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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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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센징에겐 교육비 지원도 아깝다?

일 ‘고교 수업료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는 제외 움직임…
유엔 차별철폐협약 위배 불구 일본 정부는 궁색한 핑계만
등록 2010-03-10 11:36 수정 2020-05-03 04:26

일본에서 이른바 ‘고교 무상화’ 방침은 ‘모든 아동의 평등한 학습권 보장’이라는 교육 이념을 기치로 내세운 하토야마 정권의 핵심 공약으로, 국적에 상관없이 국공립·사립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을 둔 가정에 수업료를 전액 또는 일부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조선학교에 다닐 경우 연간 약 120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조선학교 학부모들은 학비가 경감된다는 이 뉴스를 환영하면서도, 줄곧 조선학교를 차별해온 일본 정부가 과연 이번 정책을 현실화할지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조선학교는 사립학교와 달리 정부 보조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데다, 다른 외국인학교와 달리 학교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도 적용받지 못하는 차별을 받아왔다.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거의 학부모에 의존해왔고 교사들은 월급을 거르기도 했다. 조선인에게 동화를 강요하는 일본의 자세는 식민지 시대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하토야마(왼쪽) 정권이 ‘고교 교육비 무상화’ 정책을 펴면서 조선학교는 제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른쪽은 각료 가운데 조선학교는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제일 먼저 제기한 나카이 히로시 국가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상. AP연합·EPA 연합

하토야마(왼쪽) 정권이 ‘고교 교육비 무상화’ 정책을 펴면서 조선학교는 제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른쪽은 각료 가운데 조선학교는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제일 먼저 제기한 나카이 히로시 국가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상. AP연합·EPA 연합

극우단체 습격 이어 일 각료가 딴죽

아니나 다를까. 지난 2월20일 나카이 히로시 국가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상이 올 4월부터 시행하는 고교무상화법안에서 조선학교는 제외해야 한다고 제동을 걸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요컨대 일본인 납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조선학교는 북한의 학교라는 주장인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은 연일 사실 보도와 함께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우선 외교 문제를 이유로 아동의 학습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온당한가라는, 국제법에 근거한 비판이다. 또한 ‘조선학교는 곧 북한의 학교’라는 등식화는 조선학교의 현실을 잘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한 일간지는 사설을 통해 나카이 납치문제담당상과 가와바타 다쓰오 문부과학상에게 조선학교 시찰을 권유하기도 했다.

“우리에 대한 일본의 차별 의식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유엔에서도 이번 일을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큰 힘이다. 우익의 습격과 일본 정부의 차별에 맞서 학교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다. 일본이 과거 우리 민족에게 저질렀던 죄를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이런 시대를 후손에게 계속 남겨줄 수는 없지 않은가.” 최근 일본 극우단체의 잇따른 조선학교 습격 사건과 이번 고교무상화법안 사태를 바라보는 한 재일조선인 학부모의 비장한 심정이다.

조선학교의 수난과 긍지의 역사는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자발적으로 생겨난 약 600개의 조선인 학교에서 시작된다. 해방을 맞이한 조선인들은 고향에 돌아간다는 기대 속에서 그동안 빼앗겼던 우리말과 역사, 문화를 아이들에게 되찾아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남과 북의 구분 같은 것은 없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조선인 자녀도 일본 학교에 다니며 일본식 의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맞섰다. 그리고 1948년 ‘한신교육투쟁’이 일어났다. 조선인 학교를 모두 폐쇄하라는 명령에 수만 명의 동포가 격렬히 저항한 조선학교 탄압의 상징적 사건이다. 이 와중에 김태일이라는 16살 소년이 일본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남북 분단의 민족적 불행은 재일조선인 사회를 요동치게 했다. 남쪽 독재정권은 이들이 곧 일본인으로 귀화할 것으로 보고 ‘기민정책’을 폈다. 북쪽은 원조금을 보냈다. 조선학교가 북쪽의 영향을 받으며 사상교육을 강조한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조선학교에는 한국적을 포함해 다양한 국적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재일동포는 대부분 조선학교를 나온 사람들이다.

