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집시법 독소조항 개정 ‘첫 발’ 뗐을 뿐

야간 집회 금지한 10조에 헌법 불합치 결정 나왔지만
5·12조 등 집회 금지 악용되는 조항들 여전히 위력
등록 2009-10-02 13:49 수정 2020-05-03 04:25

해 뜨기 전이나 해 진 뒤에는 집회·시위를 할 수 없다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0조는 진작부터 시민사회단체 쪽에서 독소 조항으로 손꼽아왔다. 다행히 9월24일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함으로써 해당 조항은 늦어도 2010년 6월 말이면 생명이 끝난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밤 10시건, 11시건 누가 봐도 명백한 밤 시간대를 못박아 그 이후의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할지, 아니면 아예 관련 조항을 없애버릴지도 국회가 판단해야 할 부분이다.
이참에 그동안 독소 조항으로 지목돼온 다른 집시법 조항도 함께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찰이 헌법적 권리인 집회·시위 자유를 손아귀에 넣고 자의적으로 쥐락펴락하면서 헌법의 상투를 쥐고 흔들 수 있도록 만드는 조항들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0조 야간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9월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법정 앞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박주민 변호사가 헌재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0조 야간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9월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법정 앞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박주민 변호사가 헌재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전국 89개 주요 도로 자의적 집회 금지 가능

우선 경찰서장이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 열릴 집회·시위를 교통 소통을 이유로 금지할 수 있도록 한 12조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주요 도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9월 현재 서울·부산을 비롯해 춘천, 목포, 진주 등 21개 도시 89개 주요 도로가 포함돼 있다. 서울의 경우, 서대문구 자하문 앞에서 광화문~남대문~서울역~삼각지를 거쳐 한강대교 남단까지의 도로가 첫째 목록에 올라 있다. 구로구 오류동에서 여의도를 거쳐 종로~청량리~망우리에 이르는 도로도 대상이다. 퇴계로, 청파로, 남대문로, 삼일로, 돈화문로, 대학로, 테헤란로 등에 이르기까지, 경찰서장의 판단에 따라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도로는 웬만한 서울 시내 큰 도로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실제 경찰은 이 조항을 시렁에 얹은 곶감 빼먹듯 즐겨 사용하고 있다. 경찰이 지난해 금지 통고한 집회·시위 299건 가운데 교통 소통을 이유로 든 게 69건이나 됐다. 장소 경합을 이유로 금지한 140건에 이어 두 번째다. 김기창 고려대 교수(법학)는 “교통 확보의 가치가 집회 자유의 가치보다 중요할 순 없는데도 우리나라는 교통 방해가 절대 가치인 것처럼 집회를 억압하는 핑계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소 경합을 이유로 경찰서장이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한 8조 2항도 마찬가지다. 법은 분명히 “그 목적으로 보아 서로 상반되거나 방해가 된다고 인정되면” 금지 통고할 수 있다고 제한하고 있지만, 경찰 눈에는 이 제한 규정마저 보이지 않는다. 경찰은 지난 8월 통일 관련 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이 서울 광화문 KT 앞에서 광복절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한 집회를 금지했는데, 그 이유는 KT 광화문 지사에서 같은 날 캠페인성 집회를 하겠다고 앞서 신고했다는 것이었다. 광복절 집회와 캠페인성 집회가 상반되거나 방해가 될 것이라고 보는 경찰의 인식 수준이 의심스러운 경우다.

결국 서울행정법원은 평통사가 경찰의 금지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경찰의 집회 금지 처분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며 평통사의 손을 들어줬다. 경찰은 석 달 전에도 평통사 쪽이 같은 장소에서 열겠다는 집회를 같은 이유로 금지했고 법원은 이때도 경찰에 금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금지 통고 제한 규정 불구 경찰은 “금지” 남발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한 5조도 경찰이 애용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검찰이 야간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나올 것 같으니까 지난 9월 초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이른바 촛불 관련 단체 간부들의 죄명에 집시법 5조를 집어넣는 공소장 변경을 했다”며 “이 조항에 대해서도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추진하고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헌법소원을 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