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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지향·신자유주의 넘어설 패러다임 필요”


④ 박세일 서울대 교수… ‘개혁적 정책세력’ 등장으로 정치공학의 정치 극복해야
등록 2009-04-03 10:19 수정 2020-05-03 04:25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진보·보수 진영 모두에서 주목받는 이론가다. 그의 ‘선진화론’은 이명박 정부 출범의 사상적 토대가 됐다. 그가 주창한 ‘공동체 자유주의’는 새로운 보수를 도모하는 이들의 구호가 됐다. 실체적 내용이 없다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적어도 보수 성향의 지식인 사회에서 박 교수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대 연구실에서 박 교수를 만났다.
박세일 서울대 교수

박세일 서울대 교수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잘못 이해되고 있다. 흔히 친북·반미는 진보고 반북·친미는 보수라는 시각이 있는데, 크게 잘못된 것이다. 이런 사고의 혼란은 대단히 유해하다. 이를 일부 정치세력들이 이용해 증폭해온 면이 있는데 지식인과 언론이 나서 바로잡고, 올바른 진보와 올바른 보수가 정립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진보와 보수가 국가 발전을 위해 상호 보완할 수 있다.

국가가 처한 국내외 상황에 따라 보수적 가치와 진보적 가치의 바람직한 조합은 다를 수 있다. 어떤 가치의 조합이 현재의 대한민국에 가장 적합한가를 두고 보수적 정책과 진보적 정책이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은 보수적 답이나 진보적 답이 아니라 최선의 정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곳이다.

선진화를 향한 각 분야의 국정개혁을 성공시키려면 ‘현실적 이상주의자’가 필요하다. 학자형 관료, 관료형 학자가 필요하다. 과거에 이율곡 선생이 강조한 이른바 ‘경장세력’이 필요하다. 이상과 현실, 이론과 현장을 묶을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 나는 이런 인재들을 ‘개혁적 정책세력’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의미의 개혁적 정책세력이 약한 것이 큰 문제다. 권력투쟁과 정치공학에 밝은 정치세력은 과도하게 많은데, 국가비전과 개혁정책을 입안하고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책세력은 너무 과소하다. 그래서 국가비전과 국가정책 없는 정치만이 난무하고 있다.

나는 원래 뉴라이트가 지적·사상적·문화적 운동으로 크게 발전하기를 기대했다. 보수의 자기 혁신 운동으로 지속되면 결국 뉴레프트도 등장하게 될 것으로 보았다. 산업화 시대의 보수의 한계, 민주화 시대의 진보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보수·진보가 경쟁하고 협조해야 선진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뉴라이트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을 전후해 현실 정치 운동으로 변질됐다. 국가의 장기 발전을 위해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 정당은 사적 이익집단

리더십은 비전과 철학에서 나온다. 우리나라 정당은 비전과 철학을 가진 조직이 아니다. 대선 후보 개인을 중심으로 모인 사적 이익집단의 성격이 강하다. 국민의 요구를 수렴하는 기능, 국가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기능도 부족하다. 오직 선거 수행 기능만 있다. 그런 정치문화 속에서 시대 정신을 읽고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면서 국민을 이끌어갈 강력한 리더십이 나오기 어렵다.

결국 오늘의 정치는 국민통합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정치가 국민을 분열시킨다. 현실 정치가 더 이상 대한민국을 끌어가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 가운데는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분들이 많다. 정치개혁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지식인들을 만나보면 우리 정치에는 국정운영의 비전과 정책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면 그러한 필요를 느끼는 분들이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이 두 그룹이 만나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금융위기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모습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 변화 속에서 목표와 전략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전략인 정부 주도 수출 지향의 개발체제와 신자유주의적 워싱턴 컨센서스를 동시에 넘어서는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이 나와야 한다. 그것을 나는 ‘서울 컨센서스’라고 부르려 한다. 올해에는 그 내용을 구체화하고 공론화하는 노력을 시작할 것이다.



