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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성과주의는 비판을 내쫓는다

고문 사건 이후 지도부 비판했다 끝내 파면당한 채수창 전 서울 강북경찰서장, 승복 않고 행정심판 제기하기로
등록 2010-07-29 23:23 수정 2020-05-03 04:26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이 지난 7월22일 경찰청에서 열린 중앙징계위원회에 참석했다. 파면 결정을 두고 채 전 서장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연합 이정훈 기자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이 지난 7월22일 경찰청에서 열린 중앙징계위원회에 참석했다. 파면 결정을 두고 채 전 서장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연합 이정훈 기자

서울 양천경찰서의 고문 사건 이후 경찰의 실적 평가 시스템을 비판하며 이른바 ‘항명 파동’을 일으킨 채수창(48) 전 강북경찰서장이 파면됐다. 파면 결정은 현행 국가공무원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 조처다.

경찰청은 중앙징계위원회(위원장 김학배 보안국장)를 열어 “총경급 간부인 채 전 서장이 경찰 내부의 공식적인 의사전달 경로를 거치지 않고 기자회견을 통해 직속 상관인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경찰 지휘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국가공무원법상의 성실 의무와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해 파면이라는 중징계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7월22일 밝혔다. 앞서 징계(요구)권자인 강희락 경찰청장은 채 전 서장에게 중징계를 내려달라고 중앙징계위에 요구했다.

채 전 서장은 지난 6월28일 양천경찰서 고문 사건이 근본적으로 지휘부의 과도한 성과주의에 기인한다며,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동반 사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바 있다. 조 청장은 경기경찰청장 시절인 2009년 지구대·파출소 성과주의를 도입한 장본인이다. 검거 실적을 계량화하고 이에 따라 불이익도 주는 제도를 확산시켰다.(818호 이슈추적2 ‘성과주의가 고문을 사주한다’ 참조)

파면 결정에 경찰 안팎은 크게 동요하는 눈치다. 애당초 성과주의의 부작용을 성토하는 일선 경찰들의 지지가 컸다. 상당수는 관직을 걸고 멍석을 깔아준 채 전 서장에 대한 응원이기도 했다. 경찰청장도 지체 없이 제도 개선을 지시했고, 현재 경찰청 지식성과관리계에서 대책을 마련 중이다. 한마디로 제도의 폐단을 인정했다는 얘기다.

‘좌절’과 ‘분노’가 발화한 대목이다. 채 전 서장은 파면 직후 과의 인터뷰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계기가 되어) 벌써부터 현장에선 성과주의(의 폐단)가 많이 바뀌고 있다. (기자회견이) 정상적 보고 절차를 밟지 않은 잘못이 있지만, 파면까지 내릴 정도의 잘못이냐”는 것이다.

 

지금 심정을 말해달라.

억울하다. 일선 현장 경찰관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아니었나. 정당한 주장을 한 것인데, 파면 결정이 나온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뒷돈을 받은 경찰도 아니고…. 그리 잘못한 일이냐.

경찰 지휘부를 공개 비판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100% 다 잘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정상적인 보고 절차를 밟지 않은 점은 잘못됐다고 시인한다. 책임도 느낀다. 하지만 보고해서 다 반영이 되고 개선된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젠 주장했던 내용까지 묻어버릴 만큼 센 결과가 나왔다. 정말 뜻밖이다.

(채 전 서장은 기자회견 이후 내려진 직위 해제 조처에 대해 “경찰이 조직사회인데 상사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기자회견을 한 것은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직위 해제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경찰 조직이 밑의 사람들의 뜻이 위까지 제대로 전달이 안 되고 수용되지 않는, 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조직이라 극약 처방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동반 사퇴를 요구했다. 무책임한 지휘부에 분개한다고도 했는데, 결국 혼자만 파면됐다.

특정 개인을 탓하려기보다, 주장했던 내용이 조직과 지휘부에서 받아들여지길 원한 것이다. 그런데 (아예) 내쫓아버리려고 한다. 도저히 승복하기 어렵다.

경찰청 중앙징계위원회가 구성된 형태나 조사 과정은 수긍하는가.

위원회는 모두 5명(치안감 1명, 경무관 3명, 민간인 1명)으로 구성됐는데, 경찰대 출신이 한 명도 없었다. (채 전 서장은 경찰대 1기 졸업생이다.) 중앙징계위원회는 사안에 따라 구성되는 걸로 알고 있다. 경찰 간부 중엔 경찰대 출신도 있는데, 이번 징계위에서는 일부러 다 뺐다는 느낌을 받았다.

직위 해제 이후 어떻게 지냈나.

식당에서 일하고, 공사장에서 벽돌도 깨고 날랐다. 혼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처지를 경험해보고 이해하고 싶었다. 얼마 전 초복 때는 노인정을 찾아 지인들과 함께 삼계탕을 끓여 대접하는 자원봉사도 했다. 세상 살기가 참 어렵고, 힘들게 사는 이가 많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간 경찰서장의 특권으로 분수에 넘치는 대접을 받았다는 생각도 했다.

식당일은 어땠나.

서울 강북 미아삼거리의 한 오리고깃집에서 홀 서빙을 했다. (미아리면 관내 아닌가?) 그렇다. 창피한 것은 전혀 없었고, (직위 해제 기간을 계기 삼아) 민간인처럼 어려운 생활을 몸소 겪어볼 수 있었다.

승복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다른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가.

소청심사와 행정심판을 제기할 예정이다. 법적으로 내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하려 한다.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본다.

(채 전 서장은 징계 결정 30일 안에 행정안전부 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재심 결과도 받아들일 수 없을 땐 다시 60일 이내에 파면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낼 수 있다.)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무엇을 할 계획인가.

민간인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다. 그간 했던 것처럼 봉사활동도 하고, 이제 먹고살 궁리도 해야겠다. 자세히 따져보진 않았지만, 음식점을 열어야 할까?

가족에겐 파면 소식을 전했나.

각시(아내 임은숙씨)와는 통화했다. 오히려 남편 기죽을까봐 더 의연하게 말하더라. 나 하나 못 먹여살리겠느냐고 한다. 하지만 아내도 일을 해본 적은 없다. 지역에서 봉사활동만 했다. 그동안은 내가 먹여살렸으니까, 이제 (아내가) 뭐라도 벌어올 것 같다. 허허.

 

채 전 서장은 쓰게 웃었다. 경찰대학에 입학한 이래, 30년 가까이 관복을 벗어본 적이 없다. 채 한 달이 되지 않는 기간에 운명이 뒤바뀌고 있다. 6월28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말했다. “이번 양천경찰서 사건은 가혹행위를 한 담당 경찰관의 잘못이 크겠지만, 가혹행위까지 하면서까지 실적 경쟁에 매달리도록 분위기를 조장한 서울경찰청 지휘부의 책임 또한 크다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일선 경찰관에게 미루면서, 조직원의 잘못에 절대 관대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지휘부의 무책임하고 얼굴 두꺼운 행태에 분개합니다.”

충정인지, 영웅심인지, 항명인지, 애원인지 알 수 없다. 무엇이든 ‘대가’가 너무 크다. 채 전 서장이야말로 자신의 행동을 저 홀로 책임지는 형국이 됐다. 파면 경찰관은 정상 퇴직자와 견줘, 연금을 절반밖에 받을 수 없다. 앞으로 5년간 공무원이 될 자격도 제한된다.

채 전 서장은 말했다. “자부심과 명예로 30년을 살았습니다. 충정을 몰라주는 것 같아 많이 서운합니다.” 지나치게 상투적이다. 그것밖에는 할 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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