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여전히 미개한 나라다. 어린이, 특히 부모가 미등록 외국인인 이주아동의 인권 분야에선 더욱 그렇다. 한국인 부모를 둔 아동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영주·의료·교육 등의 기본권을 이주아동은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어린이와 그 부모의 국적, 종교, 인종, 정치적 의견,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한국은 이 협약을 1991년 비준했다. 그러고는 여태껏 더 이상의 발걸음을 내딛지 않았다.
드디어 한국이 문명사회로 진입할 계기가 마련됐다. 이주아동에게도 기본권을 법으로 보장하는 내용의 ‘이주아동권리보장법’이 곧 발의된다. 한나라당 내 ‘빈곤 없는 나라를 만드는 특별위원회’에서 다문화 담당 팀장을 맡은 김동성 의원이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김 의원의 법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이주아동 인권 보장의 근본이 되는 영주권 조항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한국에 들어와 3년 이상 체류한 모든 이주아동에게 영주권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이런 자격에 맞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90일 이상만 체류하면 만 20살이 될 때까지는 한국에 체류할 자격을 준다는 조항도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이주아동은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심지어 10년 가까이 살았더라도 국적은커녕 한국에 계속 체류할 법적 근거마저 없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그 다음은 의료권이다. 법안은 “질병의 치료와 건강의 회복을 위해 의료급여법에 따라 긴급 치료 등 필요한 의료급여를 제공받을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이 통과되면, 가난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부모가 자녀가 아파도 돈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법안은 동시에 부모의 경제 능력에 따라 이주아동이 국민기초생활 수급대상자가 될 수 있는 길도 터놨다.
교육권도 대폭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이주아동에게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을 하도록 하는 한편, 해당 지역 거주 사실만 입증하면 국내 학교의 장은 이주아동의 전입학 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해당 학교장의 ‘시혜’ 수준에 머물던 게 ‘의무’가 되는 셈이다.
지난 17대 국회 때도 비슷한 법안이 준비된 적이 있으나 국회 문턱을 넘는 데는 실패했다. 이번에는 여당 의원이 발의에 나선데다 민주당 등 야당도 반대할 까닭이 없어 법이 제정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김 의원은 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도 이제 사람으로 치자면 성숙한 인격을 갖춘 국가가 됐다”며 “현 정부가 중도실용을 강조하고 서민을 위한 정치를 강조하는 분위기에도 부합하는 법안으로서 5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10월 초까지) 발의한 뒤 올해 안에는 통과시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현행 법체계와 충돌하지 않는 부분부터
서울YWCA와 서울YMCA, 한국외국인지원단체협의회, 흥사단, 세계선린회, 지구촌사랑나눔 등 시민사회단체들도 지난 4월 ‘이주아동·청소년 권리 보장을 위한 시민행동’을 발족하고 김 의원실과 관련 법안 마련을 논의해왔다. 법안 마련 작업에 참여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현행 법체계와 충돌하지 않도록 문구 조정에 신경을 썼다”며 “이주아동이 부모와 함께 살 권리, 그에 따른 부모의 체류 보장 등은 다음 과제로 남겼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들은 국적법, 출입국관리법 등 다른 현행 법체계와 거칠게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논란이 작은 부분부터 시작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주아동에게 한국 국적을 주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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