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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반은 치외법권인가

제631호
등록 : 2006-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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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가 학교장을 ‘반감금’하기까지 한영외고 유학준비반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학교 내 사설 강좌료 수임 두고 30여 학부모들 ‘인사권’ 주장하며 항의 시위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한영외고 유학반을 둘러싼 소문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학원가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학부모들이 학교장을 ‘반감금’했다는 말이 나오고, 학교 허락 없이 사설 강좌가 개설되는가 하면, 학교 강사가 밖에다 학원을 차리고 학생들이 그곳에서 수업을 받는다는 등의 말이 나돌았다. 대한민국의 학교에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뛰쳐나간 강사들이 ‘대안학원’을 세우다


취재진이 10월11일 서울 강동구 한영외고를 찾았을 때, 큰 파문이 휩쓸고 간 듯 교무실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9월 말 급기야 교장이 보직 사표를 냈고, 교무부장이 교감 대행을, 교감이 교장 대행을 맡고 있었다. 대체 한영외고 유학반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영외고 유학반은 1학기부터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학교는 유학반에 대해 통제력을 잃은 듯 보였다.

“올해 3월 유학반 디렉터(director)를 맡고 있는 김미숙(가명) 교사가 교원직을 사퇴한 뒤부터였어요. 교원 신분에서 사설 강사 신분으로 바뀌어 자유로워진 김씨가 1학년 디렉터 업무를 거부한 것이죠. 그리고 김 디렉터 아래의 유학반 강사들도 줄줄이 사표를 냈어요.”

한영외고의 모든 교사들이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을 때, 1학년의 한 학부모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외고 유학반에서 디렉터는 사실상 아이들을 미국 대학에 보내고 보내지 않고를 결정하는 큰 영향력이 있다. 디렉터는 정규 수업 뒤에 진행되는 유학반 수업을 관장하고, 미국 대학에 제출하는 영문 성적표(GPA)나 교사 추천서, 카운슬러 추천서, 에세이 등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교원이 아닌 민간인 신분인 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대학학점 선이수(AP)시험 사설(학원) 강사들도 보통 디렉터 아래서 채용돼 관리된다. 이 학부모는 “디렉터와 강사가 한꺼번에 나가버리는 통에 1학기 내내 1학년 유학반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데서 불거졌다. 학교를 나간 강사 6명이 5월22일 강남 대치동에 자칭 ‘유학대안학교’인 ㅇ어학원을 열고, 한영외고 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을 벌인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1학년 학생 10여 명은 물론 2·3학년 일부 학생까지 이 학원에 출입하고 있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들 중 일부 강사는 당시에도 한영외고 2·3학년 수업에 계속 들어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학교에 들어온 사설 강사를 따라 학생들이 학원을 찾아가 공부하는 꼴이었다.

취재진이 10월12일 강남교육청에 확인해보니, 이 학원의 대표는 한영외고 유학반 카운슬러(디렉터 아래에서 입학 상담·추천서 작성 등의 업무를 맡음)인 김진숙(가명)씨로 나타났다. 김진숙씨는 디렉터 김미숙씨의 친동생이다. 이에 대해 김미숙씨는 “동생(김진숙)이 다른 사람에게 명의를 빌려준 것일 뿐”이라고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교장은 9월 말 보직 사퇴서 제출

물론 이 어학원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들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학부모 ㄱ씨는 “학교에서 채용한 후임 강사들은 실력도 없고 자주 바뀌었다”며 “김 디렉터의 강사진이 지난해까지 한영외고에서 검증받았기 때문에 그 학원에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학부모들의 여론은 점차 세를 얻기 시작했다. 8월10일 저녁 학부모 30여 명은 학교를 방문해 장두수 전 교장에게 “김미숙씨 및 이하 강사진이 학교에 돌아와 1학년 수업을 맡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학교는 이미 이들의 뒤를 이을 2학기 신임 디렉터와 강사진과 구두 계약까지 마쳤다면 요청을 거부했지만, 학부모들은 막무가내였다. 그러던 중 사건이 발생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학부모의 말이다.

“학부모 30여 명이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장두수 전 교장이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분위기가 험악해졌어요. 학부모들이 욕설을 하기 시작했고, 교장이 교실에서 나가려 하자 이를 막았어요. 교장 선생님이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지만….”

한영외고 교사들이 당시 사건을 조사해 만든 자료에 따르면, 당시 학부모들은 △강사료 지급을 전적으로 학부모들이 하니까, 강사 채용과 인사권은 학부모가 가져야 한다 △학교 쪽 CMS 계좌가 아닌 학부모 통장으로 강사료를 모아 지급하겠다 △김미숙을 디렉터로 다시 채용할 것을 주장했다고 한다.

참여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방과후 학교는 자칫 학교를 사교육 시장으로 물들게 할 위험이 있다. 한영외고 유학반 강사들이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대치동의 ㅇ학원.

교사들은 “(학부모들이) 새벽 2시까지 5시간 이상 교장을 물리적으로 감금하고 삿대질과 욕설을 퍼부으며 화장실까지 동행했다”고 주장했다. 취재진이 당사자인 장 전 교장에게 연락하자, 그는 “말하고 싶지 않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는 이 사건 뒤 병원에 일시 입원했고, 9월 말 교장보직 사퇴서를 재단 쪽에 제출했다.

