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8일 아침 8시40분 서울 ㅈ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비해 기출문제를 풀고 있다.
서울 중랑구 ㅈ초등학교 6학년인 예원(12·가명)이는 2학기가 시작되면서부터 학교 수업이 하나 더 늘었다. 1교시 수업은 아침 9시에 시작되지만, 8시30분부터 선생님이 나눠주는 ‘학업성취도 평가’ 기출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20~30분 정도만 하면 됐는데, 요즘은 10월14~15일에 치르는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이른바 일제고사)가 다가오면서 아예 실제 시험처럼 60분 동안 40문제를 푼다. 채점까지 끝나면 1교시가 끝나는 9시40분이 된다. 이 학교 6학년은 모두 8시30분부터 매일 돌아가면서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기출문제를 풀어야 한다. 선생님은 ‘자율학습 시간’이라 하고 예원이와 친구들은 ‘시험 시간’이라고 부르는 이 수업은 정규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학생이 반강제로 공부를 해야 하는, 바로 ‘0교시’다.
화·금요일엔 수업이 끝난 뒤에도 모두 남아 1시간가량 더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 채점을 해서 15개 이상 틀린 아이는 일주일 내내 남아야 한다. 집이 버스로 30~40분 거리에 있어 아침 6시30분엔 일어나야 지각을 안 한다는 예원이는 “매일매일 시험을 봐야 하니까 힘들다”고 했다. “선생님 말로는 성취도 평가가 학교에서 보는 시험보다 훨씬 어렵대요. 평소에 평균 90점 넘는 사람도 60점이 안 될 수 있다고…. 아침마다 시험을 보는 게 피곤하지만, 전국에서 내가 몇 등인지가 나오는데 성적이 나쁘면 더 짜증나니까 열심히 해야죠. 너무 긴장돼요.”
이 학교가 ‘0교시’를 하게 된 것은 일제고사로 불리는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와 전국연합 진단평가 때문이다. 지난 3월6일 전국의 중학교 1학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배운 내용으로 치른 전국연합 진단평가에서 서울 25개 구 가운데 중랑구는 최하위권의 성적을 기록했다. “교육 발전 없이는 지역 발전도 없다”는 문병권 중랑구청장의 지론에 따라 중랑구청은 5월 초 관내 초등학교를 상대로 ‘학력 신장 방안’과 관련한 의견을 물었다. “교육 환경이 나쁘면 누가 중랑구에 살고 싶겠느냐”는 얘기였다. 학교장들은 “방과후 학교 운영 활성화와 저소득층 학생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서울 동부교육청도 “교과학습 부진 학생의 방과후 학교 운영비가 지원되지 않으므로 행정청의 예산 지원이 절실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따라 중랑구청은 추경예산을 편성해 저소득층 학생 수에 따라 학교별로 500만~700만원씩 모두 21곳에 1억2800만원을 지원했다. 즉, 내년 1학기 초 중학교 1학년이 치러야 할 전국연합 진단평가에서 중랑구가 좋은 성적을 내려고 사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초등학교 6학년의 시험공부를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시험 준비’를 어떻게 할지 고심하던 ㅈ초등학교는 0교시를 선택했다. 이 학교 6학년 담임을 맡은 한 교사는 “학부모 동의서를 받긴 했지만, 사실상 6학년 전체가 일찍 나와서 선생님이 시험지 형태로 편집한 기출문제를 풀게 하고 시험공부를 시키는 걸 0교시가 아니면 뭐라고 해야 하느냐”며 “학교에선 학업 성취도 평가가 끝나면 내년 3월 중학교에 가서 치를 시험에 대비해 6학년 1학기 과정까지 초등학교 전 과정을 공부시킬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 특성상 학원에 못 다니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학력을 끌어올리려고 학교가 노력하는 건 좋지만, 시험 결과만 염두에 두다 보니 나도 모르게 본수업보다 시험 잘 보게 하는 게 더 중요한 일처럼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10월8일 아침 8시20분 서울 ㅈ초등학교 학생들이 빨라진 등교 시간에 맞춰 서둘러 등교하고 있다.
이 학교 고아무개 교장은 “전체 학생을 다 출석시켜 같은 교재로 가르쳐야 0교시지, 교사가 자습을 도와주는 걸 0교시라고 하면 그건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며 “6학년 담임 교사들이 먼저 아침 자율학습을 강화하자면서 ‘10분 일찍 와서 효과적으로 자습을 지도하겠다’고 나섰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공부를 못해도 부끄러움을 못 느낄 만큼 면학 분위기가 좋지 않아 답답해하던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줘 나도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사들은 “등교해서 1교시를 시작할 때까지 20여 분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거나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이라며 “방과후 학교의 컴퓨터 수업 같은 경우 강사가 편리한 시간에 맞춰 1교시 전에 진행되기도 하지만, 학생 전체를 그 시간에 교실에 앉혀서 일제고사 대비를 시키는 건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한 교사는 “구청 지원금으로 학생들 문제집을 사 줄 수도 있고, 저학력 학생들만 집중적으로 교육시키는 전문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다. 지원금을 받기 전에 구청과 학교가 어떤 방식으로 이 돈을 쓸 지 미리 논의부터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ㅈ초등학교가 이렇게 0교시 수업을 진행하는데도 서울시교육청은 “현재 서울 시내 초·중·고교 가운데 0교시 수업을 하는 학교는 단 한 곳도 없다”고 큰소리쳤다.
