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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보수라면 술 없이 견디랴

‘합리적 보수’ 10인의 최근 행보… PD 체포 비판, 시장주의 극복 주문, 대북정책에 쓴소리
등록 2009-04-02 18:10 수정 2020-05-03 04:25

‘합리적 보수’로 선정된 15인 가운데 최근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고 있는 이는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8년 동안 비상임논설위원을 지냈다. 대표적 보수 논객 가운데 하나다. 지난 대선 때는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 최근에는 정치권과 거리를 두면서 칼럼·인터뷰·블로그 등을 통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3월 한 달만 해도 임하댐 기사를 비판하고, 장자연 리스트와 박연차 리스트를 비교한 칼럼을 비판하고, PD를 잡아들인 검찰을 비판했다.

2007년 1월10일. 서울 태평로 언론회관에서 종교시민사회단체 새해모임이 열렸다. 박원순, 박세일 등 진보-보수 인사들이 두루 참석했다. 사진 한겨레 장철규 기자

2007년 1월10일. 서울 태평로 언론회관에서 종교시민사회단체 새해모임이 열렸다. 박원순, 박세일 등 진보-보수 인사들이 두루 참석했다. 사진 한겨레 장철규 기자

송호근 “품격에 관한 철학적 설계는 유배 중”

하지만 그는 여전한 면모도 보인다. ‘한국의 보수,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으로 3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북한 공산체제를 종식시킬 의지가 없다 △대운하 등 케인스류의 좌파 정책으로 경제를 살리려 한다 △도덕적 가치가 결여돼 있다 등의 이유로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의 잣대는 조금 다르다. 송 교수 역시 뉴라이트를 비롯한 보수주의 사상운동에 적잖이 기여했지만, 정부 출범 이후 ‘변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장으로 구제할 수 없는 것들’을 구제하고, ‘경제로 살려낼 수 없는 것들’을 살려내는 것에서 정권의 진짜 정체성과 진짜 실력이 나온다. 그런데 경제는 바닥이고, 불평등·인권·평화·복지는 내쳐졌고, 행복과 품격에 관한 철학적 설계는 경제담론에 밀려 유배 중이다.” 최근 에 기고한 칼럼의 한 대목이다. 송 교수는 ‘시장주의를 넘어서는 통합과 비전’을 요구하고 있다.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쓴소리’를 많이 하고 있다. 지난 2월, “엄격한 상호주의 대북정책을 수정·보완하는 새로운 대북정책 독트린을 제시하라”고 공개 요구했다. 반공·반북 노선을 견지하는 보수 인사들이 보기에는 파격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는 △식량 등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 재개 △남북경협 재개 △6·15 선언과 10·4 선언 이행에 대한 전향적 입장 제시 등을 요구하고 있다. 돈과 삐라를 살포하는 우익 민간단체에 대해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등 다른 사회 쟁점에 대해서도 전통적 보수 지향과 구분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은 당내 개혁 초선 의원 모임인 ‘민본21’의 간사를 맡으면서 개혁파의 새로운 얼굴로 떠올랐다. 최근 경제위기에 대해 정부 재정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에게는 ‘케인스주의’의 자취가 없지 않다. 최근에는 △상향식 공천제 전면 시행 △강제적 당론 금지 등을 뼈대로 하는 정당법 개정 추진에도 앞장서고 있다.

현실정치와 거리 두거나 칩거도

한국 케인스주의의 대부 격인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와 그 제자인 정운찬 서울대 교수는 평소 신념대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조 명예교수는 고령이고 잠재적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정 교수는 언행을 아끼고 있어, 한국 케인시언 학파를 대표하는 두 사람의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역시 지난 대선 이후 사실상 칩거 중이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의원은 최근 여론의 관심에서 다소 비켜서 있다.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는 온화한 이미지와 합리적 기업경영의 이력을 바탕으로 조금씩 사회적 발언의 폭을 넓히고 있다. 언론인 출신으로 이제는 유명 소설가가 된 김훈은 세속에 대한 관심은 끊고 소설 집필에만 몰두하고 있다. 합리적 보수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글이건 말이건 언론에 내가 인용되는 게 싫다”고 답했다. “그냥 술이나 먹자”고 덧붙였다. 진짜 속 깊은 보수라면 이 시절을 술 없이 지내기는 힘들 것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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