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 참사 직후에 나온 이윤엽의 이 작품은 걸개그림뿐만 아니라 용산 참사를 알리는 상징적 그림으로 널리 쓰였다. 하늘을 떠받치며 절규하는 손, 웅크리고 앉아 꽃을 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 이윤엽은 용산 현장의 절규를 담았다. 두 가지 버전의 이 작품은 용산 현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했다. 걸개그림으로 시작해 판화, 티셔츠, 온라인 배너 등 다양한 방식으로 퍼졌다. 특히 그가 만든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문구는 굵직한 선의 맛이 제대로 담긴 시각언어와 만나 증폭하면서, 사회적 의제를 공론화하는 데 예술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용산 참사 현장에 함께한 예술가들은 예술의 지위와 역할을 새롭게 발견하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여기 예술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렸다.
용산 참사 알리는 상징이 된 걸개그림용산 참사 현장예술 활동은 대추리마을의 ‘들사람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윤엽은 대추리마을에 살면서 작업을 했다. 동네 집수리를 시작으로 버려진 물건을 모아 마을박물관을 만들기에 이른 것이 3년 전의 일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대추리 현장과 용산 현장을 동일 선상의 문제로 인식했다. 시인 송경동, 음악가 조약골, 미술가 이윤엽, 사진작가 노순택, 회화작가 전진경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송경동은 이라크전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랜드, 대추리, 기륭전자, 콜트·콜텍 등 우리 사회의 아픔이 있는 곳을 찾아 온몸으로 그 현실과 마주해온 ‘액티비스트’(활동가)다. 그는 시를 써서 집회장에서 낭송하는 것은 물론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 연대해 ‘상징투쟁’을 벌이고 있다. 조약골은 대추리마을에서 지은 노래 로 유명한 음악가다. 그는 참사 뒤 용산 남일당 앞 레아호프 자리를 사용한 레아미술관 1층에 머물며 현장을 지켰다. 노래를 지어 부르는 것은 물론 현장의 주민들과 방문객을 맞이하고 대화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사회적 이슈의 현장을 찾아 삶의 주거지를 옮기는 일은 예술가에게 부여된 특권인 자율성을 그야말로 제대로 행사하는 일이다. 줄곧 레아미술관을 지켜온 전진경도 대추리 이래 용산에 이르기까지 현장을 지키며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예술가를 유목인에 비유할 수 있는 건, 이렇듯 자본과 권력에서 이탈한 삶을 위해 ‘자율’을 획득했을 때의 일이 아니겠는가.
미술가들은 참사 직후 ‘망루전’을 꾸렸다. 사적 소유, 재개발, 생존권, 자본과 권력 등의 의제를 다룬 기획전이다. 이후 남일당 앞 건물에 레아미술관을 꾸몄다. 전시를 꾸리고 퍼포먼스를 했다. 그것은 전시를 위한 전시가 아니었다. 현장의 가치를 담은 상징을 만들고 현장을 망각에서 차단하려는 예술행동이었다.
또한 상징투쟁이자 기억투쟁이다. 예술은 가치의 경쟁이다. 예술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 영역은 서로 다른 가치를 놓고 선택하고 분별한다. 가치는 정치·경제·문화 전 영역에 걸쳐 선택과 판단의 근거를 제공한다. 가치의 경쟁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예술은 상징체계를 이용해 가치의 문제를 다룬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들과 동행하려는 생각과 실천이 용산에 함께한 예술가들이 선택한 가치였다.
여기 상호 대립하는 가치의 문제를 명쾌한 시각언어로 보여준 작품이 있다. 보도사진 기자의 전력을 가진 예술가 노순택의 이다. 그는 2009년 1월20일 새벽, 그 현장에 있었다. 참사 현장에서 옥상 망루의 화재 현장을 카메라에 담은 그는 레아미술관 옥상에서 불에 타 일그러진 망루를 찍었다. 그것은 일종의 기록이다. 그런데 그는 이 기록물로서의 사진을 예술작품으로 끌어올렸다. 일그러진 철판들이 만들어낸 곡선의 상하좌우를 극단적 흑백 대비로 단순화했다. 그 결과 프레임 안쪽의 화면은 추상적인 선의 흐름이 지배하는 흑과 백 두 개의 면으로 나뉘었다.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현실의 모습을 담은 걸작이다.
용산 참사 현장예술은 공공 영역에서의 예술적 실천이다. 예술 자체로서의 완결성과 자율성을 지키려는 예술가들이 용산 참사 현장이란 공공 영역에 자신을 파견해 새로운 개념을 이끌어냈다. 서울민중미술운동연합 대표로서 지난 1년 동안 용산 참사 현장예술과 함께해온 전미영은 현장과 전시장을 분주히 오간 예술활동을 ‘파견미술’이라고 불렀다. 대다수 예술가가 시장권력과 문화권력에 이끌려 또 다른 주문생산자로 전락한 후기 근대의 시대에, 파견미술이라는 역설적 개념은 탈근대적 예술체제를 이끌 새로운 개념이자 실천이다. 용산에 자신을 스스로 파견해 ‘여기 사람이 있다’라고 절규한 현장의 예술가들이야말로 타락과 부패의 나락에서 허덕이는 예술을 향해 ‘여기 예술이 있다’라고 외치는 진정한 자율성의 주인공이다.
용산과 함께한 예술은 사회적 이슈에 참여하고 개입한 동시대의 예술적 실천일 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증거하고 기록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억투쟁은 동시대를 헤쳐나가는 한편,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일과도 깊게 관련이 있다. 용산 참사 현장예술은 지난 1년간 사회적 망각에서 용산 이슈를 지켜내는 유효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새로운 기억투쟁이 있다. 제2의 용산이 서울 각지, 전국 도처에 산재해 있다. 예술적 상징은 지금 여기 동시대성과 현장성을 바탕으로 그 너머 역사성과 보편성을 획득한다. 동시대에서 미래로, 서울에서 전세계로 시각을 확장해 용산 참사 현장예술에 대한 해석의 지평을 넓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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