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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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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술 푸게 한 ‘개념 없는’ 판결들

[특집] 걸림돌 판결 ‘최악의 판결’은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헌법소원 낸

군법무관에 대한 징계가 정당하다고 한 서울행정법원 판결
등록 2010-12-09 13:59 수정 2020-05-03 04:26


최악의 판결-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낸 군법무관에 대한 징계가 정당하다고 한 서울행정법원 판결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이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

2008년 7월22일 국방부는 등 23종의 도서를 “장병들의 정신전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불온서적’으로 지정하고, 이들 도서의 부대 내 반입을 금지하는 지시를 각급 부대에 하달했다. 같은 해 10월22일 지아무개 소령을 비롯한 6명의 군법무관은 이런 지시가 자신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이듬해 3월18일 육군참모총장은 이들을 군 명예 실추 등의 이유로 파면 등 징계 처분하기에 이른다. 헌법소원을 냈다가 졸지에 징계까지 당한 군법무관들은 다시 법에 호소했다. 지난 4월2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김종필, 배석판사 진현섭·최영각)는 군법무관들이 국방부를 상대로 낸 파면 처분 등 취소소송에서 국방부의 편을 들었다. 헌법소원을 낼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상관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있는 군법무관을 비롯한 군인은 예외라는 것이 이유였다. 군인은 사람도 아닌가?

군법무관들의 시련은 이어진다. 지난 10월28일 헌재는 군법무관들이 낸 헌법소원에 대해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 및 제한 처분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군인복무 규율은 군인의 정신전력 저해를 막기 위한 것으로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해치는 범위의 도서에 한해 소지를 금하도록 해 과잉금지 원칙에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군법무관들이 법적인 판단을 받기 위해 헌법소원을 낸 것이 ‘명예 실추’라고 인정함으로써 사법부는 스스로 명예를 실추시켰고, 헌법 수호를 포기한 헌재는 자신의 권능을 능멸하고 말았다. 스테디셀러까지 포함된 23종의 도서가 왜 불온문서인지에 대해 국방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심사위원 20자평

한택근 군인은 국민이 아닌가요? 책도 못 읽고, 헌법소원도 못하고

안진걸 군인을 사람이 아닌 ‘군바리’로 본 ‘개념 없는’ 판결



노동 부문- 형식적 판단으로 공무원 노조와 청년유니온의 노조 설립신고 반려 처분이 정당하다고 한 서울행정법원 판결

옛 전공노와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법원공무원노동조합이 통합해 출범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은 지난 2월25일 고용노동부에 조합 설립을 신고했다. 3월3일 고용노동부는 ‘옛 전공노에 조합원 자격이 없는 해직자 82명이 가입돼 있었는데 이들이 새로 만들어진 전공노에 그대로 포함된 것으로 판단되며, 산하 조직 대표 8명이 다른 공무원의 업무를 지휘·총괄하는 직무에 종사해 노조 가입 금지 대상’이라는 이유로 신고서를 반려했다. 사실 이들 대부분은 지난 3월20일 전공노 출범식과 간부결의대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한 전직 공무원이다. 정부의 강경 탄압이 해직의 원인이었던 셈이다. 결국 전공노는 서울행정법원에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노동조합신고 반려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지난 7월23일 서울행정법원(재판장 오석준, 배석판사 김영식·이재홍)은 “현재 전공노에 근로자가 아닌 조합원들이 ‘실질적인 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이상 이를 금지하는 공무원노조법에 따라 노조 설립을 반려한 처분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해직의 원인에는 눈감고 결과에만 주목한 판결이었다.

전공노와 함께 국내 첫 세대별 노동조합을 표방하는 ‘청년유니온’의 설립 신고도 어려움에 처해 있다. 지난 11월18일 같은 법원 행정12부(재판장 장상균, 배석판사 민달기·김종범)는 청년유니온이 고용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낸 노조설립신고 반려처분 취소소송에서 “청년유니온에서 조직 대상으로 하는 ‘현재 취업 중인 정규직 내지 비정규직 근로자 외에 취업준비생·구직자·실업자 내지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청년 모두’에 대해서도 노동 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다”면서도 “청년유니온이 노동부의 ‘조합원 수’에 대한 보완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원고 패소 판결했다. 대원칙엔 눈감고, 절차적 하자에만 주목한 판결이었다.

심사위원 20자평

안진걸 유럽에선 판사도 스스로 노동자라 말한다던데…

김태규 사법부의 사용자 사랑을 매도하지 마?



