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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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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지키려면 절제의 문화 필요”


③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 국제경제도 국내 상황도 변했으면 새 틀 짜야
등록 2009-04-03 10:32 수정 2020-05-03 04:25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의 이력은 독특하다. 첫 국회의원이 된 것은 전두환 정부 시절이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냈다. 김영삼 정부 때는 민자당 국회의원, 노무현 정부 때는 민주당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일견 뒷말이 있을 법한 이력인데도 그에겐 ‘합리적 보수’, ‘경제 전문가’라는 평이 따라 붙는다. 지난 25일 만난 김 전 의원은 그런 세평이 허언이 아님을 유감없이 입증했다. 따로 자료를 준비하지도 않고서도 경제학설사와 경제정책사를 한두릅에 꿰었다.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연구소에서 1시간30분여 동안 진행됐다.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

요즘 국내 경제학자들은 광범위한 지식 없이 자기 분야만 공부하다 보니 이념적 도그마에 빠져 있다. 자유시장주의만 신봉한다. 그래서는 경제정책을 다룰 수 없다. 목수가 여러 연장을 가져야 제대로 집을 짓는 것처럼, 경제정책가는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상황 변화에 따라 능동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지금은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다. 조화를 이끄는 것이 정치다. 정치하는 사람이 좌우와 이념을 말하면 안 된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 1968년 학생운동이 극에 달한 현장을 직접 봤다. 그런데 독일 사회는 그런 난리를 겪어도 사회적 동요까지 확산되지 않는데, 프랑스는 그 사태로 드골이 물러났다. 독일은 완벽한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져 있으니 불안이 없다. 독일의 근로자들은 2차 대전 이후 생활이 계속 안정돼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프랑스는 사회적 안전망이 엉망이었다.

유학에서 돌아와 정부 사람들을 만나 그걸 늘 이야기했다. 포용하고 끌고 가야 한다, 그런 것을 못하니까 정부가 학생 데모를 늘 두려워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정부가 의료보험 제도를 그때 도입했다. 중산층을 육성하기 위해 재형저축도 도입했다. 사회 변화를 따라 가는 것이 정치하는 사람들의 책무다. 그걸 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보수화됐다고 착각하면 이명박 정부는 실패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1960년대 경제개발5개년계획 이후부터 경제가 성장하는 것만 봤다. 과거에는 우리만 위기를 당하고 세계는 괜찮아서 U자형의 회복이 됐다. 지금은 그것을 기대하지 못할 상황이다. 이를 조화롭게 극복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확 달라질 것이다. 오늘날 금융위기를 보면 절제 없는 시장경제, 절제 없는 자본주의는 이런 결과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술 안 바꾸면 병사들 다 죽어

카를 마르크스가 이런 것을 가장 정확히 지적했다. 영국의 보수학자 에드먼드 버크가 의회에 보낸 편지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다. 그대로 두면 다른 사람의 욕구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 의회가 그런 욕구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매우 보수적인 사람인데, 절제 없는 시장경제를 맹신하는 사람은 정서적인 불구자라고 말했다.

변화하지 못하는 체제는 성공하지 못한다.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절제의 문화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신자유주의는 이제 말할 자격이 없어졌다. 정부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전체를 아울러 가야 한다. 기업만 따로 보호할 수 없다. 미국과 영국도 은행을 국유화하고 있지 않는가. 현재의 금융위기에서 배워야 한다.

그런데도 지금 한국의 경제관료들은 착각에 빠져 있다. 글로벌 체제에 들어가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보수적인 사람이니까 원칙을 바꾸지 않아야 한다, 이런 식의 대응은 절대 안 된다. 적황이 바뀌면 새로운 공격 전술을 짜야 한다. 그 상태에서 그냥 공격 명령을 내리면 병사들이 다 죽는다. 그런 것을 이명박 정부가 해야 한다. 대통령이 된 이후 국제경제도 변하고 국내 상황도 변했으면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


