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 시절 ‘막걸리 보안법’이란 말이 있었다. 술김에 터트린 사소한 불만까지 ‘남한 비판, 북한 찬양·고무’로 몰아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렸던 국가보안법을 빗댄 것이다. 법 적용이 워낙 자의적이다 보니, 수사기관이 거는 대로 ‘막 걸리’는 법이라는 뉘앙스도 풍긴다. 폭압의 시대를 간신히나마 살아내려면 술이라도 걸쳐야 했을 텐데, 그럴수록 목구멍으로 치밀어오르는 온전한 정신을 무너뜨리느라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에 겨웠을까…. 이렇게 가슴 아픈 ‘과거’라고 여기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막걸리법’은 존재하는 것 같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죄’다.
‘막걸리 보안법’ 대통령 명예훼손죄박선희(56)씨는 25년 전 스웨덴으로 이민 간 ‘스웨덴 국민’이다. 스톡홀름에서 프리랜서 통역·여행 가이드를 하면서 남편·아들과 함께 산다. 홀로 떠난 머나먼 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일을 하느라 20년 넘게 한국의 정치·사회 문제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다 서너 해 전 우연히 들른 인터넷 다음 카페에서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을 알게 됐다. 대체 조·중·동이 뭐가 문제기에 폐간운동까지 벌이나 싶어 하나둘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2008년 쇠고기 촛불 무렵엔 박씨도 다음 아고라에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고, 자연스럽게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호감을 느끼게 됐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에도 가입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좀 과하게 글을 올리긴 했다. 하루에 20개씩 올린 적도 있었다. 특히 노 전 대통령 서거 뒤엔 비판 강도가 세졌다. “너무 쇼크를 받아서 이 정부의 ‘정치적 살인’이라는 글을 많이 썼어요. 직설적인 성격이거든요. 이명박 대통령, 검찰, 조·중·동 등을 대놓고 욕하는 글도 올렸고요.”
불안과 분노를 치솟게 하는 일은 지난 3월께 일어났다. 한국에 사는 박씨의 가족에게 검찰과 경찰이라는 사람들이 집전화와 휴대전화로 연락해 박씨의 전화번호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자신을 경찰이라고 한 사람은 두 차례나 박씨의 친정집을 찾아갔다. 누구 하나 파출소 신세 한 번 진 적 없는 집안에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이니 검찰이니 하는 ‘무서운 사람들’이 무시로 다가오자, 가족들은 겁에 질리고 말았다.
겁에 질린 가족들 “왜 쓸데없는 일에…”가족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박씨도 검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의 김아무개 검사라고 했다. ‘당신의 인터넷 아이디가 도용돼 다음 아고라에 이명박 정부 비판 글 수백 개를 올리는 데 이용되는 것 같다. 혹시 당신 아이디로 글을 쓰는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는 게 질문 요지였다. 박씨는 “정부 비판 글을 올리면 안 되는 거냐. 그 사람이 살인이라도 저질렀다면 검사를 총동원해서라도 찾을 수 있겠지만, 정부 비판 글 좀 올렸다고 이렇게까지 찾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되물었다. 김 검사는 “너무 노골적으로, 수백 개의 글을 전문적으로 올리기 때문에 조사를 하고 있다”· “누가 당신 아이디를 도용할 만한지 잘 생각해보라”며 전화를 끊었다.
한 달가량 지난 뒤 검찰은 다시 박씨 가족에게 전화를 했다. 박씨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문제 삼았다. “박씨가 반정부 행위를 하는데 왜 그런 사실을 가족들이 속이느냐. 당장 박씨를 구속하겠다”는 전화를 수시로 걸었다고 한다. 또한 검찰은 박씨와 가족의 출입국 기록, 박씨의 한국 내 재산 상태는 물론 그 재산을 박씨 동생이 관리해준다는 사실까지 꿰고 있었다. 심지어 지난겨울 박씨가 한국에 왔을 때 친구에게 20만원을 빌린 일과 전자우편으로 주고받은 이야기 내용까지 거론하며 가족을 압박했다. 이 때문에 직장에 다니는 박씨의 막내 여동생은 “언니 때문에 가슴 떨리고 불안해서 못 살겠다. 회사도 잘리게 생겼다. 빨리 들어와 자수를 하든지, 사건을 막든지 하라”며 박씨를 다그쳤다.
박씨는 “재산 상황과 전자우편 내용까지 거론하는 것으로 미뤄볼 때, 검찰이 금융계좌를 추적하고 전자우편도 감청한 게 틀림없다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또 “이렇게 내 10~20년 전 행적까지 싹 조사해 친정 식구들을 들들 볶아대는 통에 집안이 쑥대밭이 됐다. 불안과 공포심 때문에 그땐 식구들이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였다”며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6월 중순엔 다시 김 검사가 박씨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죄와 비방죄로 긴급체포명령이 떨어졌다. 당장 한국에 와서 조사를 받으라”고 했다. 박씨도 가만있지 않았다. “당장 조사받으러 갈 테니 한국행 비행기표삯을 내놓으라”고 했더니, 김 검사는 금세 말을 바꿨다. “당신은 외국 국적이고, 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체포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에 다시는 못 올 줄 알아라. 들어오면 곧바로 공항에서 체포하겠다.” 박씨는 “왜 나를 체포하느냐”고 거세게 항의했고, 김 검사는 “이 여자 무섭네”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지금 박씨는 한국의 가족과 연락을 끊은 상태다. 박씨가 쓴 글 때문에 검경으로부터 너무 많이 시달린 탓에 가족들이 겁에 질려 “왜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었느냐. 집안을 망치려고 작정했느냐”며 박씨를 원망하기도 했다. 박씨도 자신 때문에 동생이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김주현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박씨를 조사한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박씨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조사해달라는 진정이 접수됐고,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박씨임을 확인했다. 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더 수사를 해봐야 하므로 내용을 더 확인하고 있다”며 “이 사건은 일반적인 사건 처리 절차와 똑같이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가 진정을 접수했는지는 밝힐 수 없다고 덧붙였다.
“수백만~수천만 개 아이디 감시당한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은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지 않아도 되는 ‘통신자료 제공제도’(수사기관이 요청할 경우 통신사가 해당자의 인적사항 등이 담긴 자료를 제공하는 것)를 악용해 간단히 박씨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가족들을 압박하고, 박씨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다고 거짓말까지 한 건 국가에 비판적인 사람들에 대한 탄압이라는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문제는 이렇게 공개되는 통신자료가 연간 50만 건이고, 그 가운데 10만 건이 인터넷 게시물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통신자료 한 건에 들어가 있는 아이디는 수~수십 개이기 때문에 수백만~수천만 개의 아이디가 아무런 통제 없이 감시당한다는 얘기다. 이 감시가 모두 범죄 수사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을 규제하려는 것이었는지 누가 알 수 있느냐”고 덧붙였다.
박씨가 겪은 일은 정말 ‘일반적인 사건 처리 절차’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죄’가 이 시대의 막걸리 법이라면.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임지선 기자 sun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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