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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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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두산대’를 만드시라

두산그룹에 인수된 중앙대,
학생은 언론통제·교수는 구조조정으로 들썩들썩… ‘대학의 기업화’ 상징하는 듯
등록 2010-02-04 17:02 수정 2020-05-03 04:25

중앙대가 시끄럽다. 겉으로만 봐도 교정에 각종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중장비가 지나다니고 ‘삽질’의 상흔이 널려 있다. 속사정은 더하다. 학내 언론 탄압, 일방적 구조조정, 새내기새로배움터(이하 새터·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폐지 등으로 학생·교수와 학교 본부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2008년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하고 박용성 이사장이 취임한 뒤 ‘대학의 기업화’와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1월27일 <중앙문화> 편집실에서 구예훈 편집장, 음하림 편집위원, 노지영 전 편집장, 이은호 <녹지> 편집장(왼쪽부터)이 모여 학교의 언론 탄압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그 옆으로 회수됐다 일부 재배포하고 남은 <중앙문화> 58호가 쌓여있다.

지난 1월27일 <중앙문화> 편집실에서 구예훈 편집장, 음하림 편집위원, 노지영 전 편집장, 이은호 <녹지> 편집장(왼쪽부터)이 모여 학교의 언론 탄압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그 옆으로 회수됐다 일부 재배포하고 남은 <중앙문화> 58호가 쌓여있다.

1월27일 찾아간 중앙대 서울 흑석 캠퍼스에는 방학인데도 대자보와 펼침막이 가득했다. 곳곳에 ‘교지편집위 예산 전액 삭감, 학내 언론 탄압을 중단하라’ ‘청소년학과 폐지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 등 재학생과 동문 일동의 대자보가 나란하다. ‘학생 참여 없는 구조조정 반대’ ‘새터 폐지 조처를 즉각 철회하라’ 등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학 학생회 명의의 펼침막도 여럿이다.

재단 비판 기사 나가자 보직 교수가 전화

언론 탄압은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해 11월25일, 학교 교지인 58호가 교내에 배포된 지 3시간 만에 학교 본부가 전량을 회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편집장이던 노지영(국문과 3학년)씨는 언론매체부장인 장영준 교수(영문학)의 전화를 받았다. “기사 중 일부에 문제가 있으니 일단 배포를 중단하고 총장한테 검사를 받은 뒤 배포하라”는 내용이었다. “일단 본관에 배포한 교지라도 치워달라”는 말에 본관에 가보니 이미 가 전량 회수돼 트럭에 실려 있었다.

문제가 된 것은 ‘기업은 대학을 어떻게 접수했나’라는 글과 총장을 풍자한 만화였다. 2008년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뒤부터 , , UBS(교내 방송국) 등 중앙대의 6개 학내 언론사는 보직 교수인 언론매체부장의 검열을 받은 뒤에 기사를 내보낼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마감을 하고 나면 언론매체부장에게 모든 기사를 전달해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58호의 해당 기사와 만화는 마감이 임박해 사전 검열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교지에 실렸다. 학교 쪽은 이를 문제 삼아 교지를 전량 회수했다.

검열은 소리 없이 학내 언론을 다스리고 있었다. 편집장인 구예훈(법학과 2학년)씨는 “학교 쪽의 검열을 받고 책을 내야 한다니 학내 언론사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이 위축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준기 편집장은 “편집장을 맡은 지 얼마 안 됐지만 전 편집장의 경우 신문이 나오는 월요일이면 기획처 등 학교본부로부터 기사를 왜 그렇게 썼냐는 전화를 받곤 했다”며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자기검열’이 강화된 분위기 속에서도 는 끈질기게 학교와 재단을 비판했다. 때문에 매호 문제가 됐다. 특히 2009년 봄호인 57호는 ‘중앙대 주식회사로 발전합니다’ 등 거의 통권으로 학교 본부와 재단의 문제를 짚었다. 이에 일부 교수가 를 만드는 학생을 불러다가 “왜 그런 기사를 쓰느냐”고 닦달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가 비판의 수위를 낮추지 않자 “곧 교지에 학교 예산이 끊길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1월13일 박범훈 총장은 “2010년 예산에 교지 예산은 없다”는 뜻을 언론매체부장을 통해 와 여성주의 교지 에 전달했다. 와 는 1년에 3500만원 정도의 예산을 학교에서 지원받아 인쇄비·취재비 등으로 사용해왔다. 예산이 없다면 교지 발간은 어려운 상태다. 이에 학내 6개 언론사는 ‘학내 언론 탄압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공동 대응에 나섰다.

