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성적 행동을 하는 사람을 흔히 ‘변태’라 한다. 비난과 조롱의 언어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성도착증’으로 부른다. 정신적 질환으로 본다. 이 가운데서도 상대에게 고통을 가하는 성도착증자를 범죄학에선 ‘사이코패스’로 구분한다. 사법당국은 그들을 뭉뚱그려 ‘성폭행범’으로 부른다. ‘정상인’인 우리는 ‘비정상인’인 그들을 적게는 조롱하고 많게는 감옥에 가두며 살아간다.
지난해 11월, 8살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한 조아무개씨는 아동에게 성욕을 느끼는 변태이고, 그런 욕망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성도착증 환자다. 어린아이의 음부를 잔인하게 훼손했다는 점에서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고, 무엇보다 명백한 성폭행범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그를 법정 최고 형량으로 감옥에 가둘 정당한 근거를 얻었다. 그는 ‘정상인’들로부터 당분간 격리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정상인’은 이제 편안해졌나?
고령·저학력에 단독범인 경우가 대다수황지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이런 사건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는 ‘그가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식이지, ‘그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에 대한 관심은 적다”고 지적한다. “자신이 같은 일을 저지를까 두려워하면서, 범죄자에 대한 강한 비난을 통해 자신은 그런 ‘비정상’이 아니라고 위안받는 심리가 우리 안에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건에 국한하지 않고 아동 성폭력 전반으로, 또한 아동 성폭력을 사전에 예방할 방안으로 논의가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3년 12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강은영 부연구위원이 ‘아동 성폭력 가해자 연구’ 보고서를 냈다. 전국 14개 교정보호시설(교도소·보호관찰소·소년원)에 수감 중인 성폭력 범죄자 590명을 상대로 사회인구학적·범죄심리학적 조사분석을 했다. 종합적·체계적으로 아동 성폭행범을 직접 연구한 거의 유일한 연구보고서인데, 세상에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성인 성폭행범, 청소년 성폭행범, 아동 성폭행범을 구분해 비교했다. 그들이 ‘또 다른 얼굴의 우리’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아동 성폭행범은 성인·청소년 성폭행범에 비해 나이가 많다. 수감 중인 아동 성폭행범의 50%가 30·40대였고, 50·60대 역시 9%나 됐다. 성인 성폭행범은 상대적으로 젊다. 50대 이상은 4.4%에 불과하다. 성인 성폭행범은 비슷한 또래를 범죄 대상으로 삼지만, 아동 성폭행범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사람에게 집착한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범행 대상으로 노린 피해 아동의 평균연령은 9.4살이었다. 왜 그랬을까?
아동 성폭행범은 학력도 낮다. 초등학교 중퇴·졸업 이하 학력자가 24.9%나 됐다. 중학교 졸업·중퇴자도 29.8%다. 상대적으로 성인 성폭행범은 학력이 높다. 고등학교 졸업·중퇴 이상의 학력자가 54%에 이른다. 아동 성폭행범은 직업적으로도 하층에 속한다. 전문직·사무직 종사자는 5.4%에 불과했다. 생산직·판매직·서비스직 종사자가 53%나 됐다. 길거리에서 그들을 마주쳤다면, 아마도 우리는 불우한 성장 과정을 거쳐 하루하루 가난하고 외롭게 살고 있는 중년의 초라한 남성을 만났을 것이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아동 성폭행범은 혼자 범죄를 저지른다. 89.6%가 단독범이었다. 둘 이상 함께 범행을 저지른 경우는 10.4%였다. 반면 성인 성폭행범의 25.5%, 청소년 성폭행범의 43.7%가 둘 이상이 함께 범죄를 저질렀다. 아동 성폭행범은 강도·절도를 함께 저지르지 않는다. 금품은 그의 목적이 아니다. 아동 성폭행범의 4.4%만이 금품을 뺏었다. 반면 성인 성폭행범의 절반은 강도·절도 등과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 성인 성폭행범은 금전적 이익을 위해 범행을 저지른 뒤 신고를 막기 위해 성폭행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아동 성폭행범은 오직 혼자서 성적 욕구만 충족시키려 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도대체 왜 그런 욕망을 갖게 됐을까?
이들의 특이한 범죄를 설명할 실마리가 심리 분석에 들어있다. ‘아동 성폭력 가해자 연구’는 아동 성폭행범의 자의식·성의식 등도 함께 설문조사해 평균값을 냈다(표 참조). 그 결과 아동 성폭행범의 이중적 성윤리, 폭력에 대한 허용 의식, 물화된 성 이미지, 강압적 성의식 등은 성인 또는 청소년 성폭행범에 비해 낮았다. 적어도 아동 성폭행범은 여성을 성 노리개로 보고, 성행위에 집착하며, 이를 위해 언제든 폭력을 휘둘러도 좋다는 ‘마초’의 기질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동 성폭행범의 뚜렷한 특성은 따로 있다. 이들은 성인 또는 청소년 성폭행범에 비해 자긍심이 가장 낮았다. 자신은 성적 욕구가 없는 편이며, 이성에게 성적 매력을 발산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성적 좌절 경험 역시 가장 많았다. 이들은 아마도 수줍고 말수가 적으며 여성 앞에서는 더욱 위축되는 조신한 남성으로 지내왔을 것이다.
