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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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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참겠다 갈아보자 ‘사교육 세상’

분별 있는 학원 활용 캠페인 ‘아깝다 학원비! 100만 국민약속운동’ 시작…
외고 논란·학원계 반발 등 변수 많아 앞날 험난
등록 2009-10-30 04:26 수정 2020-05-02 19:25
풍경1.

지난 10월13일과 19일, 일부 신문에는 낯선 광고가 실렸다. “학부모님! 10월20일(화) 대한민국 전 학원이 휴강합니다!” “학원을 억압하는 개정입법은 사교육비만 증가시킵니다.” 한국학원총연합회는 등을 확성기 삼아 절규하고 있었다.

실제 10월20일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선 ‘학원교육 말살정책 저지 전국학원교육자대회’가 열렸다. 이날 전국의 학원장·강사 등 학원계 종사자 2만5천여 명(주최 쪽 추산)이 모였다. 정부의 학원 심야교습 규제가 가장 큰 계기가 됐다. 사교육 대책의 일환인데, 학원 쪽엔 압박이 큰 듯하다. 이처럼 대규모로 학원이 들고일어선 적은 없다.

10월22일 ‘아깝다 학원비! 100만 국민약속운동’이 출범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전문가, 학부모 등과 울력해 교육 소비자에게 사교육에 관한 오해와 해법을 소책자로 알리고, 무분별한 학원 교육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 서명을 진행할 계획이다.

10월22일 ‘아깝다 학원비! 100만 국민약속운동’이 출범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전문가, 학부모 등과 울력해 교육 소비자에게 사교육에 관한 오해와 해법을 소책자로 알리고, 무분별한 학원 교육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 서명을 진행할 계획이다.

풍경2.

외국어고가 ‘마녀’가 됐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외고 폐지론’에 불을 지피면서다. 사교육을 조장하며 ‘입시 특목고’로 변질·전락했다는 이유다.

외고부터 들고일어났다. “(외고 입시를 사교육비 증가의 원흉으로 모는 건) 마녀사냥”이라고 따졌고, 정 의원은 “(외고는) 분명히 마녀”라고 맞받았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성토가 쏟아졌다. “외고가 사교육 조장의 주범이라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최원호 대원외고 교장) “대학 입시제도를 개선하면 사교육 문제가 해결되는데, 정치권이 대학은 건드리지 못하고 만만한 외고만 겨냥하고 있다.”(이택휘 한영외고 교장) “사교육비 문제의 주범은 공교육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지 외고 때문이 아니다.”(박치완 부산외고 교장) “외고 폐지론은 또 다른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맹강렬 명덕외고 교장)

외고가 이처럼 한 몸이 된 적 또한 없다.

같은 논리로 반발하는 학원계와 외고들

공교롭다. 외고의 논리가 학원협회의 것과 빼닮았다. 외고와 학원은 공생관계다.

한 설문조사를 보면, 외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의 평균 사교육비는 71만원, 그렇지 않은 학생은 53만4천원이다. 외고를 희망하는 이들의 91.9%가,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77.4%가 사교육을 받고 있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가 지난 4월 서울 강남·목동, 경기 평촌·분당 기타 지역 등 6개 지역 초·중등생 1380명에게 물은 결과다.

하지만 외고용 사교육비가 월 100만원을 돌파한 가정도 적지 않다. 외고 입시를 위해 수학·과학 경시 준비강좌, 영어 전문학원, 수학 선행학습 등을 병행하는 경우다. 한 강좌당 월 30만원을 오간다. 한국은행의 통계자료를 보면, 지난해 고소득층(소득 상위 30%)의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액만도 90만1천원이었다. 최저임금 노동자가 하루 8시간 동안 한 달을 일해야 마련되는 돈이다.

사교육비의 다른 말은 학원비다. 그래서 사교육 공화국은 학원 공화국과 같은 말이다. 이 세계에선 입시 따위 제도가 바뀌고, 공교육이 내실화한대도 학원은 건재할 것만 같다. 실제로 고급 사고력을 유도하겠다며 본고사·논술이 대입전형 요소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 해당 학원이 생긴다. 면접 학원도 생긴다. 공급이 수요를 흔든다. 학부모와 학생들, 심지어 제도권 교육마저 그렇게 학원의 노예가 된 지 오래다.

간혹 ‘노예문서’를 스스로 불지르는 이도 있다. 초등학교 4·6학년 자매를 키우는 김아무개(39·여·경기 화성시 동탄동)씨는 올해 학원을 완전히 끊었다. 지금은 학교 특기적성 교육에만 아이를 맡긴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동탄신도시는 아파트로 가득하다. “학원도 너무 많아 고르지 못하겠다.”

올 3월 특목고 입시학원 설명회에 처음 갔다. 참석자도 설명 내용도 대단했다. “영어에 올인해야 한다. 초·중학교 때 영어를 다 떼야 하고, 그래야 명문대를 목표로 다른 공부에 매진할 수 있다”는 게 뼈대였다. 특목고에 꼭 가지 못하더라도 손해는 아니라는 얘기다.

김씨는 “거기에 들이는 품·시간·돈에 대비해 내 아이가 얼마나 얻어올 건지 따져봤다”며 “(장래 성적은 불확실하지만) 무엇보다 스트레스가 커질 것만은 분명해 일단 학교와 집에서 공부해보자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상이 ‘유혹’이다. 김씨와 또래 자녀의 교육 정보를 주고받는 동네 학부모 5명 가운데 2명이 자녀를 특목고 학원에, 3명이 일반 교과학원에 보낸다. 특목고 학원 수업을 좇기 위해 개인과외를 받기도 한다. 100만원이 적다.

