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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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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으로 따지면 스탈린이 최고 지도자

러시아를 모델로 1950년대 동남아·북한 등 국가계획경제…
박정희 근대화 역시 공포정치에 바탕한 절름발이 성장
등록 2009-10-21 09:01 수정 2020-05-02 19:25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근대화를 추진했지만 경제성장을 독재권력의 정당화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 대한민국정부기록사진집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근대화를 추진했지만 경제성장을 독재권력의 정당화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 대한민국정부기록사진집

오늘날 경제성장은 한국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가치가 되었다. 더 높은 성장률이 더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성장률이 낮으면 그만큼 불행한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경제성장은 물신화됐다. 그리고 경제성장은 정치권력의 정당성이나 지도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도 작용한다.

서구의 근대혁명은 근대사회를 이루는 두 가지 축인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포함한다. 경제성장은 산업혁명의 산물이다. 근대로의 이행은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시민혁명을 통한 민주화를 또 다른 특징으로 한다.

근대의 두 축은 산업혁명과 시민혁명

서구의 발전을 따라잡는 ‘추격발전’을 시도한 비서구 사회들은 근대화를 내세우면서 산업혁명만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비민주적 정권에 의해서 위로부터의 산업화가 시도됐다.즉, 독재권력에 의해서 국가 주도형 산업화가 시도된 것이다. 19세기 말 비스마르크의 독일과 메이지 천황의 일본이 이러한 추격발전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경제성장은 비자본주의 방식으로도 추구됐다. 스탈린 치하의 소련은 사회주의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도모했다.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계획경제를 통해 경제성장을 추구했다. 스탈린은 정적을 숙청하고 비밀경찰을 동원해 사회를 지배하는 공포정치를 폈다. 사유재산제도를 철폐하고, 농민을 강제로 도시로 이주시켜 도시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만들었다. 스탈린이 절대권력을 행사하면서 추구한 것은 바로 경제성장이었다.

경제성장 차원에서만 본다면 스탈린은 세계 정치 지도자 가운데 가장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야 할 정도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인물이다. 스탈린은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봉건국가이던 러시아를 30년 만에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고도로 발전된 산업국가로 만들었다. 스탈린 치하에서 지속적으로 산업이 발전하고 경제성장이 지속되면서 러시아는 1950년대에 이르러 우주선을 발사할 정도로 국력이 커졌다.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 경제성장을 추구한 독재자는 동아시아에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박정희, 대만의 장제스, 싱가포르의 리콴유를 들 수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권력을 독점하고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권력을 유지했다. 그리고 경제계획을 통해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국가 주도형 산업화를 도모했다.

한국의 경우, 최초의 정권인 이승만 정권은 전형적인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했다. 이미 여러 아시아 신생 독립국가들에서 경제계획을 실시하고 있었지만, 이승만 정권은 이러한 흐름을 따르지 않았다. 국가 경제계획은 중국과 대만에서는 1953년부터 실시됐고, 북한에서는 1954년부터 실시됐다. 동남아 국가들도 1950년대 중반부터 경제계획을 펼쳤다.

이처럼 전후 많은 나라들이 경제계획을 도입한 것은 러시아에서 이루어진 경제성장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하여 신생 독립국가들이 계획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해 시장경제와 계획경제가 공존하는 혼합경제 체제를 보여주었다. 시장의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존하기보다는 보이는 국가의 개입을 통해서 경제성장을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권에 이르러서 한국도 경제계획을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했다. 1962년에 시작된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에 의해 처음으로 실시됐고, 이후 30년 이상 한국 경제의 틀을 지우는 중요한 경제정책으로 자리잡았다. 그리하여 경제계획은 한국형 발전국가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은 1962년 경제개발5개년계획 시작

정치적으로 경제계획은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서만 집행할 수 있었다.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제학자 앨리스 암스덴이 지적한 것처럼, 한국의 경제는 시장의 수요(market demand)가 아니라 국가의 명령(state command)에 의해 움직여졌다. 사적 부문 위에 군림하는 국가에 의해 경제가 유지됐던 것이다.

그러나 독재정권에 의해 이루어진 경제성장은 모순적 결과를 낳았다. 산업화에 성공한 독재정권은 곧 민주주의의 요구를 직면하게 된다. 국민의 일차적 욕구인 빵을 해결해주지만, 곧 더 고차원의 욕구인 자유의 요구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경제성장을 권력 정당성의 원천으로 삼으려는 독재정권은 곧 경제성장만으로 권력의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경제는 성장하지만, 정권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 커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독재정권은 더욱더 억압적인 방식으로 반대세력과 불만세력을 다스리려 했고, 이는 저항과 억압의 악순환을 낳았다. 이러한 악순환은 독재정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권력 유지가 공권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귀결된다. 스탈린 시대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 독재국가들에서도 공포정치가 발전했다.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룩한 서구의 경우 이러한 양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영국은 경제성장을 주도한 세력이 자유민주주의를 동시에 추구했다. ‘이중적 혁명’이라고 불리는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의 주체는 부르주아지였다. 그러므로 정권의 정당성 문제는 경제성장이나 민주주의 제도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질에 관한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경제성장의 성과를 이룬 독재자들에 대한 태도는 냉엄하다. 인권을 억압하고, 반대자를 숙청하고, 소수 인종을 죽인 히틀러와 무솔리니, 스탈린은 모두 부국강병에 성공했지만, 만인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역사적 인물들이다.

독재자로서의 박정희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많은 제3세계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박정희에 대한 일반인의 태도는 호의적이다. 독재자였지만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호의적인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고, 또한 비범한 지도자였다는 인식도 많다. 보릿고개를 면하게 해준 지도자라는 점에서 가난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보여주는 온정주의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주로 경제적 업적과 관련된 평가다.

그러나 근대사회가 보여주는 두 가지 변화 가운데 민주주의를 희생시켜 경제성장을 이룬 지도자라는 점에서 제한적으로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박정희가 근대화를 내세웠지만, 그러한 근대화 속에서 경제성장이 독재권력의 정당화 수단으로 활용됐다. 역사적인 교훈은 민주주의를 위해 경제성장을 희생시킬 수도 없고, 경제성장을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스탈린이 비난받는 이유는 바로 경제성장을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시켰다는 점에 있으며, 이는 박정희의 경우에도 적용돼야 한다.

독재정권에 의한 경제성장은 일시적

문제는 경제성장의 지속 가능성이다. 독재정권에 의해 일시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그것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게 오늘날 학계의 견해다. 소련 체제 붕괴가 그랬고, 한국의 외환위기가 그것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우리는 가치관의 혼란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 인식도 이러한 혼란을 반영하고 있다. 인류가 공통적으로 추구한 가치가 현대사회를 만들어낸 원동력이라면, 한국 사회도 더 균형 잡힌 가치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많이 언급되는 ‘글로벌 스탠더드’는 바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근거한 것이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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