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저작권은 죽었다”

자유로운 ‘해적질’ 제안하는 스물셋의 열정적 연설가,
아멜리아 안데르스도테르 유럽의회 의원 인터뷰
등록 2010-10-07 04:32 수정 2020-05-02 19:26
23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젊은 국회의원일지도 모른다. 스웨덴 ‘해적당’ 출신 유럽의회 의원인 아멜리아 안데르스도테르는 1987년생 정치인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서쪽으로 약 80㎞ 떨어진 엔셰핑이라는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스웨덴 남부의 룬드대학에서 경제학과 스페인어를 공부하던 그는 2009년 유럽의회 의원으로 당선됐다. 의정 활동을 위해 학교는 지난해 자퇴했다. 그의 누리집에는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함수분석 과목 하나와 논문을 남겨두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유튜브를 통해 본 그녀는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열정적인 연설가였다. 그에게 두 차례에 걸쳐 전자우편으로 질문을 던졌다. 답변은 모두 질문을 보낸 지 12시간도 못 미쳐 도착했다. 햇병아리 정당의 젊은 의원이 보낸 답변에는 알파벳 글자마다 또박또박 확신이 넘쳤다.
어멜리어 언데르스도테르(Amelia Andersdotter).스웨덴 해적당 소속 유럽의회 의원.www.ameliatillbryssel.se

어멜리어 언데르스도테르(Amelia Andersdotter).스웨덴 해적당 소속 유럽의회 의원.www.ameliatillbryssel.se

해적당 활동의 취지는 무엇인가. 21세기에 ‘해적질’이 필요한 이유는.

문화에 접근하고, 문화를 나누고, 건설하기 위해서다. 역사를 통틀어 인류에게는 이런 과정이 계속 필요했다. 현재가 과거와 다른 점은 우리 민초들이 지구적 수준에서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독점자본이 이런 기회를 짓밟는 걸 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해적질은 타인의 권리인 저작권을 침해하는 일 아닌가.

먼저 현재의 저작권 제도를 볼 필요가 있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저작권 관련 소송 때문에 한 가족이 집을 팔아야 하는 경우를 봤다. 경찰이 영장도 제시하지 않은 채 컴퓨터를 압류해버린 친구도 봤다. 현재의 지적재산권은 소유의 집중을 낳고 있다. 어느 산업에서건, 어느 지적재산권이건, 소수에게 소유권이 집중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음악산업을 보면, EMI나 유니버설 등이 그런 소수에 속한다. 영화산업을 보면, 워너브러더스나 디즈니 등을 떠올릴 수 있다. 특허와 관련해서는 제약산업을 보라.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3개 회사가 합병해 만들어졌다. 호프만라로슈는 두 회사의 합병 결과다.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도 애플, 선,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들을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인류가 공유해야 할 문화적 자산 가운데 다수를 소유하고, 개인적 발명과 혁신을 늦추거나 짓밟는 힘을 가진 회사들을 말하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리눅스를 사용하는 회사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소송이 그런 예다. 대형 제약회사들이 유럽과 제3세계에서 꼭 필요한 약에 대한 소비자의 접근을 가로막기 위해 특허권을 남용하는 경우도 있다.

유독 저작권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문화적 표현을 통해 우정을 쌓는다. 우리에게는 문화적 표현을 공유하고 퍼뜨릴 수 있는 도구가 있다. 소비자나 창작자 모두에게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 냅스터나 과거의 전자게시판(BBS), 내가 좋아하는 ‘인터넷릴레이챗’(IRC·인터넷 실시간 채팅 프로그램)이 그런 예다. IRC를 통해 나는 1980년대 음악을 즐기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것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한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경제적으로도 의미가 없다. 우리는 희소하지 않은 자원을 희소하게 만들고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저작권은 이미 죽었다. 우리는 복제를 통제할 수 없다. 창작물이 나오면 퍼지게 마련이다. 물론 당신은 당신의 창작물의 복제를 통제할 수 있다. 그저 외부에 공개하지 않거나 서랍 속에 묻어두면 된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강제하거나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식으로 통제해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가 오래 살면 저작권은 100년 이상 보장된다. 저작권은 저작권자 사후 70년까지 보장되기 때문이다. 오늘 만들어진 책이나 음악, 동영상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 우리 아이도 죽을 때까지 못 쓸 수 있다. 영리를 추구하는 소수는 이런 문화적 자산들에 향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많은 저작이 저작권 때문에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혀지고 파괴될 위험이 있다.

