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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문학상] 음울한 현실 뒤집는 ‘매운 손바닥’

<한겨레21> 제1회 ‘손바닥 문학상’에 비친 세상… 우수상 <오리 날다>, 가작 <인디안밥> 선정
등록 2009-11-20 14:54 수정 2020-05-03 04:25
제1회 ‘손바닥 문학상’ 수상작이 선정됐습니다. 신수원씨의 가 우수상의 영예를 안았고, 한혜경씨의 이 가작으로 뽑혔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총 171편에 이르는 응모작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 10월30일 밤 12시에 공모를 마감한 뒤 박용현 편집장과 안수찬 사회팀장, 한페이지단편소설(1pagestory.com) 운영자이자 소설가인 서진씨가 예심을 통해 22편을 가렸고, 이들 작품을 대상으로 김선주 전 논설주간, 소설가이자 시인인 유용주씨, 최재봉 문학전문기자가 최종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11월11일 최종 심사회의를 열고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당선작을 결정했습니다.
우수상에는 300만원, 가작에는 1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지고, 수상자는 일정 기간 필자로 기용됩니다. 는 이번호 표지이야기로 실리고, 은 다음호에 소개됩니다.
손바닥 문학상 공모는 내년에도 계속됩니다. 많은 응모 바랍니다.
“생각보다 응모작들의 수준이 높네요.” 11월11일 오후 서울 경복궁 인근 자인제노 화랑에서 손바닥 문학상 응모작 2차 심사를 진행한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 유용주 시인 겸 소설가(왼쪽부터).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생각보다 응모작들의 수준이 높네요.” 11월11일 오후 서울 경복궁 인근 자인제노 화랑에서 손바닥 문학상 응모작 2차 심사를 진행한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 유용주 시인 겸 소설가(왼쪽부터).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제1회 ‘손바닥 문학상’ 본심에 올라온 22편은 전체적으로 손바닥 문학상을 주관하는 과 한겨레신문사를 의식한 듯한 경향을 보였다. 불황과 구직난을 반영하듯 대졸 백수를 등장시킨 작품들이 여럿 있었고, 실직과 파산을 다룬 응모작들도 보였다. 대추리 미군기지를 둘러싼 싸움, 비정규직 노동자의 농성 투쟁, 빅브러더를 연상시키는 감시체제, 우리 사회의 고질병과도 같은 ‘레드 콤플렉스’, 다문화 가정의 그늘,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등 최근의 현안을 다룬 작품들이 대세를 이루다시피 했다.

백수·비정규직·노무현 등 현안 소재로

특히 대학을 졸업하고도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하고 임시직 학원 강사로 일하는 청년들이 여러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한 점은 새삼 놀라움을 주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놓인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한 결과였겠지만, 응모자들의 상상력이 그런 답답한 현실을 뛰어넘지 못하는 점은 아쉽게 다가왔다. 형식적으로도 르포나 수기를 방불케 하는 작품들이 대다수를 이루었다. 무겁고 우울한 현실을 작품에 담느라 청춘 특유의 생기와 발랄한 상상력이 발휘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한 심사위원은 본심에 올라온 응모작들 중에서 사랑과 성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 없다는 점을 특히 아쉬워했다. 개성에 충만한 살아 있는 캐릭터가 잘 보이지 않았다는 점과 함께, 생명력이 부족해 보인다는 게 이번 응모작들에 대한 총평이었다.

그럼에도 를 당선작으로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심사위원들에게 큰 기쁨이었다. 세 심사위원이 약속이나 한 듯 첫손에 꼽은 게 이 작품이었다. 그 때문에 당선작을 뽑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도 시간 소요도 없었다. 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철탑 고공농성을 다룬 작품이어서 시사적 현안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다른 응모작들과 비슷했다. 그렇지만 여성 노동자가 고공농성 중에 부닥치기 마련인 배변 문제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확보한 것부터가 성공적이었다. 사실 오줌과 똥을 싸는 일은 밥을 먹는 일만큼이나 중요하고 거룩한 행위다. 고공농성이라는 특별한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는 밥을 먹는 것보다 배변이 한결 더 까다롭고 부담스럽게 마련이다. 는 수십m 높이의 철탑에서 홀로 농성하는 여성 노동자가 배변과 배설물 처리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수치심을 밀도 높게 묘사함으로써 농성이라는 행위를 새로운 각도에서 보게 했다. 결말에서 체포당할 처지에 몰린 주인공이 포위망을 좁혀오는 형사를 향해 변이 든 통을 던지는 장면은 통쾌하면서도 먹먹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가작으로 뽑은 은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현장에서 만난 젊은 남녀가 맹렬한 성행위에 몰두하는 상황을 그린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여럿이서 한 사람을 때리는 놀이에 빗댄 제목도 좋았고, 죽음과 성욕을 대비시킨 구도도 그럴듯했다. 성욕이란 다른 말로 생명력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섹스를 나눈 뒤 남자가 여자의 도발적인 1인시위에 동참하기로 하는 결말은 그 생명력이 저항과 창조, 그리고 연대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다룬 은 보수 신문의 검찰 출입 기자를 주인공 삼아 끝까지 냉소와 환멸의 시각을 유지한다. 짧고 힘있는 문장이 속도감 있는 독서를 가능하게 했지만, 1990년대에 유행했던 후일담을 연상시키는 점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파산 법정의 풍경을 구어투의 독백에 담은 , 아이들의 만화 이야기에 가난과 가정파괴의 현실을 얹은 , 그리고 전철에 버려진 신문을 줍는 노인 이야기를 무협지의 어법으로 쓴 등 참신한 형식 실험을 시도한 작품들도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정말 손바닥만 한 작품의 장이 되도록

