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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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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이 누구의 손인지 보일까



외부의 적뿐 아니라 내부의 적도 겨냥한 것으로 드러난 민간인 사찰 의혹…
정점으로 치닫는 의혹의 배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등록 2010-07-30 18:53 수정 2020-05-03 04:26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이 7월22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이 7월22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민간인 사찰 의혹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이 평범한 중소기업 대표와 노동단체 간부를 사찰의 표적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까지만 해도 사건의 본질은 ‘친노 인사 보복+노동계 탄압’이었다.

지원관실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경찰은 최초 피해자 김종익 전 뉴스타트한마음 대표에게 노사모 가입 여부를 집요하게 추궁했다. 친노 세력의 핵심인 이광재 강원도지사와의 관계 규명에도 주력했다. 또 다른 사찰 피해자인 배정근 한국노총 공공연맹 위원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강하게 반대한 노동계 인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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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계의 복귀와 복수?

사건의 성격은 지원관실이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의 부인 관련 형사사건을 사찰한 정황이 드러나며 극적으로 바뀌었다. 남 의원의 부인 이아무개씨가 2003년부터 보석 수입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민형사 소송 사건 처리 과정에 지원관실이 끼어들었다는 내용이다.

남 의원 부인에 대한 사찰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그동안 모호했던 민간인 사찰 사건의 ‘몸통’을 밝혀줄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김종익 전 대표와 배정근 위원장은 모두 ‘외부의 적’이었다. 여권의 시각에서 볼 때 친노이거나 친노를 지원하는 기업인, 정부의 핵심 정책에 반대하는 노동계 인사를 ‘같은 편’이라 하기는 어려웠다.

남경필 의원의 경우는 다르다. 4선의 한나라당 중진 의원이다. 친노와 노동계 인사 등 국정 운영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 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배경이었다고 한다면, 남 의원의 사례는 여기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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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찰 시점이 중요하다. 지원관실이 남 의원 부인의 경찰 조사 과정을 문의한 때가 2008년 6월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 전인 4월9일, 18대 총선이 치러졌다.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안에서는 큰 소동이 있었다.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을 중심으로 ‘상왕 정치’ ‘형님 정치’ 논란을 일으켜온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SD) 의원의 공천 반납을 요구한 이른바 ‘55인 선상반란’ 사건이었다. 남 의원은 그때 정두언 의원과 함께 문제의 ‘55인 성명’을 주도했다.

남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소장파, 그리고 이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한 이재오계의 ‘반란’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상득 의원은 고향인 경북 포항에서 보란 듯 6선에 성공했다. 반면 이재오 의원은 낙선의 쓴맛을 본 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남경필·정두언 의원은 침묵에 빠졌다. 힘의 공백이 생긴 것이다.

견제가 사라진 만큼 이상득 의원,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던 SD계에 힘이 쏠렸다.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SD계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정두언 의원은 같은 해 6월 초 등과의 인터뷰에서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겨냥해 ‘권력 사유화’의 장본인이라고 비판했다.

정 의원의 역습 직후 곽승준 국정기획수석과 박영준 비서관 등 SD계 핵심 인사는 청와대를 나왔다. 현상만으로는 정 의원의 공세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청와대 인사가 이뤄진 6월, 촛불 사태에 이은 민심 이반이 심상치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국면 전환 카드가 필요했다. SD계를 ‘미워서’ 내보낸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당시 물러난 SD계는 불과 6개월 뒤인 2009년 1월 화려하게 컴백했다. 박영준 비서관은 차관급인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을 맡아 ‘왕비서관’에서 ‘왕차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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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를 주도한 정두언 의원 등은 오히려 권력의 핵심에서 변방으로 더욱 밀려났다. 이상득 의원을 겨냥한 남경필 의원 등 55인의 반란, 정두언 의원의 권력 사유화 비판이 이어질수록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흉흉한 ‘소문’도 잇따랐다. ‘형님’을 거스르고 ‘왕비서관’을 공격한 이들에 대한 뒷조사설이었다. 표적으로 떠오른 사람은 남경필 의원을 비롯해 정두언·정태근 의원 등이었다.

