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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전입 불감증

이명박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 ‘전력’ 많아…“업무 능력이 중요” 버티기 나서
등록 2009-09-25 15:32 수정 2020-05-03 04:25
이명박 정부 들어 위장 전입은 고위 공직자가 되기 위한 ‘필수과목’처럼 돼버렸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월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과 도덕성 비판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이명박 정부 들어 위장 전입은 고위 공직자가 되기 위한 ‘필수과목’처럼 돼버렸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월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과 도덕성 비판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이명박 대통령, 김준규 검찰총장, 민일영 대법관, 이만의 환경부 장관, 현인택 통일부 장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이귀남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태희 노동부 장관 후보자….

이들의 공통점은 ‘주민등록법 위반’이다. 쉽게 말해 본인이나 가족이 실제로 살지 않는 곳에 주소를 등록해 자녀의 학교를 골라 보내거나, 부동산을 사거나, 친인척의 선거를 도운 적이 있는 ‘위장 전입’ 경력자다. 현행법상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위장 전입은 2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폭행이나 과실치사보다 더 중한 범죄다.

고위 공직자의 위장 전입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처음 불거진 게 아니다. 고위 공직자를 상대로 한 인사 청문회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김대중 정부 이후 위장 전입 문제는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중요한 잣대로 자리잡았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첫 여성 총리가 될 뻔한 장상 전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의 벽을 넘지 못했고, 뒤이어 지명된 장대환 총리 후보자도 위장 전입 사실이 드러나 ‘후보’에 머물렀다. 노무현 정부 때는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이 위장 전입을 통한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위장 전입 문제와 관련해 이 정부 들어 생긴 새로운 ‘트렌드’는 위장 전입 경력자가 대폭 늘어났다는 점이다. 민주당이 9월15일 낸 보도자료를 보면, 이 정부 들어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대법관·선거관리위원 포함)의 20%가 넘는 16명이 위장 전입을 했다. 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땐 각각 4명이었다.

여론도 예전보다 덜 엄격해져

지난 정부와 또 다른 특징은 위장 전입 문제가 불거져도 여간해선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 등이 논란 끝에 사임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은 위장 전입에 다른 여러 의혹이 겹쳤거나 “땅을 사랑해서” 따위의 변명으로 국민 감정에 불을 지른 사례였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9월1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6%는 고위 공직자 임명 때 ‘위장 전입은 중요한 결격사유’라고 답했다. ‘결정적 결격사유는 아니다’라고 답변한 이는 35.9%였다. 위장 전입이 공직 수행의 결격사유라는 의견이 높긴 하지만 절반을 넘지 못하고, ‘결격’사유까지는 아니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를 ‘도덕성’과 ‘업무 능력’으로 단순화해보면 답변은 더욱 팽팽해진다. 같은 조사에서 인사 청문회의 중요한 검증 사항으로 ‘도덕성’을 꼽은 이는 47.6%, ‘업무 능력’을 꼽은 이는 43.9%였다.

민주당 전현희 의원. 김진수 기자

민주당 전현희 의원. 김진수 기자

이를 두고 이재근 참여연대 투명사회팀장은 “한두 명이면 크게 문제가 됐겠지만, 고위 공직자 5명에 1명꼴로 많은 사람이 위장 전입을 했다고 하니 비판 여론도 거세지 않은 것 같다. 도덕성에 결함이 있는 걸 알면서도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 정부의 도덕성에 큰 기대를 안 하는 측면도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인사 검증 때 위장 전입 사실을 알면서도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이고, 후보자도 ‘임명권자가 용인한 일’이라고 판단해 버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두 사람의 문제에 불과할 땐 ‘표적’이 돼 여론과 야당의 집중 포화를 맞았지만, 위장 전입이 일반화되다 보니 문제가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는 ‘도덕성’을 중시했던 두 전직 대통령과 달리 ‘능력’이 우선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과도 일치한다.

그렇다 해도 고위 공직자의 위장 전입을 곱게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이유가 뭘까?

