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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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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BRIC)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황우석 논란의 시발점인 과학자 모임 사이트에서 천안함 토론 활발
한국과학기술인연합도 문제제기, 교수들도 발언하기 시작해
등록 2010-07-14 12:06 수정 2020-05-03 04:26

“합조단은 다공질 산화알루미늄에 물이 강하게 흡착돼 있어 40%에 이르는 물이 시료 준비 과정과 분석 과정에서 생기는 증발에도 불구하고 탐지됐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다공질이든 아니든 증발 조건에서 변화는 없으므로 이들이 습기 형태로 있을 수 없습니다.”(아이디 양판석)
“천안함 함구는 올바르지 않다”

과학자들의 커뮤니티 사이트로 황우석 사건 당시 중복 사진 게재 문제를 지적해 유명해진 브릭(BRIC). 폭발 물질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양판석 박사와 다른 과학자들 사이에 토론이 진행 중이다.

과학자들의 커뮤니티 사이트로 황우석 사건 당시 중복 사진 게재 문제를 지적해 유명해진 브릭(BRIC). 폭발 물질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양판석 박사와 다른 과학자들 사이에 토론이 진행 중이다.

지난 7월7일 과학자 모임 인터넷 사이트인 ‘브릭’(BRIC·bric.postech.ac.kr)의 소리마당 게시판에 오른 이 글에는 이틀 만에 댓글이 130여 개 달렸고 조회 수는 2200건을 넘어섰다. 캐나다 매니토바대 지질과학과 분석실장으로 있는 양판석 박사가 올린 글이다. 그는 천안함 ‘폭발 물질’의 성분이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이 주장하는 알루미늄 산화물(Al2O3)이 아니라 수산화알루미늄(깁사이트·Al(OH)3)이라는 의혹(818호 이슈추적 ‘폭발 물질은 천안함에서 나왔다?’ 참조)을 제기한 뒤 국방부가 지난 7월6일 해명 자료를 내자, 이를 재반박하는 글을 브릭 게시판에 올렸다.

5년 전 황우석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생물학연구정보센터’로 불리는 브릭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미국 는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황우석을 쓰러뜨린 모든 비판은 젊은 과학도들의 웹사이트에서 먼저 나왔다”며 브릭을 소개했다. 당시 줄기세포 사진 중복 게재 의혹을 가장 먼저 제기한 것이 브릭의 과학자들이었다. 당시 브릭의 활약은 양판석 박사가 이곳을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브릭은 원색적 비난 없이 건설적인 논의를 하기 위한 토대가 마련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천안함 사건이 터진 직후부터 브릭에서 사건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 것은 아니다. 천안함 사건 초기에는 과학적 논의를 할 수 있는 영역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조단 조사결과에 대한 이승헌 버지니아대 교수(물리학)와 양판석 박사의 과학적 반박이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천안함 얘기를 자제하자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왔지만, 종전과는 달리 “천안함 문제가 과학적으로 한 점 의혹 없이 해결될 때까지 여러분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야 하지요. 예전 황우석 사태처럼요. 바이오 전공이기 때문에 천안함 사태에 대해 함구하겠다는 태도는 과학자로서 바른 태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아이디 지나다) 등의 내용이 댓글로 달리기 시작했다.

양 박사의 글을 계기로 브릭 게시판에서는 양 박사와 젊은 과학자들 사이의 댓글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토론은 7월7일 아침 8시에 시작돼 9일 오후 2시가 넘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틀 밤을 꼬박 새운 셈이다. 그 안에서는 지역이 캐나다냐 서울이냐, 전공이 생물학이냐 물리학이냐 지질학이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논문을 소개받고, 또 자신이 다른 논문을 소개하며 지혜를 모으는 중이다.