끝으로, 이 상의 명칭과 실질 사이의 괴리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손바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준 분량을 줄이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게 심사위원들의 생각이었다. 원고지 70장 안팎으로 정해놓다 보니 80장 내지 100장 안팎에 이르는 기존 단편소설들과 변별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에 따라 접수된 작품들도 신춘문예나 문학잡지의 단편소설 공모에 제출한 것들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아 보였다.

다루는 소재나 주제에 따라 70장은 물론 100장까지 분량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20~30장이나 극단적으로는 5장 정도의 짧은 분량으로도 충분한 이야깃거리가 있을 텐데, 제1회 손바닥 문학상이 그런 ‘손바닥’만 한 작품들을 품어안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시사주간지에서 의욕적으로 출범시킨 상인 만큼 형식에서도 참신함을 갖출 필요가 있었는데,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아쉬움을 남겼다.

손바닥 문학상은 이번 첫 회 결과를 경험 삼아 명칭과 실질 사이의 괴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변화를 주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두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다른 응모자들에게는 격려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심사위원 김선주 유용주 최재봉


■ 수상 소감
신수원씨

신수원씨

“무관심한 일상 성찰하는 계기로”

우수상 신수원씨

가 창간되던 때 ‘현장’에 있던 나는 마음 놓고 구독 신청을 하지 못했다. 오래된 일이라 상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생각과 지향이 노출될 것이라는 불안이 컸던 시절이다.

어리고 젊었던 그때를 지나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지금, 종종 나를 둘러싼 세상의 어떤 것들이 달라지고 나아졌는지를 생각한다. 현장의 환경과 조건은 달라진 것도 나아진 것도 없어 보인다. 단지 세련되게 포장돼 끊임없이 개인을 자극하는 욕망이 그때와 좀 다르다고 할까. 더러 우리는 그 부추겨진 욕망을 안정된 미래라거나 희망이라 착각하기도 하는 것 같다.

열악하고 사나워지는 현장을 다루는 문학을 찾기 어렵다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빈곤한 상상력으로 쓴 이번 글이 정작 열심히 현장을 채우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누가 되는 점은 없는지 조심스럽다. 그리고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세상의 무관심과 무심함에 묵묵히 동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를 돌아본다.

당선이라는 도드라진 기쁨을 안겨주신 에 감사함을 전한다. 죽을 때까지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무한 경쟁’을 거침없이 자식에게 강요하는 무서운 기성세대는 되지 않기를, 치열하게 살아왔음을 말하기보다는 부끄러움을 아는 따뜻한 기성세대이기를 스스로에게 주문한다.


한혜경씨

한혜경씨

“1인시위 체험한 뒤 소설 구상”

가작 한혜경씨

지금껏 살아오면서 여러 번의 경사를 맞았지만, 그럴 때면 언제나, 어떻게 웃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싹 잊어버린다. 폴짝폴짝 뛰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깔깔 웃지도 못했다. 정말 슬픈 일에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나 자신에게 일어난 경사에는 온전히 큰 소리로 웃지 못한다.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구나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 소설을 처음 생각해낸 것은 지난 6월 초,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1인시위를 할 때였다. 8차선 도로 앞에서 커다란 피켓을 목에 걸고 뙤약볕 속에 4시간을 서 있었다. 건너편의 빌딩 전광판 속에서 소녀시대가 웃고 있었고, 경비 아저씨가 가끔 와서 “힘들지 않냐”며 말을 건넸고, 버스에 탄 사람들은 일제히 내 피켓을 쳐다보았고, 한 청년이 음료수를 건네주고 갔다. 높으신 분의 얼굴은 못 봤다. 나는 다음에 올 때 꼭 춤을 추며 신나게 시위를 하리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그곳에 갈 일은 없었다. 학교를 뒤덮었던 침통한 분위기는 어느새 후다닥 정리돼 있었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상일이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니, 사실은 잘 모르겠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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