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적인 추락의 신호탄일까, 거품이 빠지고 안정기에 접어든 것일까?
‘친서민·중도실용’을 강조한 지난 9~10월 50%까지 넘나들던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변곡점에 이르렀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가 11월3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40.8%로 한 달 전보다 13.5%포인트나 떨어졌다. 이보다 극적이진 않지만,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11월2일 조사에선 지난달보다 3%포인트 빠진 41.6%, 리얼미터의 10월26~28일 조사에선 2주 전보다 3.9%포인트 낮은 40.0%, 동아시아연구원·한국리서치의 10월24일 조사에선 전달보다 2.7%포인트 떨어진 41.8%였다. 리서치플러스의 10월31일 조사에선 45.7%로 한 달 전보다 올랐지만, 그 폭이 0.4%포인트에 그쳐 현상 유지에 가까운 것으로 풀이된다.
지지율 50% 변곡점 찍고 엉거주춤?
이 40%대 지지율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지율이 떨어졌다고는 해도, 40%는 사실 만만한 지지율이 아니다. 한나라당 안에서도 “어디서 장난치는 것 아닌가. 주변에선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지지율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수군거림이 나올 정도다. 게다가 당선 직후 80%대를 기록했던 이 대통령 지지율은 ‘강부자·고소영’ 내각 논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파동 등을 거치며 집권 넉 달 만에 10% 안팎까지 급락했고, 지난 8월까지 1년3개월 동안 내내 20~30%대에 불과했다.
‘친서민·중도실용’ 노선 강화 선언이 이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린 직접적인 계기라는 풀이엔 정치권 안팎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이런 지지 심리는 “살림이 좀 나아지겠구나” 하는 기대와 닿아 있다. ‘성과에 대한 기대감’은 사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떠받치는 가장 큰 힘이다.
돌이켜보면 서울시장 때도, 대선 후보 때도 그랬다. 2006년 3월 내내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황제 테니스’ 논란에 시달렸고, 끝내 “공직자로서 사려 깊게 처신하지 못한 점이 있어 깊이 사과한다”고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25% 안팎이던 그의 지지율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대선 후보 시절 ‘BBK 실소유주 의혹’이 최고조에 이르고, 자녀의 위장 취업 의혹마저 불거진 2007년 11월 그의 지지율은 휘청거렸지만 그래도 30%대 후반을 굳건히 지켰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결코 쉽게 빠져나가지 못했을 도덕성 검증의 그물에서 이 대통령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 건 청계천, 시내버스 요금제 개선 등 눈에 보이는 성과를 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친서민 정책을 펴고 있다’는 체감도가 ‘친서민 정책을 펴달라’는 기대감과 간극이 크다는 점이다. 지난 10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친서민 정책이 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15.6%에 그쳤지만, ‘그렇지 않다’는 대답은 82.3%나 됐다. 국정수행 지지율은 44.6%였다. 기대는 품었지만, 대통령이 아직 그 기대를 충족해주진 못했다는 말이 된다.
민심은 언제까지 이런 간극을 견딜 수 있을까? 청와대 관계자는 “50%를 넘는 지지율엔 ‘잘하라’는 격려도 섞여 있기 때문에 거품이 있었다. 그 거품이 걷힌 결과가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40%대로, 더 떨어질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국민은 이 대통령이 ‘부자 중심 정책을 편다’는 비판에 귀기울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촛불 정국 때 이 대통령 지지율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진 가장 큰 원인은 “국민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분노였는데, 이 대통령이 이제 ‘소통’에 나섰고 국민도 이를 인정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야당의 판단은 전혀 다르다. 윤호중 민주당 수석 사무부총장은 “‘친서민’으로 이미지 정치를 했고, 효과도 있었지만 여기까지다. 서민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하나도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대통령 지지율은 앞으로 더 떨어질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조금더 들여다보면, 이런 주장을 ‘정치 공세’로만 흘려듣기엔 어려운 대목이 있다. 우선 대통령 지지율 회복을 이끌었던 중도층과 수도권의 이탈 현상이 뚜렷하다. 앞서 언급한 동아시아연구원·한국리서치의 조사에서 중도층 지지율은 7.7%포인트나 주저앉아 39.3%로 나타났다.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서 서울 지역 지지율은 17.3%포인트 하락해 43.4%를 기록했는데, 이런 하락폭은 세종시 논란으로 들끓는 충청 지역(18%포인트 하락)과 비슷하다. 또한 청와대의 ‘소통 강화’ 논리와는 정반대로, 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로 ‘독선적인 국정운영’을 꼽는 이도 15.2%에서 21.0%로 6%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동아시아연구원의 4월과 10월 조사에서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조사결과도 의미심장하다. 정부의 세금정책을 놓고 84.8%가 ‘부유층에 유리하다’고 답했고, 재정지출 확대 등 경기확장 정책의 수혜자가 고소득층이라는 답변은 69.1%나 됐다. 여권의 ‘친서민 행보 강화’ 주장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준비 안 된 아마추어’ 비판 되돌아올라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컨설팅본부장은 “현재 대통령 지지율은 수치는 높을지 몰라도 강도는 낮다. 언제든 일방주의적인 행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4대강 사업, 세종시 축소 등 논란이 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간 지지율 하락은 물론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투표를 통한 심판’에 맞닥뜨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올해 치러진 두 차례 재보선의 투표율은 각각 40.8%와 39.0%로 2006년 이후 가장 높은 기록을 세웠고, ‘직장에서 퇴근한 40대 이하’로 추정할 수 있는 오후 6시 이후 투표자는 전체 투표자의 18% 안팎에 이르렀다. 이런 흐름은 결코 한나라당에 유리하지 않다.
이 대통령은 평소 “일만 잘하면 된다”고 강조한다. ‘무슨 일’을 ‘어떻게 잘’ 할 것인지를 놓고 그는 또 한 번 민심과 맞설까?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충고했다. “‘인기가 좀 올라가니까 또 일방통행식으로 간다’는 인상을 줘선 안 된다. 친서민 정책의 내용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문제처럼 논란이 큰 사안을 추진하면서 청와대가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 데서 더 큰 실망을 안겨준다. 참여정부 때 ‘준비 안 된 아마추어가 나라만 시끄럽게 한다’고 비난했는데, 거꾸로 우리가 그런 얘기를 듣게 생겼다.” 선택은 이 대통령의 몫이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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