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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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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감 공정택?

사학재단, 교장·교감, 자립형 사립고 운영회사 등에서 돈 받고도 “뭐가 문제냐”
등록 2008-10-16 04:44 수정 2020-05-02 19:25
지난 10월7일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에서 공정택 교육감이 금품 수수에 대한 의원들의 잇따른 질의에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지난 10월7일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에서 공정택 교육감이 금품 수수에 대한 의원들의 잇따른 질의에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점입가경(漸入佳境).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재미가 있어진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그런데 최근 잇따라 터져나온 공정택(74) 서울시교육감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을 표현하기에 이만큼 적당한 단어도 없을 듯하다. 물론 들어갈수록 깊어지는 것은 재미가 아니라 한숨 소리 또는 개탄의 목소리겠지만 말이다.

선거 비용에 격려금까지 수수

의혹의 첫발은 공 교육감이 선거 비용 가운데 7억여원을 최명옥 종로엠학원 중구분원장과 수도학원을 운영하는 성암학원 이재식 이사장에게서 빌렸다는 것에서 시작됐다. 공 교육감 쪽에서는 “최씨는 40년 된 제자이며 이 이사장과는 처남·매제 관계다. 개인끼리의 거래여서 문제될 것이 없다”라며 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무이자로 돈을 빌린 점 △본인이 은행에서 대출한 8억원의 보증인 또한 이재식 이사장이라는 점 △사학재단인 숭실학원 장동갑 이사에게서도 3억원을 빌린 점 △교장·교감들로부터 격려금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점 등이 줄줄이 터져나오면서 궁지로 몰렸다. 결국 검찰이 수사에 나설 뜻을 밝힌 가운데, 공 교육감이 하나금융지주 김승유 회장에게서도 300만원의 격려금을 받은 사실까지 공개됐다. 하나금융지주는 서울 은평뉴타운에 설립될 자립형 사립고의 운영자로 올해 초 선정된 회사다.

공무원이 업무상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서 무이자로 거액을 빌렸을 경우 뇌물죄를 인정한 법원 판례라든지, 직무상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교원 또는 사업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사실을 놓고 보면, 공 교육감은 형사처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 강남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 1년 예산 6조원을 집행하고 교원 10만 명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교육소통령’에 화려하게 재선된 지 불과 두세 달 만에 최대 위기를 맞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문제가 꼬여 이렇게까지 됐을까?

우선 공교육감의 안이한 상황 판단을 들 수 있다. 사실 이번에 5억여원을 빌린 최명옥씨와의 깊은 관계는 이미 한 차례 문제가 제기됐던 사안이다. 교육감 출마 때 최씨를 선거운동본부 총괄본부장에 앉혔다가 ‘학원 업자와 선거를 치르냐’는 거센 비판 여론이 일자 최씨를 본부장에서 사퇴시켰던 것이다. 결국 공 교육감은 한 번의 실수(?)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또다시 비슷한 사고를 친 셈이다.

안이한 상황 판단은 그가 가지고 있는 도덕성 기준과도 연결된다. 사실 공 교육감은 지금의 파문들에 대해 ‘뭐가 문제냐’는 뜻을 자주 밝혀왔다. 지난 10월7일 열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에서 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선거자금 환급 기준인) 15% 이상 득표할 줄 다 알았을 것이다. 또 제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금융권에 종사하고 은행에서 얼마든지 빌릴 수 있는데, 왜 하필이면 교육감 선거에 나서면서 학원을 경영하는 사람한테 돈을 빌릴 수 있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질문하자, 공 교육감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분들도 결국 은행에서 빌려서 나에게 준 것”이라고 답했다. 사람들 사이에 ‘황당 개그’ 사례로 입길에 오른 이 답변은, 그가 교육감으로서 처신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도덕률을 가지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준다.

