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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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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경영’ 이부진 체제 순항할까

2단계 파격 승진한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

경영성과 내세우며 후계구도 변수로 등장했지만 과대포장 지적도 나와
등록 2010-12-16 05:57 수정 2020-05-02 19:26

“이부진 전무는 두 단계 승진인가?”(삼성그룹 출입기자)
“그렇다. 언론에도 보도된 것처럼 호텔신라 전무로서 회사의 성장적 발전에 기여했고, 회사 발전을 위한 혁신 노력 등이 인정됐다.”(삼성그룹 이인용 커뮤니케이션팀장)
삼성그룹은 지난 12월3일 2011년도 사장단 인사를 했다. 이번 인사로 이부진(40) 호텔신라 전무 겸 삼성에버랜드 전무는 부사장을 건너뛰고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과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부문 사장,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의 지위에 올랐다. 오빠인 이재용(42) 삼성전자 부사장이 삼성전자 사장으로 한 단계 승진한 것보다 훨씬 파격적이다.

삼성·신라·제일그룹으로 나뉘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씨는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과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부문 사장에 선임돼 오빠인 이재용씨보다 더 빠른 승진 속도를 보였다.한겨레 김진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씨는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과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부문 사장에 선임돼 오빠인 이재용씨보다 더 빠른 승진 속도를 보였다.한겨레 김진수

이인용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은 “성과주의를 반영한 인사”라고 밝혔다. 호텔신라의 신라면세점이 최근 공항 면세점으로는 세계 최초로 루이비통을 유치하는 등 호텔신라가 크게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호텔신라는 이부진 사장이 입사한 뒤 부쩍 성장했다. 이 사장은 2001년 8월 호텔신라 기획팀 부장으로 호텔 업무를 시작해 2004년 경영전략담당 상무보로 승진했다. 2005년에는 상무로, 2009년에는 전무로 승승장구했다. 그동안 매출은 이 사장의 입사 전인 2000년 4059억원에서 2008년 8748억원으로 껑충 올랐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해 1조2132억원을 기록했다.

이 사장의 ‘몰입경영’도 큰 주목을 받았다. 호텔신라 쪽이 한마디로 ‘진지하다’고 평가한 그의 경영 스타일은 새벽 3시에 업무와 관련한 전자우편을 보내는 등 집요함과 집중력을 보여 직원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3세 경영과 함께 후계 분할 구도가 시작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재계의 한 인사는 “이번 인사는 ‘삼성그룹’(이재용 사장이 이끄는 삼성전자 등), ‘신라그룹’(이부진 사장이 이끄는 호텔신라 등), ‘제일그룹’(이서현 부사장의 제일모직 등)의 분할을 알리는 계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용 사장에 대한 ‘긴장감 조성’이라는 포석도 깔려있다는 해석도 있다. 오빠보다 삼성 입사가 4년 늦은 동생이 같은 직위에 오른 만큼 자칫 이재용 사장이 경영능력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동생에게 후계 구도가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삼성 쪽에서 일부러 이부진 사장의 경영능력을 과시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 임원은 “이재용 사장을 더욱 분발시키기 위해 이부진 사장을 활용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번 사장단 인사를 보면 아예 후계자를 딸로 결정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공식적으로 삼성은 이를 부인한다.

그럼에도 이부진 사장의 경영 성과와 스타일에 호의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부진 사장의 업적이라고 밝힌 호텔신라의 성장을 들여다보면 실질적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 이 사장이 2004년 임원이 된 뒤 2009년까지 6년간 호텔신라의 연평균 매출신장률은 22.7%로, 그 이전 5년간의 3.6%에 비해 6배에 이른다. 특히 2007년까지 5천억원을 못넘던 매출액이 2009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최근 6년간 영업이익률은 연평균 5.5%로, 그 이전 5년간의 9.5%에 훨씬 못미친다. 또 부채비율도 72.3%로, 그 이전의 49.1%보다 악화됐다. 결국 이부진 사장이 호텔신라의 경영에 참여한 뒤 성장성은 좋아졌지만 수익성과 재무안정성은 오히려 나빠진 셈이다. 또 매출이 4059억원이던 2000년 1760명에 달하던 직원은 매출이 3배 가량 늘어난 2009년(1조2132억원)에는 1396명으로 오히려 300명 넘게 줄었다.

