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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진실 혹은 이면

김대중을 죽이려 했던 구시대의 구조악을 집중 조명한 <김대중 평전 1·2>
등록 2010-08-13 07:01 수정 2020-05-02 19:26

“위장된 교통사고, 납치·살해, 사형선고 등은 ‘음모’가 아닌 ‘구조’였습니다. 그는 ‘구조악’과 싸웠고, 마침내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구조악’의 뿌리와 줄기는 왕성해 다시 화해와 용서의 가치를 매장하고 앙시앵레짐을 불러왔습니다.”

불온한 이미지 덧씌운 ‘김대중의 실상’

〈김대중 평전 1·2〉

〈김대중 평전 1·2〉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두고 낸 (시대의 창 펴냄) 서문에서 요약한 김 전 대통령의 ‘일생’이다. 김 전 관장은 1971년 김 전 대통령이 신민당 대선후보일 당시 당 기관지 취재부장으로 일하면서 그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로부터 40여 년간 수집한 김 전 대통령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그의 삶을 되돌아본 평전을 냈다.

평전은 ‘구조악’, 즉 군부가 김 전 대통령에게 행한 가혹한 정치적 탄압과 박해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보부(중정),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등이 만든 김 전 대통령 관련 비밀문서도 찾아내 공개했다.

1970년 12월14일 중정이 제작한 ‘신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 인물 분석’에는 왜곡된 기록이 적지 않다. 1960년 5월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쇼크를 일으켜 숨진 김 전 대통령 부인 차용애씨의 ‘음독자살’ 기록이 대표적이다. 이후 이 문서는 ‘반김대중 세력’이 그를 공격하는 주요한 자료로 쓰였다고 한다.

1980년 보안사가 작성한 ‘김대중의 실상’이라는 문서는 더욱 노골적으로 김 전 대통령을 비방했다. “비천한 가정환경으로 주위의 질시 속에 유년부터 반항적이고 교활한 성격이 형성”됐다거나, “공산주의식 폭력혁명 수법으로 정권을 탈취코자, 민주주의를 매도한 공산주의자의 마각을 드러내어 학원 소요와 비극적인 광주 사태를 유발, 폭동화함으로써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생존이 경각에 처하는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를 맞게 하였던 반정부 용공분자의 원흉”이라는 것이다. 이 문서는 군대와 언론사, 관공서 등에 뿌려져 김 전 대통령에게 불온한 이미지를 덧씌우는 데 일조했다.

대선자금·DJP 연합 비판 부족해

평전은 김 전 대통령에게 찍힌 ‘빨갱이’ ‘과격주의자’ 낙인을 지우는 데도 적잖은 지면을 할애했다. 1955년 당시 무명이던 김 전 대통령이 10월호에 기고한 ‘한국 노동운동의 진로’는 그가 대중적인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다. 이 글에서 김 전 대통령은 “공산주의자의 간교하고 달콤한 선동에 현혹된 러시아를 위시한 각국의 노동자들이 (중략) 지배계급을 타도하고 공산독재를 실현시킨 결과는 (중략) 이리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1960년 5월호에 실은 ‘4월 혁명의 역사적 의의- 반독재 반공의 자유민주혁명’에서도 김 전 대통령은 4·19 혁명을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대한 반항인 동시에 철두철미한 반공산주의 성격의 것”이라고 규정하는 등 반공 이념을 드러낸다.

1987년 대선을 앞두고 김병관 회장이 “YS(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먼저 후보를 선택하도록 하자. 선택이 안 된 사람은 당수를 맡도록 하자”고 제안한 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3당 합당 전 김 전 대통령에게 직접 합당을 제안한 일 등도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다. 다만 1992년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에게 대선자금 20억원을 받은 일, 정계 복귀 뒤 민주당을 두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 야권 분열의 빌미를 제공한 일, 이른바 DJP 연합 등에 대한 객관적인 비판이 부족한 점이 아쉽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을 ‘인동초’에 비유했지만, 김 전 관장은 그를 ‘경초’(勁草·거센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억센 풀)라고 불렀다. 앙시앵레짐의 시대, 경초의 뿌리는 어디서 자라고 있을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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