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다 밝혀질 것이다.”
천안함이 침몰된 직후인 지난 4월 초, 한나라당 김장수 의원이 한 말이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에는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어차피 진실은 밝혀질 텐데, 군은 비밀을 유지해 얻을 수 있는 가치와 공개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을 따져봐야 할 것”이라는 말을 보탰다. 사건 직후 국방부는 여당 국회의원도 답답해할 만큼 비밀주의를 앞세워 증거들을 감추고 또 감췄다. 사건의 전후 사정을 보여줄 열영상장비(TOD) 동영상은 없다고 발뺌하다 또 어쩔 수 없이 공개할 때는 편집을 했다. 장병들의 물기둥 관련 진술도 더하고 보탰다. 결국 그들이 본 건 물기둥이 아니라 섬광이었고, 목격 장소도 합조단이 밝힌 지점과는 다른 곳이었다. 조사 주체가 조사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 상황이 반복됐고, 오류가 가득한 해명을 반복했다. 상황이 이러한데, 김장수 의원의 말처럼 진실은 ‘어차피’ 다 밝혀질까?
지난 7월27일 는 ‘한국 해군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러시아 해군 전문가 그룹의 검토 결과 자료’(이하 러시아 보고서)라는 문서를 공개했다. 그 안에는 ‘1번 어뢰’에서부터 ‘스크루’까지 천안함 침몰을 둘러싸고 논의돼온 핵심 쟁점이 모두 망라돼 있다. 합조단의 조사 결과와는 판이하고, 등에서 수차례 다룬 내용과는 거의 일치한다.
이 다룬 내용과 거의 일치러시아 보고서의 핵심은 천안함의 침몰 원인을 ‘접촉에 의하지 않은 함선 하부의 수중 폭발’로 결론지으면서 그 폭발체를 ‘기뢰’로 추정한 것이다. “천안함이 수심이 낮은 해역을 항해하다 그물이 오른쪽 프로펠러와 축의 오른쪽 라인과 엉키면서 프로펠러 날개가 손상됐으며, 그물은 천안함의 항해 속도와 기동성에 제약을 줬다. 이 와중에 수심이 깊은 곳으로 나오던 함선의 아랫부분이 수뢰(기뢰) 안테나를 건드려 기폭 장치를 작동시켜 폭발이 일어났다.” 보고서는 “한반도 서해안에서 정박 및 항해 장소를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로도 기뢰의 위험이 간접적으로 입증된다”고 밝혔다.
폭발 원인이 기뢰일 수 있다는 지적이 처음은 아니다. 국내에서 먼저 제기됐지만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을 뿐이다. 은 지난 4월 전직 해군 최고위급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백령도 해역에 1970년대에 뿌린 기뢰 100여 개가 있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806호 표지이야기 참조). 이 관계자는 “그물이나 통발을 연결하는 선이 천안함 스크루에 감겼고, 이 선에 기뢰가 딸려 올라오면서 천안함에 충돌하거나 전기적 작용으로 폭발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기뢰 존재에 대한 증언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1970년대 서해에 긴장이 높아지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백령도를 요새화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 명령에 따라 잠수함 공격용 무기인 미군 폭뢰를 개조한 기뢰 136개를 설치했다”며 “10년 뒤 안전사고를 우려해 회수할 때 채 10%도 회수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소위로 임관해 직접 기뢰를 설치했고, 함장으로 서해안을 수시로 오가던 때 회수 과정에 참여했으며, 10%도 회수하지 못해 100여 개가 백령도 인근에 남아 있다”고 증언했다.
러시아 보고서에 나오는 스크루의 변형에 대한 문제제기도 처음이 아니었다. 은 “현재 시뮬레이션으로 현 상태의 스크루 변형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합조단 민간위원의 증언과 함께 “스크루가 갑자기 멈추면서 관성 작용에 의해 휨 현상이 나타났다는 합조단의 설명이 사실상 설득력을 잃었다”고 보도했다(819호 특집 ‘또 하나의 의혹 스크루 면밀하게 조사하지 못했다’ 참조). 당시 은 갈림, 끊어짐, 찢김, 휨 등 오른쪽 스크루 날개의 다양한 손상을 소개했다.
