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도 얼어버릴 듯 추웠던 1월11일 아침, 황상기(55)씨는 강원 속초에서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그가 향한 곳은 서울행정법원이었다. 이날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 3명의 유족과 투병 중인 노동자 3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한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황씨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의 아버지다.
둘째딸이 세상을 떠난 지 3년이다. 당시 겨우 스물세 살이었다. 딸은 황씨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병원에 다녀오는 도중 숨을 거뒀다. 택시기사인 황씨는 운전을 할 때마다 그날을 떠올린다. 이후 황씨는 숱하게 서울을 향했다. 딸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병원 다녀오는 차 안에서 숨진 둘째딸고등학교 3학년 때 딸은 대학을 포기하고 삼성에 입사했다. 동기 10명과 함께 학교의 추천을 받았다. 의기양양하게 “동생 학비는 내가 벌어서 대겠다”고 했다. 황씨는 서울행 버스에 올라탈 때마다 열아홉 딸에게 직접 수원행 버스표를 끊어주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당시 딸의 밝은 표정은 차 안에서 죽어간 얼굴로 일그러진다. 어리고 여린 딸을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을 떨치기 힘들다.
딸 혼자만 피해를 당한 게 아니었다. 딸을 보낸 2007년 3월부터 사방으로 수소문한 결과, 딸과 같이 기흥공장 3라인에서 2인1조로 일했던 이숙영(당시 30살)씨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딸과 2인1조로 일했던 또 다른 이는 임신했다가 유산했다. 알고 보니 기흥공장 1·2·3라인은 수동 작업이 많고 설비가 오래된데다 각종 유해물질 누출 사고까지 잦아 근로자 사이에서 ‘사고 라인’이라 불렸다. 황씨는 딸의 죽음을 파헤칠수록 ‘산재’라는 확신이 들었다.
도움받을 곳을 찾다가 그해 9월 민주노총 경기본부의 이종란 노무사를 만났다. 이들이 함께 ‘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이란 단체를 만들었다. 거짓말처럼 피해자가 모여들었다. 2009년 12월까지 확인된 백혈병·림프종 등 조혈계(혈액 생산에 관여하는 조직) 암 발병자만 22명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 결과 2007년까지 조혈계 암이 발병한 이는 기흥공장 14명, 온양공장 4명, 수원사업장 1명이다. 이 중 기흥공장 6명, 수원사업장 1명이 사망했다. 2008년 이후 기흥공장 1명, 온양공장 2명의 발병이 추가로 확인됐다. 탈모, 유산, 무월경 등 증상은 수없이 발견됐다.
조혈계 암으로는 백혈병과 림프종이 대표적이다. 백혈병은 골수에서 생산되는 백혈구가 악성 세포로 변해 혈관을 타고 전신에 퍼지는 질병이다. 악성 림프종은 전신에 골고루 분포돼 미생물을 여과하는 림프절 등 림프조직 세포가 악성으로 전환돼 생기는 종양이다. 조혈계 암의 원인으로는 벤젠, 방사선, 유전적 소인 등이 꼽힌다. 반도체 제작 과정에는 벤젠, 전리방사선, 비소, 카드뮴, 트리클로로에틸렌 등 발암물질이 사용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은 이는 없다.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한 이들을 중심으로 6개월 전부터 소송 준비가 시작됐다. 산업의학 전문의이자 변호사인 박영만 단장을 포함해 변호사 3명, 노무사 3명으로 소송단을 구성했다. 소장을 접수하던 1월11일, 유족 대표로 참석한 정애정(32)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남편 황민웅(당시 31살)씨 역시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2005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씨는 40여 명의 취재진을 둘러보며 “3년을 싸우는 동안 이렇게 기자들과 카메라가 많은 것은 처음 본다. 기자들과 법원에 계신 분들이 버림받은 노동자를 제발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정씨 역시 기흥공장에서 일했다. 남편 황씨와는 사내 커플이었다. 황씨는 스물세 살이던 1997년 11월 기흥공장에 입사해 설비엔지니어로 1라인과 5라인의 유지·보수를 담당했다. 근무 7년 만인 2004년 10월 백혈병이 발병했고,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정씨도 자연유산을 경험했고 주변 동료들이 유산, 불임, 기형아 출산 등의 문제를 겪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다. 정씨의 입사 동기는 라인에만 서면 코피가 멈추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근로자들은 아우성이지만 그 소리는 좀처럼 공장 밖으로 새나오지 않았다. 삼성의 ‘관리’ 때문이란 주장도 있다. 지난해 9월 백혈병이 재발한 박지연(23)씨는 이제 취재진을 만나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온양공장 직원이던 그는 2008년 초 항암치료를 받을 당시엔 과 병원에서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이후 삼성 쪽의 집요한 회유와 협박이 이어졌다. 가만히만 있으면 삼성 쪽에서 나온 직원이 병원비도 대주고 충남 부여의 집에서 서울 병원까지 통원 치료도 도와준다고 했다. 지난 1월5일 다음 항암치료를 기다리던 중 열이 39도까지 올라갔다.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결국 어머니가 ‘삼성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성 쪽에서 보낸 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를 병마와의 싸움에서 당장 삼성의 제의를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삼성의 요구는 하나다. 소송이나 언론 인터뷰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박씨는 이번 행정소송에 참여했고 과 인터뷰를 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다.
