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의 ‘노근리 사건 조사결과’ 단독 입수… 진상조사에 미군 기여도 재조명이 웬말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 밑 쌍굴다리.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수백명의 양민들을 무참히 학살한 현장이다. 지난 7월26일. 노근리 사건이 발생한 지 꼭 50년이 흐른 바로 그날, 그곳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노근리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위령제. 98년에 이은 두 번째 합동제례다. 노근리 사건 유가족들에게 지난 반세기는 “어이없게도 가족을 ‘혈맹군’한테 잃고서도 내놓고 제사 한번 제대로 지내지 못해 온 세월”이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뙤약볕 아래 피해자 및 유가족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사건 대책위원회’ 위원장 정은용(77)씨는 추모사에서 “기나긴 세월 동안 우리 살아남은 자들은 험난하고 고달픈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곳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신 님들의 생전 모습을 늘 마음속에 떠올려 왔다”고 말했다.
망자의 혼을 달래다 분노를 떠뜨리다
정 위원장은 미군의 노근리 양민학살로 다섯날난 아들과 세살배기 딸을 잃고 부인마저 중상을 입은 노근리 사건 피해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자칫 역사의 장막에 갇힐 뻔한 이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 곧추세우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이도 바로 그다. 이날 정 위원장의 추모사는 끝으로 가면서 점점 울분에 가까웠다.
“저곳 철로 위에서 폭격과 기총소사와 지상군의 소총사격으로 님들은 마구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곳, 쌍굴 안에서 60시간을 갇힌 채 기관총 사격으로 님들은 처참하게 숨져 갔습니다…. 우리를 돕겠다고 전쟁의 소용돌이를 헤치고 이 땅에 올라온 미군들이 그처럼 무지막지하게 님들을 죽일 줄이야 누가 알기나 했습니까….”
망자들의 혼을 달래기 위한 위령제는 끝내 성토의 장으로 바뀌었다. 정 위원장은 “위령제를 통해 망자들의 혼이 조금이나마 달래지길 바란다”면서도 “한·미 양국의 진상조사가 이들의 영혼을 달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고 말했다. 유가족 정구호(노근리 사건 대책위 총무)씨는 “한마디로 울화통이 터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p> 보도가 있은 지 10개월이나 지났는데, 지금까지 사건규명을 위해 한·미 양국에서 제대로 한 게 뭐가 있습니까?” ‘폭음소리 공포에 떨며, 몸 숨기고 웃자락 감추려다 눈 먼 총알에 숨져간 사람들’(김인자 시인의 ‘그 해 칠월의 노근리’에서). 아직도 구천을 떠돌 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추모시 낭송, 진혼무, 바라춤, 행위예술 등이 이어졌다.
하지만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사건 피해자와 유족들 어느 누구도 이날 합동위령제를 통해 망자들의 한이 풀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들 스스로 여전히 한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되레 그들의 분노는 세월이 갈수록 깊어가는 자신들의 주름살처럼 더욱 깊게 패어 있을 뿐이다.
노근리 사건 대책위 정구도 대변인은 “지난 수십년 동안 노근리 사건의 진실을 묵살해 왔는데다 이제 모든 게 명명백백해졌는데도 그 진실을 드러내기를 외면하고 오히려 이를 은폐하려고만 하는 미국의 태도, 또 그들의 눈치나 보며 진상규명에 소극적인 한국 정부의 태도 때문”이라고 못박았다.
‘불가피한 일’이 잠정결론
노근리 사건 대책위는 이날 위령제에서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노근리 사건 조사 시한을 왜 연기하고 있는지 △미 공군이 저지른 피난민 살상명령이 불법인지 아닌지 △1950년대부터 미군이 이미 노근리 사건을 알고 있지 않았는가 등을 확실히 밝히라고 미국쪽에 요구했다. 대책위는 더불어 한국 정부에도 지금까지 조사내용을 즉각 발표하라고 요구했다.