“스크루 날개를 광택이 나도록 심하게 깎아”
취재 당시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민간위원은 “어구(그물·통발 등 포함)에 의한 변형이라면 설명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증언을 한 바 있다. 러시아 보고서도 “천안함은 침몰 전에 오른쪽 해저부에 접촉하고 그물이 오른쪽 프로펠러와 축의 오른쪽 라인과 엉키면서 프로펠러 날개가 손상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러시아 보고서에서는 관성력이 아닌 좌초 등 다른 원인에 의한 변형이라는 증거로 ‘오른쪽 스크루 날개 한 개의 가장자리에 생긴 금속 균열’을 제시하기도 했다. 합조단은 스크루 날개의 균열에 대해선 언급한 적이 없다.
러시아 보고서는 한 걸음 더 나갔다. “천안함은 참사가 일어나기 전부터 해저면에 접촉돼 오른쪽 스크루 날개 모두와 왼쪽 스크루 날개 2개가 손상을 받았으며, 훼손된 스크루 날개를 광택이 나도록 심하게 깎아 스크루의 넓은 범위에 걸쳐 마찰로 인한 손상 부위가 있었던 것이 조사결과 감지됐다”며 ‘증거 조작’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국방부의 해명은 이렇다. 오른쪽 스크루와 추진축이 어망이 감긴 채 해저면에 접촉했을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해군전술지휘통제체계(KNTDS)상의 천안함 기동 항적과 인근 해역의 해양 환경을 비교해보면 천안함의 스크루와 추진축이 해저면과 접촉할 만한 저수심이나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음이 확인됐다”고 해명했다. 또 “천안함의 경비작전 구역 내에는 기뢰 존재 가능성이 없다”며 “천안함 사태 발생 이후 침몰 인근 해역에서 약 3개월간의 해저 정밀 탐색 활동이 있었으나 잔여 기뢰나 부품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해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KNTDS 항적이 여전히 군사기밀로 공개되지 않고 있는데다 사고 전후 천안함의 작전임무 등이 공개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국방부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지난 4월22일 김태영 국방장관은 “합참의장으로 재직하던 2008년에 탐색을 전부 다시 해서 발견된 (기뢰) 10발은 제거했고 나머지 것들은 도저히 확인할 수 없어서 그런 상태에서 작전을 끝낸 바 있다”고 말한 바 있다(문화방송 라디오 ).
국방부는 증거 조작 의혹에 대해서는 “스크루 회전이 급속히 정지하면서 발생한 관성력으로 스크루 날개 끝이 안쪽으로 굽어졌다. 이 관성력에 의해 선저 부착생물이 떨어져나간 것으로 판단된다”는 해명을 내놨다. 앞서 소개했듯 관성력에 의한 휨 현상은 이미 합조단 내부에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자인한 것임에도 그것을 다시 해명으로 내놓은 것이다. 또 선저 부착생물이 사라진 사실에 대한 설명만 있을 뿐 왜 광택이 나도록 닦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밝혀지지 않은 ‘1차 사고’ 가능성 제기
러시아 보고서는 기뢰 폭발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함선의 내비게이션 오작동 또는 기동성의 제약 상태에서 우연히 우리 어뢰에 의해 피격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근거는 제시돼 있지 않다. 국방부의 해명에도 우리 어뢰의 가능성은 아예 언급조차 돼 있지 않다.
러시아 보고서에는 폭발 원인에 대한 지적에 이어 사건을 구성하는 사실관계가 실제와 들어맞지 않는다는 분석이 더해졌다. 그 근거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에 표시된 시각과 사건 당일 천안함에서 이뤄진 휴대전화 통화를 든다.
