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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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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청소했을뿐”

대한문 분향소 철거 ‘작전’ 주도한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
“더이상 공권력에 의탁할 수 없어 애국기동단 결성”
등록 2009-06-30 06:27 수정 2020-05-02 19:25

말은 같다. 하지만 뜻이 다르다. 뜻이 다르니 행동도 다르다.
지난 6월24일 서울 덕수궁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민분향소를 ‘민병대’가 부쉈다. 새벽 5시40분께 보수단체 애국기동단과 고엽제전우회 50여 명이 ‘작전’을 감행한 결과다. 그들 말마따나 “노획”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은 택배를 통해 봉하마을로 보내졌다.
이들을 사실상 진두지휘한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을 ‘작전’ 하루 만에 만났다. 그가 가장 강조한 말은 “상식 있는 사회”였다. 서울 복판의 관광명소에 ‘살인마 이명박’ 플래카드를 건 채 분향소를 차려놓는 게 상식적이냐는 것이다. 덕수궁 분향소는 ‘한 대통령이 정부·검찰·언론의 인격살인을 통해 자살에까지 이르도록 한 사회가 상식적이냐’는 울분으로 100만 명 이상이 머리를 조아린 곳이다.
보수-진보의 갈등이 외견상, 상식 대결이 되었다. 하지만 모두 불편하고, 위태롭다. 서정갑 본부장은 “신변 안전을 위해 남의 차를 타고, 어디를 갈 때도 한참을 우회한 뒤 들어간다”고 말했다.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직접 철거를 시도한 이유가 뭔가.

=쓰레기를 청소한 거지, 공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허가 분향소다. 유족들도 철거를 요청했다. 한강 둔치라면 모르겠다. 서울 한복판,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는 역사적 장소에서 나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불순한 동기로 제2의 촛불을 획책하려는 전진기지였다.

-공권력이 판단하고 집행할 문제에 민간단체가 직접 개입한 것 아닌가.

=6월15일 1차로 철거 제스처만 취하면서 경찰이 직접 (철거)하도록 명분을 줬다. 사흘 안에 철거하라고 했다. 하지만 안 했다. 서울 중구청도 철거하려다 못했다. 판단은 이미 된 것이다. 의지나 역량이 부족해 공권력이 완수 못한 것을 우리가 한 것이다.

-그렇다면 경찰이 오랫동안 검거 못한 살인범도 직접 잡을 수 있겠다. 비판이 많다.

=역량만 된다면야…. 오늘 오전까지 전화를 쓸 수 없을 정도로 전화가 많이 왔다. 지구상에서 가장 더러운 욕만 하더라. 그냥 끊었다. 안 받기도 했지만 아주 그럴 수도 없었다. 격려 전화도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강도를 방관하고 있을 때 행인이 제압했다, 그러면 경찰이 있는데 왜 네가 나서느냐고 할 수 있나.

-재물손괴죄 등의 혐의를 받을 수 있다. 경찰 조사는 받았나.

=법질서를 지키라고 공권력이 있는데, 말을 안 들을 땐 원칙대로 (공권력의) 폭력을 행사하라는 것 아닌가. 이렇게 무력한 경찰들…. 내가 대통령이라면 직무유기한 남대문경찰서장을 당장 파면시킨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자네가 했네, 격려해야 할 판에 (경찰이) 그날 오후 집회 현장(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서 보수단체 회원 5천여 명이 참여한 북핵 도발, DJ 규탄 총궐기대회)에 와서 되레 조사하겠다고 한다. 무슨 개 같은 소린가. 이런 사람들에게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맡길 수 있겠는가. 정식 출두요구서를 보내라고 했다.

-군사작전 같았다. 어떻게 결정하고 준비했나.

=당초 6월24일 집회 때 모두 덕수궁으로 가 밀어붙이고 만세 삼창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경찰·시민과 충돌하면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고, 법질서를 수호하자는 내 모양도 안 좋을 것 같았다. 전날 고엽제 전우회 등 네댓 주요 단체 사람들이 모여 의견이 분분하다가 가장 바람직한 방식을 찾았다. 디데이는 내가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몇 차례의 사전조사를 통해 천막 위치와 구조 같은 걸 모두 파악했다. 그리고 영정 회수조, 천막 오른쪽 담당조, 왼쪽 담당조처럼 파트별 임무를 맡겼다. 5분 내에 완수하라고 했는데, 4분 정도 걸렸다. 좌파 정권 10년 동안 싸우면서 쌓인 체증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어제(6월24일)처럼 통쾌한 적은 없었다.

