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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의 인물 게이타이, 그가 품은 비밀은?


일본 정사 속 수수께끼 인물… 백제-왜 왕가 관계 규명의 열쇠

제828호
등록 : 2010-09-13 17:29 수정 : 2010-09-1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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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의 인물 게이타이, 그가 품은 비밀은?

백제는 비류(沸流)·온조(溫祚) 형제에 의해 건국됐다. 곰나루에 나라를 세운 비류 세력은 일본 규슈 비(肥) 지역에 분국(구노국)을 세웠다(沸=비=肥=火). 그곳의 에다후나야마 고분에서 많은 백제계 유물이 출토됐다.

최근 충남 공주 수촌리에서 왕후급 수장의 금동장식신, 환두대검, 마구 그리고 중국제 도자기 등 많은 유품이 출토됐다. 이 유품들은 에다후나야마의 것에 버금가는데, 문주왕의 웅진 천도 이전에 상당한 세력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것이 곧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진 ‘이잔’ 세력임이 분명하다. 수촌리의 가라어는 비류가 처음 인천 부근에 나라를 세운 곳 미추홀(彌鄒忽)과 일치한다. 인천에 있던 비류 세력이 곰나루에 자리를 옮긴 것인지 여부는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다.

진구와 오진 모자

곰나루 세력은 분국 구노의 군을 자기 땅에 불러들였다. 일본 정사에서 진구는 가야계의 마지막 왜국 왕 추아이의 비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실제 그녀는 곰나루 출신이며, 이잔과 구노 연합군의 우두머리였다. 이들은 신라 국경까지 침범했으나 결국 광개토대왕군에게 격파당하고 규슈로 건너갔다. 중국 고대 역사서 <수서>에는 “신라왕의 조상은 백제인이며, 바다로 도망친 뒤 신라로 들어가 신라왕이 되었다”고 쓰여 있으며, 또한 신라왕은 광개토대왕에게 “왜가 국경에 가득하고, 성지를 파기하고 있다”며 구원을 요청한다(<광개토대왕비>). 또한 일본 정사는 이 사건을 진구의 신라 정벌로 묘사하고 있다.

일본 왕가는 ‘만세일계’(万世一系)임을 가장해왔으나, 사실은 가야계·비류계·온조계 3왕조로 이어졌다. 제1왕조는 가야계 정복 왕조였다. 진구·구노 연합군은 제1기 왕조의 마지막 왕 추아이를 규슈에서 전사시키고 기내(오사카)에 혁명 왕조를 수립한 제2왕조다. 곰나루(應津)의 일본 음이 오진(應神)과 비슷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오진 정권이 수립되자 137현의 백성도 일본으로 대규모 민족이동을 감행했다. 이들은 한때 신라의 방해로 신라 땅에 발이 묶였으나, 오진이 군을 보내 기내로 데리고 왔다. 또한 일본 정사는 오진계의 유략왕이 한성 백제가 함락되자 즉시 문주왕에게 곰나루의 영토를 양도했다고 하는데, 오진 왕조가 곰나루 출신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공주시 웅진동의 곰나루와 곰굴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연미산.사진 한겨레 자료

백제가 ‘구다라’가 된 까닭

한반도의 고대국가명은 모두 이두 표시지만 가라어의 이름(이두)이었다. 그러나 유독 백제(百濟)만은 처음부터 한자어다. 그 유래는 십제에서 백제로의 성장(<삼국사기>) 또는 ‘백가제해’(<수서>) 등 여러 설이 있는데, 사실은 온조의 이름에서 나왔을 것이다. ‘온’은 가라어의 ‘백’이며 ‘온조 →백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 정사는 처음부터 백제를 ‘구다라’(큰 나라)로 읽고 있다. 백제는 삼한 최대 국가 마한의 후신이며, 그 분국 ‘구노’도 ‘큰 나라’를 나타낸다. 웅진에서 건너간 진구(오진)·구노 세력이 스스로를 큰 나라, 즉 ‘구다라’라 한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들은 기내에 제2왕조를 수립하자 만세일계의 신화에 따라 제1왕조의 신화와 이름 야마토(倭)를 이어받고 본국의 백제를 ‘큰 나라’라 불렀다.