정두언 의원 뒷조사설도 정치권에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국가정보원 출신 청와대 직원 이아무개씨가 2008년 4월 총선 직후 정 의원의 뒤를 캤다는 의혹이 핵심이다. 정 의원 쪽에서는 이아무개씨의 뒤에 박영준 당시 청와대 비서관이 있다고 의심했다. 정 의원의 ‘권력 사유화’ 비판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이씨는 이후 지원관실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월간지 보도로 알려진 정태근 의원 사찰 의혹은 정 의원의 부인 한아무개씨의 컨벤션사업 전문업체가 정부 발주 행사를 싹쓸이했고, 정부 모 기관이 이 내용을 몇몇 언론에 흘렸다는 내용이다. 남경필·정두언·정태근 의원은 모두 ‘55인 반란’을 주도한 반이상득 인사로 꼽힌다. 박영준 국무차장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이들에 대한 사찰과 관련해 ‘형님 배후설’이 나오는 이유다.

남 의원은 2008년 4·9 총선을 앞두고 이상득 의원의 총선 불출마를 요구한 ‘55인 선상반란’을 주도했다. 한겨레 강재훈 기자

남 의원은 2008년 4·9 총선을 앞두고 이상득 의원의 총선 불출마를 요구한 ‘55인 선상반란’을 주도했다. 한겨레 강재훈 기자

검찰이 몸통을 드러낼 가능성도

민간인 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 부인의 고소 사건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다”는 지원관실 직원의 진술이 나온 뒤, 그와 같은 지시를 내린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그가 곧 민간인 사찰 의혹의 ‘몸통’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가 ‘몸통’에 어느 정도 접근한다면, 형사 처벌 여부와 별개로 정치적 책임 공방도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경필 의원 사찰 의혹이 새롭게 드러난 만큼 한동안 잠잠했던 여권 권력투쟁이 다시 전개될지도 관심사다. 한나라당 권력투쟁은 7·14 전당대회 직전 정두언 의원이 민간인 사찰로 불거진 ‘영포 라인’ 인사 파문과 선진국민연대의 월권 논란에 대해 “2년 전 의혹을 제기했던 사람 입장에서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한 뒤 사실상 재점화됐다. 박영준 국무차장도 7월19일 발매된 인터뷰에서 “정두언 의원이 인수위 인사를 거의 다 했다”며 반격에 나섰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박영준 국무차장이 민간인 사찰을 지휘했다’라는 식의 명쾌한 결론에 이를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수사가 마무리되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 공방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두언·정태근·남경필의 미묘한 차이

