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주부 이은정(서울 성북구)씨는 8월 휴대전화 요금으로 4만4280원을 냈다. 회사원인 남편은 6만4760원을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장남인 남편은 고향에 있는 아버지에게 휴대전화를 하나 사드렸는데 그 휴대전화 요금도 대신 내고 있다. 1만4100원.
이씨는 초등학교 3학년인 딸에게 공짜폰을 하나 사줬다. 뉴스에서 초등학생 여자아이 대상의 범죄를 볼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러자 아들도 휴대전화를 사달라고 졸라댔다. 이씨는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굳이 휴대전화가 필요할 것 같지 않아 사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씨는 끝내 아들에게도 공짜폰을 사줬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아들을 직접 챙길 수 없었다. 아들이 학원에 있거나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 연락하기가 여의치 않아서였다. 8월 두 아이의 휴대전화 요금은 각각 1만6060원과 1만6340원이었다.
휴대전화 요금이 전화·초고속 인터넷의 5배
이 집의 8월 한 달치 휴대전화 요금은 15만5540원에 이른다. 이씨는 집에서 인터넷 전화와 초고속 인터넷을 쓰는데 매월 3만5640원을 내고 있다. 휴대전화 요금이 다른 통신요금의 5배가량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휴대전화를 쓰는 사람은 4740만 명(7월 기준)이다. 인구의 96%에 이른다. 국민 모두가 휴대전화 하나씩을 갖고 있는 셈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 1분기 가계 통신비는 월 13만4178원이다. 이 가운데 휴대전화 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육박할 정도로 높다.
이젠 초등학생까지 쓰는 이 휴대전화 요금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쪽은 요금 자체가 너무 비싸다고 하고, 또 다른 쪽은 너무 많이 쓰기 때문이라고 한다. 휴대전화 요금의 진실을 따져 들어가보자.
# 대한민국은 휴대전화 중독인가?휴대전화 요금의 진실을 따져보려면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통신요금 수준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가계지출 가운데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4.81%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OECD 평균은 2.99%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8월 내놓은 ‘OECD 요금 수준 분석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이용량이 최고 수준에 달해 상대적으로 요금이 높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휴대전화 요금이 높기 때문일까? 즉, 사람들의 휴대전화 ‘중독’ 때문에 요금이 많은지, 요금의 ‘버블’ 때문에 많이 내야 하는지를 비교해보자.
지난 7월 한국소비자원이 내놓은 ‘이동통신 요금 국제비교 현황’ 자료를 보면, 음성통화량이 비슷한 15개국 중 우리나라의 음성통화 요금이 가장 비쌌다. 1분당 음성통화 요금(RPM)을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2004년 10위에서 2007년 2위, 지난해 1위로 급격히 뛰어 올랐다.
하지만 SK텔레콤·KT·LG텔레콤 등 통신회사는 조사의 신뢰도를 의심하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조사 방법에 따라 순위가 크게 차이가 나는 만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OECD 평균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한 달 휴대전화 통화량은 1.5배에 이른다. 많은 통화량에 비해 실제 요금은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결국 방통위와 통신회사의 주장은 많이 쓰니 당연히 요금이 높게 나온다는 얘기다. 사실 우리나라의 1인당 월평균 통화 시간은 316분으로, OECD 국가 가운데 미국(838분)·홍콩(459분)·캐나다(438분)·이스라엘(361분)·싱가포르(360분)에 이어 여섯 번째로 통화량이 많다.
휴대전화를 많이 쓰는 사람이 요금을 많이 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요금 체계가 잘못됐다면? 우리나라 통신회사들은 휴대전화를 적게 쓰는 사람이 많이 쓰는 사람의 요금을 보전해주는 비정상적인 요금 체계를 운영하고 있었다. 지난 8월 나온 OECD의 ‘커뮤니케이션 아웃룩’을 보면, 우리나라의 소량 이용자(월평균 44분)는 OECD 평균보다 50달러 더 냈다. 소량 이용자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요금을 부담하고 있었다. 중량 이용자(114분)는 10달러 정도 요금을 더 냈다. 하지만 다량 이용자(246분)는 평균보다 40달러 낮았다.