해적당의 강령을 보면, 특허제도의 폐지를 주장했다. 근거는 무엇인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에드윈 맨스필드 교수의 논문을 보면, 특허제도는 전체 산업의 10% 정도에서만 혁신을 유도하는 동기로 작용한다. 그렇게 예외적인 산업으로 꼽은 것이 제약산업과 화학산업이었다(맨스필드 교수의 논문을 보면, 1981~83년에 특허제도가 없었다면 소개되지 않았을 기술들의 비중이 제약산업은 65%, 화학산업은 30%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반면 사무기기·자동차·고무·섬유 산업에서는 특허제도 없이도 모든 기술이 개발됐을 것으로 분석됐다). 제약회사가 신약 개발에 쓰는 비용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국가가 부과한 의무인 임상실험 비용이다. 이 비용은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신약 개발은 민간에 맡길 것이 아니라 아예 국가가 맡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연구자는 기업 혹은 국가의 혁신이나 산업발전의 원인을 특허권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는다. 이를테면 천연자원, 주변산업, 국가의 지원, 산업 내부의 문화, 소비자의 성격 등을 들 수 있다. 기술발전에 관한 연구들을 봐도, 공개적이고 정보가 공유되는 여건에서 질 좋고 다양한 상품이 나오며 파격적인 기술혁신이 더 많이 관찰됐다고 밝히고 있다(지난 6월 파멜라 새뮤얼슨 미국 버클리대학 법대 교수 등은 1998년 이후 설립된 1332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소프트웨어 분야의 업체 가운데 오직 24%만이 특허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소프트웨어업체 대표들은 특허가 기업 경쟁력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허제도의 장점은 거의 없다. 특허가 기술혁신을 돕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 특허제도로 파생되는 것은 엄청난 관료적 절차들뿐이다.

해적당은 지난해 유럽의회 선거에서 7.13%의 득표를 했지만 올해 스웨덴 총선의 득표율(0.7%)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해적당 활동의 퇴조를 의미하는가.

해적당은 소수정당이다. 역사가 짧은 점을 생각하면 총선에서도 선방을 한 셈이다. 스웨덴 유권자들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더 실험적이다. 또 지적재산권이나 정보정책 이슈가 현재 국가 단위의 대의민주주의 의제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스웨덴 의회에서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였을 수 있다. 우리는 국내 총선 결과가 더 나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우리의 정책이 어느 단위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추진될지 알고 있다.

스웨덴에서 한 정당이 자리를 잡는 데는 보통 10년 이상이 걸린다. 사회민주당이 1920년대에 그랬고, 기독민주당이 1970년대에, 녹색당이 1980년대에 그랬다. 스웨덴민주당도 2000년대에 같은 길을 걸었다.

정당 활동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상황이 좋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고취하고, 지식과 문화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결국 시민적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변모했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자신의 개인 자료와 개인적 소통 행위에 대해 일정한 자율권을 가질 권리, 표현의 권리 등이 해적질을 가로막는 법 때문에 위협받고 있다. 인터넷은 민주적 참여를 증진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렇지만 인터넷은 도리어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핑계로 작용하고 있다. 아이러니다.

해적당 운동의 전망은.

전망은 밝다. 유럽의회는 좋은 출발점이다. 전세계에 동맹군이 있다.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자본이 전세계로 뻗어나가듯, 우리도 세계 단위로 활동해야 한다. 그래야만 반민주적이고 억압적인 지적재산권 관련 제도를 뜯어고칠 수 있다. 민초들의 세계적 연대를 가로막을 수는 없다. 거대한 운석이 지구를 들이받는다면 모를까.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