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페(17)는 음악을 좋아한다. 기타를 잘 치고 작곡도 한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 그다지 맘에 들지는 않는다. 랩은 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전에는 토요일마다 기타를 배우러 다녔는데, 올해는 대입시험 준비 때문에 기타 수업에 가지 못해 아쉽다. 또래 친구들은 주말에 모여 파티를 열거나 디스코텍에 가는 걸 좋아하지만, 펠리페는 별 관심이 없다. 명장들의 기타 연주를 듣고 흉내 내는 게 더 재미있다. 아빠와 엄마는 집에 손님이 오면 펠리페의 기타 연주를 자랑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펠리페가 음악가가 되는 걸 바라지는 않는다.
부모보다 또래 친구와 고민 나눠
명문대 공대를 나와 유명 건축회사에서 일하는 아빠와 대학교수인 엄마, 재작년에 보란 듯이 명문대에 합격한 형을 보면, 자기도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한다. 대학은 자신을 사회적 동물로 길들이는 또 다른 장소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야 할 것 같다. 친구들도 11월에 있을 대입시험 얘기뿐이다. 대학 순위와 전공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모두가 고민한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부모님이 자기만 미워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형은 키도 크고 잘생긴데다 공부까지 잘해서 누가 봐도 믿음직하다. 동생은 집안의 재롱둥이다. 잘 웃고 농담도 잘하고 활달한 성격이 엄마와 꼭 닮았다. 펠리페는 그냥 조용히 음악을 즐기고 싶은데, 엄마와 동생은 춤추는 걸 더 좋아한다. 형이랑 동생은 금발머리 백인인데, 왜 자기는 머리색도 검고 어설픈 백인일까 궁금하고 고민이 된다.
좋든 싫든 좋은 대학을 나와야 미래가 보장된다는 건 맞는 말 같다. 음악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수의사가 떠올랐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과 가장 비슷해 보인다. 기타 연주와 랩을 즐기는 수의사, 멋지지 않은가. 동물들과 같이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내성적이고 예민한 펠리페는 늘 생각이 많다. 궁금한 게 많은데, 세상일이라는 게 명확하게 답이 보이는 건 많지 않아서 답답하다. 대학, 미래, 결정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전형적인 엔지니어인 아빠는 공부할 학생이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으냐고 한다. 엄마는 펠리페가 말이 없다고 답답해한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해보라고 다그치는데,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학교에 가면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좋다. 용돈, 대학, 파티, 여자친구…, 비슷한 고민을 하니 할 얘기가 많다. 인생에서 나이는 중요한 게 아니라며 자기 길을 가겠다는 어른스러운 친구도 있다. 친구들과는 이런저런 얘기를 마음껏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뭐든 다 할 수 있는 17살이 좋다
어쨌든 음악을 좋아하는 수의사가 되기로 결정하고 나니 마음은 편하다. 아빠·엄마가 펠리페가 음악가가 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유는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기회와 공간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수의학과가 있는 대학이 많지 않은데 점수가 될까? ‘그깟 것쯤이야’ 하면서도 걱정이 된다. 그래도 자신의 걱정이 어른들의 걱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할 시간도 많고,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펠리페는 17살인 게 좋다.
산티아고(칠레)=민원정 칠레가톨릭대학 아시아프로그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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