무작정 휴대전화를 많이 쓰니 많은 요금을 내게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현재 요금 체계에 문제가 없는지 되짚어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전성배 방통위 통신이용제도 과장은 “휴대전화 소량 이용자를 위해 기본요금을 내지 않는 선불요금제를 활성화해 통신요금을 인하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 가입비와 기본료가 우리나라 IT 기술을 키운다?이은정씨 가족이 내는 휴대전화 기본료는 7만3749원이다. 휴대전화 통화요금의 절반가량인 47%에 이른다. 도대체 기본료는 왜 내는 것일까? 통신회사들은 가입비와 기본료를 받아 이를 재원으로 통신 인프라를 까는 데 쓴다고 말한다. 휴대전화가 안 터지는 곳에 기지국도 세워 언제 어디서나 전화를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통신회사들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달리 지하철이나 두메산골 어디서나 휴대전화를 쓸 수 있는 게 바로 가입비와 기본료 때문이라는 주장을 편다. 통신사업을 유지하고 차세대 통신망에 재투자하려면 수익이 불확실한 요금제 수입보다는 1만~5만원에 이르는 고정비 수입이 보장된 기본료와 가입비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신회사들과 방통위는 기본료 몇천원씩 찔끔 내려주기보다 투자를 확대해 산업에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다. 옛 정보통신부 장관들은 “통신요금을 10% 내릴 경우 이용자는 월 자장면 한 그릇 값 정도를 절감하지만, 산업적으로는 수조원의 재원이 날아가 설비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펴왔다.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 이동통신 산업은 3개 업체의 독과점 상태다. 이 때문에 투자보다 수익을 추구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통신 회사들의 매출은 해마다 늘고 있는데 설비투자는 정체 내지 감소 추세다. 올 1분기 통신회사들의 설비투자를 보면, KT와 합병을 앞두고 있던 KTF는 투자액이 1524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에 견줘 40% 이상 감소했다. LG텔레콤의 1분기 설비투자 규모도 368억원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3% 축소됐다. 다만 SK텔레콤만이 3480억원을 투자해 지난해 1분기보다 25% 투자액이 증가했다.
대신 배당과 성과급 잔치가 화려해지고 있다. SK텔레콤과 KT는 해마다 이익의 50%를 배당하겠다고 주주들에게 약속한 상태다. 휴대전화 이용자들이 비싼 요금을 내며 주주와 통신회사 직원들의 배당·성과급 잔치 비용을 대는 꼴이다.
한 통신업계 인사는 “통신회사들이 기본료와 가입비를 절대 내리지 않으려는 것은 주가 관리 때문이다. 일단 기본료와 가입비가 내려가면 주가가 떨어진다. 요금 인하 때문에 기업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느냐는 비판 때문에 방통위도 쉽게 기본료와 가입비에 손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자는 자신이 쓰는 것과 관계없이 나오는 고액의 기본료와 통신회사를 바꿀 때마다 이유 없이 내야 하는 가입비가 유쾌할 리 없다. 더욱이 자신이 낸 기본료와 가입비가 우리나라 정보기술(IT) 발전에 기여하기보다 주주들의 배만 두둑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다. 소비자는 자신이 낸 기본료가 배당 잔치로 들어가는 것보다 그 돈으로 자장면을 사먹는 게 나을지 모른다. 그 경우 내수를 성장시키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종원 서울YMCA 시민중계실장은 “SK텔레콤이 5만5천원, 후발 주자인 KT와 LG텔레콤이 3만원씩 가입비를 받고 있는데, 현행 가입비는 폐지 또는 인하가 바람직하다. 이와 함께 실질적인 요금 인하 효과가 나타나려면 기본료, 데이터 요금 등 통신 서비스 항목별로 가격을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MB의 대선 공약(公約), 공약(空約)되나?사실 ‘통신요금 20% 인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부터 휴대전화 요금 인하를 시도했다. 하지만 SK텔레콤과 방통위(당시 정보통신부)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인수위는 휴대전화 요금 인하를 두고 갈팡질팡했다. 2008년 1월 당시 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인 최경환 의원은 “국민의 피부에 와닿으려면 기본료·가입비·통화료 등 기존 요금 체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정통부가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구체적인 작업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뒤 그는 “정부가 나서서 몇% 내리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경쟁 촉진과 규제 완화로 통신요금을 내리도록 할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과다한 기본료·10초 단위 요금제 등 불합리그러다 지난 7월 한국소비자원이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휴대전화 요금 인하 논쟁이 불거졌다. 지금은 국세청장으로 간 백용호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휴대전화 요금에 관심을 갖고 소비자원에 휴대전화 요금을 검토하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 청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점에서 MB 정부의 ‘중도 노선’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일부 보수 언론도 휴대전화 요금 인하를 주장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는데, 이는 방송 진출을 위해 통신사로부터 투자를 받기 위해서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요금 인하는 통신사의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현재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는 휴대전화 요금 인하는 크게 세 갈래다. △가입비·기본료 폐지 및 인하 △문자메시지 요금 인하 △10초 단위 요금 부과 시간을 1초로 변경하는 것이다.