■ 인터뷰 전문
- 현재 경제학을 비롯한 모든 한국의 주류학문은 미국 유학파들이 점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한국의 경제학 분야는 자유시장주의가 절대적인 신봉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유럽 유학파들, 특히 독일 유학파들은 이에 대한 다른 접근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은데.(김종인 전 의원은 독일 뮌스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 요즘 국내 경제학자들은 사회과학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 없이 자기 분야만 공부하다 보니까 이념적인 도그마에 빠져 있다.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학풍과는 관계 없다. 최근에 독일에서 공부한 사람들도 미국 유학파들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 독일 경제학계에도 옛날 같은 사상가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독일 경제학이 영미 경제학에 비해 발전을 못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독일이 후발산업국가란 사실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물론 산업화 시점에서 독일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컸다. 1848년에 공산당선언을 발표할 시점의 마르크스는 독일이 가장 공산화되기 좋은 토대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독일에서 잘 안되니까, 산업화가 가장 앞섰던 영국으로 간 것이다.
독일은 1871년에야 통일국가를 이뤘다. 독일 민주주의도 다른 나라에 비해 발전이 안됐다. 1948년 내부에서 처음으로 민주주의라고 할 만한 것을 시도했다가 성공을 하지 못하고, 1871년에야 비스마르크가 통일국가를 형성하고 의회를 만들었다. 비스마르크는 의회주의를 무시했다. 그 사람은 철저한 보수주의자였다. 비스마르크가 통일을 이루고 나서 사회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니까 위기감을 느꼈다. 독일에서는 사회주의 정당과 공산주의자들이 1880년대 후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는 협동조합주의를 중심으로 의회를 통해 자기들의 이상 즉, 사회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움직임이 가장 빨리 나타났다. 비스마르크는 이런 식으로 가면 사회주의 세력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1881년 비스마르크가 사회보장제도의 첫 단계가 되는 사회의료보험을 제정한다. 자기들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자유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근로세력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려 없이는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본가들이 처음에는 결사반대했다. 이에 맞서는 비스마르크의 논리는 “당신들 마음대로 자본주의를 방임으로 끌고가면 국가가 당신들을 보호할 논리가 없어진다”였다. 이런 논리를 밀어부쳐서 사회관계입법을 관철시켜 1881년에 의료보험과 연금 등을 도입했다. 1880년대에 이미 사회복지 법안을 제도화했다.
이런 영향 때문에 독일에서는 ‘역사학파’가 등장한다. 자유를 위해, 그리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절제할 필요가 있다. 무한대의 자유를 추구하면 붕괴한다. 이런 생각을 내세운 게 역사학파다.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을 보고, 독일의 경제학자들이 고민한 결과다. 자본주의 체제의 불안을 혁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제거하고 경제를 발전시킬 방안, 이른바 제3의 길에 대해 이미 1920년대부터 논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 제3의 길이라는 것이 나오지 않으니까 히틀러가 등장했다. 1929년부터 대공황이 전세계에 번질 때에, 그러니까 1933년에 히틀러가 “내가 빵과 일자리를 주겠다”고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케인스가 정부의 개입을 이론화시켰다고 하지만, 그가 1936년에 을 발표하기 전에 히틀러는 국가의 정부지출을 통해 독일 경제를 성공시켰다. 케인스가 을 완성하기 쉬웠던 것이 히틀러의 사례를 참조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 등 승전국들은 2차 대전에 패한 독일을 농업국가로 만들려는 구상을 했다. 독일이 산업국가로 재생하는 길을 막으려면 독일을 철저한 계획경제체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다. 이때에 루드비히 에르하르트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1920년대에 제3의 길을 모색하던 교수들 밑에서 공부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히틀러가 등장한 이후 히틀러 찬양을 거부해서 학교에서 쫓겨난다. 그 이후 혼자서 독학으로 경제학을 공부했다. 이 사람은 근본이 자유주의자, 리버럴이니까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같은 시대에 독일에서는 히틀러에 저항한 프라이부르크대학의 교수들이 만든 질서자유주의 학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성장은 경쟁 매커니즘에 의해 이뤄지는데 경쟁은 제대로 된 틀을 만들어 줘야 한다, 질서가 확립되야 경쟁이 제대로 이뤄진다고 본 것이 질서자유주의자들이다. 영미식의 무한경쟁주의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에르하르트는 이런 학풍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에르하르트는 1948년 미 군정 아래서의 경제 책임자로 들어간다. 1948년 6월20일 독일에서는 화폐개혁이 일어난다. 미 군정의 결정이었다. 그런데 에르하르트는 화폐개혁을 발표하면서 물가통제와 배급제를 중단하고, 동시에 가격제한도 철폐해 버렸다. 미 군정은 자신들의 동의도 없이 마음대로 발표를 한 에르하르트를 체포했다. 미 군정이 발표를 철회하라고 통보하는데, “나를 처벌할 권한은 있어도 머리를 바꿀 권한은 없다”고 버틴다. 결국 군정 사령관과 면담에 성공했다. 에르하르트가 그 자리에서 한 말이 “당신네 미국은 승전국은 승전국인데 완전히 이기지 못했다. 동쪽에는 공산체제가 있는데, 서독 경제가 자유시장경제체제로 성공하지 못하면 서쪽도 공산화되는데 이를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군정 사령관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으니, 에르하르트는 “6개월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것이 오늘의 독일 경제질서를 형성하는 요체가 됐다. 독일은 2차대전 이후 시장경제를 가장 원칙적으로 실행하는 나라다. 독일에서는 가격통제나 임금통제를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레이건이 자기네 자본주의가 독일만도 못하다고 했던 이유다.
경제정책을 다루는 사람은 이념의 도그마에 빠지면 경제정책을 할 수가 없다. 20년대나 30년대에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에 비해 지금 공부하는 사람들은 몇 배를 더 공부해야 한다. 공부해야 할 것이 많다. 목수가 여러가지 연장을 가져야 제대로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정책을 하는 사람은 그간의 전세계의 정책을 활용한 이론을 해박한 지식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능동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은 보수냐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해서 다 같지 않다. 지금의 20~30대 사람들은 이념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40대 이후의 사람들은 소위 386으로 민주주의에 몰두하고 이념을 이야기하는데 그것만 가지고 국가발전의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 조화를 이끄는 것이 정치다. 정치하는 사람이 좌우와 이념을 말하면 안된다.

