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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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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으면 사법시험 준비 ‘난감’

판례 위주 출제가 학원 의존도 높여…
‘한 달 100만원’ 생활비에 낙방 위험까지 감수할 수 있는 이들만 도전 가능
등록 2010-02-26 15:27 수정 2020-05-03 04:26

과거 1960~70년대 사법고시 공부의 상징 가운데 하나는 절이었다. 집이나 학교를 떠나 조용한 절간에서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오로지 법전만 파고드는 것이 고시 준비생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1975년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사법고시 합격 뒤 쓴 ‘과정도 하나의 직업이었다’라는 제목의 고시 합격기에서 마을 인근 봉화사라는 절에서 고시 공부를 하던 형 친구들 이야기와 함께 본인도 산기슭에 지은 마옥재라는 이름의 토담집과 장유암이란 절을 찾아 고시 공부에 매진한 경험을 밝혔다.

서울 신림동 고시학원에서 영상 강의를 듣는 고시 수험생들. 한겨레 곽윤섭 기자

서울 신림동 고시학원에서 영상 강의를 듣는 고시 수험생들. 한겨레 곽윤섭 기자

1980년대에는 주로 학교 도서관이나 고시원에서 공부를 했다. 1980년대 초반 고시 공부를 한 김갑배 변호사는 “법대생에게는 도서관 4층에 고시실이라는 별도 공간이 주어졌지만, 전공이 사회학인 나는 그냥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며 “그 시절엔 학교 도서관과 고시원에서 고시 공부하는 게 보통이었다”고 말했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고시 공부를 한 최강욱 변호사도 “절에서 공부한 준비생은 5%쯤 됐고, 대부분은 고시원이나 학교 도서관에서 시험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고려대·연세대·성균관대·한양대 등에서 가끔 ‘고시반 특강’이라는 보충 강의가 있기도 했지만, 시험 준비는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란 생각이 대세였다.

상대적으로 시골 출신의 가난한 이들은 학교 도서관을, 서울 출신의 부유한 이들은 고시원을 애용했다는 얘기도 있다. 군사독재 시절이던 당시 종종 시위가 벌어지던 학교에서 공부하기 불편했던 부유층 자제들은 집 근처나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 한남동 단국대 인근에 삼삼오오 모여 함께 공부를 했다.

도서관·고시원서 자습이 대세이던 시절

이런 흐름은 1990년대로 넘어가면서 크게 바뀐다. 고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서울 신림동 고시촌으로 들어가는 게 점차 당연시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바뀐 데는 사법시험을 치르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절대량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 제일 먼저 지적된다. 세월이 흐르며 나름대로 법학 이론이 발전했고, 무엇보다 공부해야 할 판례가 많이 축적됐다. 혼자서 다 공부하기는 버거운 양이 되자 어떤 부분을 어떻게 집중해서 봐야 하는지 ‘코치’의 중요성이 커졌다. 공부 방법과 시험 흐름에 관한 기술적 부분을 잘 정리해주거나 모의고사를 치르는 학원에 대한 의존도가 자연스레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시험 방식의 변화도 이런 흐름을 강화했다. 과거 법학 이론 비중이 높던 시절엔 다수설이 아닌 소수설을 택해 답안을 쓴 수험생들이 낮은 점수를 받으면서 정답 시비가 일었다. 소송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정답 시비가 어려운 판례가 시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사법시험 주관 부서도 2002년엔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고시과에서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로 바뀌었다.

누가 더 많은 판례를 숙지하고 있느냐가 사법시험 합격의 관건이 될수록, 고시 준비생들은 학원으로 몰려들었다. 전국 석차가 나오는 모의고사도 대부분의 고시 준비생이 치른다. 신림동에서는 사법시험 1차를 앞두고 최신 판례나 대법원 판례공보에 실리지 않은 판례까지 샅샅이 구해 강의해주는 강사가 인기를 끈다. 특히 민법과 형법 과목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사정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지원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12월 ‘변호사시험 실시 방안에 관한 공청회’에서 “사법시험 출제위원인 나도 처음 들어보는 판례를 들고 와 학생들이 질문하는 경우가 있어 난감했다”며 “왜 그런지 알아봤더니, 판례 위주 문제가 나오다 보니 지엽 말단적인 판례까지 출제가 되더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출제위원조차 “나도 모르는 판례가 시험에…”