■ 인터뷰 전문

- 보수주의의 정체가 뭔가.
=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가 잘못 이해되고 있다. 흔히 친북이나 반미면 진보고 반북이나 친미는 보수라는 시각이 있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세상에 그런 식으로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나라는 없다. 본래 보수와 진보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정의되어야 한다. 하나는 ‘가치와 정책’의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발전 내지 정책추진 속도’의 차원이다. 가치와 정책의 차원에서 보수는 ‘자유-시장-법치-세계주의’를 중시한다. 진보는 ‘평등-정부-법률-민족주의(국가주의)’를 중시한다. 그리고 정책 추진속도와 관련해서는 진보는 ‘빠른 변화’를 그리고 보수는 ‘점진적 변화’를 보다 효과적이라고 본다.
보수는 가치 면에서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본다. 그래서 개인의 자유를 가능한 확대하려 하고 따라서 시장의 자유를 선호하고 정부의 개입과 규제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개인생활에 대한 국가권력의 자의적 개입을 막는 법치주의를 중시한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가 국경을 넘어 확대되는 자유무역을 주장하며 세계주의를 지향한다.
반면 진보는 자유보다는 정의나 평등을 더 중시한다. 또한 시장의 자유보다는 정부개입에 의한 시장결과의 수정, 즉 분배의 개선을 중시한다. 그리고 민간활동에 대한 국가권력의 보호로서의 법률주의를 주장한다. 그리고 자유무역보다는 보호무역를 주장함으로서 세계주의보다는 국가주의 내지 민족주의의 경향을 가진다. 이것이 가치와 정책면에서 보수와 진보의 차이이다.
보수는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고 과거 속에 있는 선조의 경험과 예지를 존중하기 때문에 점진적 변화를 선호한다. 급진적 변화가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고 본다. 반면에 진보는 과거가 기득권이 되어 미래로의 발전을 막는다고 보고 따라서 보다 급진적 변화의 필요를 주장한다.
올바른 진보 또는 올바른 보수라면 국가이익과 국민이익을 생각하는 점에서 차이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무조건 친미하는 보수와 무조건 반미하는 진보는 정신나간 보수이고 정신나간 진보이다. 국가이익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는 주장이다. 우리의 국가이익에 서서 어떻게 미국과 관계를 맺어 나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진보-보수 이전의 문제다. 마찬가지로 무조건 종북하는 진보는 가짜 진보다. 그리고 무조건 반북하는 보수도 가짜 보수이다. 문제는 어떻게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유도하면서, 즉 ‘정상국가’로 만들면서 남북이 하나가 되도록 할 것인가이다.
지금과 같은 사고의 혼란은 대단히 유해하다. 이 사고의 혼란은 일부 정치세력들이 이용하여 증폭되어 온 면이 있다. 이것을 지식인들과 언론이 나서서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서 올바른 진보와 올바른 보수가 서도록 하여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 진보와 보수는 국가발전을 위하여 상호보완적이 된다.

- 서구의 보수와 한국의 보수의 공통점과 차이는 무엇인가.
= 서구의 보수건 한국의 보수건 지향하는 기본가치와 역사관 등은 같다. 그런데 서구의 보수와 달리 한국의 보수는 보수적 가치에 대한 지적·도덕적 자기확신이 약하다. 그리고 보수의 가치실현을 위하여 행동화하는 적극성이 약하다. 무임승차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우리 사회에는 정서적 보수는 많은데 보수를 가치를 믿고 행동하는 보수가 적다. 서구에는 보수가 자기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가 깊다.