문건은 사건의 개요, 지상군 작전상황, 피난민 소개 및 통제, 항공사격, 쌍굴상황, 종합평가 그리고 향후계획 등의 순서로 정리돼 있다. 특히 이 문건은 노근리 사건의 쟁점을 주요 의문점으로 제시하고, 이에 대한 조사결과와 잠정평가 내용을 담고 있다. 예컨대 ‘지상군 작전상황’이란 대목은 “긴박한 교전상황이 없었으나 과잉대응, 고의적 양민살상”이란 피해자들의 주장을 ‘의문점’이란 제목으로 앞세운 뒤, ‘조사결과’란 항목에서, “당시 북한군이 영동점령 뒤 황간방면으로 공격하고 있었고, 미1기병사단은 철수하다 긴박한 교전상황을 일으켰다”고 정리해 놓았다. 또 조사결과 항목에서는 미1기병사 전투일지를 토대로 교전상황을 분석해 “미7연대 2대대가 26일 새벽 패닉현상을 초래하며 119명의 실종자를 발생했다”고 적고 있다. 이어 문건은 ‘잠정평가’란 항목을 통해 이때 “미군에 대한 게릴라의 습격상황도 다수 발생”했는데, 바로 이런 상황에서 “미 지상군 작전상황은 피난민으로 위장한 게릴라 침투방지를 위한 전술적 대응이 불가피”하지 않았겠느냐는 ‘잠정결론’을 내리고 있다.
따라서 문건은 차후 조사중점을 미7연대 2대대 작전활동이라고 분석하고, 이들의 활동이 노근리 사건에 끼친 영향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문건은 ‘종합평가’란을 통해, 미국쪽의 조사방향을 평가하고 있다. 즉 미국쪽이 지금까지 △피난민 소개 및 통제시에 한국경찰 역할 및 책임을 부각하고 △항공사격은 의도성보다는 피난민 대열을 적으로 오인사격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쌍굴 사격부대가 수시로 바뀌어 고의성보다 작전상 불가피했다는 점을 제시할 것으로 분석했다. 따라서 문건은 앞으로 한·미 조사단 사이에 긴밀한 협조를 통해 미국쪽 조사결과와 공개증언간의 차이가 클 경우 공동대책을 협의할 것을 적시하고 있다. 또 조사완료시기는 4월 한-미간 중간평가를 거친 뒤 판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진상규명은 ‘정치’가 아니다
이 문건에 대해 국방부쪽은 “이미 오래 전에 작성된 잠정평가보고서인 만큼 그리 크게 염두할 사항은 아니다“고 애써 보고서의 가치를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의 중요성은 조사결과나 향후계획을 정리한 대목에 있지 않다. 노근리 사건 대책위 관계자는 “문건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나름대로 진상규명을 위한 국방부 조사반의 노력을 읽을 수는 있으나 어디까지나 진상규명보다 한·미관계 등 정치적 요소들을 더 고려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평가했다.
우선 지상군 작전상황이란 항목에서 정리한 “긴박한 교전상황”이란 대목에 대해 노근리 대책위는 “당시 상황은 전혀 교전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교전상황은 미군 양민학살의 고의성 여부와 관련있는 주요한 대목이다. “여러 전사자료와 증언을 종합해볼 때, 당시 상황은 결코 긴박한 교전상황은 아니었고, 더욱이 노근리 사건기간 7연대 2대대의 사상자 여부를 알아본 결과 희생자는 거의 없었다”는 게 대책위의 판단이다.
문건은 또 항공사격과 관련해 작전 유도상 미 지상군 유도하에서는 항공사격이 불가능하다고 잠정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미군의 지상군 사격은 수로대피 피난민을 적으로 오인 사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대책위 관계자는 “어처구니없는 추정”이라고 반박했다. 또 ‘피난민을 적으로 오인’했다는 추정에 대해서도 미군들이 이미 이전에 피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짐 검색을 다한 뒤에 사건이 발생한 만큼 오인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노근리 사건 대책위 관계자를 분노케 하는 결정적인 문건의 대목은 향후 추진계획이란 이름으로 기술된 부분. 이 대목에서 문건은 지금과 같은 “평화시대의 잣대로 한국전쟁 당시 전쟁상황을 평가하지 말도록”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 뒤, △한국전쟁 때 미군의 기여도와 작전상의 고충 재조명 △북한의 게릴라 전술 및 피난민 위장침투사례 심층분석 △북한의 전쟁책임과 양민피해 집중 부각을 꾀해야 한다고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끝에 “6·25 기념사업단과 협조를 통해 범정부적 홍보계획을 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이에 대해 노근리 사건 대책위 한 관계자는 “도대체 노근리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방부 문건인지, 노근리 사건을 적당히 무마시키려는 계획인지 알 수 없는 문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근리 사건의 진실만 캐면 됐지 도대체 한국전 당시 미군의 기여도 등 조사외적인 요소를 부각시킬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는 진실보다 정치적인 요소를 더 고려하는 것으로 누구를 위한 국방부 조사단인지 모를 일입니다.”