수도학원이 만든 남서울대 총장 경력

공 교육감의 이런 태도는 그의 과거 전력에 비춰보면 이해가 될 법도 하다. 그는 수십 년 동안 교사와 교육관료로 재직해왔지만, 학원 재벌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커왔다. 동생 부부가 설립해 키운 수도학원이 매개물이었다. 서울 신설동 로터리 인근에 위치한 수도학원은 검정고시로 유명하지만, 현재는 대입 준비와 통역·회화 계열 학원까지 운영 중이다.

공 교육감의 경력에서 가장 돋보이는 ‘남서울대학교 총장’이라는 직책도 이 학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공 교육감 동생 부부가 학원 사업으로 돈을 벌어 세운 학교가 남서울대학교이기 때문이다. 남서울대학교는 수도학원과 함께 학교법인 성암학원 산하에 있다. 공 교육감은 이 대학 2대 총장(1998~2002년)을 지냈는데 그 뒤를 이은 공정자(68) 총장은 다름 아닌 그의 동생이다. 공정자 총장은 이 학교가 개교한 1994년부터 재단 기조실장과 부총장으로 근무하다가 오빠의 뒤를 이어 총장에 올랐다. 지금은 부부가 나란히 이사장과 총장으로 있지만, 초기에는 남편은 이사장을 하고 부인은 부총장을 하면서 그 사이에 부인의 오빠인 공 교육감이 총장을 지낸 것이다. 결국 지금의 공 교육감이 있기까지는 학원과 그 학원에 바탕한 사학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이들의 유대를 설명하는 또 다른 핵심 고리는 기독교다. 경기 분당 갈보리교회 신자인 공 교육감은 보수 기독교계가 주장하는 사학법 폐지를 위한 통성기도회 홍보 공문을 교육청의 전자문서 시스템을 통해 일선 학교에 내려보내고 업무 시간에 기도회에 참석한 사실이 드러나 입길에 오른 적이 있다. 성령부흥회 포스터에 사진이 나왔다가 호된 비판을 받은 어청수 경찰청장에 비해 죄질이 훨씬 나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잠깐 보도됐을 뿐 그냥 별 탈 없이 넘어갔다. 여기에 그의 매제인 이재식 이사장은 목사 세습으로도 유명한 대형 교회인 서울 강남 광림교회의 장로이며 교회 교육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총장 공정택’과 관련해서는 지난 7월 남서울대 졸업생이 총학생회 홈페이지에 자신의 추억을 담은 글을 올렸다. 2000년 가을 등록금 투쟁으로 시작된 학내 민주화운동 당시 학생들과 노조, 지역단체들이 학교의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으려 했고, 이 과정에서 학생 대표들이 본관을 점거하자 공정택 당시 총장이 중징계로 맞섰다는 것이다.

이같은 전력도 문제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공 교육감이 교육감으로서 보여준 정책과 스타일이다. 그동안 진보·개혁진영에서는 공 교육감이 사교육을 키우는 정책을 폈다는 지적을 계속 해왔다. 스타 강사 출신 교육평론가 이범(〈곰TV〉 이사)씨가 “면접과 추첨 등으로 이뤄진 국제중 입시안은 마치 누군가가 어떻게 하면 사교육을 최대한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내놓은 안 같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요즘 공 교육감은 국제중 확대에 찬성하는 쪽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제중·특목고 진학상담 업체를 운영하며 등의 저서를 낸 김은실씨는 “소수의 뛰어난 학생을 뽑아 따로 인재를 키우겠다고 국제중을 만들면서 추첨제를 한다니 말이 되는 얘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하면 사교육 키울까 하는 정책

학원가에서조차도 부정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제중을 만들면서 사교육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은 불고기를 먹으면서 쇠고기는 안 먹는다는 말과 같다”는 하이논술 김호창 대표이사도 “학생과 학부모뿐 아니라 학원들도 일관된 정책을 폈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인데, 공 교육감은 비대한 사교육을 지속적으로 더 키우는 정책을 펴면서 겉으로는 가끔씩 ‘고액 학원비 단속’ ‘소외 계층 선발’ 등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잘못은 덮고 사교육 제한 의지를 과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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