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서(54·가명) 대표이사. 동남아와 미국에 4개 지사를 둔 종합상사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강남역 인근에 100억원대 빌딩도 소유하고 있다. 부친은 군사정권 시절 장관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상위 0.1%에 속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한나라당의 굳건한 지지자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믿음도 변함없다. 당연히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강남역 인근의 일식집에서 만난 그는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을 믿어. 이명박은 노무현과는 달라요. 노무현은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였지만, 이명박은 실물을 알거든. 나도 실물을 하고 있어 알아. 지금은 세계 경제 전체가 어려워서 안돼. 그래도 정권 말에는 반드시 우리 경제를 일으켜세울 거야. ‘우리’는 이명박에 대한 그런 믿음이 있어.” 그는 유독 ‘우리’를 강조했다.
이명박에 대한 믿음. ‘경제를 다시 살릴 것’이라는 희망이다. ‘왕의 남자’라 불리는 곽승준(49)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은 ‘MB 매직’(이명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의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MB를 봐왔다. ‘이명박 매직’이 있다고 믿는다. 어느 날 그가 툭툭 털고 일어나 ‘탁탁탁’ 하면서 굉장히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며 결단을 내리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갑자기 상황이 확 바뀔 거고. 그런 반전의 시기가 조만간 온다. 두고 보라.”(2008년 11월25일 인터뷰)
MB 매직을 굳건히 믿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이들이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대선 당시 이 후보에게 표를 던진 이들은 든든한 지지층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통령 투표층(1천 명 중 468명)의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52.2%였다. 앞으로의 국정운영 기대에 대해서 이명박 투표층의 77.3%는 ‘앞으로는 잘할 것’이라고 답했다. 각종 정책에 대해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평준화 폐지를 전제로 하는 교육정책에 대해 60.4%가 찬성했다. 연령별·학력별·소득별 등 모든 계층별 그룹에서 가장 높은 찬성률이었다. 종부세 축소에 대해서도 59.0%가 환영했다. 강남 주민들의 찬성률(59.9%)과 맞먹었다. 미네르바 구속도 50.6%가 찬성했다. 절반 이상이 찬성한 나머지 계층은 ‘중졸 이하’ 학력군(50.8%)과 ‘무직·기타’ 직업군(50.0%)뿐이었다.
‘MB 매직’의 확고한 지지층은 강남의 부유층에서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절반이 넘는 서울 시민(59.5%)과 강남 주민(54.8%)이 이명박 정부는 ‘부유층과 기득권층을 위한 정부’라는 정의에 동의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주상복합 대형 평수에 살고 있는 송경우(70) 회장. 서울대를 나와 자수성가한 사업가다. 지난해 300만원이 넘는 종부세를 냈고, 올해 160만원을 돌려받았다. 종부세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종부세는 지난 정부가 부자들을 죄인으로 몰아가면서 내린 징벌이었어. 나도 종부세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어. 종부세가 이번에 사라지지 않았다면 프랑스처럼 부자들이 한국에서 대거 이탈하는 사태가 왔을지 몰라. 가난한 사람들이 노력해서 돈을 벌게 할 생각을 해야지, 왜 노력해서 번 사람들의 돈을 뜯어 정부가 생색을 내려고 해?” 방송법 논란에 대해서도 “그간 방송을 너무 좌익들이 잡고 있었다”고 했다. 송 회장의 말이다. “채널을 좌파들이 독점하다 보니 노조와 시민단체들의 사유물이 된거야. 정부 방안대로 과감하게 시장을 개방해야 해요. 채널을 늘려야 좌편향적인 방송은 뭐냐. 그래 도태되지.”
대기업 과장인 김영준(37)씨를 만났다. 그는 ‘젊은 보수’를 자처한다. 연봉은 성과급을 합치면 8000만원에 가깝다.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부친은 지방에서 골프장도 운영하고 있다. 김 과장의 말이다. “일단은 경제위기 아래에서는 대통령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죠. 지난 정부 때도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무조건 비난하던데, 지도자가 제대로 일을 하려면 모든 의견을 다 받아들일 수는 없죠. 경제위기가 심각합니다.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힘을 합칠 때는 합쳐야 합니다.” 경기 수지에서 대형 골프연습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진철(39)씨도 이런 의견에 동의한다. 그는 2010년에 안성에 ‘파3 연습장’을 개장하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고향은 경상도다. “장관 검증 청문회를 봤는데, 장관 후보자들에게 일부 문제가 있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를 극복하려면 능력 있는 사람에게 먼저 기회를 줘야 하지 않나. 도덕성이 밥 먹여줍니까.”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었던 ‘도덕성보다는 능력’이라는 가치관,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압도적 승리를 가능하게 했던 ‘견제보다는 협력’의 논리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 정치에 대한 강한 혐오. 윤인서 대표의 말이다. “난 국회의원들을 믿지 않아. 내 주변에 국회의원은 선후배나 친구나 해서 많은데, 다 똑같아.” 송 회장의 말. “국회의원 확 줄였으면 좋겠어. 이회창 총재가 국회의원 30% 줄이자고 하더만. 옳은 말 했지.” 최진철씨의 말. “솔직히 여의도 국회가 뭔 필요 있냐.”
최재천 법무법인 한강 변호사는 “이들의 정치혐오증은 대중적으로 퍼져 있는 정치혐오증과는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 변호사는 “미국 공화당을 보면 확연해진다. 미 공화당의 부자 지지자들은 국가와 정치가 없으면 세금도 없고, 규제도 없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규제당하는 것이 싫고, 정치라는 이름으로 합의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까운 것이다”라고 했다. 미국 공화당의 미덕은 자유주의다. 한국의 보수층의 미덕은 효율이다. 효율성에 대한 일방적인 애정은 ‘박정희 향수’로 이어진다. 곽 위원장이 “툭툭 털고 일어나 ‘탁탁탁’ 하면서 굉장히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며 결단을 내리는 때”를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논리의 결과가 ‘속도전’이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이명박 정부의 확고한 지지층들은 고민보다는 빠르고 과감한 결단을 원한다. 정부가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이런 측면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보수 신문들이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이어진 국회의 ‘입법 전쟁’에서 이명박 정부의 일방주의는 비판하지 않고, 야당의 폭력만 강조하는 이유도 같은 논리 선상에 있다. ‘빨리빨리’다.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저작 (현대경제연구원BOOKS 펴냄)의 전권을 통틀어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반민주성과 권위주의를 고발했다. 그중 한 대목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중산층 중심의 사회로 되돌리고 싶어한다. 보수주의자란 이들은 100년의 역사를 무효로 만들고 싶어한다. 진보주의자들은 사회보장제도나 메디케어(노약자를 위한 무료 의료보험)처럼 여러 해 동안 건재했던 제도를 수호한다. 보수주의자란 이런 제도를 민영화하거나 축소하고 싶어한다. 진보주의자들은 미국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존중하기를 원한다. 보수주의자란 이들은 대통령의 독재 권력을 원하고, 죄 없는 사람들을 감금하고 고문을 가하는 부시 행정부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어떤가. 몇 글자만 바꾸면 한국의 상황과 99% 싱크로율을 보이는 것 같지 않은가?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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