술만 마시는 아버지, 식당에서 설거지하는 어머니 밑에서 한 달에 100만원이라도 벌어보려고 몸무림을 친 시간이었다. 공장에서 밤을 꼬박 새우고 교대 시간인 새벽 6시가 다 돼갈 무렵, 동료들이 소리를 질렀다. 이미 박씨의 하얀 방진복 바지에는 빨간 피가 흥건히 묻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하혈을 한 뒤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도금이 잘 입혀지도록 하는 끈적한 플럭스 용액과 고온의 납 용액에 반도체 본체를 핀셋으로 잡고 넣었다 꺼내는 작업을 한 지 2년9개월 만이었다.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 삼성은 그를 찾지 않았다. 언론 보도 뒤에야 찾아온 삼성의 ‘배려’가 가식으로 느껴지는 까닭이다.
일반인보다 4~5배 높은 백혈병 사망률
지난 3년간 ‘반올림’은 피해자 증언대회를 열고 근로자들의 발병이 확인될 때마다 산재 신청을 하는 등 삼성 산재 알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산재 판정에는 작업 현장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가 중요한데, 역학조사 과정에는 근로자나 반올림 등 산재를 주장하는 이들이 참여할 수 없었다. 사업주가 설정한 환경과 그들이 내놓은 재료를 바탕으로 조사가 진행됐다. 결국 지난 3년간 두 번의 공식적인 역학조사가 이뤄졌지만 발암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
첫 번째 역학조사는 2007년 7월부터 11월까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했다. 황유미씨 유가족이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에 산재보험 유족보상을 청구해서다. 하지만 이미 황씨가 근무하던 2년 전과 라인 시설이 달라져 있었다. 황씨는 가족에게 “근무 중 너무 더워 가끔 고글을 벗었다”고 했으나, 조사단이 찾아간 공장의 온도는 더없이 쾌적했다. 역학조사 평가위원회도 2년새 근무환경이 달라져 정확한 판정을 내리기 어렵다며, 우리나라 전체 반도체 노동자의 조혈계 암 발생 위험도를 평가하는 역학조사를 한 뒤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전체 반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는 2008년 3월부터 12월까지 6개 회사 9개 반도체 사업장과 협력업체를 상대로 실시됐다. 반올림은 조사를 맡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노동자의 입장을 헤아리기보다 회사 쪽에 면죄부를 주지 않을까 우려하며 기자회견·공개질의·집회 등을 통해 조사 과정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렇게 2008년 12월29일 발표된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 건강실태 역학조사 결과’는 △반도체 공정 작업 현장에서 백혈병 유발 가능 물질인 벤젠·전리방사선 등이 검출되지 않았거나 노출 기준을 초과하지 않았음 △백혈병과 반도체 공정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 일반 인구 집단과 비교해 여성의 사망 비율은 1.48배, 암 발병 비율은 1.31배로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음 △남성의 경우 오히려 일반인보다 사망·발병 비율이 낮음 등 대부분 산재가 아님을 증명하는 내용이었다.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근로자들의 백혈병이 업무와 관련 없다는 내용의 ‘업무상 질병 여부 회신서’가 작성됐다.