지금까지 천안함과 관련된 논의는 한국과학기술인연합(www.scieng.net)에서 더 활발했다. 이 사이트의 시사토론 게시판은 이 교수와 양 박사 등 두 연구자의 보고서가 언론에 공개될 때마다 그것을 소개하며 활발하게 토론이 전개됐다. 지난 황우석 사건 당시 연구윤리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차분한 성찰을 주도한 것과는 달리 논의들이 상당히 공격적이다. 하루에 평균 2~3개 글이 올라오고 조회 수는 많게는 2천 건을 넘어선다. 회원 수가 2만8천여 명임을 감안하면 적은 수가 아니다. 내용은 주로 ‘폭발 물질’인 알루미늄과 관련된 논문을 찾아 올리면서 토론을 유도하고, 그것을 토대로 질문과 답을 나누는 식이다. 지난 7월7일 국방부의 해명이 나온 다음에는 “시료가 수산화물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면 될 일인데 연돌 등에서 깁사이트를 못 찾았다고?”(아이디 PrimaMateria) 등 직접적으로 해명의 허점을 지적하는 글이 올라오거나, “성분 분석을 할 때 기본적으로 해보는 실험(DSC 데이터)으로 알루미늄 산화물인지 수산화알루미늄인지 녹는점 차이로 확인할 수 있고, 수분 포함 여부, 비결정질 여부도 알 수 있습니다. 데이터를 안 보여주는 게 이상합니다. (중략) 열분석을 하면 어떤 물질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아이디 녹주석) 등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글도 올라왔다.

이런 분위기는 학계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지금까지 학자들은 인터뷰는 고사하고 말 한마디 기사화되는 것조차 꺼리던 분위기였다. 기자가 자문을 구해도 “이승헌 교수는 물리학 교수니 물리학 교수가 답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거나 “나는 물리학 전공이기는 하지만 이 교수와 같은 고체물리학 전공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많은 답은 “정치적 논란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6월29일 언론단체를 대상으로 열린 합조단의 설명회가 보도된 뒤부터 분위기가 점점 바뀌고 있다. 의혹 제기에 대해 해명을 거의 하지 않던 합조단이 답변을 하기 시작하자 오히려 학자들의 의구심은 더 커진 것이다.

한 국공립대 교수는 “지금 통화하면서도 실험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실험인데, 왜 그런 앞뒤가 맞지 않는 답변을 내놓는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에 수만 명의 재료 분야 전문가가 있다. 전문가들이 나서면 폭발 물질과 관련된 문제만큼은 간단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7월 초 과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합조단의 이후 해명을 예견하기도 했다. ‘폭발 물질은 퇴적 물질?’( 인터넷판 6월30일 보도) 기사를 본 뒤 전자우편을 보내와 “깁사이트라는 단어보다는 수산화알루미늄을 함께 병용하는게 맞다”며 “깁사이트만 썼을 때는 그것이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할 수 있다”고 제안한 것이다. 이는 천안함 사건을 기사화한 이래 기자가 국내 과학자한테서 처음으로 받은 자발적 조언이었다. 이 교수의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국방부는 실제로 지난 7월6일 “깁사이트라는 광물은 우리나라 일부 지역에서만 존재하며, 백령도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발표했고, 일부 언론에서도 그 말을 그대로 인용해 보도했다.

과학자가 앞서서 실험 제안

구체적으로 방향을 제시하거나 직접 실험을 제안해오는 과학자도 있다. 서울대의 한 이과 계열 교수는 “그래프만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변수를 고려하지 못할 수 있다”며 “공개적인 직접 실험으로 가야 한다. 시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한 국공립대 교수는 “우리는 어려서부터 학계에서 거짓말을 하는 순간 끝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주입받아온 사람들”이라며 “전문가들이 좀더 범위를 넓혀서 논의를 진행하면 진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국책연구소의 연구원도 나섰다. “에너지분광기와 엑스선회절기는 전국적으로 수천 대에 달하는 기계”라며 “실험을 두고 논란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학부생도 할 수 있는 실험이고 분석할 수 있는 결과”라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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