무엇이 학교와 학부모, 학교와 유학반 사이를 벌려놓았을까. 한 교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1학기 초 학교 쪽에서 학교 정규 부서인 국제부가 유학반을 관리하도록 했어요. 여태껏 편법적으로 일부 정규 수업시간에 유학반 수업을 해왔던 관행을 없애고, 학부모가 직접 디렉터와 강사에게 주던 강사료를 학교가 수납하겠다고 유학반에 통보한 것입니다. 학교로서도 교육부 지침을 따라야 하니까요.”

하지만 미국 대학에 ‘올인’하는 학부모들은 이 조처가 반가울 리 없었다. 강사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학교 회계로 처리되면, 강사들의 소득세 등에서 수입상의 차감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두 패로 나뉜 유학반 학생들

외국어고 유학반은 교육부의 ‘방과후 학교’ 지침에 따라 운영돼야 한다. 유학반 수업은 정규 수업 시간에 진행돼선 안 되고, 일체의 운영 계획은 학교운영위원회(사립)의 자문을 받은 뒤 학교장의 관리·감독을 받아야 한다. 강사 선정과 수강료 책정도 마찬가지다. 유학반에 들어가는 수업료와 운영비도 ‘국립 및 공립 초·중등학교 회계규칙’을 따라야 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방과후 학교에 들어가는 일체 비용은 학교가 직접 수금해 강사에게 지급해야 한다”며 “한영외고는 이를 위반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자체적으로 제작한 유학반 가입신청서(아래)와 ㅇ어학원의 신문광고(위).

지금은 어떨까. 현재 한영외고 유학반은 ‘이중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학교와 마찰을 빚은 학부모들이 운영하고 있는 ‘김미숙 유학반’과 학교가 초빙한 새 디렉터와 강사진을 중심으로 한 ‘학교 유학반’. 이렇게 학생들이 두 패로 나뉘어 똑같은 수업을 다른 두 교사에게 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장정현 교감 대행은 “수요자 중심으로 생각해 이렇게 결정했다”며 “현재는 이중 체제로 운영되지만 내년에는 통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기형체제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한 유학반 강사의 말이다.

“아이들이 따로따로 놀아요. 학부모가 지지하는 디렉터에 따라 나뉘는 거죠.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이르지만, 부모 영향이 큰지라 어쩔 수 없더군요.”

사교육이 학교를 지배하는 기이한 상황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취재진이 여러 관계자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심지어 학교와 유학반 강사진 사이에 그 어떤 계약서조차도 없었다. 또한 유학반 강사에게 지급되는 수업료도 학부모들이 자체적으로 모아 학원 강사들에게 직접 전달하고 있었다. 학부모들은 자체적으로 유학반 가입신청서를 제작해 학생들로부터 강의 신청을 받고 있었다. 학교가 배제된 채 교육 ‘소비자’인 학부모와 ‘공급자’인 사설 강사의 시장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 유학을 가고 싶다는 아들 때문에 높은 수강료를 감수하고 유학반 세계에 발을 디딘 한 학부모는 한영외고에서 반년을 겪은 뒤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영외고는 유학반에 대해 통제력을 잃은 듯 보였다. 학교에 진입한 사교육이 공교육을 사로잡은 것이다.


방과후 학교 폐해의 극적 사례

사교육 세력에 이용되었으나 교육청은 지도·감독 소홀만 지적

방과후 학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지원하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참여정부 들어 공들여 추진되고 있는 정책이다. 정규 교과를 마친 뒤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인 방과후 학교는 계층 간 교육 격차를 해소할 목적으로 구상됐다. 그러나 교육 현장으로 내려가면 사정은 딴판이다. 저소득층이 저렴하게 교육 기회를 얻기는커녕 부자들의 사교육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전교조는 이런 이유를 들어 줄기차게 방과후 학교 폐지를 주장하고 있지만, 귀기울여 듣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한영외고는 방과후 학교의 폐해를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이다. 방과후 학교가 적절한 통제를 받지 않을 경우 공교육 체제를 무너뜨리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9월27일부터 10월2일까지 한영외고에 대해 특별 장학지도를 벌였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한영외고 유학반이 방과후 학교 운영 지침을 어긴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방과후 학교로 진행돼야 할 유학반이 △학교운영위원회의 자문과 학교장의 관리 감독 없이 학부모들에 의해 독단적으로 운영된 점 △운영비용 등이 학교 회계로 처리되지 않은 점이 문제로 지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교육청은 문제로 드러난 사항에 대해 조처를 취할 예정이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학교의 지도·감독 소홀을 지적할 수 있을 뿐 민간인 신분인 강사에게는 아무런 제재 권한이 없다. 공교육 공간인 학교를 제도적으로 사교육 세력에 열어주고는, 이에 대한 관리·감독을 힘없는 학교에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한영외고는 높은 입시교육열로 무장된 사교육 세력에 대해 학교가 당할 재간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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