우선 1990년 2월10일치 보도를 보자. “교육특구라고 불리는 서울의 8학군 문제는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8학군은 강남·서초·강동·송파구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서울 시내 9개 학군 중 학교교육 여건이나 학부모들의 생활수준, 학생들의 자질 면에서 가장 우수한 학군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에 8학군은 해마다 위장 전입 문제와 8학군에 거주하면서도 수용 능력 부족으로 타 학군으로 밀려나 배정돼야 하는 구조적 불합리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1980년대 들어 사회 이슈화

같은 해 3월8일 보도는 이렇다.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실제 거주지를 옮기지 않고 주민등록만 이전한 경우 앞으로는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국세청은 7일 분당 1차 아파트의 당첨자 4036명 가운데 95명을 가수요 또는 투기성 취득자로 보고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면서 이 중 조사가 끝난 9명 중 2명이 허위로 주민등록을 옮겨 단독가구를 형성한 사실이 드러나 내무부에 주민등록법 적용을 이같이 엄격히 해줄 것을 요청키로 했다고 밝혔다.”

두 기사가 지적하듯 위장 전입의 대표적 ‘목적’은 자녀 교육과 자산 증식이다. 위장 전입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시기는 고교 평준화가 본격화되고 부동산 개발 붐이 일면서 땅값이 수직 상승하기 시작한 1980년대다. 입길에 오른 고위직 인사들이 ‘자녀 학교 배정’이나 ‘내 집 마련’ 따위의 핑계로 위장 전입을 했던 시기도 대체도 80년대 이후다. 명문 중·고 진학과 발 빠른 부동산 증식을 통해 ‘더 나은 미래’로 올라서고 싶은 건 누구나 가진 욕망이다. 하지만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이는 일부다. 그런 점에서 위장 전입은 투자할 여력이 있는 사람, 즉 중산층 이상만 사용할 수 있는 사다리였다는 얘기다. 꿈을 이룰 수 없는 서민 처지에선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주요 인사 위장 전입 사례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주요 인사 위장 전입 사례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위장 전입이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공직자’이기 때문이다. 최재천 전 민주당 의원이 9월16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보통 시민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더 많은 명예와 사회적 기회를 가지고 있는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왜 이토록 탐욕스러운 위장 전입을 불사해야만 했을까. 공직을 성공의 수단, 입신양명의 수단, 정승이 되는 길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의 이익을 위해 법을 집행하는 대법관·법무부 장관·검찰총장 후보자마저 개인적 이익을 달성하려고 위장 전입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한 누리꾼은 “위장 전입 그랜드슬램 달성”이라고 비꼬았다.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엔 ”차라리 위장 전입을 합법화하라”는 비아냥성 청원도 올라와 있다.

눈길을 끄는 건 김대중·노무현 정부 인사의 위장 전입을 서슬 퍼렇게 비판했던 와 한나라당의 반응이다. 9월15일치 사설은 한나라당에 야당의 도덕성 공격을 막아낼 방법을 알려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문회가 종종 여야 정쟁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후보자 흠집내기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공직 후보자 검증에서 도덕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후보자의 업무 능력과 각종 현안에 대한 견해다.”

태도 돌변한 와 한나라당

‘교과서’를 탐독한 결과였을까?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청문회가) 도덕성 검증에 매몰돼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 검증이 소홀한 측면이 있다. 후보자들은 직무와 향후 국정 운영에 대한 비전과 철학, 주요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본인의 소신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문했다.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나왔던 “(위장 전입 경력자는) 스스로 용퇴하는 것이 애국”(송광호 최고위원)이라는 이야기는 더 거론되지 않았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얼마나 많은 공직자가 위장 전입을 비롯해 도덕성 문제를 안고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이에 얼마나 민감하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교육과 주택 문제가 각 개인에게 ‘남을 딛고 얻는 안정된 미래’로 작동하는 사회구조가 해결되지 않으면 위장 전입은 근절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위장 전입 등 각종 비리 의혹으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내정을 철회한 직후 이동관 홍보수석은 “중도와 실용, 친서민 행보를 계속하고 있는 이 대통령의 핵심적인 철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고위 공직자가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새 내각 인선으로 확인시켜준 건 ‘입에 머문 생각’에 불과하다. 여전히 이 대통령의 ‘친서민’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모든 권리의 출발점 ‘주민등록상 거주지’

