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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설계도는 가짜였다

언론 검증위에서 밝혀진 천안함의 ‘없었던’ 진실들…
실물 크기 어뢰 설계도와 초병의 물기둥 진술은 애초에 없었다

제818호
등록 : 2010-07-08 16:56 수정 : 2010-07-3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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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군 합동조사단이 지난 5월20일 공개한 실물 크기의 어뢰 설계도. 당시에는 천안함을 침몰시킨 CHT-02D 설계도라고 설명했으나 이와 비슷한 크기의 다른 어뢰(PT-97W) 설계도로 밝혀졌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천안함 침몰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의 지난 5월20일 중간발표가 상당 부분 사실과 다르거나 사고 당시를 목격한 백령도 초병들의 주요 진술이 왜곡된 것으로 드러났다. 합조단이 6월29일 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전국언론노조 소속 언론인들이 참여한 ‘천안함 조사결과 언론보도 검증위’(이하 검증위)를 대상으로 연 천안함 설명회 자리에서다. 국회 천안함 침몰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가 정부·여당의 소극적인 태도로 사실상 막을 내린 가운데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둘러싼 논쟁은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합조단은 설명회를 시작하면서 “5월20일 공개했던 7m 실물 크기의 어뢰 설계도는 천안함을 격침시킨 것으로 결론낸 CHT-02D 어뢰와 다른 별개의 북한 중어뢰인 PT-97W의 설계도였다”고 밝혔다. 윤종성 과학수사분과팀장은 “당시 설명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실무자가 착오로 군 인쇄창에서 실물 크기가 비슷한 다른 북한 어뢰 설계도를 인쇄한 후 조사발표팀에 잘못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 설계도는 그 설계도가 아니다?

그런데 언론인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는 뉘앙스가 달라졌다. 권태석 증거물수집팀장은 “(어뢰의) 실물 크기와 증거물(어뢰 추진동력체를 뜻함)의 위치를 설명하기 위해 그 사진(PT-97W)을 이용해 보여준 것이며, 진짜 설계도(CHT-02D)는 수사 발표 이후 일주일 정도 지나 확보했다”고 말했다.

따져보자. 실무자가 착오를 일으켰다면 비슷한 설계도 2개를 모두 가진 상태에서 잘못 인쇄했거나 잘못 집어들었다고 얘기해야 ‘착오’가 된다. 그런데 군 설명대로라면 CHT-02D 설계도는 합조단 발표 뒤에야 확보했다. 게다가 “국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증거물의 위치를 설명하기 위해”라는 대목에서는 더욱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목적은 있는데 그 목적을 실현할 도구는 없는 상태에서 비슷한 것을 들이민 것은 아닌지, 합조단 발표 직후 설계도를 둘러싼 의혹이 계속 불거지자 ‘진짜 설계도가 아니었다’고 피해가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설계도와 연관된 또 다른 결정적 증거는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였다. 합조단은 5월20일 설계도의 출처를 언급하면서 “수출을 목적으로 만든 북한산 무기소개책자”를 수차례 언급했다. 그런데 결국 ‘책자’라고 표현할 만한 자료는 없었다.

검증위 언론인들은 이날 설명회에서 어뢰 설계도의 출처와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에 대해 캐물었다. 결국 손기화 정보분석팀장 “책자는 없다. 인쇄물은 낱장의 인쇄물을 말한다. CHT-02D 내용을 설명한 자료와 그것을 보증하는 문서를 인쇄물 형태로 가지고 있고, 어뢰 설계도와 특성을 설명하는 자료가 담긴 CD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낱장의 인쇄물들과 어뢰 설계도가 담긴 CD를 입수한 “극비 루트”는 제각각 다르다고 군을 밝혔다. 군은 설명회에서 “시간이 촉박해서 준비를 두세 곳에서 하다 보니 설계도를 중심으로 해서 일치를 시키고 한 부서에서는 실물을 구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답했다. 군은 무엇에 쫓긴 것일까?


합조단의 5월20일 중간발표 당시 ‘결정적 증거’에 관한 논리 구조는 이렇다. ‘군은 결정적인 증거인 어뢰 추진체를 인양했다, 군이 확보하고 있는 수출용 북한산 무기책자와 비교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설계도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천안함은 북의 CHT-02D 어뢰에 의해 침몰했다.’

초병의 진술은 ‘마사지’ 당했나

백령도 서쪽 해안선. 백색 섬광을 목격했다는 초병들이 진술한 방향(A)과 합조단이 천안함 사고 지점이라고 밝힌 폭발 원점(B)의 방향은 확연히 다르다.

검증위를 상대로 한 설명회에서 드러난 사실을 거꾸로 따라가보자. 5월20일 제시한 실물 크기의 어뢰 설계도는 비슷한 어뢰의 설계도였다, 수출용으로 만든 북한산 무기책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낱장의 인쇄물과 CD가 전부다, 극비의 출처는 각각이나 설계도를 중심으로 일치시켰다. 게다가 과학자들이 어뢰 추진체와 천안함 선체의 흡착 물질 분석 결과를 검증하면서 ‘폭발의 흔적’을 의심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어뢰 추진체는 여전히 천안함 침몰의 ‘결정적 증거’라고 할 수 있을까.

어뢰 추진체가 ‘결정적 증거’였다면, 어뢰 공격과 버블제트 현상에 의한 천안함 침몰이라는 합조단의 결론을 뒷받침할 ‘결정적 증언’은 사고 당시를 목격한 백령도 초병들의 ‘백색 섬광’ 진술이었다. 백색 섬광을 물기둥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한겨레21>이 이들 초병의 진술을 입수해 살펴본 결과, 이들은 섬광과 물기둥을 뚜렷이 구별하고 있으며, 두 차례에 걸친 진술에서 일관되게 “물기둥은 보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겨레21>은 817호 ‘물기둥·1번·TOD 그리고 상세보고서’ 기사에서, 같은 ‘섬광 진술’이 군 발표 초기에는 신빙성을 의심받다가 합조단 발표 때는 결정적 진술로 뒤바뀌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런데 합조단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물기둥을 보지 못했다”는 중요 진술은 빼놓고 이들이 보았다는 백색 섬광을 물기둥으로 바꿔놓았다. 초병들의 진술은 누가, 왜 ‘마사지’했을까?

게다가 군은 초병들이 목격한 섬광의 위치는 애써 무시했다. 초소 근무 중이던 초병들은 각각 “섬광의 오른쪽이 두무진 돌출부에 가려진 상태였다” “사고 지점은 2~3시 방향으로 두무진 돌출부 쪽이었다”고 진술했다. 군이 밝힌 폭발 원점과는 다른 방향이다(그래픽 참조). 군은 야간이었고 해무 때문에 시계가 좋지 않아 방위나 거리가 정확하지 않은 진술이었다고 해명했다. 같은 이유라면 이들이 목격했다는 섬광을 물기둥으로 해석한 합조단의 발표 역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도 ‘백색 섬광’을 결정적 증언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결정적 증거에서 치명적 의혹으로

결국 북의 어뢰 공격과 버블제트 현상에 의한 천안함 침몰이라는 합조단의 결론을 뒷받침해온 결정적 증거와 결정적 증언이 모두 의심받는 상황이다. 언론 3단체 검증위 노종면 책임검증위원(전 YTN 노조위원장)은 “설명회를 통해 합조단의 분석 오류, 사실 왜곡, 거짓 해명을 상당 부분 확인했다”며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합조단의 조사 과정과 조사 결과 전반에 걸쳐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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