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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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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심 중간 상황, 2차 투표 갈 수도

등록 2007-09-06 15:00 수정 2020-05-02 19:25

‘정치적 구심’은 민노당, 그러나 ‘비판적 지지론’ ‘정책연대’ 등 엇갈리기도

▣ 천안=글 류이근ryuyigeu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분명 2002년 대선보다 낫다. 5년 전에도 민주노동당은 있었지만 국회의원 하나 없는 원외정당이었다. 덩치가 적긴 하나 이젠 9명의 국회의원을 거느린 명실상부한 ‘진보정당’이다.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여럿이 경쟁할 만큼 당이 컸다. 과거 권영길 1인 이외엔 어떤 도전자도, 도전할 만한 비중을 지닌 마땅한 인물도 없었다.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지만 언론의 관심도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어쩌면 오는 12월19일 4%(2002년 득표율)와 14%(2004년 총선 정당명부 득표율)의 간극을 좁힐 수 있을는지 모른다. 아직까지 민주신당 등 이른바 ‘범여권’이 죽을 쑨 것도 좋은 정치적 환경이다. 대선이란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민주노동당의 (잠재적) 지지층 상당수가 ‘한나라당(신한국당)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며 지금의 범여권 쪽으로 옮겨가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은 과연 2002년보다 좋은 성적을 낼 것인가? 좀 이른 질문이다. 지금은 당 안팎에 냉소적인 분위기와 희망적인 분위기가 교차되고 있다. 아직 예측하긴 어렵다. 우선 중요한 건 누가 후보가 되느냐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권영길-노회찬-심상정 이들 셋 중 누가 민주노동당의 후보가 되느냐에 따라 당이 대선에서 얻어낼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당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민주노동당에 있어서 이번 대선은 창당과 원내 진출 이후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질적 성장과 도약의 중요한 기회다. 이 순간 당을 이끌 ‘최적’의 후보는 누굴까? 민주노동당 5만 당원들의 요즘 가장 큰 고민이다. 민주노동당이 대선 후보를 뽑고 있다. 그 현장에 가봤다.

냉소와 희망 교차하는 내부 분위기

지난 8월29일 저녁 7시30분 충남 천안시 외곽 세종웨딩홀 6층. 건물 바깥엔 추적추적 내리는 비 때문에 어둠이 더욱 짙어 보였다. 대전·충남 권역 후보 선출대회가 열리는 건물 안은 요란했다. 300여 명의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때때로 후보 이름을 외치고, 양손에 하나씩 쥔 풍선막대기를 맞부딪쳤다. 대전·충남 권역의 개표 결과를 보려고 일부러 발품을 들인 열성 당원들이다. 간혹 한두 명씩 홀 뒤편에 마련된 기표소에서 투표를 했다. 대부분의 당원들은 이미 인터넷으로 투표를 마쳤다. 이곳의 투표율은 81.8%로 한나라당 경선의 전체 투표율(70%)보다 높았다.

이날 세 후보가 얻은 표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충남에서 권영길(618표)-노회찬(540표)-심상성(482표) 순으로, 대전에선 권영길(307표)-심상정(270표)-노회찬(196표) 순서로 표가 나왔다. 권영길은 다시 한 번 1위를 확인했지만, 이미 투표를 끝낸 권역을 다 합했을 때 누적 득표율이 44%로 이전보다 2~3%포인트 빠졌다. 노회찬은 권영길 대세론은 누그러뜨렸지만, 심상정에게 100표 차이로 바짝 추격을 당하는 ‘불안한 2위’가 됐다. 심상정은 대전에서 ‘뜻밖의’ 선전을 했고, 결선행 티켓을 쥘 가능성도 높아졌다(상자기사 참조).

대전·충남은 이른바 ‘정파’(자주파-평등파/NL-PD)적 이해와 현상이 비교적 덜한 지역으로 꼽힌다. 또 최종 승부처인 수도권으로 가는 징검다리이기도 해 꽤 큰 주목을 받아왔다.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 대전·충남 당원들의 표심은 정치권에서 흔히 얘기하는 ‘충청도 표심’처럼 쉽게 예측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온 건 아니다. 다른 지역 당원들과 비슷한 이유로 표심이 움직였다.

