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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항쟁은 ‘생활정치’로 기록하라

등록 2008-06-12 15:00 수정 2020-05-02 19:25

‘위험사회’에서 이득보는 세력이 건강·생명 위협하는 구도, 절박한 시민들이 ‘비정치적인 것의 정치화’ 이뤄내

▣ 홍성태 상지대 교수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이명박 정부는 결국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장관 고시를 강행하기로 했다. 이에 대한 분노의 촛불을 전국에서 밝히자 이명박 정부는 미국 축산업계에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수출하지 말아달라고 ‘애걸’했다. 정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 축산업계에 국민의 생명을 내맡겼다. 그 결과 이명박 정부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이 골프차를 타고 희희낙락하며 사진을 찍은 건가?

‘이명박 물러나라’로 갈때까지 남 탓만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에서 촛불을 밝혀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에 저항하고 있다.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장관 고시를 강행한 날부터 시민들은 ‘협상 무효, 고시 철회’의 구호보다 ‘이명박은 물러나라’는 구호를 더 크게 외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놀랍게도 ‘세계 최초’로 광우병 위험이 큰 30개월 이상 소의 고기와 각종 위험 부위의 전면수입을 결정했다. 그리고 시민들의 저항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거짓말을 일삼았을 뿐만 아니라 괴담론과 선동론을 펼치며 시민들을 모욕했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였다. 이상득 의원은 심지어 실업자들이 촛불집회를 하는 것이라는 망언까지 했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 정부와 축산업계의 신뢰를 얻은 대신에 주권자인 우리 시민의 신뢰를 잃었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 정부와 축산업계를 선택하고 주권자인 우리 시민을 저버린 당연한 결과이다. 그렇다. 이명박 정부는 주권자인 우리 시민을 저버렸다.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이명박은 물러나라’고 외치게 된 것은 이렇듯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남 탓에 골몰하지 말고 자신을 반성하고 개혁해야 한다. 이렇게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는 정말 세계적으로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촛불시위를 둘러싸고 많은 논의들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인터넷의 적극적 활용과 10대의 대대적 참여에 관한 논의이다. 사실 인터넷의 적극적 활용은 이미 10년 이상 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개인 방송’ 시대에까지 이른 매체 기술의 변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10대의 참여도 6년 전 첫 번째 촛불집회에서부터 나타난 현상인데, 이번에는 대대적이고 주도적인 참여라는 변화를 보였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는 왜 나타났을까?

여기서 우리는 무엇보다 ‘광우병 공포’라는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급식을 하는 10대는 광우병의 가장 큰 잠재적 피해자다. 따라서 10대는 누구보다 강하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이와 함께 당연히 학부모의 불안과 우려도 커졌다. 그 결과 10대의 촛불은 곧 시민의 촛불이 되었다. 탤런트 최진실씨는 부모로서 광우병 위험이 큰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수입에 반대하는 글을 자신의 홈피에 올렸다. 아마도 그의 글은 일부 ‘뉴라이트’를 제외한 모든 부모의 심정을 대변할 것이다.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자신의 뜻을 밝히고 정부의 변화를 촉구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하는 것은 그 시대의 절박한 사회문제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일수록 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외치는 요구를 통해 시대의 변화를 생생히 추적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현대사를 잠시 돌이켜보자.

만민공동회·6월항쟁·2002년과는 달라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적극적으로 발언한 최초의 거리집회는 1898년 3월 독립협회의 주최로 서울 종로 네거리에서 열렸던 만민공동회이다. 만민공동회는 지금의 거리집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최초의 만민공동회에는 무려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해 나라의 독립과 개혁에 관해 발언했으며, 만민공동회는 횟수를 거듭하면서 독립협회의 영향에서 벗어난 독자적 민중운동으로 발전했다.

이번의 촛불집회와 연관해서 많은 사람들이 87년의 ‘6월항쟁’을 떠올린다. 전두환 군부독재의 종식과 민주화의 길을 연 6월항쟁은 전국 곳곳에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줄기차게 벌인 일련의 거리집회와 거리투쟁을 가리킨다. ‘독재 타도, 민주 쟁취’는 당시 가장 보편적 구호였으며, 한 줌의 독재세력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이 이 구호에 적극 동의했다. 그 결과 건국 40년 만에 비로소 민주화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6월항쟁이 최루탄과 화염병으로 상징된다면, ‘촛불’이 거리집회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은 2002년의 일이다. 그해 여름 두 여중생이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는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11월에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집회가 열리게 되었는데, 이때 한 네티즌의 제안으로 시민들은 ‘촛불’을 밝혀들고 거리집회를 열었다. 두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불평등한 한-미 관계의 개혁을 촉구하기 위해 밝혀진 촛불은 사회의 어둠을 밝히는 상징이자 평화시위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광우병 위험이 큰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이번의 촛불집회도 불특정 다수 시민들의 적극적인 제안과 참여를 통해 열리게 되었다. 10대를 포함해서 시민들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에 대해 ‘과학적으로’ 잘 알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강행하는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수입은 누구나 치명적인 생명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당연히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정부가 완강히 ‘소통’을 거부했기 때문에 거리로 몰려나와 직접 의견을 밝히게 되었다.

이번의 촛불집회는 ‘독재 타도’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6월항쟁’과 다르고, ‘불평등한 한-미 관계의 개혁’을 촉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2002년의 촛불집회’와도 다르다. 사안의 차이가 너무나 명확하다. 이명박 정부는 사실상 모든 국민에게 ‘광우병 룰렛’을 강요하고 있다. 이번의 촛불집회는 부당하게 강요되는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생활정치의 전형적 사례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당연한 생활정치의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면서 시민들의 요구는 크게 바뀌고 있다.

‘사고사회’의 취약한 ‘민주화’ 드러낸 정부

생활정치는 이념정치나 권력정치가 아니다. 광우병처럼 사실상 모든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는 이념과 권력을 초월해서 사실상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생활정치를 촉발할 수 있다. 우리는 막대한 위험을 대가로 풍요를 누리는 ‘위험사회’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위험사회에서는 생명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진다. 생활정치는 위험사회의 정치를 대표한다. 위험사회에서는 기존의 이념정치나 권력정치로 보자면 ‘탈정치화’가 이뤄지지만 생활정치의 방식으로 ‘비정치적인 것의 정치화’가 이뤄진다.

내 책 에서 위험사회의 유형화를 통해 지적했듯이, 한국은 아예 ‘사고사회’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서구보다 훨씬 더 위험한 위험사회이다. 한국의 특징은 발달한 과학기술과 허술한 사회체계의 결합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토건국가, 투기사회, 부패사회, 학벌사회 등은 그 단적인 예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대구 지하철역 화재 사고 등은 종료된 사건이 아니다. 그 핵심에 취약한 민주화의 문제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이 사실을 너무도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사고사회’의 상태에서 큰 이득을 보는 세력이 권력이 잡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 계획과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수입이 그 답을 보여주고 있다. ‘강부자’는 더욱더 큰 부자가 되겠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생명조차 위협받게 되고, 국토는 대대적으로 파괴되는 것이다.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생활정치가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이 사실을 배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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