교육계 일각에선 0교시 부활이 학교별 성적을 공개하는 일제고사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본다. 0교시 실시 여부를 시·도 교육청이 결정하도록 하겠다는 4월15일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 자율화 조치’ 발표 직후 각 시·도 교육감은 일제히 0교시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일선 학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4월20일 조사한 결과 12개 고교가 0교시 수업을 하는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전교조 대구지부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구 시내 중학교 8곳에서도 0교시 수업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천재곤 대구지부 사무처장은 “어차피 경쟁적인 입시 체제 안에 있는 고등학교와 달리, 입시 경쟁과는 떨어져 있던 중학교의 경우 일제고사로 학교별 성적을 공개하면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제고사가 비틀어놓은 학교의 모습은 이뿐만이 아니다. 일제고사 결과가 학교의 위신과는 직결되지만 개인 성적에는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이 시험을 소홀히 치를 것을 우려해 갖은 편법도 동원됐다.
서울 ㅎ중학교는 10월14~15일 시험에 대비해 ‘쉬는 토요일’인 11일 교내 모의고사를 실시했다. 이 학교는 쉬는 토요일을 11일에서 4일로 변경하겠다는 가정통신문을 보내 “전국의 모든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시험에 대비하고자 한다. 전교생 모두 교내 모의고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 ㅎ중학교가 ‘쉬는 토요일’에 일제고사 대비 모의고사를 보겠다며 학부모들한테 보낸 가정통신문.
서울 ㄱ고에선 지난 여름방학 때 2주 동안, 일제고사를 보는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시험 과목 보충수업을 했다. 서울 ㅇ여고에선 일제고사를 치러야 하는 다섯 과목의 경우 중간고사 문항의 10%를 기출문제로 출제했다. 이 학교 김아무개 교사는 “성적에 반영되도록 해야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기출문제를 보고, 일제고사 준비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부산 동래교육청 관할 일부 중학교에선 일제고사 결과를 수행평가에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9월 말 동래교육청 관할 중학교 지구별 장학협의회에서 “시험 결과가 성적에 반영되지 않으면 학생들이 성의껏 시험에 응시하지 않을 것이니 수행평가에 반영하자”는 논의가 오갔고, 이 자리에 참석했던 교장들은 학교로 돌아가 수행평가 반영을 지시했다. 교사들의 반발로 이런 계획이 무산된 학교도 있었지만, ㅎ여중 등 3곳에선 일제고사 성적을 수행평가 점수에 5~10%가량 포함시키기로 했다.
일선 학교들이 이렇게 일제고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학교정보공개법에 따라 2010년부터 이 시험의 학교별 성적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1998년부터 정부는 초등학교 3·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의 1~3%가량을 표집해 이런 시험을 치러왔는데, 주된 목적은 교육과정 수준과 학생 성취도를 점검하는 ‘연구용’이었다. 그런데 지난 4월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 간 선의의 학력 경쟁을 유도해 학교 교육의 질을 제고할 기반을 마련하겠다”며 해당 학년 모든 학생이 시험을 치르는 ‘2008년 학업성취도 및 진단평가 기본 계획(안)’을 내놨다. 이에 따라 초등학교 3학년은 10월8일, 나머지 학년은 10월14~15일에 시험을 치렀거나 치르게 된다. 앞서 중1들이 치른 전국연합 진단평가는, 전국 단위 학업 성취도 평가의 시행 권한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있다고 명시한 초중등교육법을 무시한 채 전국 시·도 교육감 협의에서 결정돼 ‘불법성’ 논란까지 일었는데도 강행됐다. 서울시교육청의 고교선택제와 학군제 폐지 등 ‘무한 경쟁’을 코앞에 둔 학교들로선 이 시험들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학교별 성적 공개에 앞서 내년까진 각 지역 교육청별 성적이 공개되기 때문에 지역 교육청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부산 ㄱ초등학교에선 3학년 학부모 전체가 일제고사 반대 의견서를 제출하고 시험날 현장학습을 가겠다고 하자, 관할인 동래교육청은 물론 상급 기관인 부산시교육청까지 나서 시험 하루 전날인 10월7일 “담임과 학교가 불이익을 볼 수도 있다”며 시험을 보라고 ‘설득’했다. 서울시교육청은 9월30일 “(일제고사의) 평가 목적은 이미 학습한 교육과정 내용 중 교과별·영역별 부진 학생을 파악하여 부족한 부분을 맞춤식으로 책임 지도하고, 학교 간 선의의 학력 경쟁을 유도하여 학교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내도록 일선 초등학교에 지시했다. 하지만 서울 강서교육청 관할 ㄱ초등학교는 이를 발송하지 않았다. 이 학교 장아무개 교사는 “교육청 눈치가 보이니 시험을 안 치를 수는 없고, 학부모 반대나 일제고사 반대 여론도 신경이 쓰이니 가정통신문을 안 보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ㅈ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10월8일 아침 복도에서 일제고사 대비 문제지를 보고 있다.
