가 매달 짜는 간호사 근무표에 따라 일정이 바뀐다. 미리 계획을 세우기가 힘들다. 병원에서 ‘나이트’라는 야근은 밤 10시부터 아침 7시30분까지 한다.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하는 ‘데이’와, 오후 2시30분부터 밤 10시30분까지 일하는 ‘이브닝’ 근무가 있다. 여기에 두 가지 원칙은 있다. 야근을 하고 난 다음날 근무를 하지 않는다는 것. 두 번째는 이브닝 근무를 하고 나서 다음날 바로 데이 근무를 하지 않는다는 것. 그나마 이 원칙도 상황에 따라 깨지고 있다. 요즘엔 병원에서 밤에 조무 인력도 줄이는 추세다. 그만큼 간호사의 일이 늘어난다. 환자들이 잔다고 간호사들이 밤에 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서류 작업을 하고, 다음날 약을 미리 챙기다 보면 아침이 온다. 새벽에 환자들의 활력징후도 측정해야 한다. 밤에 간호사 1명이 맡는 환자 수가 24~28명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룻밤을 보내면 정신은 이미 각성 상태가 된다. 그러면 다음날 잠이 오지 않는다. 생활리듬이 엉망이 된다. 호르몬 분비에 교란이 생기게 된다. 수면장애가 생기기도 쉽다. 간호사 가운데 1년 사이 이직률이 우리 병원에서도 10%를 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원인은 불규칙한 교대제다. 아이라도 있는 간호사들은 육아 등을 하기에 어려움이 크다. 간호사들은 나이팅게일의 후예가 더 이상 아니다. 강철 심장을 가져야 한다. 밤낮으로 감정노동을 해야 한다. 현장에서 간호사들이 느끼는 소진감이 크다.


박수균(58·남)
서울 영등포 영등포2동과 문래동에서 쓰레기 수거일을 한다. 일은 저녁 8시께 시작해서 보통 새벽 2~3시에 끝난다. 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잠이 드는 시간은 아침 7시께다. 잠을 깊이 자지는 못한다. 보통 오전 11~12시면 잠에서 깬다. 하루에 4~5시간을 자니까, 항상 붕 뜬 기분이다. 구청 소속이 아니다. 대행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쓰레기봉투 판매 가격에서 수익을 얻고 있다. 쓰레기 수거일을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밤에 일하는 생활에 잘 적응되지 않는다. 새벽에는 상대적으로 운동신경이 떨어지는 것 같다. 밤에 거리에서 일하다 보니 사고의 위험도 크다. 형광색 옷을 입지만 쓰레기를 만지다 보면 더러워지기 일쑤다. 급여는 160만원을 조금 넘는다. 쓰레기를 만지는 일이라 피부병도 많고, 분진 등 더러운 먼지 때문에 기관지도 별로 좋지 않다. 밤 시간에 쓰레기를 만지는 점을 생각하면 급여는 최하위 수준이다. 그럼에도 쓰레기봉투 가격은 13년째 오르지 않고 있다. 그러니 월급이 오르지도 않는다.


#제조업 부문 나상대(37·남)
분말 페인트를 만드는 회사를 다닌다. 회사에서 지난해 11월부터 주야간 맞교대제를 시작했다. 증산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노조원들이 2개 조로 나눠 주야로 일하기 시작했다. 주간조는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일했다. 야간조는 저녁 7시부터 아침 8시30분까지 일했다. 야간조는 저녁 7시에 일을 시작해서 2시간에 15분씩 쉬었다. 중식 시간이 밤 12시부터 1시였고, 새벽 1~3시까지는 취침 시간이었다. 새벽 3시에 다시 깨서 일했다. 아침 7시50분께 일을 마무리한 뒤 샤워를 하고, 주간조가 오면 인수인계를 했다. 일주일 단위로 주·야간조가 바뀌었다. 근무자들의 피로도가 무척 높았다. 일주일마다 낮밤이 바뀌니 힘이 들었다. 특히 아침에 퇴근하면 잠이 오지 않았다. 많이 자도 4시간 정도 잤다. 선잠을 자는 수준이었다. 커튼을 쳐도 해가 뜬 동안 잠을 자려니 힘들었다. 비 오는 날에 상대적으로 숙면을 했다. 사람들은 살이 빠졌는데, 나는 밥을 불규칙하게 먹으니까 오히려 쪘다. 75kg에서 78kg으로 불었다. 나는 비교적 무던한 편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짜증이 늘었다. 동료 사이에 마찰이 생겼다. 불량률도 늘었다. 노조가 회사에 요청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했다. 회사 쪽에서도 노조의 의견을 들어줬다. 지난 7월4일부터 주간 2교대제로 돌아섰다. 밤 12시를 넘어서는 원칙적으로 일하지 않도록 했다. 다만 회사 쪽에서 필요하면 초과근무를 하는 쪽으로 합의했다. 이제 막 모두가 낮 근무로 돌아섰기 때문에 변화를 말하기는 이르다. 그래도 사람들이 좋아한다.


#민간서비스 부문 이은지(42·가명)
경기도의 한 대형마트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약 반년 동안 밤 11시부터 아침 8시30분까지 9시간30분을 일했다. ‘멀티’라고 해서 여러 가지 일을 회사가 요구하는 대로 했다. 고객센터에서 상담도 하고, 매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밤에는 술에 취해 항의하는 고객들을 대하는 것이 힘들다. 그래도 야간에 일하는 것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밤 시간 시급이 7500원으로, 낮 시간보다 50% 많기 때문이다. 또 밤에 일하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더 잘 챙겨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밤에 일하니 문제가 생겼다. 우선 잠을 못 자니 건강에 바로 문제가 생겼다. 얼굴이 흙빛으로 바뀌었다. 야간노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생리를 한 달 내내 하더니, 그다음에는 석달 동안 하지 않았다. 신경도 예민해졌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병간호가 필요한 친정어머니를 신경질적으로 대하게 됐다. 주간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겠다는 생각은 틀렸다. 낮 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마트에서 낮에 하는 일을 찾았다. 돈을 덜 벌더라도 건강과 가족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돈은 모자란 대로 살자고 생각했다. 야간노동의 문제를 다루는 기사를 크게 내줬으면 좋겠다. 야간노동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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