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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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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도 기름을 지우지 못했다

등록 2007-12-20 15:00 수정 2020-05-02 19:25

1989년 엑손 발데즈호 유출 사고 해역엔 지금도 10만ℓ 이상의 기름이… 대법원 소송도 이제 시작돼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태안반도의 비극이 낯익다. 생명이 넘실대던 바다가 시꺼먼 기름으로 질식당해 쉼없이 주검을 토해내는 참담한 풍경은 지구촌 곳곳에서 툭하면 반복된다. 10년, 20년 세월이 흐른 뒤에도 오염의 흔적은 좀체 사라지지 않지만, 숨통이 끊긴 듯 보였던 자연은 아주 천천히 부활의 조짐을 내보인다. 다만 바뀌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인간의 탐욕일 뿐이다.

37년간 기름 유출 사고 1만 건

‘유엔대양도감’(oceansatlas.org)의 자료를 보면, 현재 지구촌 5대양에서 원유를 실어나르는 유조선은 모두 3500여 척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선박으로 꼽히는 야레 바이킹호도 유조선이다. 이 배는 한 번에 원유 50만t을 적재할 수 있는 초대형이다. 쉼없이 원유를 싣고 대양을 헤쳐나가는 유조선의 이동 경로는 고스란히 대양 오염의 궤적과 맞닿아 있다.

‘국제유조선선주오염방지연맹’(ITOPF)은 지난해 말 내놓은 연차보고서에서, 지난 1970~2006년 지구촌에서 발생한 각종 기름 유출 사고가 모두 1만 건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1970년대 314만3천여t △1980년대 117만6천여t △1990년대 113만8천여t의 기름이 유출됐다. 반면 2000~2006년 말에 유출된 기름은 모두 17만6천여t에 그쳤다. 사고 발생 건수도 줄어드는 추세다. 1970년대엔 700t 이상 유출된 사고가 연평균 25.2건에 이르렀으나, △1980년대 9.3건 △1990년대 7.8건 △2000~2006년 3.7건에 머물렀다.

전체 기름 유출 사고의 84%는 유출량이 7t 이하인 ‘소규모’다. 그럼에도 기름 유출 사고가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재앙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져나오는 대형 사고 때문이다. ITOPF는 1979년 발생한 애틀랜틱 엠프레스호 사고(28만7천t 유출)와 1983년 발생한 카스틸로 드 벨버호 사고(25만2천t 유출), 1991년 발생한 ABT 서머호 사건(26만t 유출) 등을 대표적인 ‘대형 사고’로 꼽았다.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관심은 “유출된 기름으로 인한 오염을 정화하고, 피해를 보상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 것이냐”는 데 모아진다. 정답은 없다. 유출된 기름의 종류와 오염 지역 규모, 오염의 심각도 등 수많은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탓이다. ‘국제원유오염보상기금’(IOPCF)의 자료를 보면, 사상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기름 유출 사고는 1989년 미 알래스카 해상에서 발생한 엑손 발데즈호 사고다.

이 사고는 유출된 기름 양으로만 따지면 역대 ‘35위’에 불과하다(표 참조). 하지만 당시 사건으로 피해 지역 일대 정화비용에만 모두 25억달러가 들어갔고, 각종 벌금과 보상금 등을 포함한 소요 비용은 최대 70억달러에 이를 것이란 추정이 나올 정도다. 사고가 난 지 18년여가 흘렀지만, 오염 피해자 배상과 관련한 법정 다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엑손 발데즈호 사고가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의 ‘전형’으로 꼽히는 것은 이런 정황 때문이다. 사고를 더듬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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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분해되는 양은 4%에 불과해

발데즈호는 1989년 3월23일 밤 9시12분께 트랜스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터미널을 출발했다. 선체 길이만도 300m에 이르는 발데즈호는 18만t의 원유를 가득 싣고 캘리포니아 롱비치를 향해 프린스윌리엄 해협으로 나아갔다. 세계 최대 정유기업 엑손모빌은 이 일대에서 원유가 생산되기 시작한 1975년부터 20척의 유조선단을 운영해왔다. 그 12년 동안 모두 8700여 차례나 출항을 했지만, 프린스윌리엄 해협에선 단 한 차례의 사고도 없었다. 하지만 이날만은 예외였다.

3월24일 새벽 0시4분께, 발데즈호 앞으로 빙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 헤즐우드 선장은 즉각 선회를 명령했다. 그는 빙산을 피해 선회한 뒤 기존 항로로 복귀하라고 명하고는 자기 선실로 가버렸다. 당시 그는 술에 취한 상태였음이 사고 원인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피곤에 찌든 조타수는 항로 복귀에 실패했고, 결국 일은 벌어졌다.