불러도 대답없는 대책단
사실 노근리 사건 처리에 대한 국방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이번 문건 외에도 이미 여러 경우에서도 드러났다. 국방부는 지난 6월22일, 제212회 임시국회 국방위에서 올 연말에야 진상조사의 종결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런 국방부의 태도는 조사기한을 올 가을까지로 잡고 있는 미국보다 후퇴한 것으로, 미국쪽의 입장을 지나치게 옹호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국방부는 또한 지난 94년 7월에 당시 정은용 노근리 대책위원장이 노근리 사건을 다룬 실화소설 를 발간하고 이를 각종 언론이 추적보도하자, 국방군사연구소를 통해 자체 조사를 벌였었다. 국방군사연구소는 이 조사에서 주민들 증언청취 등을 통해 미군들의 학살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당시 미국쪽에 해명을 요청한 결과 아무런 답변이 없자 주한미군사령부로 피해자 진정서를 이첩하는 선에서 종결처리했다. 이미 6년 전에 노근리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국방부 스스로가 회피한 것이다.
노근리 사건 대책단(대책단장 국무조정실장)의 태도도 노근리 피해자 및 유가족들을 분노하게 하고 있다. 대책단이 진상조사에 소극적인데다 미국쪽에 지나치게 끌려가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게 노근리 사건 대책위의 평가다. 그 사례 하나. 대책위는 지난해 11월24일 국무조정실에 “노근리 사건 진상조사에 대한 진척사항을 중간발표하고 그 내용을 통보하도록 미국과 협의해 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이에 대해 국무조정실은 “진상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내용을 중간발표할 경우 진상조사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등 지극히 의례적인 내용의 답변만 보냈다. 국무조정실은 또 노근리 대책위가 정부진상조사반에 강창일 배재대 교수 등 두 민간인의 참여를 바란다는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필요할 경우 추천하는 인사에게 자문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라는 형식적 답만 보냈다.
진실을 원한다면 민간인 전문가 참여를!
사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은 영동군 노근리뿐만 아니다. 이 땅 곳곳에서 또다른 노근리가 있었다. 마산, 거창, 산청, 익산 등지에서. 그러나 지금 50년 세월이 흘렀어도 한국은 노근리 사건 하나조차 아직 그 실체를 명백히 규명하지 못한 채 미국에 그 배상은커녕 진상규명조차도 확고하게 요구하지 못한 실정이다.
노근리 대책위 관계자는 “나름대로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하는 국방부 등 정부 실무 책임자의 노력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기본 시각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면서 정부 관계자들의 좀더 적극적인 진상규명 의지를 촉구했다. 노근리 대책위는 이를 위한 방법의 하나로 대책위가 지정하는 민간인 전문가 참여를 한·미 양쪽 조사단이 보장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할 때 미국은 스스로 인권국가란 명예를 되찾고, 한-미간의 진정한 우호도 다지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노근리 사건은 사실(史實)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역사의 정사, 그 어느 페이지에도 기록돼 있지 않다. 노근리 사건 대책위의 주장을 토대로 당시 사건을 재구성해보자.
사건은 1950년 7월26일 정오께. 당시 충북 영동군 황간면 주곡리, 임계리 등지의 피난민들이 황간면 서송원리를 지날 때였다. 미군 5∼6명이 나타나 피난민들을 경부선 철로로 인솔했다. 노근리에 이르자 소지품 검사를 했다. 그러다 미군 통신병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얼마 뒤 미군 전투기가 날아와 피난민들에게 폭탄을 터뜨리고 기총사격을 가했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쌍굴다리 안으로 달아났다. 미군은 이날 오후 3시께부터 29일 새벽까지 무려 60시간 동안 쌍굴 양쪽에 기관총 진지를 구축하고 사람이 나오면 무조건 사살했다. 나중에는 아예 입구에서 마구 쏴댔다. 어린아이, 노인 할것없이 죽어갔다. 아비규환의 지옥이 따로 없었다. 몇명이 야음을 틈타 쌍굴을 탈출했고, 쌍굴 안에서 살아남은 이는 기껏 10여명. 아직도 남아 있는 숱한 탄흔은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방증하고도 남는다. 이로 인해 희생된 사망자 수는 당시 400∼500여명이라고 했다. 대책위가 지금까지 확인한 수는 사망자 135명, 부상자 47명 모두 182명이다.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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