처음으로 벤젠 검출된 서울대 역학조사
산재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역학조사의 부정확성이다. 소송에 나선 이들은 “공단은 평소보다 작업량이 적은 상태를 설정해놓고 실험함으로써 유해물질 노출 평가가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며 “노동자들이 근무하던 당시 환경은 고려하지 않고 노동자의 알 권리와 참여권도 보장되지 않은 채 사업주인 삼성이 제공하는 정보만으로 조사가 진행됐다”고 비판했다. 또한 “기흥공장의 경우 급성백혈병 발병자들이 모두 1·2·3라인 출신인데 역학조사는 15개 라인의 모든 노동자를 기준으로 발병률을 계산해 문제를 희석했다”고 지적했다. 인구 10만 명 당 백혈병 사망자 수가 2006년 2.4명, 2007년 2.6명인 데 견줘 같은 기간 기흥공장 생산직 여성근로자 9천 명 중 해마다 1명꼴로(10만 명 당 11.1명) 백혈병으로 사망했으니 4~5배 높은 사망률이다.
이런 상황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이 검출된 세 번째 역학조사가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서울대 산학협력단(단장 백도명)이 내놓은 ‘반도체 사업장 위험성 평가 자문 의견서’를 통해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조사를 의뢰한 것은 삼성전자·하이닉스·앰코테크놀로지 등 반도체 제조 3사다. 조사 결과 삼성전자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사용하는 감광제에 대한 6건의 검사에서 모두 0.08~8.91ppm의 벤젠이 검출됐다. 벤젠 허용치는 현재 1ppm이다. 김상희 민주당 의원과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해 10월23일 국정감사에서 이 자료를 입수해 공개하며 더 정확한 역학조사를 촉구했다.
소송단은 벤젠이 검출된 역학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역학조사는 부정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발암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공단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산재를 불승인한 것은 잘못이라는 입장이다. 소송단은 벤젠 등 발암물질에 노출된 상태에서 근무하다가 급성백혈병이 발병한 것이라는 사실을 법정에서 설명하기 위해 재판부에 1시간의 프레젠테이션 기회를 요청한 상태다. 또한 재판부와 함께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기흥·온양공장의 현장검증을 나가는 한편 법원의 허가를 받아 현장에서 예전에 쓰던 감광제·세척제 등으로 발암물질 검출 실험을 해본다는 계획이다. 소송단은 “작업장에서 발암물질에 노출된 것만 확인된다면 암에 걸린 근로자와 작업환경의 인과관계는 자연스레 입증된다는 게 대법원 판례”라며 승소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삼성 “특별한 입장이 없다”삼성전자는 소송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다. 삼성전자 쪽은 “백혈병 이슈와 관련해서는 특별한 입장이 없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벤젠이 검출된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역학조사 결과가 공개됐지만 삼성 쪽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역학조사 결과만 언급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역학조사 결과가 권위자들이 모여 내놓은 결과이지 않느냐”며 “산재 여부는 이를 바탕으로 공단이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소송단의 박상훈 변호사는 “삼성전자 백혈병 산재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근로자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삼성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며 “삼성의 성장에 그늘이 있었다면 이제 그 그늘을 벗고 갈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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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단장인 박영만 변호사는 지난 2005년 초까지 원진녹색병원에서 산업의학과 전문의로 근무했다.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1998년 말 SK화학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려 병원을 찾았다. 그는 당시 산업안전공단이 실시한 현장 역학조사에 참여했다. 조사단은 노동자가 근무했던 열악한 공정이 아닌 깨끗하고 안전한 공정만을 검사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이 소량 검출됐다. 그는 산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소견의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공단 쪽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노동자는 이후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법정에서 산재를 인정받았다. 그가 의사복을 벗고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다.
박상훈 변호사는 2008년 ‘불법 파견도 2년 이상이면 직접 고용 대상’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대학 시절부터 노동법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84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대학원에 진학해 노동법을 전공했다. 사법시험 2차에 합격한 뒤에는 한 달간 경기 부천의 오토바이 부품 제조 공장에 근무하기도 했다. 2006년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를 거쳐 2007년부터 노동전문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이종란 노무사와 삼성의 인연은 야릇하고 질기다. 2003년 민주노총 경기본부에서 노무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주로 노조가 없는 사업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 상담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를 찾아와 부당함을 호소하는 이들은 대부분 수원 등 경기 지역의 삼성 노동자였다. 대기업 직원이지만 노조가 없기에 그들은 어디에도 호소할 곳이 없다고 했다. 이후 그는 직접 신세계 이마트에 입사해 일을 해보는 등 삼성 노동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노조를 만들려고 하면 위치 추적까지 하는 삼성의 집요함을 직접 경험했다.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 노동자 황유미씨의 유가족을 만나면서 그는 ‘반올림’을 단체를 만들었다.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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