형사사법 부문-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현장을 잡아 카메라를 뺏은 행위에 강도상해죄 적용한 의정부지법 판결
공안사범 자료 등에 대한 경찰의 비공개 처분이 적합하다는 서울행정법원 판결
조사 과정에서 변호인 참여를 불허한 검사의 행위는 국가배상 대상이 안 된다고 한 대법원 판결

퀴즈 하나. 집안을 염탐하던 도둑을 발견해 실랑이 끝에 그가 가진 망원경을 빼앗았다면, 당신은 무슨 죄? 정답은 강도상해죄. 지난 7월23일 민간인을 불법사찰하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수사관의 캠코더를 빼앗고 그를 때린 혐의로 기소된 대학생 안아무개(27)씨에 대해, 의정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임동규, 배석판사 나청·권민재)가 강도상해죄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퀴즈 둘. 경찰이 끝내 공개를 거부하고, 법원이 이를 추인한 자료는? 정답은 공안사범자료, 시위사범 전산입력카드 등 민간인 사찰자료. 지난 11월1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장상균, 배석판사 민달기·김종범)는 “이들 자료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라며, 이에 대해 경찰청이 내린 비공개 결정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이 판결은 공안사범자료 등을 이용해 경찰이 민간인을 여전히 사찰하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을 더 키우고 말았다.

퀴즈 셋. 검사가 변호인의 참여를 불허하면 위법인가? 성실하고 합리적인 평균적인 검사면 죄가 아니다. 지난 6월24일 대법원 3부(주

심 안대희)는 변호인의 참여를 불허한 검사의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성실하고 합리적인 평균적인 검사를 기준으로 할 때, 그 참여를 불허하는 처분이 권리를 위법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말을 어렵게 꼬았지만, 쉽게 말해 변호인의 참여를 불허하는 검사가 자신의 처분이 피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인지 몰랐으니 무죄라는 얘기다.

심사위원 20자평

장은교 “찍히면 죽는다”의 합법화

임지봉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어떤 명분으로도 제한할 수 없는 기본권이거늘



집회·표현의 자유 부문-
집회로 인한 손해액 전체를 주최 쪽이 배상하도록 한 대법원 판결
국회 앞 집회 금지 규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MB 정부에서 집회·표현의 자유는 허울뿐인 것 같다. 어느새 한국 사회는 자신의 생각을 공표하고 발언하는 일에 많은 것을 걸어야 하는 사회가 돼버렸다. 지난해 12월10일 대법원 2부(주심 양승태)는 집회로 인한 손해액 전체를 집회 주최 쪽이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1심에서 집회 주최 측의 책임 범위를 60%로 제한한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제 집회를 하려면 무한책임 특약을 넣은 손해보험이라도 가입해야 하나. 같은 달 29일에는 헌재가 국회 앞 집회 금지 규정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국회의원 등에게 직접적인 비난을 가하거나 위세를 보여 심리적 압박감을 줄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국회 앞이 안 되면 국민의 요구는 여의도공원에 접수시키라는 말씀인지 여쭙고 싶은 마음이다.

심사위원 20자평

장은교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 일부 시민이 난동을 피우면 서울시장이 책임지나요?

한택근 신문고라도 설치해야 할 판



과거 청산 부문-
일제강점기의 판사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볼 수 없다는 서울행정법원 판결

지난 10월1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김종필, 배석판사 최영각)는 독립운동가에게 실형을 선고한 조선총독부 재판소 판사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친일 반민족 행위가 되려면 “감금, 고문, 학대 등 탄압에 적극 앞장선 행위나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하는 등의 구체적인 행위가 있어야 한다”며 “그가 관여한 재판의 대상이 항일운동과 관련된 사안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현저히 협력했다고 볼 수 없다” 고 밝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법원은 ‘단순 판결’이라는 기능적 역할에 머물지 않았다. 법원의 법 집행으로 숱한 이들이 갇히고, 고문당하고, 학대당하고, 사형당했다. 법원은 일본 제국주의 통치의 하수인이 아니라 최종심급이었다.

심사위원 20자평

임지봉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가 일제시대 판사의 반민족 행위에까지 미치나

정연순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 판사의 친일행위는 판결일 수밖에 없다



환경 부문- 4대강 사업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한 서울행정법원 등의 판결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한다는 4대강 사업.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로 불릴 이 사업은 오늘도 한반도 구석구석에서 굉음을 내며 착착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사법부도 기어이 동참하려는가. 지난 3월1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김홍도)는 4대강 공사현장 인근 주민들이 국토해양부 장관 등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청구 소송에서 “주민들의 피해가 참고 견디기에 현저히 곤란한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 판결했다. 재판부는 “수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 자연환경의 파괴, 미래 세대의 환경권 침해, 역사와 문화의 파괴 등은 개인적 손해가 아닌 공익적 손해”라며 “이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나 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라는 집행 정지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5월4일 전주지방법원, 6월25일 서울고등법원, 7월9일 광주고등법원도 비슷한 판결을 잇따라 내렸다. 이에 대해 류제성 변호사는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충분한 심리 없이 성급하게 기각한 것은 4대강 사업이 오늘과 내일에 미칠 심각한 영향에 대해 전혀 고려해보지 않겠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심사위원 20자평

김태규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생기면 어쩌려고…

정연순 고만해라, 4대강 파내는 당신도, 거드는 당신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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