가장 큰 관심거리 ‘권영길이냐 아니냐’

심상정 지지자: “진보정당으로서 정책 중심으로 가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비정규직 문제에도 가장 적극적이다.”(김영환·47)

노회찬 지지자: “2004년 총선 때 ‘불판을 갈자’는 어록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이번 대선에서도 바람을 일으킬 거 같다.”(유종준·38)

권영길 지지자: “세 후보 중 가장 신뢰가 간다. 국민들에게도 가장 쉽고 믿음 있게 당을 전달해주실 수 있는 분이다.”(김성곤·39)

현장에서 만난 이 세 사람의 얘기는 사실 세 후보가 가진 이미지를 꼭 집어낸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날 투표를 한 당원들 중 과 인터뷰를 한 10여 명은 이구동성으로 “세 후보 다 좋은데…”라고 전제했다. 그만큼 당원들에게 세 후보의 차별성은 그리 크지 않다. 진보정당이란 울타리가 만들어낸 후보들 간, 특히 정책에서의 동질성은 ‘예상된’ 권영길의 1위 질주가 보태져, 경선의 흥행성을 떨어뜨렸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언론이 관심을 덜 주고, 언론의 관심을 덜 받으면서 세 사람의 차이가 부각될 기회를 별로 얻지 못한 요인도 작용했다.

민주노동당 경선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권영길이냐 아니냐”다. 권영길이 아닌 노회찬이나 심상정, 둘 중 한 명이 대선 후보가 된다는 건 민주노동당을 상징하는 새로운 얼굴의 등장을 의미한다. 실험이다. 당원들은 아직 새로운 실험과 안전한 선택 사이에서 답을 내지 않고 있다. ‘도전자’인 노회찬과 심상정 두 후보의 득표수 합계가 절반을 넘는다. 이런 현상을 두 후보 진영은 아주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노회찬 후보는 천안 연설에서 “누적 득표율이 44%대로 내려앉으면서 권영길 후보의 대세론은 거품이 빠졌고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당원들의 당심은 56%를 넘어섰다”며 “이어지는 순회경선에서 변화와 혁신의 바람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이며 결선 투표는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전북 지역 개표가 끝난 8월31일 현재 누적 득표율은 심상정 25%, 노회찬 28%, 권영길 46.9%를 보이고 있다. 아직 결선투표로 갈지 아니면 1차 투표에서 끝이 날지 안갯속이다. 결선투표로 간다고 하더라도 티켓을 받는 ‘2위’가 심상정이 될지 노회찬이 될지 알 수 없다. 결선에서 역전 드라마 없이 권영길이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권영길 후보는 “이명박 후보를 잡기 위한 추석 전 일주일의 시간(1차 투표와 2차 투표 간 시차)을 저 권영길에게 달라”고 말했다. 1차 투표에서 절반을 넘겨달라는 얘기다.