이윽고 육중한 충돌음이 들려왔다. 발데즈호가 암초에 부딪친 게다. 좌초된 배의 11개 유조탱크 가운데 8개가 파손됐고, 곧 시커먼 기름이 새나오기 시작했다. 사고 발생 예닐곱 시간 만에 짙푸른 바다는 검은 기름으로 뒤덮였다. 이날 사고로 발데즈호에서 유출된 기름은 3만7천여t, 미 역사상 최악의 환경재앙이 벌어졌다.

사고 해역으로 급파된 인력만도 1만1천여 명, 1400여 척의 선박과 100대의 항공기·헬리콥터 등을 동원해 대대적인 정화 작업이 시작됐다. 애초 유출된 기름은 사건 발생 직후만 해도 사고 현장 부근 블라이섬 주변에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사고 발생 이틀 만인 3월26일 시속 110km가 넘는 강풍을 동반한 폭풍이 프린스윌리엄 해협에 들이치면서 오염물질이 확산됐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한 봄철에 사고가 난 것도 문제였다. 파도는 해안가 깊숙이까지 끈적한 기름 찌꺼기를 밀어댔다. 3월30일엔 사고 발생 지점에서 반경 약 150km까지 기름띠가 퍼졌고, 오래잖아 알래스카 반도 남서쪽 750km 해상까지 오염이 퍼졌다. 최종 집계된 오염 지역은 사고 해역 인근 1800여km까지 넓어졌다. 해안가 정화 작업은 4월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돼 그해 9월까지 계속됐다. 이듬해인 1990년과 그 다음해인 1991년에도 여름철엔 어김없이 정화 작업을 벌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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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데즈호 사고가 알래스카의 청정 생태계에 끼친 영향은 가히 재난이었다. 기름 유출 직후 며칠 만에 사고 해역 인근에서 1천 마리 이상의 수달이 숨진 채 떠올랐고, 바다표범 주검도 300여 구 발견됐다. 또 25만마리 가량의 조류가 오염돼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주검을 수습한 조류만도 3만5천여 마리에 이른다. 비극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올 초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기름이 유출된 지 18년째를 맞았지만 사고 해역엔 여전히 10만ℓ(약 630배럴) 이상의 기름이 남아 있다. 한 해 자연 분해되는 양은 전체 잔존 기름의 4% 남짓에 불과하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여전히 남아 있는 기름에서 새나오는 독성 물질이 생태계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이다.

삽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오염 지역 어민과 토지 소유자 등 3만2천 명을 원고인단으로 하는 집단소송이 시작된 것은 사고 발생 5년여 만인 1994년 5월이었다.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연방법원은 그해 9월 엑손모빌 쪽에 2억8700만달러의 손해배상금과 함께 징벌적 배상금으로 50억달러를 추가 지급할 것을 명했다. 하지만 기나긴 법정 다툼은 이제 시작이었다.

확정판결은 2008년 6월 말

이후 10여 년간 엑손모빌 쪽은 지속적으로 법원의 판단에 딴죽을 걸었다. 1심과 2심을 오가기를 세 차례, 결국 지난해 12월 미 연방 제9순회 항소심 재판부는 엑손모빌 쪽의 징벌적 배상금을 25억달러로 줄이는 것을 뼈대로 한 판결을 내렸다. 이에 불복한 엑손모빌은 사건을 다시 미 대법원으로 가져갔다. 25억달러의 징벌적 배상금이 합리적인 수준인지 여부를 가려달라는 요구였다. 지난 10월29일 미 대법원은 엑손모빌 쪽의 요구를 받아들여 심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확정판결은 2008년 6월 말로 예정돼 있다.

피해 지역 주민들이 만든 인터넷 사이트 ‘오염피해 어민 대 엑손’(www.oiledfishermenvsexxon.com)이란 인터넷 사이트는 “기나긴 법정 공방이 이어지는 사이, 최초 원고인단의 20%에 이르는 6천여 명이 세상을 등졌다”고 전하고 있다. 한편 엑손모빌은 발데즈호를 수리해 ‘시리버 미디터레이니언’으로 이름을 바꿨고, 이 배는 현재 대서양을 오가며 바삐 기름을 실어나르고 있다. 지난 2006년 엑손모빌이 벌어들인 연간 수익은 모두 395억달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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