- 한국 보수주의가 특히 내세울 가치와 지향은 무엇인가.
= 보수는 ‘자유-시장-법치-세계’의 가치를 존중해야 하고 점진적이고 진화적인 사회발전을 추구하여야 한다. 또한 리더십의 윤리를 중시해야 한다. 지도자란 국민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고 전범이 되는 사람들이지 국민 위에 군림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나라 전통보수의 장점인 선공후사(先公後私) 수기안민(修己安民)의 지도자원리와 선비정신을 실천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동체를 중시해야 한다. 가족공동체, 이웃공동체, 역사공동체, 자연공동체 등이 있다. 특히 역사공동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자국의 역사를 욕해서는 안된다. 과거의 역사에서 좋은 점을 배우고 다음 세대가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역사를 만들도록 앞서 노력하여야 한다.

- 한반도선진화재단은 무엇에 초점을 두고 있나.
= 한선재단은 한반도 전체를 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한, 한반도의 선진화를 위한, 국가비전과 국가전략과 국가정책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그래서 한반도의 통일과 선진화가 한선재단의 목표이다. 그런데 선진국이 되기 위하여서는 자유·시장 등 보수적 가치도 중요하고 평등·정부 등 진보적 가치도 중요한 가치이다. 모두가 중요하지만 이들 가치의 조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자유과 평등의 조합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시장과 정부의 조합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성장과 복지의 조합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가 처한 국내외 상황에 따라 보수적 가치와 진보적 가치의 바람직한 조합은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어떠한 가치의 조합이 21세기 현재의 대한민국에 가장 적합한가를 가지고 보수적 정책과 진보적 정책이 선의의 경쟁을 하여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경쟁이 한선재단 내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가치의 조합을 찾아야 하고 그를 실현할 수 있는 전략과 정책을 찾아야 한다. 한선재단은 최선의 정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재단이다. 보수적 답을 찾으려 하는 단체도 아니고 진보적 답을 찾으려 하는 재단도 아니다. 한선재단은 보수와 진보가 선진화를 위하여 가치경쟁, 정책경쟁, 아이디어 경쟁을 하는 장이 되어야 하고, 그 결과로 우리나라를 위한 최선의 답을 찾아내는 장이 되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보수적 가치 70% 진보적 가치 30%정도가 현재의 우리나라에 적절한 가치조합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장 70-분배 30, 시장 70-정부 30, 자유 70-평등 30 정도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21세기 초세계화의 시대이다. 자유와 시장의 가치를 중시하지 아니하고 국가경영과 국가발전을 할 수 없는 시대이다. 둘째는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이 아니고 중진국이다. 우리 후손들에게 선진국을 물려주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본다. 셋째, 우리에게는 북한이 있다. 북한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우리가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선진국 수준의 높은 경제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나의 개인적 견해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개별 정책과제를 놓고 하는 정책토론을 통하여 바람직한 가치조합을 개별적으로 구체화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개별정책과제에 따라 시장이 80-정부가 20인 분야도 나오고 시장이 60-정부가 40이 되어야 하는 분야도 나온다고 본다.