일제고사와 관련한 찬반 여론은 팽팽하다. 전교조가 10월3~5일 성인 1천 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반대가 49.5%, 찬성이 43.7%로 반대 여론이 조금 높았다. 하지만 이 시험이 사교육비를 늘릴 것이라는 데는 82.6%가 동의했다. 줄어들 것이라는 답변은 7.7%에 불과했다. 박이선 참교육학부모회 부회장은 “특히 서울 강남 지역 학부모의 경우 내 아이의 전국 서열이 어떻게 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기 때문에 시험이 하나 더 생기면 사교육은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이번 일제고사를 앞두고도 학원이 먼저 나서서 시험 준비를 시키거나, 학교의 사전 모의고사에 대비해 공부를 시키는 학원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일제고사를 둘러싼 더 큰 우려는 이것이 고교 평준화 폐지와 중학교 입시 부활, 나아가 공교육 붕괴의 신호탄이라는 것이다. 송경원 진보신당 정책연구원은 “일제고사를 도입하자마자 학교 현장에서 드러나는 교육 파행 사례들은 그런 우려가 현실이 됐음을 보여준다”며 “아직은 학교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어 이런 사례들이 ‘사례’에 그치고 있지만, 학교별 시험 결과가 나오고 서열이 매겨지면 ‘일상’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영국에서 일제고사를 치르기 시작하자, 학교들은 성적을 올리려고 저소득·저학력 학생들을 받지 않았다. 정작 공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 배제당하고 교육 양극화가 심화됐다”며 “우리도 ‘학력 신장’이라는 명분으로 일제고사를 보지만, 공교육이 필요한 학생은 줄 세우기에서 밀려나 아예 ‘포기’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실제 지난 3월 일제고사에서 경기도의 한 중학교는 학교 평균점수를 높이려고 특수학급과 운동부 학생 11명을 채점에서 빼버리기도 했다.
한만중 전교조 정책실장은 “교육과정평가원에서도 ‘표집 평가로 설계된 현행 학업 성취도 평가 체제를 그대로 두고 평가 대상 학생만 확대할 경우 여러 문제점이 생겨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시험에 160억원 넘게 쏟아붓는데도 부진 학생 대책도 마련돼 있지 않다. 무엇보다 시험 결과는 12월이나 돼야 학생들한테 통보되는데, 학년 말에 전달되는 이 결과가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개선에 어떻게 활용된다는 말이냐”고 지적했다.
일제고사와 학교별 성적 공개는 “학교정보공개법으로 학교별 교원단체·교원노조 가입 교사 수를 공개하라”는 보수 진영의 요구와 맞물려 결국 ‘전교조 죽이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학교의 성적과 전교조 조합원 수를 비교해 ‘전교조 때문에 공부 못하는 학교’로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보수 진영의 일제고사 찬성 논리엔 이런 징후가 짙게 배어나온다. 바른교육권실천행동은 10월8일 논평에서 전교조와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등 6개 단체로 구성된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서울시민모임’이 시험을 거부하고 생태학습을 간 일을 거론하면서 “전교조의 일방적인 단체 행동으로 학생과 학부모가 피해를 본다면, 피해를 유발하는 책임자가 누구인지 학부모에게 공개해야 한다. 전교조의 일제고사 거부는 학교별로 전교조 가입자가 누구인지 공개해야 하는 이유를 또 한 번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조진희 서울 영일초등학교 교사는 “성적은 학교 규모나 지역, 특목고 여부 등 사회·경제적 배경에 좌우되는 것이지, 전교조 조합원 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성적 공개는 전교조 교사를 넘어, 교사 전체를 위축시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3월 일제고사를 치른 서울 영등포구 ㄷ중학교 1학년들은 선생님들이 마련한 시험 소감 쓰기 시간에 이렇게 하소연했다. “나는 이 시험이 너무 싫다. 이 시험 때문에 학원에 없던 보충(수업)도 하고 힘들어 죽겠다. 강남이나 목동 애들이 공부를 더 잘하니까 전국에서 등수를 매겨봤자 우리 지역 애들이 더 떨어지는데 왜 이런 시험을 보는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보는 시험만 해도 돌아버리겠는데 왜 자꾸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힘들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ㅠㅠ.” “전국에서 시험을 봐서 등수 매긴다는 자체가 마음에 안 들고 못하는 애들은 얼마나 상처를 받고 부모님들께 혼나는지 어른들은 모른다. 이거 하나 못 봤다고 엄마한테 아빠한테 맞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나 이러는건지…. 이봐 요즘 학생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알아? 요즘 애들 하루 종일 공부에 썩어가며 살고 있다고. 아무리 공부 잘하면 뭐 하니? 행복하지 못한데.”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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