권력투쟁의 한 축인 정두언·정태근 의원 등은 남경필 의원 사찰 소식이 알려진 직후 오히려 말을 아끼고 있다. 7월28일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권력투쟁으로 비칠 행동에 나서는 것이 적잖은 부담인데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섣불리 먼저 나서기보다 ‘일단은’ 검찰 수사를 지켜본 뒤 행동의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태도다. 만약 검찰 수사에서 박영준 국무차장이 어떤 식으로든 민간인 사찰에 개입했다는 결론이 나오면 굳이 자신들이 나서서 그를 공격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찰 대상으로 거론되는 정두언·정태근·남경필 의원 간 미묘한 정치적 견해차가 있는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나란히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인 정두언·정태근 의원은 대선 전부터 안국포럼에서 함께 활동하는 등 ‘친이 직계’로 분류돼왔다. 반면 남경필 의원은 굳이 자리매김하자면 ‘원조 소장파’ 혹은 ‘비주류’에 속한다. 정두언·정태근 의원이 ‘친이’ 권력투쟁의 당사자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사찰 피해자인 남 의원은 약간 다르다. 남경필 의원 쪽에서도 “일반인 사찰에 이어 국회의원까지 사찰한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것과 권력투쟁에 뛰어드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며 “권력 사유화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은 맞지만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석현 민주당 영포게이트 진상조사특위 위원 인터뷰
“친노를 캐다가 박영준 나와서 접었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민주당 이석현 의원.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이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의 뒤를 캤다는 소식이 알려진 7월22일 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또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지원관실이 친노 인사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중견 건설업체를 내사하다가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 관련 비리가 나오자 서둘러 덮었다는 내용이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김종익 전 뉴스타트한마음 대표에 이어 두 번째 친노 사찰 사례가 된다.
민주당 ‘영포게이트 진상조사특위’의 이석현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지원관실이 2006년 서희건설의 주한미군 이전기지 부지조성 공사 수주 과정에서 친노 실세에게 비자금을 제공했으리라 보고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수사를 의뢰했다”며 “그러나 경찰 수사 결과 오히려 서희건설 대표와 박영준 국무차장이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을 알고 사건을 덮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7월23일 과의 인터뷰에서 서희건설 내사 의혹을 직접 설명했다.

-‘서희건설 사찰 의혹’ 제보를 해온 쪽은 어디인가.
=4~5일 전 사건을 잘 알 만한 위치에 있는 유관기관 관계자에게서 직접 들었다.
-서희건설 내사의 배경은 뭔가.
=2008년 7월 지원관실이 인력을 보강해 출범한 직후 2009년까지 노무현 정권 실세의 권력형 비리를 캐내기 위해 많은 활동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광재 강원도지사 등 ‘친노 386 정치인’이 주요 대상이었다고 파악하고 있다.
-제보의 구체적 내용은.
=참여정부 시절 서희건설이 평택 미군기지 공사를 따내는 과정에서 친노 386 정치인에게 비자금을 건넨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지원관실이 내사에 나섰으나, 경찰 조사 결과 친노 정치인에게 돈을 건넨 사실 대신 오히려 2005~2006년 서희건설 관계자가 서울시를 자주 출입하며 박영준 당시 서울시 정무국장을 접촉한 사실이 확인됐다. 지금은 서울시에 정무국장 직급이 없지만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에는 정무부시장 아래 정무국장이 있었다. 서울시와 접촉할 당시 서희건설은 서울에만 20~30개의 대형 교회를 지었다. 대형 교회 하나를 지으려면 서울시로부터 토지 형질 변경과 인허가를 다 따내는 조건으로 공사를 수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박영준 차장과 서희건설의 관계가 유착돼 있었던 것이다.
-서희건설이 박 차장에게 건넨 금품의 규모는.
=서희건설과 박영준 차장의 유착 의혹까지는 확인된 사실이다. 금품 규모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말하기 어렵다.
-지원관실의 서희건설 내사 근거는.
=실제로 지원관실의 문서수발 현황 목록을 보면, 서희건설 내사가 이뤄진 2008년 후반기부터 2009년 초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조사자료 이첩’이 이뤄졌다. 지원관실이 조사한 자료를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넘겼다는 이야기다.
-서희건설은 어떤 회사인가.
=서희건설의 이아무개 회장은 1970년부터 1983년까지 포항제철에 재직했다. 1994년 서희건설을 창업했는데, 그때 사업을 시작한 곳이 포항이었다. 그때부터 박영준 차장과 이리저리 엮였을 가능성이 있다.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해 친노 및 노동계 인사는 물론 여당 중진까지 사찰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민간인 사찰 의혹의 본질이 뭐라고 보나.
=공안통치의 부활이다. 공안통치는 검찰 및 경찰력 이외의 ‘정보정치’를 필요로 한다. 정보정치를 통해 정권 비판세력을 뒷조사하는 것은 물론 여당 계파싸움에까지 국가 조직을 동원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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