- 김영삼 정부 시절엔 청와대에서 일했고,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적도 있다. 그런 경험이 어떤 영향을 줬나.
= 역사를 바꾸려면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조화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학자는 이상에 흐르기 쉽고 관료는 현실관리에 능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향한 각 분야의 국정개혁을 성공시키려면 ‘현실적 이상주의자’가 필요하다. 학자형 관료, 관료형 학자가 필요하다. 과거에 이율곡 선생께서 강조한 소위 ‘경장세력’이 필요하다. 이상과 현실, 이론과 현장을 묶을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 나는 이러한 인재들을 ‘개혁적 정책세력’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의미의 개혁적 정책세력이 약한 것이 큰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권력투쟁과 정치공학에 밝은 정치세력은 과도하게 많은데, 국가비전과 개혁정책을 입안하고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책세력은 너무 과소하다. 그래서 국가비전과 국가정책 없는 정치만이 난무하고 있다. 과연 무엇을 위한 정치인가? 누구를 위한 쇼인가?
나는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의 논쟁도 국가발전을 위한 비전과 정책경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권력투쟁을 위한 이념전쟁으로, 환언하면 계급전쟁으로 퇴보하여 왔다고 본다. 그 주된 이유가 여야의 정치세력이 보수진보논쟁을 정치적 내지 정파적으로만 이용하여 왔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개혁적 정책세력이 나와서 보수진보논쟁을 국가경영을 위한 정책경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가 서로 경쟁하면서 서로 협력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대한민국의 선진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 새로운 보수를 재구성하겠다며 뉴라이트가 등장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 뉴라이트는 대단히 중요한 움직임이었다. 진보가 보수를 일방적으로 폄훼하고 공격할 때, 보수의 가치에도 중요한 것이 많다고 반론하면서 자유주의를 들고 나왔다. 당시로서 지적으로 아주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본래의 보수가 중요시하는 자유주의에 기초하여 기존의 보수가 자신의 가치와 원칙에 대하여 철저하지 못한 것을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우리나라의 뉴라이트가 하나의 지적 사상적 문화적 운동으로 크게 발전하기를 기대하였다. 보수의 자기혁신운동으로 지속되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면 결국은 뉴레프트도 등장하게 되어 진보의 자기반성 자기성찰도 함께 시작되리라고 보았다. 나는 산업화시대의 보수의 한계, 민주화 시대의 진보의 한계를 뛰어 넘는 새로운 보수와 새로운 진보가 나와서 경쟁하고 협조하여야 우리나라 선진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한 맥락에서 나는 뉴라이트의 등장은 대단히 환영하였다. 바람직한 역사발전의 방향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명박 정부의 등장을 전후로 현실정치운동으로 변질되었다. 물론 현실정치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의 장기발전을 위하여서는 참 안타까운 일이다.

- 현재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과 해법은 무엇인가.
= 민주주의가 성공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 하나는 지도자들이 지도자다워야 한다. 즉 올바른 민주적 국가리더십이 서야 한다. 둘째는 국민들이 민주적 시민의식을 가지고, 자기의 이익만아니라 공동체를 함께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이 되어 있어야 한다.
올바른 민주적 국가리더십은 공인의식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국가비전과 국가전략을 세우고 국민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면서 미래를 향하여 국가와 국민을 리드하여 가야 한다. 지도자는 국가경영의 비전을 가지고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들 통합하고 국민을 리드하는 집단이어야 한다. 일시적인 대중인기에 영합하고, 무조건 시중의 여론이 하자는 대로만 쫒아가는 것이 지도자가 아니다. 포퓰리즘에서 올바른 리더십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또한 민주시민이란 자신들이 속한 집단이익이나 지역이익만 주장하여서는 아니 된다. 나의 주장이 공동체의 이익과 양립할 수 있는가를 항상 고민하면서 자기주장을 해야 한다. 항상 공동선을 배려하는 공민이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두 가지가 다 부족하다. 민주적 리더십도 민주적 시민의식도 모두 부족하다고 본다.

- 리더십이 부족한 이유가 뭔가.
= 리더십은 비전과 철학에서 나온다. 우리나라 정당은 비전과 철학을 가진 조직이 아니다. 비슷한 국가비전과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공적인 가치집단이 아니다. 몇몇 대선후보자 개인을 중심으로 모인 사적인 이익집단의 성격이 강하다. 정당으로서 국민대표기능(국민의 정치적 요구를 수렴하는 기능)도 부족하고 국가비전과 정책제시기능도 부족하다. 오직 선거수행기능만 있다. 그러한 정당조직 정치문화 속에서 시대의 정신을 읽고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면서 국민을 이끌어 갈 강력한 리더십이 나오기 어렵다. 우리나라 정당이 가지고 있는 붕당적 성격을 극복하지 못하면 국가리더십은 나오기 어렵고 동네지도자만 나올 것이다.