- 이 정부의 출범을 두고 우리 국민들이 보수화됐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보수화가 된 것인가?
= 보수화된 것이 아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래 7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자. 1960년대 한국은 빈곤한 국가였다. 1964년 내가 유학갈 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85달러였다. 1970년대 초에 돌아오니 달라졌더라. 85달러에서 800달러 선으로 올라섰다. 60년대 근로자의 숫자가 40만명이었는데, 70년대 중반에 이미 400만명을 넘어섰다. 그들이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때 서강대학에서 강의를 하는데, 1973년 봄학기부터 가을학기까지 강의를 할 수가 없었다. 1차 오일 쇼크가 난 뒤에 사회가 뒤숭숭했다. 학생들은 데모만 했다. 1974년에 그런 상황이 또 재연됐다.
나는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1968년 전세계적인 학생운동이 극에 달했을 때 그 현장을 직접 봤다. 내가 독일에서 대학을 마칠 무렵인데, 독일에서도 하루 100만명 가까이 모이더라. 그런데 독일의 학생들은 데모를 할 때도 수업을 다 하고, 밤에 토론을 하고 데모를 했다. 그러면서 몇 달이 갔다. 프랑스에서는 1968년 5월 중순부터 학생운동이 시작됐다. 근데 프랑스에서는 대학생 3천명으로 시작된 운동이 노동조합과 소상인까지 합세하면서 파리가 거의 마비될 상황에 이르렀다.
독일 사회는 그런 난리를 겪어도 사회적으로 동요가 되지 않는데, 프랑스는 그 사태로 드골이 물러나고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 주변의 사람들과 그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독일은 완벽한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져 있으니 불안이 없다. 독일 노동자들은 데모하던 학생들을 욕했다. 독일의 근로자들은 2차 대전 이후 생활이 계속 안정되고 있었다. 프랑스는 50년대 혼란을 겪고 드골이 들어선 이후 60년대에야 근대화의 기틀을 잡았다. 드골은 사회적 안정을 이뤘을지 모르지만, 국민들의 새로운 욕구에 답을 주지 못했다. 프랑스는 사회적 안전망이 엉망이었다. 그래서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1970년대 정부 사람들을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늘 했다. 포용하고 끌고 가야 한다. 그런 것을 못하니까 정부가 학생 데모를 늘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지 않냐, 이런 말을 했다. 이 말에 자극받아 정부도 의료보험 제도를 그때부터 도입하기 시작했다. 중산층을 육성하기 위해 재형저축도 도입하고, 중산층을 세우는 정책을 세웠다. 사회의 변화를 따라 가는 것이 정치하는 사람들의 책무다. 그것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가 보수화된다고 착각하면 (이명박) 정부는 실패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후부터 경제가 성장하는 것만 봤다. 1990년대 중반에는 전국민의 80%가 중산층이라고 했다. 구제금융(IMF) 이후 양극화현상이 벌어지면서 사회의 균열이 시작됐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한심한 이유가 그들은 ‘좌파 정권’이라는 말까지 들으면서 사회경제정책에서는 과거의 정권과 전혀 다른 정책이 없었다. 친재벌정책을 했다.
노무현 정권은 말로는 양극화가 문제라고 하면서도 이를 시정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없는 정권이다. 노무현 정권이 어떻게 이뤄졌나. 중간 소득 이하의 계층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되면 좀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 뽑은 것이다. 근데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니 욕구가 더 심하게 됐다. 근데 한쪽에서 ‘경제대통령’ 하니까 ‘그래, 경제를 잘하는 사람에게 줘 보자’고 싶어 확 쏠린 것이다. 보수화는 착각이다. 두고봐라. 다음번 선거에서 어떤 투표양상을 보일 것인지.
지금은 전세계 경제 위기가 와서 우리가 같이 따라갈 수 밖에 없다. 과거에는 우리만 위기를 당하고 세계는 괜찮아서 U자형의 회복이 됐다. 지금은 그것을 기대하지 못할 상황이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조화롭게 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확 달라질 것이다.
근데 그렇다고 그 사람들에게 또다시 보수에서 진보로 갔다고 할 것이냐. 아니다. 나는 늘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 국민에서 제대로 좌파니 진보니 하는 사람은 유권자의 6~7% 밖에 안된다. 꼴통 보수도 그 정도다. 6~7%다. 나머지는 자기의 일상에 닿는 것에서 작동을 한다. 보수화다 진보화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서는 안된다.