-애국기동단은 왜 결성했나.

=지난해 광우병 거짓선동 방송에다 촛불광장이 있었다. 도심 한복판이 무법천지가 됐다. 대한민국을 저주하고 김정일에게 아부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문화방송은 없어져야 한다는 데 동의해야 한다. 지난해 말 ‘폭력 국회’가 외신 톱뉴스로 보도되고, 전여옥 의원이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이제 정말 공권력에 의탁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공격해오려는 적이 더 많다 보니 자위적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결론에 지난 3월25일 (애국기동단을) 결성했다.

-애국기동단은 어떻게 구성됐나.

=해병대, 공수부대 등 군 출신으로 90명 정도 된다. 태권도 사범·관장들이 많다. 2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이번에 작전에 나선 이들은 30~40대가 주류다. 모두 유단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견해부터 달랐을 것 같다.

=서거라는 표현부터 잘못이다. 개인의 선택이다. 비리를 떠나, 자살률이 높은 나라에서 시범을 보인 꼴이니까, 존경할 수도 없는데 서거란 말을 붙이나. 정부가 나서서 장례를 치르며 국민 세금 50억원에 가까운 돈을 쓰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행동에 대해 우파에서도 ‘꼴통보수’라고 비판을 한다.

=그런 사람들, 좌파 10년 동안 뭘 했는지 봐야 한다. 대부분 기회주의자다. 우파는 애국·법질서를 지향하는 이들이다. 그걸 비판하는 건 우파를 사칭하는 사기꾼이지 우파가 아니다. 한자리 해먹겠다고 했다가 비토당한 사람들이다. 우린 원리·원칙대로 할 뿐이고 당당하니까, (그런 비판에 대해선) 마음을 비우는 게 중요하다.

-진보가 ‘정의’를 독점한다고 비판받듯, 보수는 ‘애국’과 ‘법’을 독점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애국이란 뭔가.

 =진실, 정의, 법질서 수호다. 이건 국민행동본부의 강령이자 목표다. 법과 원칙이 사는 나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애국이다. 난 보수다, 진보다 이런 개념으로 편가르기를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 생각이 다른 것, 그건 존중돼야 한다. 기본적으로 친북세력을 적대하는 것이다.

-‘헌법수호 및 선진시민정신 함양운동’ 프로젝트로 행정안전부에서 3100만원을 지원받았는데.

=사실 반납하려고 했다. 4억원 남짓을 신청했는데, 10분의 1도 안 되는 돈을 어디에 쓰나. 신문광고 한 번 내면 끝나는 돈인데. 하지만 친정부 단체만 우대했다는 비판을 인정하는 셈이 될까봐 망설이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후원이 팍 줄었다. 후원자들이 정권이 바뀌면서 우리 단체가 정부 지원을 받고 한자리 하는 거 아니냐는 시각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원들이 날 빚쟁이로 만들진 않는다. 좌파 정권 때 그렇게 협박하고 훼방을 놓았는데도 살아남았잖나.

-가스총을 아직도 가지고 다니는가. 실제 신변의 위협을 느끼나.

=경찰이 아침(6월25일)에 전화해서 혼자 나가지 말라고 하더라. 하지만 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내가 지킨다. 차로 어디 갈 때도 몇 차례 주변을 돌고 들어간다.

-어떤 사회를 바라는가.

=생각이 다르다고 강요해선 안 된다. 일단 일반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공중도덕을 지키고 불편함 없이 살아가는, 그게 상식적 사회다.

  

인터뷰 도중, 한 회원이 들어와 “봉하마을에서 영정사진을 받았다고 비서실장한테 전화가 왔다. 따지는 것 같더라”며 서정갑 본부장에게 보고했다. 서 본부장은 “당당하게 대하라”고 말했다. 회원은 “화내고 끊었다”고 말했다. 서 본부장은 지난 3~4월 많이 아팠다고 말했다. 2004년 ‘국가보안법 사수 집회’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치상 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다. 양방에선 이상이 없다고 해 한의원에 갔더니 ‘화병’ 진단이 나왔다고 한다. 발가락부터 정수리까지 수십 대 침을 맞았다. 그는 억울하다고 말했다.

서울 덕수궁 분향소 시민들도 “억울하고 분하다”고 말했다. 말은 같다. 뜻이 다르다. 뜻이 다르니 행동도 다르다. ‘화병 천지’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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