- 개혁을 지향하는 정치권 외부와 내부의 정치세력·정책세력이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 정치가 국민통합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정치가 국민을 분열시킨다. 현실 정치가 더이상 대한민국을 끌어가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 가운데는 더 이상 정치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분들이 많다. 정치개혁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그러한 필요를 느끼는 분들이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을 만나보면 앞으로 국가경영에는 많은 정책전문성이 요구되는데 우리 정치에는 국정운영의 비전과 철학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면 그러한 필요를 느끼는 분들이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이 두 그룹이 만나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오늘날 보수의 합리화에는 어떠한 장애가 있나.
= 우리 사회 다수의 국민은 ‘자유-시장-법치-세계’가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본다. 지적·이론적 확신에 기초한 경우도 있고, 단순히 정서적·경험적 근거를 가지고 그렇게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는 분들이 많다고 본다. 그리고 변화에 대하여도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 변화를 선호하는 분들이 많다고 본다.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보수적 사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과연 스스로를 보수로서 자각할 뿐 아니라 이를 확신을 가지고 주장하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 즉 보수적 가치를 옳다고 믿으며, 그 가치와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분들, 보수적 가치실현을 위하여 미래지향적으로 개혁하려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 대단히 적다고 본다.
문제는 보수라고 생각하면서 보수적 가치에 대한 확신이 적고 그리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우리사회의 제도와 의식의 개혁노력에 적극적으로 헌신하지 않는 것이 우리사회 보수의 문제라고 본다. 행동과 생각이 그리고 생활과 주장이 일치하는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현실에 안주하고 무임승차하려는 경향이 많다. 그것이 장애이다.

- 한국적 전통을 계승하는 창조적 선진화를 주장했는데.
= 언제부터인지 우리사회에 자신의 역사를 무조건 비판하고 자신의 전통을 가볍게 생각하는 풍조가 생겼다. 잘못이다. 나는 요즈음 공동체자유주의를 많이 주장한다. 즉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하고 공동체적 발전을 배려하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를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장하는 공동체 속에 역사공동체가 들어간다. 나는 자기 나라의 역사를 그리고 전통을 소중히 하여야 개인도 국가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많은 전통 중에 내가 우선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불교의 원융사상, 유교의 민본주의, 그리고 사회의 공론을 세우면서도 자기절제의 덕을 가진 선비정신, 이웃사랑과 이웃나눔의 대동사회를 지향하는 각종 문화 등이다.

- 최근 금융위기와 관련해 앞으로의 세계화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나.
=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에서도 배워야 하고 사민주의 혹은 최근의 제3의 길에서도 배워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영미의 경험에서 나온 주장이고 사민주의나 제3의 길은 유럽의 경험에서 나온 주장이다. 우리들에게는 다 참고할 주장들이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역사 문화 현실에 맞게 자신의 발전전략을 세워나가야 하는 데 있다. 세계화는 무조건 미국화나 서구화가 아니다. 역사라는 것이 원래 그렇게 될 수가 없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의 문제는 신자유주의적 개혁도 제대로 못하고, 사민주의적 개혁도 제대로 못하는 데 있지, 우리가 갈 길이 전자냐 후자냐 하는 식으로 보아선 안 된다.
앞으로 이번 금융위기가 끝난 후 어떠한 세계화전략을 가지고 나아갈 것인가? 어떠한 발전전략 어떠한 발전패러다임을 가지고 나갈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다. 이번 금융위기 이후 세계자본주의의 모습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변화 속에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목표와 전략을 깊이 생각하고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나는 이제는 과거 산업화시대의 전략인 정부주도의 수출지향의 개발체제(동아시아 발전모델)도 아니고 신자유주의적 주장인 워싱톤 컨센서스도 넘어서는 새로운 발전패러다임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21세기 초세계화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발전모델 발전 전략이 나와야 한다. 그것을 나는 ‘서울 컨센서스’라고 부르려 한다. 그래서 금년부터 이 서울 컨센서스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공론화하는 노력을 시작하려 한다.

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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