강은영 부연구위원은 “아동 성폭력 범죄에서 가해자의 자아존중감 부족과 열등감은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남성 중심적 성문화가 보편화된 사회에서 자신의 성적 능력과 매력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고, 실제 생활에서 성적 좌절을 많이 경험하는 남성이 열등감과 부정적 자아상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여성을 상대로 폭력적 성행위를 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강력한 처벌’만으로는 아동 성폭행을 억제할 수 없다는 게 강 부연구위원의 생각이다. “국내 법에서 정한 형벌은 이미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이다. 형벌의 잣대로만 보더라도 아동 성폭행을 막는 길은 처벌의 ‘엄격성’이 아니라 처벌의 ‘확실성’을 높이는 데 있다. 어린아이를 성적으로 학대하면 사형을 당한다는 엄포보다는 그런 짓을 하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사회적 경고가 더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다. 길을 지나는 어린 여자아이를 ‘약자’로 치부하지 않도록, 그 뒤에 버티고 선 사회적 감시의 ‘강자’를 부각시키는 방식이다.
아이에 대한 성적 욕구 부추기는 사회여성부의 의뢰를 받아 지난해 강 부연구위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고되는 성범죄보다 신고조차 되지 않고 묻혀지는 성범죄가 4.6배나 많다. 조사 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성폭행범들은 “재수 없이 걸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강 부연구위원은 전했다. 특히 피해 아동에 대한 사후 치료 시스템이 열악한 상황은 부모들이 사건 자체를 쉬쉬하게 만든다. 아동 성폭행 범죄를 적시에 적발하고 사후에라도 철저히 유죄를 입증할 수 있도록 수사기관의 역량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일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처벌의 확실성이 보증된다.
상당수 아동 성폭행범이 “술을 먹고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식으로 발뺌하는 것에 사법부가 관대한 판결을 내리거나, 감형의 사유로 참작하는 것도 문제다. 범죄학자들의 여러 연구는 한결같이 남성 중심의 문화가 강할수록, 음주문화에 관대할수록 성범죄가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은 두 가지 모두를 갖췄다.
어떤 면에서 한국은 ‘약하고 여린 여성 아동’에 대한 성적 욕구를 부추기는 사회이기도 하다. 강 부연구위원은 “최근 이른바 ‘걸그룹’ 등을 성적 존재로 포장하는 추세가 확산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광고 등을 통해 18살 이하 어린이·청소년을 성적으로 묘사하는 일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최근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화학적 거세’ 역시 아동 성폭행 범죄 억제와는 거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남성 호르몬 생성을 억제하는 주사를 1~2주에 한 번씩 맞는 ‘화학적 거세’는 말 그대로 약효가 지속되는 시기에 한정된 처방이다. 이 제도를 도입한 미국에서도 가석방의 조건으로 호르몬 억제 주사를 일시적으로 맞게 하는 방식으로만 주로 쓰인다.
치료감호, 전자팔찌 등 완전 격리 방안도 논란이 적지 않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곤 있지만, 한국에서도 비슷한 발상의 형벌제도가 없지 않았다. 1980년에 만들어져 2005년에 폐지된 사회보호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재범의 위험성이 높고 특수한 교육·치료가 필요한 자를 보호처분하여 사회를 보호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처벌 강화론이 제기하는 대안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그러나 현실의 사회보호법은 시국사범을 탄압하는 데 주로 악용됐으며, 일반 형사사범에 대해서도 과도한 처벌을 합리화하는 쪽으로 변용됐다. ‘치료’는 사라지고 ‘격리’만 남았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는 “치료감호나 전자팔찌라는 아이디어가 사회보호법 폐지와 함께 없어진 보호감호를 부활시켜 형법의 기본 목적에 어긋나는 위헌적 처벌을 부활시킬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분노한 여론, 반인권 법안 통과에 악용될라
실제로 지난 10월8일 인권운동사랑방은 논평을 내고 “정부기관이 분노한 여론에 편승하여 전자발찌의 무기한 착용이나 보호관찰제도의 확대, 화학적 거세 등의 자극적이고 손쉬운 ‘처벌 강화’의 미봉책을 꺼내는 모습에 실망하고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최연희 의원(무소속)이 과거 여성을 성추행한 사건에 대해 벌금 5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한 판결을 예로 들면서 “지금까지 남성의 각종 성범죄에 관대했던 사회적 경향”에 대한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 없이는 “아동에 대한 성범죄 역시 절대로 예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개인에게 주목하는 범죄 논의는 언제나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러나 그것이 범죄를 막지는 못한다. 이럴 때 범죄를 낳은 사회적 풍토에 주목하는 것이 자칭 ‘정상인’을 ‘진짜 정상인’으로 만들어주는 힘이다. 못 배우고 가난한 남성에게 끝없이 열등감을 주입하는 한국 사회에서 잠재적인 아동 성폭행범은 널리고 또 널렸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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