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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만 기다려라, ‘지름신’은 지나간다

1년간 쇼핑 안 하기 프로젝트 완수한 주디스 러바인… 노쇼핑은 소비자·노동자·지구를 살린다

제816호
등록 : 2010-06-23 15:55 수정 : 2010-06-2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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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쇼핑〉

크리스마스 시즌에 쇼핑하다가 물웅덩이에 쇼핑백을 빠뜨렸던 여자, 주디스 러바인(800호 특집 ‘지름신이여 안녕, 쇼핑이여 안녕’ 참조) 기억나시는지. 짜증난 상황을 계기로 ‘노쇼핑’을 결심하고 2004년 1월1일부터 1년간 쇼핑 안 하기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그가 1년의 여정을 기록한 책은 ‘이 책은 필수품입니다’라는 띠지를 달고 <굿바이 쇼핑>(좋은생각 펴냄·2010)으로 국내에도 출간됐다. 그에게 지금도 쇼핑을 안 하는지, 그 1년은 그에게 무엇이었는지를 전자우편으로 물어봤다. 2004년 이후로도 그는 ‘쇼핑하지 않는 삶’을 계속하고 있다. 1970년대 반전 활동으로 시작한 그의 활동가적 삶은 그 1년을 계기로 더욱 성숙했다. 그는 쇼핑하지 않은 1년 동안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가 ‘소비자’에서 ‘시민’으로의 전환이라고 했다. 요즘의 관심은 여성·언론자유·평화다. 그는 현재 주간지 <세븐 데이스>(sevendaysvt.com)에 칼럼 ‘정치심리’(Poli Psy)를 연재하고 있다. 의료보장제도부터 성범죄 관련 법까지 여러 주제를 다루는 정치 칼럼이다.

-당신의 생활을 소개해주세요. 여전히 쇼핑을 하지 않나요.

=가장 중요한 변화는 물론 생활 규모의 축소입니다. 갑자기 모든 사람이 사지 않게 됐고, 저는 이 흐름의 ‘멘토’가 됐습니다. 폴(남편)과 저는 여전히 별로 사지 않고 있습니다. 예외라면 지금 자전거를 사려고 이베이를 샅샅이 훑고 있다는 건데,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겠죠.

-‘노쇼핑’ 프로젝트가 전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겨레21>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처럼 여러 명이 참여하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한테서 소비를 확 줄이는 데 도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 책도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봤다고 자랑하곤 합니다(저도 그걸 좋아할 것처럼요). 미국에는 저와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한 ‘콤팩트’(Compact)라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그들의 정신을 사랑하지만, 때때로 그들이 덫에 걸린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과소비의 경제적 원인이나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사회·정치적 제도 개선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끊임없이 무엇을 사고 사지 않을 것인지만 토론합니다. 콤팩트에서는 화장지를 사야 하는가에 대한 긴긴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나라면 그냥 사버리겠습니다.


주디스 러바인. RACHEL PAPO

-2005년 한국에서 새로 탄생한 용어 가운데 ‘지름신’이 있습니다.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고 어느새 ‘신들린 듯’ 충동구매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미국에도 ‘쇼핑 중독’이라는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사고 싶어하는 상태를 말하지요. 하지만 저는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 선택하는 겁니다. “계속 질러” 또는 “멈출 수 없어”라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죠.

2004년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저는 특정 품목에 대한 욕망은 느끼지 않았습니다. 쇼핑을 하고 싶은 이유는 대부분 남들과 같았습니다. 즉, 나 자신 또는 내 생활에 뭔가 빠져 있다는 어렴풋한 결여 의식이 있었고 쇼핑을 통해 내 욕망이나 지루함을 해결해보려 했지요. 영국 심리학자인 애덤 필립스는 이 안절부절못하는 지루함의 상태를 ‘열망의 대기 상태’라고 불렀습니다. 소비의 세계는 이런 이름 붙일 수 없는 막연한 열망에 수백만 개의 구체적 이름을 붙여 부추깁니다. 아이팟, 펠트 자전거, 하와이 여행 등등.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불교의 가르침이 최고죠. 부처는 모든 것- 생각·감정·감각- 은 지나가는 현상일 뿐이라고 말했죠. 소비하고자 하는 모든 강박도 강박일 뿐입니다. 몇 분만 기다려보세요. 지나갑니다.