토지 거래에서 택시면허까지 적용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우리나라에서 개인들의 여러 행정적·제도적 행위는 ‘거주지’, 즉 주민등록이 그 근간을 이룬다. 1962년에 제정된 주민등록법은 거주지를 기준으로 신원을 등록하는 ‘거주자 등록제도’의 형태를 띠고 있다. ‘주민등록상의 주소’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공법 관계(국가나 공공단체 상호 간의 관계 또는 이들과 개인의 관계를 규정하는 법률)에서의 주소로 그대로 인정된다.
행정안전부 주민과의 이정민 행정사무관은 “우리의 주민등록은 국민의 주소를 행정관서 한 곳에서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이는 국가 전체 행정의 근간을 이룬다”며 “이 주민등록 정보를 다른 모든 행정·공공기관들이 공용하는 체계”라고 말했다. 공공기관마다 그 기관을 이용하는 사람의 거주지 정보를 개별 수집·관리하는 게 아니라 행정안전부 한 곳에서 공적으로 관리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주민등록제도는 세계적으로 유일한 제도다.
위장 전입은 △자녀 학교 입학 △주택·농지 구입 등 경제적 행위 △선거권 행사를 위한 정치적 목적 등 다양한 이유로 이뤄진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교육·경제·정치적 행위를 할 때 ‘주거지 요건’을 중심으로 행위를 제한하거나 이익·불이익을 주는 각종 법·제도가 광범위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이는 많은 행정 제도가 주민등록을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인데, 위장 전입이 판치는 근본 배경이기도 하다.
몇 가지를 보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교육과학기술부령이 정하는 지역 안에 소재하는 고등학교의 입학전형은 당해 교육감이 실시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 시행령에 고교 평준화란 개념은 등장하지 않지만, 고교 입학전형을 학교장이 아니라 교육감이 실시하는 것이 평준화 제도다.
경제행위 측면에서 보면,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국토해양부령)에서 임대주택 공급은 거주지에 따라 순위가 부여되고, 무주택 ‘세대주’에게는 국민·공공임대주택 입주자격과 우선권이 부여된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 거주자들이 세대 분리를 둘러싸고 동사무소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일도 많다. 원칙적으로 한 주택 안에서 여러 세대가 존재할 수 있으나, 아파트는 다세대주택이 아니라서 세대 분리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는 서울시의 질의에 대해 “일반적으로 아파트는 그 구조상 생계와 주거를 별도로 하기 어렵기 때문에 세대 분리가 허용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회신한 바 있다.
주택 청약 때는 부양가족 수(35점)가 무주택 기간(32점)·청약통장 가입 기간(17점)과 함께 가점 항목으로 반영된다. 여기서 직계존속 부양가족은 3년 이상 세대주와 같은 주민등록표상에 등재돼 있는 경우에만 인정된다. 그래서 주민등록상 거주지를 부모 주소지로 옮겨놓는 일도 허다하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임차인의 우선변제권을 인정해주는 확정일자 역시 주민등록과 동시에 대항력이 발생하도록 돼 있다.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에 따라 농지 소유 자격을 농업인으로 제한하는 농지법과 투기적 거래가 성행할 우려가 있는 토지 거래는 허가를 받도록 하는 국토이용관리법에서도 주민등록상 거주지는 중요한 자격 요건이 된다. 재개발사업마다 보상을 받거나 주거이전비를 타내려고 위장 전입하는 일도 성행한다. 택시 신규면허를 내줄 때도 거주 기간이 고려된다. 경기 용인시 개인택시면허 사무처리 지침은 ‘주민등록표에 의한 용인 시내 거주 기간이 1년11개월 이상이어야 한다’는 거주 요건을 두고 있다.
그럼 위장 전입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거나 행정력을 총동원해 위장 전입을 가려내면 될까? 행정안전부 쪽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위장 전입을 하고 있으나 국민 정서상 철저히 처벌하기도 어렵다”며 “통장이 밤늦게 집집마다 방문해 거주 사실을 확인하면 사생활 침해 시비가 붙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4년 참여정부는 전입신고 때 임대차계약서 등 입증자료를 제출하거나 건물 소유자에게 전입 사실을 확인받아 신고하도록 하는 전입 사실 본인 입증제를 도입한 바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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