- 이명박 정부가 친재벌적 정책을 일방적으로 펼치고 있다. 금산분리를 완화하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지금의 세계적 흐름과 역행하는 것은 아닌가.
= 금산분리 완화를 이야기하는 경제 관료들은 어떤 착각에 빠져 있다. ‘글로벌 체제에 들어가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체제에 같이 가는 것이 좋다. 소위 말하면 금융시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월가와 영국의 시티의 구성원들이 글로벌 체제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사람들이다.
금산분리 완화를 말하는 경제관료들은 우리도 그런 금융체제를 갖춰야 나라가 잘 될 것으로 본다. 금융을 신성장동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투자은행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금융허브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금융에 외자를 끌어들이게 됐다. 근데 외국 금융기관들이 국내 시중은행을 잠식했다. 국민경제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외자를 막아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할 곳이 이제는 산업자본 밖에 없다. 외국자본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논리가 생긴 것이다. 재벌들은 금융업을 하고 싶어한다. 근데 이미 금융업을 장악하고 있다. 제2금융권은 이미 재벌들이 모두 소유를 하고 있다. 시중은행만 안되니까, 시중은행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발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봐라. 미국 시티은행이 오늘날 이렇게 될 것을 누가 생각했겠는가. 뱅크오브아메리카, GM캐피탈…. 이렇게 엉망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그러면 그런 위기에서 배워야 한다. 근데 지금 우리 정책을 하는 사람은 머리가 나쁜 사람들이다. 시대 상황에 바꿔 적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보수적인 사람이니까 원칙을 바꾸지 않아야 한다, 이런 식의 대응은 절대 안된다.
에서 나를 합리적인 보수로 선정했다는데, 그런 말도 듣기 싫다. 급작스러운 변화는 없다.
오늘날 금융위기를 보면 절제없는 시장경제, 절제없는 자본주의는 이런 결과를 맞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칼 마르크스가 이런 것을 제일 정확히 지적했지. 정부는 위기 때 시스템을 유지해야 하니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체를 아울러서 가야 한다. 기업만 따로 보호할 수 없다. 미국도 영국도 은행을 국유화하고 있지 않느냐.
미국도 변하고 있다. 미국 국민들이 CEO의 월급이나 연봉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이번에 처음 봤다. 변화하지 못하는 체제는 성공하지 못한다. 영국의 보수학자 에드먼드 버크가 영국 의회에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다. 그대로 두면 다른 사람의 욕구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 의회가 그런 욕구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시장을 해방했다고 선언했는데, 그런 것이 미국의 현재의 비극을 만들었다.
미국 경제학자 폴 사무엘슨은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다. 폴 사무엘슨도 부시 대통령을 가장 형편없는 대통령으로, 미국을 쇠잔의 길로 이끝 대통령이라고 평했다. 절제없는 시장경제를 맹신하는 사람은, 나이브한 시장경제주의자들은 정서적인 불구자라고 까지 말했다. 지금까지 등장한 시스템 중에서 시장경제 시스템만큼 효율적인 체제는 없었다. 시장경제는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절제의 문화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의 주장은 이제 말할 자격이 없어졌다.
내가 1990년대에 부동산 정책을 할 때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들었다. 공산당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독일에서 공부하니까 성향이 그렇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만큼 무식한 거니까. 예를 들어 불이 나면 불을 꺼야 하는데, 그때 가서 불끄는 방법을 연구해서는 안된다. 당시는 부동산 투기가 심해지고 근로자는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땅값이 올라가면 집값이 올라가고, 집값이 올라가면 전세값이 올라간다. 전세값이 올라가면 근로자는 임금인상을 요구하지. 근데 그런 원인제공자를 그대로 놔두냐. 그런 사회 불안의 원인을 제거해야 하겠다고 부동산 대책을 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보수화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호도를 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한 노벨경제학자의 이야기를 보면 미국은 4번째 각성의 시기에 놓였다. 첫번째 각성은 독립운동해서 건국한 것, 두번째 각성은 노예해방이다. 세번째 각성의 순간에는 미국의 대재벌들이 지나친 권력을 가질 수 없도록 제어해서 경제의 균형을 이뤘다. 워싱턴과 링컨 그리고 테오도어 루스벨트까지 미국 사회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각성을 이뤘다. 지금 4번째 각성이 필요하다고 한다. 도덕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심부를 찌른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가 도덕이 결여되고 탐욕을 추구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미국의 경제를 보면 1920년까지 고전주의에 따른 자유주의 경제가 판을 치다가 대공황이 된 이후에는 케인지안이 대세를 이뤘다. 근데 오일쇼크 이후는 케인스 요법도 효과가 없어서 레이거노믹스가 나온 것이다. 지금 나올 것은 무슨 이즘인지는 모른다. 지금의 경제위기가 끝나면 새로운 경제질서가 나올 것이다.