우리말 하는 재일동포, 대부분 조선학교 출신

조선학교는 여전히 미용학원이나 운전학원과 같은 ‘각종 학교’로 분류돼 차별적 취급을 받고 있으나, 일본 정부가 정한 학습지도 요령에 맞춰 수업 커리큘럼을 짜고 학교 인가를 결정하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커리큘럼 등 관련 정보가 공개돼 있다. 또한 일본 국공립 대학 대부분이 조선고급학교 졸업생의 입학을 인정하고 있다.

민족적 차별과 하층민으로서의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자식만은 떳떳한 조선 사람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동포들의 강한 신념과 교육열이 지금의 조선학교를 있게 했다. 조선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학습이라는 일차적 교육의 차원을 넘어 아직도 과거 식민주의 역사 청산을 꺼리는 일본 땅에서 민족의 긍지를 지키고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분투와 다름없다.

“최근 북-일 관계가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들었다. 외교관계가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적 폭언과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어떤 처벌을 하고 있는가?”

필자는 일본에서 조선학교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던 지난 2월24~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UNCERD)의 일본 정부 보고 심사회의에 참가했다. 인종차별철폐협약 비준 국가는 원칙적으로 2년마다 보고 의무가 있으나 일본은 9년 만에야 두 번째 심사에 응했다. 위원들은 교육·취업·연금·참정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일조선인이 겪는 정책적·사회적 차별에 대해 추궁했다. 한 위원은 지난번 보고 때에 견줘 전혀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으며, 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 조선학교 배제 논란과 관련해서는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27조가 보장하는 마이너리티의 학습권 침해이자, 인종차별철폐협약 5조가 규정하는 학습권의 평등한 보장에 위반된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에 대해 회의에 참석한 문부과학상 관료는 “국회에서의 심의를 지켜보며 신중히 대응하겠다”는 상투적인 답변으로 비껴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 여론의 파장을 의식해서인지 일본 정부는 납치 문제가 이번 문제의 판단 근거는 아니라는 수정된 견해를 피력했고, 대신에 조선학교가 무엇을 가르치는 학교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궁색한 구실을 새롭게 내세우고 있다.

유엔 인종차별위, 학습권 침해 지적했건만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3월 중순께 최종 견해를 발표할 예정이고, 일본 정부는 이에 앞서 결론을 낼 것으로 보인다. 이번 문제로 16년 만의 비자민당 정권이자 1945년 이후 처음으로 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며 정권 교체를 실현한 하토야마 정권의 역사 인식과 인권 수준이 국내외적으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패트릭 손베리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
“차별 실태 파악도 안 돼… 차별금지법 제정부터”


패트릭 손베리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

패트릭 손베리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UNCERD)의 패트릭 손베리 위원은 “일본 정부의 보고와 답변이 지난번 심사 이후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며 “무엇보다 마이너리티 당사자들의 규모와 차별 실태 등에 관한 기본적인 통계 같은 정보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일본 정부 보고서에는 일본 국적을 취득한 소수민족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베리 위원은 또 “조선학교 습격 사건을 동영상으로 보았는데, 이러한 사건이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나는지 정부 보고서로는 알 수 없다”며 “기본적인 통계 조사는 상황과 문제를 진단하고 정책을 세우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인도 아니고 소수민족도 아닌 특별 영주 자격이라는 독특한 지위를 가진 재일조선인은 분명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라며 “일본 국적 취득을 자발적으로 거부하고 국적을 유지하려는 것은 일본이 지나치게 동화정책을 강요한 결과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특히 재일조선인 교육 문제에 관해서는 더욱 평등한 조처가 취해져야 한다는 게 그의 견해다.
손베리 위원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로 반차별법 제정을 꼽았다. 아일랜드 출신인 그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영국 본토에 가면 식당에 ‘개와 아일랜드인 출입 금지’라는 푯말이 버젓이 걸려 있었던 경험을 소개하며 “1965년께 민형사상으로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되자, 이런 노골적인 차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재일조선인 차별 문제에 대응하는 전략도 조언했다. “인권교육과 계몽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드시 민형사상 처벌을 받게 하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 재일조선인 조직과 관련 시민단체는 국제적인 전략으로 더 적극적으로 국제조약과 관련된 국제회의에 참가할 필요가 있다.”

배지원 지구촌동포연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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