가장 신바람 난 건 심상정

제주-광주·전남-대구·경북-대전·충남-전북까지 진행된 경선 중간 지점에서 가장 신바람 난 건 심상정이다. 캠프에선 ‘심바람’이란 조어까지 만들어내 ‘뜻밖의’ 선전을 홍보하고 있다. 경선에 돌입하기 전까진 캠프 내부에서조차 처진 3위에 그칠 거라는 푸념이 나왔다. 심상정 후보는 이제 “조직적 투표가 실시됐는데도 권영길 후보는 과반수 획득에 실패했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심바람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이번 경선은 권영길 대세론 대 심상정 대안론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캠프 관계자들은 심 후보가 갖고 있는 정책 등 콘텐츠(내용)가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심바람 앞엔 근소한 차이로 2위를 달리고 있는 노회찬의 불안이 있다. 애초 경선 전만 해도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여러 차례 10%포인트 안팎으로 1위를 차지한 조사 결과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노회찬에겐 심상정만큼 또는 그 이상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경선의 또 하나 관심거리는 정파 구도가 얼마나 영향을 끼치느냐다. 경선 전 당내 최대 정파인 자주파가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불붙었다. 이준협 노회찬 예비후보 정책담당자는 “생각보다 정파 구도가 밑으로 깊게 내리꽂혔다”고 말했다. 캠프 관계자들은 정파 구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뭔가를 제시하지 못한 내부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정파를 부진의 더 큰 요인으로 돌렸다. 심상정 후보 쪽도 정파에 기초한 조직선거가 경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하지만 박용진 권영길 예비후보 대변인은 “2~3위 후보들이 자신들의 한계와 실력 부족을 자꾸 정파 탓으로 돌린다”며 “이번 경선은 정파 프레임으로만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양쪽 다 인정하는 건 정파가 분명히 경선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향의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파의 논리가 경선에 침투된 건 순전히 노선의 차이에서 비롯된 건 아니다. 대선 이후 당내 권력을 둘러싼 ‘대리 투쟁’의 성격이 짙다. 조승수 진보정치연구소 소장은 “대중정당으로서 당의 위기이자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는 일”이라며 “민주노동당의 당원이 20만, 30만 당원 시대로 가지 않으면 떠안고 갈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당원용’ 토론, 서툰 준비 과정 보완해야

2002년보다 나은 흥행 요건은 갖췄지만 아쉬운 부분들이 많다. 민주노동당 후보를 뽑는 결정권은 한나라당이나 민주신당과 달리 전적으로 당원들이 쥐고 있다. 몇 번의 생방송 토론회에서도 드러났지만 후보들은 종종 국민을 향해 ‘당원용’ 메시지를 던진다. 소수 정당의 당원과 지난 20여 년 동안 사실상 양당 정치에 익숙한 대중 사이엔 거리가 꽤 멀다. 풀어야 할 과제다. 또 세 캠프에서 입을 모아 지적하는 문제이지만 재정 부족 등 중앙당의 서툰 경선 준비와 지원, 기획 등은 대선을 앞두고 당이 서둘러 정비해야 할 문제다. 당의 명운에 관한 것이다. 누가 후보가 되느냐도 중요하지만, 후보를 뽑는 과정과 선출된 후보를 중심으로 어떻게 대선을 치러내느냐에 따라 당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는 중요한 분수령인 탓이다.



독특하고 뜨거운 민노당의 경선 축제

당원만 참여해 권역별로 닷새간 투표… 과반수 얻어야 후보로 선출

9월9일이 될까, 9월15일이 될까?
민주노동당은 지난 8월20일 제주를 시작으로 당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 축제에 돌입했다. 전국 16곳의 광역시·도를 11개 권역으로 나눠, 선출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당권을 지닌 5만118명의 당원에게 투표권이 부여됐다. 투표권을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이나 후원금 기부자 등으로 확대하자는 제안도 논의됐으나, 당원이 당의 후보를 뽑는 방식으로 최종 결정됐다.
방식은 아주 독특하다. 권역별로 닷새 동안 투표를 진행한 뒤, 닷새째 개표를 한다. 예를 들어 대전·충남에선 8월25일부터 닷새 동안 투표를 한 뒤 29일 천안에서 개표를 했다. 투표는 온라인과 현장 기표소에서 직접 투표하는 오프라인을 병행했다. 8월31일 현재 투표가 진행된 권역의 전체 투표자 가운데 약 86%가 온라인으로 투표에 참여했다. 뜨거운 열기다. 권역별 누적 득표가 총 투표의 과반인 50%를 넘기면 1차 투표에서 대선 후보가 확정된다. 9월5~9일 선출대회를 갖는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이 전체 투표인단의 43.8%를 차지하고 있어, 권영길 후보가 1차 투표에서 후보로 선출될 것인지는 9일까지 지켜봐야 한다.
1차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 2등 두 명이 결선 투표를 치른다. 9월10일부터 15일까지 전국에서 동시에 투표가 진행된다. 이봉훈 당 선거관리위원회 간사는 “후보가 전체 선거인단의 과반수를 얻어야 당의 대표성을 지닐 수 있도록 결선 투표제를 뒀다”며 “선진적인 선거 방식을 갖고 있는 많은 나라들이 결선 투표제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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