그런데 이와 같은 공부·시험의 패턴 변화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집안 수험생들에게 치명적이다. 사법시험 준비에는 짧아도 2~3년 정도는 필요한데, 이 기간 동안 신림동 학원가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기회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신림동에서 고시를 준비 중인 한 수험생은 “거주비와 식비에 책값, 학원비까지 감안하면 아무리 빈한하게 지내도 한 달에 60만원 이상은 든다”며 “한 달에 100만~110만원은 써야 중간 정도 생활을 유지하며 공부에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패했을 경우의 위험 부담도 저소득층 자녀들로 하여금 사법시험 응시를 포기하게끔 만든다. 과거에는 시험에 떨어져도 괜찮은 일반 기업체에 취직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이마저도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빈곤층 가정 출신이 고시 공부에 전념하려면 어디선가 몇 년 동안 상당한 비용을 조달해야 할뿐더러, 불투명한 미래를 위한 모험도 불사해야 하는 것이다.

김갑배 변호사는 “요즘은 1차 시험부터 어려워져 학원 강의를 들어야 한다고 하던데, 얼마 전 만난 사법연수원 교수는 ‘연수원생 가운데 어떻게 사법시험을 통과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실력이 모자란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며 “갈수록 사법시험에서 학문적 접근보다는 시험 통과를 위한 기술이 중요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법조인 양성 방법이 ‘사법시험-사법연수원’ 체제에서 각 대학별 로스쿨 체제로 바뀐다지만, 이런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사법시험이 2017년까지 존속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연수원과 고시촌의 ‘긴밀한 관계’
현직 유지하며 학원 강의 ‘위험한 줄타기’ 하기도


사법연수원 38기를 수석으로 수료할 예정이었던 김아무개씨. 그는 지난해 1월 연수원 38기 수료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수료가 보류됐기 때문이다. 수상이 예정돼 있던 대법원장상도 취소됐다. 그는 결국 동기생들보다 한 달 늦게 연수원을 수료해야만 했고, 이후 한 대형 로펌에 취업했다.
그가 이런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던 이유는 동기생 2명과 함께 서울 신림동 고시학원에서 ‘연수원 예비과정’ 강의를 하다 적발됐기 때문이다. 사법연수원생은 별정직 국가공무원 신분이어서 영리활동을 할 수 없다.
사실 연수원생이나 연수원을 수료한 군법무관 등이 학원가에서 강의를 하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현재 호남 지역 법원에서 판사로 근무 중인 ㄱ씨는 연수원생 시절 가명으로 신림동 학원가에서 민법을 강의해 명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수도권의 한 법원 판사로 근무 중인 ㄴ씨는 군법무관으로 복무하면서 자신의 본명과 군법무관이란 신분을 밝힌 채 신림동에서 강의를 했다. ㄱ판사와 ㄴ판사의 사법시험 수험서는 지금도 수험생들 사이에 베스트셀러로 이름이 높다.
현직 변호사인 ㄱ씨는 공익법무관으로 근무하던 당시 신림동에서 형법 강의로 이름을 날렸다. 이런 영리 활동에도 불구하고 ㄴ판사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별 문제 없이 공익법무관 생활을 마쳤고, 현재도 신림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5~6년 전 사법시험에 합격했던 ㄱ씨는 연수원 입소를 미루고 최근까지 신림동에서 스타 강사로 활동해왔다. 올해 초 그가 연수원에 입소하자, 학원가에서는 ‘강사로 일하며 얼마를 벌었다더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지난해 단속 이후 지금은 연수원생이 대놓고 신림동에서 강의하는 경우는 없다지만, 절대 강사 이름을 밝히지 않는 강의는 여전하다. ‘연수원 예비과정’ 강의가 대표적이다. 연수원 성적이 좋아야 판검사로 임용되거나 대형 로펌에 취업할 수 있기 때문에 사법시험 합격자들이 미리 ‘선행학습’을 하려고 하는데, 이런 필요 때문에 만들어진 게 바로 연수원 예비과정이다. 이 과목은 당연하게도 연수원 커리큘럼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가 강사를 맡는 게 보통인데, 강사의 신원은 철저히 비밀이다. 연수원을 갓 수료한 변호사가 강의를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지만, 현직 사법연수생이 돈을 받고 강의를 한다는 소문도 있다.
사법연수원 교수인 한 판사는 “연수원생이 입소하면 첫 주에 ‘영리 목적의 외부 강의’가 절대 금지된다는 점을 교육한다”면서 “만약 적발될 경우 징계 등 불이익이 따른다고 연수생들에게 강조한다”고 밝혔다.
김석순 전 YTN 기자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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