-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부시정부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과 이후의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전략과 전술이란 것이 있다. 전략목표와 전술목표는 다르다. 사단장이 저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고 하면 밑의 연대장들이 작전을 짜는데, 적황이 바뀌면 새로운 공격전술을 짜야 한다. 그 상태에서 그냥 공격명령을 내리면 자기 사병이 다 죽는다. 적황이 바뀌면 전술을 다시 바꿔야 한다. 그런 것을 이명박 정부가 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선 중이던 2007년 7월에 서브프라임사태가 났지만 여파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을 것이다. 대통령이 된 이후 국제경제도 변하고 국내상황도 변했으면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을 보면 금융부문 시스템이 안정되어 있지 않다. 금융부문이 안정을 갖춰야 한다. 만약 지금 공격적으로 착수하지 않으면 늦을 것이다. 우리 경제가 다행스러운 것은 대기업의 재무구조가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경제가 계속 이렇게 침체되면 대기업도 은행에서 자금수요를 일으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가 끝나면 산업의 본질, 경제의 본질이 바뀔 것이다. 그렇게 바뀐 본질에 적응하려면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금년과 내년에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고 가야 한다. 구조조정하면 실업자가 나온다. 그 사람들이 새로운 준비를 할 수 있는 교육을 시키고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 그런 것을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인턴제도는 기업의 비효율성만 증가시킨다.

- 개헌 논의가 중단됐지만, 조만간 개헌논의가 다시 이뤄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헌법의 경제조항에 대한 문제제기가 한나라당 내부에서 많은데.
= 경제조항을 바꿀 이유가 없다. (그는 이 대목에서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한나라당은 전경련 로비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본데, 바꿀 수 없다고 본다. 내가 이야기를 해보니 자기들도 조항을 바꿀 이유에 대한 설득력이 없다는 걸 인정하더라.
내가 1987년에 경제조항의 골격을 만들 때 당시 전경련 정주영 회장을 모시고 세미나도 했다. 전경련에서 나를 엄청나게 공격했다. 나는 그것을 다 막았다. 나중에 정주영 회장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 경제조항과 재벌의 경제활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대한민국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기본질서로 하지만 자원이 없는 빈한한 나라니까 소규모의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계획경제로 재벌을 키웠다.
재벌의 생성기가 1960년대, 확장기가 70년대, 안정기가 80년대였다면 모든 것의 위에 군림하기 시작하는 것이 90년대 이후다. 내가 1970년대에 이미 박정희 대통령에게 경제구조를 이렇게 끌고 가면 6차 경제개발 계획이 끝나면 경제세력이 정치세력을 압도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경제가 커지면 장악력도 커진다. 정부가 1987년에 헌법재판소를 도입했는데, 그것만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 풍토에서 재벌이 언론과 법률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재벌 편을 들 수 밖에 없다. 그런 것들을 방지하기 위해 그 조항을 넣은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는 재벌과 척을 질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에는 정책가가 없다. 경제정책가는 의사나 마찬가지다. 나빠지기 전에 진단해서 예방을 해야 하고, 나빠지면 처방해서 치유를 해야 한다. 나는 에르하르트를 존경한다. 그 사람이 1945년부터 1963년까지 독일의 경제장관을 하면서 지금의 독일의 경제의 기틀을 이뤘다. 그 사람의 용기가 없었다면, 군정사령관과 담판짓지를 못했다면 독일경제가 지금처럼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정책가는 자기 확신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글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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