-당신은 고도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으로 떠오른 한국에도 미국과 별로 다르지 않은 삶이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소비문화가 전세계 각국의 소비문화에 미친 영향을 어떻게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이 미국 음악, 미국 옷, 미국 인스턴트 음식, 미국화된 라이프스타일을 원합니다. 이렇게 미국을 따라가려는 것은 파멸을 향한 경주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환경은 지속 불가능할 것이며 결국 쓰레기 더미에 앉아 있는 것으로 끝날 것입니다.

더 싼 물건을 향한 북반구의 요구는 남반구에서 착취당하는 가난한 노동자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들이 만든 값싼 물건으로 소비국가의 삶의 조건이 향상되는 동안 정작 그 노동자들은 거의 돈을 벌지 못합니다. 북반구 소비자도 이로 인해 고통받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빚에 허덕이고 실업에 고통받습니다. 남반구 노동자들은 얼마간 뭘 얻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중국에서 일어난 노동자들의 자살 사건은 그 대가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결국 우리는 지구를 파괴하고, 전 지구적 연대를 파괴하고, 모두 패배자가 됩니다. 단지 물건을 얻자고 하는 짓의 결과가 이렇습니다.

-‘쇼핑 안 하기’의 철학을 어떻게 요약해야 할까요. 단순한 생활비 절약일까요. 반자본주의인가요, 금욕주의인가요.

=금욕주의는 아닙니다. 그러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성장은 좋은 것이고 더 많은 성장은 더 좋다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사고에 대한 저항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건 지속 불가능한 경제입니다. 우리는 경제성장이 아니라 발전된 경제를 원합니다. 뭔가를 자꾸만 더 많이 만들어내는 대신 우리 삶을 향상시키고 지속 가능한 좋은 것들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감성적·사회적 측면에서 자본주의가 욕망을 필요로 하고 욕망을 일부러 자극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이 욕망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하니까요. 이 욕망에는 사랑이나 섹스뿐만 아니라 소비사회가 제공하는 사랑스런 물건들과 경험이 주는 즐거움도 포함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돈을 어디다 쓸지 결정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한 물건을 계속 사들이면서 살까, 아니면 모든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하는 데 돈과 시간과 자원을 나눌 것인가. 일을 적게 하고 더 놀 것인가. 쇼핑몰 밖에서 의미를 찾을 것인가. ‘쇼핑 안 하기’의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힘듭니다. 각자에게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는 쇼핑 안 하기를 통해 제가 저지른 ‘죄’에 대해 벌을 준다기보다는 쇼핑 이외의 다른 것에서 더 많은 기쁨과 의미를 찾자는 것입니다.

-6년 동안 많이 변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덜 소비하는 삶, 지구를 먼저 생각하는 삶, 이웃을 생각하는 삶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노 임팩트 맨>도 인상적이었습니다(상자 기사 참조). 시골로 내려가 생활하는 <굿바이 스바루>도 한국 사회에 소개됐습니다. 이런 전세계적인 조류가 눈에 띄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무자비함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저도 1년의 절반을 농촌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비사회의 바깥 어디에도 에덴동산은 없습니다. 어디든 살 것이 넘쳐납니다. 저는 ‘노 임팩트 맨’과 그의 가족이 보여준 생활의 급격한 변화(예를 들면 화장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가 오히려 사람들의 용기를 꺾을까 걱정됩니다. 너무나 어려운 일처럼 보이니까요. 따지고 보면, 개인적인 생활을 바꾸는 게 사람들의 인식이나 (재활용 등) 실천 측면에서 도움은 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선진국에서 확실한 정책적 변화(특히 탄소 배출 감축)를 이루는 일입니다.

-소비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면,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것도 필요할 듯한데요. 최근에는 환경과 지구를 내세우는 기업의 마케팅 전략도 눈에 띕니다.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을 보십시오. 미국 역사에서 최악의 환경 참사를 일으킨 회사입니다(멕시코만 원유 유출). 이 회사는 지구 환경 개선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상을 받을 뻔했습니다. 이 회사의 로고는 연녹색과 노란색 꽃입니다. 광고 등의 겉모습에 속지 않으려면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아봐야 합니다. 좋은 상품의 구별법은 단순합니다. 가장 덜 가공된 것, 가장 작은 것, 가장 경제 효율적인 것, 재활용 가능한 것입니다. 때때로 더 비싼 것인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오래간다면요. 또 하나 확실한 건 석유나 석탄 회사라면 ‘녹색산업’일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1년 동안 쇼핑 안 하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한국의 ‘동지’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무언가를 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참고 기다리십시오. 그것이 작은 것이라면 몇 분을 기다리고, 큰 것이라면 며칠을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아마도 더는 그것을 원하지 않게 될 겁니다. 그리고 돈이 들지 않고 어떤 자원도 사용하지 않는 일에 시간을 투자해보세요. 산책을 하거나, (살충제·화학비료 말고 거름 같은 유기농 비료를 뿌리는) 정원을 꾸민다거나, 정치적 활동을 하거나, 음악을 듣고 만들거나, 요리를 하세요. 주위를 둘러보고 사랑을 하세요. 부처님 말씀처럼,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노 임팩트 맨’ 프로젝트