신종원 서울YMCA 실장은 “청소년들은 일정 금액만 내면 문자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요금제를 이용한다. 그런데 이들이 대학생이 되면 그런 요금제를 쓸 수 없어 문자요금만 10만원이 넘는다. 문자는 원가가 거의 들지 않는다. 문자요금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10초 단위 요금제’는 11초를 통화해도 20초 요금을 받는 방식이다. 통신회사가 실제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거둬들인 통화료 수입인 셈이다. 2004년 감사원은 정통부 직무감사 결과를 통보하면서, 10초 단위 요금제에 대해 통신업체들이 초과이익을 거두면서 낙전 수입까지 챙기는 것으로 보고 개선을 권고했다.
하지만 통신회사들은 무선 인터넷 등 경쟁적 관계에 있는 통신 수단이 계속 발전하는 가운데 고정 수입을 보장해주는 가입비와 기본료를 인하하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문자메시지도 원가를 정확히 분리해 계산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방통위도 통신회사 편에 서고 있다. 전성배 방통위 과장은 “직접적이고 강제적인 요금 인하보다 상품 다양화나 경쟁 활성화 등을 통한 간접적인 요금 인하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새 시장 개척보다 기존 수익 모델에 집착”이처럼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은 갈리고 맞선다. 해법은 소비자 편에 서서 요금 논란을 바라보는 것이다. 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문화방송통신팀장은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3세대 단말기를 들고 있지만 사업자의 콘텐츠 부족으로 음성통화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통사들이 새로운 시장의 개척보다는 기존의 수익 모델에 집착해 벌어진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 팀장은 “영국과 일본 등 다른 나라는 소비자가 각 사의 요금을 비교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통신 강국이라고 하지만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그만큼 강국인지 생각해봐야 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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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하성호 SK텔레콤 상무는 “기업의 영업초과이익을 정부가 흡수하면 어떤 기업이 경영 활동을 하겠냐”며 “수익이 많으니 제품 가격을 낮추라는 단순 논리는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호영 한양대 법대 교수는 “자동차나 텔레비전이 비싸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가격을 내리라고 하지는 않는다. 초과이윤이 있다고 요금 인하를 강제하기보다는 자율적 요금 인하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정치권 인사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형오 국회의장, 정세균 민주당 대표,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등 20여 명의 여야 의원이 참석했다. 주요 인사들은 축사를 했는데 거의 1시간이나 걸렸다. 미디어법을 놓고 극하게 대립했던 여야가 휴대전화 요금 인하를 놓고는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축사에서도 의원들은 견해차를 확인했다. 정세균 대표는 “이통사들의 재무제표를 분석해보면 돈을 굉장히 많이 버는데, 기술 개발이나 경영을 잘해서인지 소비자에게 너무 많은 비용을 물려서인지 국회가 확실히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오 의장도 “통신요금의 적정성은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흥길 위원장은 “쓸데없이 부인들이 집에서 몇 시간 동안 휴대전화를 쓰는 생활 관습이 문제이니, 일률적인 인하보다는 많이 쓰는 사람은 비싸게, 적게 쓰면 오히려 깎아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휴대전화 요금 인하 논란은 앞으로 국회로까지 옮겨붙을 것으로 보인다. 한 방통위 관계자는 “올해 방통위 국감은 미디어법이 최대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휴대전화 요금이 워낙 국민적인 관심사다 보니 이쪽에서도 미디어법 못지않은 이슈가 터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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