이 시대 학부모야말로 무엇을 해도 불안하고 불안한, ‘질풍노도의 시기’에서 허리가 휜다.

사실상 최초의 사교육 불매운동 점화

지난 10월22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1가 유진빌딩 4층. 학부모·학계·시민운동가 등 40여 명이 모였다. “아깝다, 학원비”를 연방 외친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1년3개월가량 준비해 마련한 ‘아깝다 학원비! 100만 국민약속운동’(이하 100만 국민운동) 캠페인 출범식 풍경이다.

학부모·학생·교사 등 교육 소비자들이 직접 연대해 사교육의 허구를 파악한 뒤 주체적이고 분별 있게 사교육, 특히 학원 교육을 거부하자는 캠페인이다.

본격적인 ‘사교육 불매운동’의 시작이다. 일부 언론이 ‘사교육 마피아’를 자처하고, 누구도 제 책임은 아니라고 하는 마당에 소비자 스스로 ‘살길’을 찾겠다는 몸부림이다. 제도권 내 교육개혁 운동과 제도를 비판하는 학부모 운동을 넘어, 사실상 최초의 사교육 불매운동으로 진화한 셈이다.

이들은 12가지 질문을 던지며 사교육의 ‘미신’부터 깨고자 한다. △학원에 보내면 정말 성적이 오르나 △아이들이 원하면 2개 이상의 학원에 보내는 것도 좋은가 △선행학습의 효과는 있는가 △영어교육은 빠를수록 좋은가 등을 주되게 묻는다. 사교육 전문가 22인이 울력해 내놓은 답은 뜻밖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내놓은 ‘선행학습 효과에 관한 연구’(2002)를 보면, 중학교 때부터 학원을 다닌 상위권 학생들의 수학 성적이 고2가 되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당시 연구를 책임졌던 이종태 전 연구위원은 “중학교 시절 오랜 학원 경험이 고급 사고력을 측정하는 고교 시험과 수능에 오히려 방해가 된 것으로 분석한다”고 말한다.

대안 마련 병행해 효과 높여나가기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나온 ‘청소년 사교육 이용실태 및 효과에 대한 종단분석’(2007)을 보면, 학업 성적에 대한 사교육의 영향력은 중2 때 가장 크고 고1이 됐을 때는 감소한다.

학원 교육이 학력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는 수없이 많다. 심지어 오래됐다. 그간 보지 않고, 보아도 믿지 않아, 여전히 새로운 정보가 된다.

김성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은 “과학적 검증을 해보면, 학원에서 ‘구경’하는 공부에 익숙해져 실제 성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데도 안심하기 위해 ‘묻지마 사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100만 국민운동은 사교육에 관련된 오해와 해법을 간략히 담은 소책자를 100만 명의 국민에게 먼저 보내려 한다. 핵심은 “일체의 학원을 다니지 말자는 게 아니라, 분별력 있게 활용하자”다.

유명 학원강사 출신으로 이 캠페인에 동참한 박재원 비상공부연구소 소장은 “정직하고 실용적인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캠페인을 통해 실용적 대안까지 제시한다는 얘기다. 가령 소책자는 “취약한 과목에 대한 보충은 인터넷 강의나 개인과외를 일시적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영어 조기교육은 “초등학교 3학년 이후 영어 전문학원 등을 선택하되, 무리한 과제를 내는 곳은 피하라”고 말한다.

이후 ‘묻지마 사교육’을 경계하겠다는 약속 서명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칠 참이다. 깨우쳐 ‘의지’를 돋우고, 연대해 ‘불안’을 떨치며, 대안을 마련해 ‘효과’를 높인다는 것이다.

100만 국민운동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진 알 수 없다. 학원업계와의 마찰도 예상된다. 한국학원총연합회 김재완 사무총장은 “취지는 이해하지만 고액과외 등이 더 급한 문제다. 왜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원 쪽만 타깃을 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불신을 받는 공교육의 개선이 병행되지 않으면서 사교육 불매운동만 올돌하기도 어렵다.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도 “가장 시급한 교육개혁은 공교육과 내신의 질을 높여 내신 위주의 대입 전형을 유도하는 것”이라며 “그때 자연스레 사교육은 배제된다”고 말한다. 정두언 의원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이달 안에 발의해 올해 통과시킬 방침이다. 그럴 경우, 외고는 추첨으로 학생을 뽑는 특성화고로 바뀐다. 고비용 학습환경에서 길러진 ‘우수 학생’을 선점해 명문대로 공급하는 특권이 사라진다.

커가는 사교육, 해법은 학부모·학생 손에

현재 사교육 통제를 위한 학원 관련법 개정안 18개가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안도 포함돼 있다. 정 의원의 개정안부터 하나하나 통과가 쉽지 않다. 대형 학원, 일부 언론 등 ‘사교육 마피아’와 다퉈야 한다.

사교육은 이미 저 혼자 살아 움직이며 커가는 ‘괴물’이 돼있다. 특목고 입시전문 학원의 성장세만 봐도 상상을 초월한다. 금융감독원의 공시를 보면, 아발론은 매출이 2007년 282억원에서 이듬해 677억원으로 무려 140% 성장했다. 같은 기간, JLS는 432억원에서 766억원(77.3%), 토피아는 403억원에 554억원(37.5%), 청담러닝은 628억원에서 830억원(32.1%)으로 몸피를 키웠다.

현재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은 20조~30조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단연 1위다. 하지만 학력이 1위는 못 된다. 100만 국민운동 캠페인은 아주 오래된 수수께끼를, 이제 학부모와 학생이 먼저 나서 풀어보자는 얘기가 된다.

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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