‘노 임팩트 맨’ 프로젝트

환경에 영향 주지 않고 1년 나기 가능할까

‘노 임팩트 맨’은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1년을 나는 프로젝트다. 2006년 미국 뉴욕의 콜린 베번과 그의 아내 미셸 콘린, 딸 이자벨라 베번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당시 42살 콜린은 프리랜서 작가, 40살 미셸은 저널리스트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쇼핑하지 않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생산지에서의 거리가 400km 이하인 식품만 먹는다. ‘집 앞’ 패스트푸드도 물론 안 된다. 포장이 된 음식도 안 된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는다. 열차·비행기·자동차는 물론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는다.

첫 번째 단계는 ‘쓰레기 0으로 만들기’다. 남는 음식물 쓰레기는 벌레가 있는 통에 넣는다. 벌레는 일주일에 1kg의 음식을 처리한다. 종이 쓰레기도 만들지 않는다. 이자벨라는 종이 기저귀 대신 천 기저귀를 찬다. 세제는 만들어서 쓴다. 화장지도 사용하지 않는다. 화장지 대신 천을 이용한다. 미셸은 말한다. “회사에서 쫓겨나겠다. 더러워서.”

두 번째 단계는 지역 먹을거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커피는 400km 내에서 생산되지 않으니까 먹지 못한다. ‘시티파머’(city farmer)가 된다. 도심의 농장에서 채소를 키운다. 마트 대신 지역 농민들이 채소를 파는 시장에 가서 장을 본다.

프로젝트 시행 5개월 보름이 지난 뒤 이루어진 세 번째 단계는 ‘전기 없이 살기’다. 두꺼비집의 전원을 내리고 촛불을 켠다. 태양열발전판을 설치하고 그 전기로 컴퓨터를 돌려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 냉장고는 포기한다. 나이지리아산 겹항아리(바깥쪽 항아리가 안쪽 항아리의 열을 빼앗는다는 수수께끼의 물건)를 들여놓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결국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채운 것이 냉장고가 된다.

콜린 베번은 중간에 불안해한다. 전기가 끊긴 날 말한다. “바보 같다. 프로젝트가 호기심으로 끝날 것 같다. 안 할 수는 없고 짜증난다.” 집안에는 파리떼가 들끓는다. 친구는 스타벅스의 일회용 컵을 들고 말한다. “이것도 재활용되고 환경에 이바지한다고 하던데.”

혹독한 비판은 외부에서 쏟아져 들어온다. 프로젝트를 중계하는 블로그에는 악성 댓글이 주렁주렁 달린다. <뉴욕타임스>는 “케케묵은 코미디로 보이거나 애매한 책 홍보”라고 평한다. 따끔한 충고는 시티파머인 메이어 비쉬머에게서 왔다. “이 일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일같이 보이네. 미셸이 <비즈니스위크>에 여전히 글을 쓰고 있지? 수많은 나무를 베어 만드는 잡지지. 그걸 만회하느라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뭔가 변할 것 같나. 당신이 유명해진 것 역시 미국 기업 자본주의 때문 아닌가.”

프로젝트는 지속 불가능하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두꺼비집을 올린 날, 부부는 어쩔 수 없이 즐겁다. 하지만 얻은 게 없지는 않다. ‘노 임팩트 맨’ 프로젝트가 바보같이 느껴질 만큼 열심히 일하는 환경단체를 만난다. “개개인이 확실하게 변하면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낙천주의는 여전하고 “우리는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도 깨닫는다. 프로젝트는 책 <노 임팩트 맨>(북하우스 펴냄)으로 나왔고, 다큐멘터리는 6월17일 개봉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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