일본서 태어난 두 백제 왕자

오진은 한국에서 태어날 것인데 어머니 진구가 돌로 배를 눌러 억지로 규슈 해변에서 태어나도록 했다. 똑같은 구도의 이야기가 또 있다. 곤지는 형 개로왕의 명으로 “만일 아들을 낳으면 즉시 백제로 보내기”로 하고 산달이 된 개로왕의 후궁과 함께 일본으로 갔으며, 규슈의 한 섬에서 무령을 낳고 즉시 돌려보냈다고 한다(<일본서기>). 같은 역사가가 같은 구도의 두 이야기를 정사에 삽입한 것은 분명히 의도적이다. 이 아리송한 신화들은 공통적으로 백제에서 잉태하고 일본에서 태어난 왕자가 왜와 백제, 두 나라의 왕이 될 운명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오진은 이 인연으로 천지신기(天地神祇)로부터 삼한의 지배권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실제 오진 계열인 왜 오왕의 대중국 외교 노선은 이 생각을 따르고 있다.

게이타이와 곤지

오진의 5대손으로 위장한 게이타이(실체는 백제 개로왕의 동생 곤지)가 백제계 호족의 지지로 오진 왕조를 타도하고 항복을 받는 형식으로 왜왕으로 즉위한다(<일본서기>). 일본 정사에 쓰인 게이타이는 출신 배경을 알 수 없고, 즉위한 뒤에도 20년 동안이나 왕도에 들어가지 못하는 등 의문투성이의 인물이다. 이는 그에 대해 상당한 반대 세력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게이타이(繼?)라는 이름도 ‘체제를 계승한다’는 뜻으로, 쿠데타 왕조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게이타이는 왕이 되자 즉각 적극적인 친백제 노선을 취한다. 가야의 땅 일부를 백제에 양도하고 5만 대군으로 신라를 공격하기 위해 규슈에 있는 신라계 세력 이와이(盤井)를 섬멸하기도 했다.

곤지에게도 게이타이 못지않게 수수께끼가 많다. 이 두 사람이 동일인임을 감추기 위한 <일본서기>의 위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개로왕의 동생 곤지는 큰치(大人)로, 게이타이의 왜명 오오토(大人)와 같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게이타이(오오토)는 같은 시기 곤지와 함께 가우치(현 오사카)에서 지낸 셈이니, 두 사람은 동일인으로 봐야 한다.

개로왕의 동생 곤지에 대한 <송서>(宋書)의 기록에는 차기 백제왕 제1후보인 좌현후로 나오는데, 그 아래 격인 문주왕 때 3개월간 내신좌평(內臣佐平)으로 있다가 죽었다(<삼국사기>). <일본서기>에는 곤지가 만삭이 된 왕의 후궁과 함께 왜로 가던 중 규슈의 섬에서 사내아이를 낳았다고 돼 있다. 이 아이가 곧 무령이다. 이때 곤지에게는 5명의 아들이 있었다고 명기하고 있다. 무령왕과 곤지의 관계에 대해서 <일본서기>는 부자·숙질·형제 3가지로 쓰고 있는데, 사실은 부자지간이다.

곤지의 아들을 5명으로 명기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게이타이(곤지)가 죽자 그의 태자와 제2왕자가 이상한 죽임을 당한다. 그런데 왕위를 이은 왕자 긴메이는 처음부터 태자로 기록돼 있다. 이 모순은 왕이 죽자 또 하나의 정변이 일어났으며, 긴메이가 형들을 살해하고 억지 수단으로 왕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곤지의 다섯 아들 중 죽임을 당한 2명과 백제 왕이 된 동성왕, 그의 아우 무령왕, 그리고 긴메이 5명의 실체는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처음 곤지의 아들이 다섯이라고 기록한 역사가는 긴메이의 왕위 계승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렇게 썼던 것으로 보인다. 긴메이가 게이타이의 아들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한 것이며, 실제로는 아들이 아닐 개연성도 있음을 시사한다.

일본은 스스로 만세일계의 ‘신의 나라’로 우기지만 곤지와 그의 왕자들이 같은 시기 백제와 왜의 왕이었음은 상징적이다. 천왕은 성씨가 없음을 내세워왔으나 <수서> 왜인전에는 ‘아마’씨로 돼 있다. 백제 왕성 ‘여’(余)는 일본어로 아마(리)로, 백제와 왜는 동성동본이다.

김용운 단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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