우선 “천안함 CCTV 동영상이 마지막으로 찍힌 촬영 시간(21시17분3초)과 공식적으로 언급한 폭발 시간(21시21분58초)이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 5월23일 군은 “유족들의 입장과 개인 신상정보 등을 고려해 CCTV 동영상을 유족들에게만 공개한다”며 “폭발 시각 1분 전까지 특이 사항이 없는 영상이 찍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이유로 CCTV 동영상은 북한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으로 갑자기 천안함이 침몰했음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 가운데 하나였다. 러시아 보고서대로라면 합조단이 발표한 시각보다 최소한 4~5분 정도 앞서서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천안함 승조원의 휴대전화 통화 기록도 문제로 지적됐다.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 보고서가 통화 내용까지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에는 “천안함에 탑승해 있던 승조원이 탑승 승조원이 부상당했다고 해안 통신병에게 핸드폰으로 알린 시간이 21시12분3초로 한국 측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기록돼 있다. 이 시각은 사고 초기 해경이 보도자료를 통해 최초 상황을 인지했다고 밝힌 시각인 21시15분보다 3분이 더 앞서는 것이다. 이는 침몰하기 전 아직 밝혀지지 않은 1차 사고가 있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에 대한 국방부의 해명은 다시 한번 상식의 수준을 넘어섰다. 사건 정황을 구성하는 결정적 증거물인 TOD 영상에 이어 CCTV까지 임의로 손을 댔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국방부는 “실제 시간과 CCTV에 설정된 시간에 많은 차이가 있어 일부 오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명시하지 않았다”며 “(실제 시간과) 3분47~50초 정도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신뢰를 얻기 힘든 해명에 의혹은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복원된 6대의 CCTV 시간이 거의 동일하게 오차가 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또 설치된 지 1년 미만이라면 기껏해야 1분 정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휴대전화 기록에 대해 국방부는 “천안함 승조원이 사적으로 통화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러시아 보고서가 ‘해안의 병사’라고 특정한 만큼 해당 승조원의 통화 내용에 대해 좀더 세밀한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파편이 6개월 이상 수중에 있었을 것”
러시아 보고서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분석은 어뢰 부분이다. 보고서는 “제시된 어뢰의 파편이 북한에서 제작된 것일 수는 있으나, 잉크로 쓰인 표시는 일반적인 표준(위치, 표기 방법)에 들어맞지 않는다”며 “제시된 어뢰의 파편을 육안으로 분석해볼 때, 파편이 6개월 이상 수중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기술했다. 또 “한국 측에서 제시한 어뢰 파편은 구경 533mm 전기 어뢰로 추측된다. 하지만 이 어뢰가 천안함에 적용됐다는 최종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1번 어뢰’의 증거 능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합조단의 발표에 가장 많은 의혹이 제기된 지점도 바로 어뢰였다.
국방부의 해명은 실망스러운 수준을 넘어 낯뜨겁다. 국방부는 “해저에서 수거한 뒤 10일이 지난 5월25일 금속재료 전문가가 육안으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어뢰 추진 동력 장치의 철제 부분 부식 정도는 1~2개월 정도고, 이는 천안함 선체의 철제 부분 부식 정도와 유사하다는 의견이었으며, 해저로부터 수거한 당일에 촬영한 사진을 보면 해저의 낮은 온도(3도 이하), 깊은 수심(47m)으로 인해 부식이 많이 진행되지 않았음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수거된 어뢰 추진 동력 장치가 6개월 이상 경과됐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전후 맥락을 따지지 않는다면 합리적인 해명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설명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편집’한 것이다. 지난 6월29일 한국기자협회·PD협회·언론노조 등 언론단체를 대상으로 이뤄진 설명회에서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는 “(육안 분석 이외에도) 감정을 했으나 부위에 따라 부식층 두께가 다 달라 편차가 커 정확한 부식 기간을 추정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정확한 값을 측정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러시아 보고서에 대한 태도가 옹색한 것은 국방부만이 아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지난 7월27일 “최종 조사결과에 대해 (러시아로부터) 들은 적도 없고 받은 것도 없다”며 “7월 초까지 추가 자료를 제공했으며 (러시아와의) 협의는 있었다”고 밝혔다. 이 말은 러시아 정부가 천안함 조사결과 요약본을 7월 초 미국과 중국 두 나라에만 통보했고, 사건의 직접 당사자이자 러시아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한국 정부에는 알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외교적 실패를 자인한 셈이다.
답답한 국방부의 도돌이표 해명정부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러시아 조사단이 한국에 입국한 것은 정부 공식 발표(5월20일) 뒤인 5월31일이다. 우리의 입장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북한의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하지 않았겠느냐”는 한국 정부의 주장에 러시아가 어느 정도 수긍한 것도 조사단을 받아들인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번 러시아 보고서로 인해 우리 정부는 사건의 증명을 주도한 당사자로서 정치·외교적 측면에서, 나아가 사건의 본질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과학적 입증 측면에서 모두 망신을 당한 셈이다.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담지 못하는 요약본의 특성상 부분부분 허점이 드러나는 러시아 보고서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의 해명은 결함투성이다. 국제적 망신에 대해 보란 듯이 다시 한번 과학적 입증을 해보이겠다는 ‘불굴의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6월 초 한 러시아 해군 출신 잠수정 전문가는 한 중국 언론과의 회견에서 “대잠 초계함인 천안함이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면 한국 해군은 ‘밥통’(飯桶·바보)”이라고 말했다. 정말 해군은 아니 그들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는 ‘밥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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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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