학교 쪽은 “교지에 학교가 예산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이 다른 학교의 추세”라는 입장이다. 장영준 언론매체부장은 “원래 교지라는 것이 총학생회의 기관지 성격인 만큼 학교가 예산을 지원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박용성 이사장이 교지나 학교 커뮤니티 등을 꼼꼼히 살피고 지적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교지 내용까지 살펴보고 이에 대해 지적하는 이사장 밑에서 교지가 회수되고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전 검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다. 장 교수는 “학내 언론은 독립 언론이 아니고 학교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며 “전반적으로 긴축재정인 만큼 다른 언론사 예산도 깎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예산을 깎으면 절약이고 언론사 예산을 깍으면 언론 탄압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학교 쪽 “학내 언론은 독립 언론 아니잖나”

기업이 대학을 인수한 뒤 언론매체를 옥죄는 것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지난 2001년 삼성그룹이 성균관대를 인수한 뒤 교지인 이 재단에 비판적인 글을 실었다는 이유로 전량 회수된 일이 있다. 당시 에는 삼성의 재산 증여 과정을 풍자한 만화와 학교 쪽이 등록금 투쟁에 나섰던 학생들을 중징계한 사건을 비판한 기사가 실렸다. 당시 성균관대에 재학했던 한 졸업생은 “삼성의 ‘접수 작업’은 너무도 치밀하고 재빨라 교지 회수 사건도 모른 채 지나간 학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총학생회도 울상이다.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새터를 폐지했기 때문이다. 학교 쪽은 지난 1월13일 총학생회에 “기존의 새터를 입학식과 연동해 하루 동안 진행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했다. 매년 2월 재학생과 신입생이 만나 어울리는 새터가 ‘비효율적’이란 이유에서였다. 이에 학생회는 “아무런 소통 없이 학생들의 자치 행사까지 폐지한다”며 반발했지만 학교의 입장은 굳건하다.

교수 사회는 ‘구조조정’ 바람으로 들썩인다. 지난해 학교는 전체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밝히며 교수 쪽에도 방안을 내라고 했다. 이에 교수들은 30여 명의 대표를 뽑아 ‘계열별위원회’를 출범하고 구조조정안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지난해 12월29일 학교는 일방적으로 보도자료를 내 학교 쪽의 구조조정안만 발표했다. 현행 18개 단과대, 77개 학문 단위를 10개 단과대, 40개 학과로 줄이는 내용이다. 대학은 △인문·사회 △자연·공학 △의·약학 △경영·경제 △예체능 등 총 5개 계열로 재편되며 각 계열별로 부총장을 임명할 계획이다. 경영학부 하나뿐이던 경영대학에는 경제·응용통계·글로벌지식·국제물류·금융공학과가 추가되고 인문·사회계열은 독문과·불문과·노문과 등이 통폐합돼 유럽 문화학과가 되는 등 전체적인 규모가 축소된다.

계열별위원회는 지난 1월27일 “경쟁력 위주로 학과를 통폐합하고 상하 관계에 바탕을 둔 책임부총장제를 두는 데 반대한다”며 구조조정안 수정을 요구했다. 인문계열 대표인 김누리 교수(독어독문학)는 “기업이 돈만 있으면 대학 전체를 사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이해가 안 된다”며 “대학이 대기업의 지배를 받게되면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학문을 탐구하는 대학 본연의 기능을 잃기 쉽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대학이 제 기능을 못하면 진보적 담론이 생산되기 어려워지는데, 이 때문에 보수언론들은 일제히 쌍수를 들어 대기업의 대학 인수를 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문과는 지난해 진중권 겸임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데 이어 김누리 교수가 속한 중앙대 독일연구소가 올해 인문한국지원사업 해외지역연구 분야 심사에서 1위를 하고도 교육과학기술부 등이 참여하는 최종 심사에서 탈락하는 등 수난을 겪고 있다. 김 교수는 “대학을 접수하려는 자본과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대학 접수하려는 자본과의 싸움 시작돼”

박용성 이사장은 취임 뒤인 2008년 11월 과의 인터뷰에서 ‘재벌 인수에 대한 교수나 학생들의 반감은 없었냐’는 질문에 “학생들과 대화를 해보면 두산을 대환영하는 분위기다. 솔직히 말하면 자본주의 논리가 어디 가나 통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고 말했다. ‘어디 가나 통하는’ 자본과의 싸움에서 학생과 교수들은 승리할 수 있을까? 2001년 성균관대에 이어 중앙대가 다시 한국 대학 사회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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