계열사 임원에게 호텔 카드 발급해 매출 늘려

호텔신라의 매출 추이

호텔신라의 매출 추이

이에 대해 호텔신라 장우종 홍보팀장은 “2000년 면세점 매출이 전체의 57.1%였지만, 2009년에는 80.9%로 비중이 크게 늘었다”며 “면세점 사업은 임대료가 높고 다른 회사 제품을 팔기 때문에 영업이익이 낮다”고 말했다. 또 “2000년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라 긴축경영으로 투자가 줄어 영업이익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다른 면세점을 운영하는 유통업체 임원은 “면세점 자체가 환율, 해외 관광객수 등 외부요인의 영향이 크고 이에 따라 성장이 결정된다”며 “한 임원의 경영능력이 면세점 성장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부진 사장의 업적이라고 밝힌 호텔신라의 성장을 들여다보면 실질적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 최근 6년간 매출액영업이익률은 연평균 5.5%로, 그 이전 5년간의 9.5%에 훨씬 못미친다. 또 부채비율도 72.3%로, 그 이전의 49.1%보다 악화됐다.

‘직계가족’이라는 배경이 큰 작용을 했다는 지적도 있다. 은퇴한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이부진 사장이 2001년 호텔신라 부장으로 입사했을 때 이건희 회장이 호텔신라에 두 달 가까이 숙박하면서 힘을 실어줬다”고 말했다. 삼성 계열사의 임원 역시 “호텔신라가 매출 확대를 위해 한 장에 수십만원씩 하는 호텔이용권을 대량으로 찍어 계열사에 반강제적으로 사도록 하고, 그룹 임원들에게 신라호텔 카드를 발급해 회사 행사는 물론 개인 약속에도 이용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계열사를 동원해 거둔 성과가 총수 자녀의 공으로 돌아간 셈이다.

이부진 사장의 경영 스타일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의견이 나온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이번 인사를 두고 “이제 한시름 덜 수 있겠다”고 말했다. 이 사장이 공식 직함이 없음에도 삼성물산 간부회의에 참석하는 등 많은 부담을 줘왔다는 것이다. 이번 인사에서 그가 삼성물산 주요 직책을 맡지 않고 한발 떨어진 상사부문 고문으로 옮겼으니 관심이 덜해질 것이라는 기대였다.

호텔신라 쪽에서도 원성이 나온다. 호텔신라가 지난 11월1일부터 서울시내 면세점의 영업시간을 저녁 8시에서 9시로 1시간 늘렸기 때문이다. 반면 최대 경쟁업체인 호텔롯데의 시내 면세점은 여전히 저녁 8시까지 영업하며, 주말에만 호텔신라에 대응해 밤 9시까지로 영업시간을 늘렸다. 호텔신라 면세점의 한 직원은 “10월 중순께 회사 쪽에서 공문을 통해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며 “직원 80% 이상이 여성이고 그 가운데 50%가 아이가 있는 만큼 근무시간이 늘어나 불만이 많지만, 제대로 항의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또 “회사 입장에서는 연장근무로 고객이 한 명이라도 더 오면 이익이겠지만, 직원들은 퇴근이 늦어져 가사 부담 등으로 힘들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당노동행위 등 논란 휩싸인 호텔신라

이밖에도 호텔신라는 부당노동행위와 영세납품업체 착취 의혹이 불거진 상태다. 지난 10월 면세점에서 명품을 대행 판매하는 부루벨코리아에서 노조가 결성되자 면세점들 가운데 호텔신라만이 파견사원에게 노조 가입 여부를 확인했다. 이에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은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로 노조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는 불법행위”라며 호텔신라에 항의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또 한류 캐릭터 제조업체인 유성글로벌은 2008년부터 호텔신라와 소송을 벌이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 권혁대 대표는 “2007년 호텔신라가 먼저 납품을 받을 것처럼 제안해 수억원 어치의 물품을 사고 직원을 뽑았다”며 “수개월 뒤 전화 한 통화로 납품 협상을 중단해 큰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1심 재판에서는 원고 일부 승소로 6천여만원의 배상을 판결했지만, 2심에서는 호텔신라가 승소했고, 현재 대법원에서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분쟁을 조정하는 중소기업청 산하 대중소기업상생재단이 최근 1억원의 합의금을 제시하며 중재에 나섰지만 호텔신라는 거절했다.

물론 이같은 그늘을 이부진 사장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삼성그룹은 이 사장의 승진 배경에 대해 “2001년 8월 호텔신라에 입사한 뒤 글로벌 초일류 호텔 및 유통서비스 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혁신과 성장을 주도했다”고 밝혔다. 결국 호텔신라 성장의 그늘 역시 2단계 승진한 이 사장의 몫이자 해결 과제인 셈이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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