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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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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반지를 이종석에게!

등록 2006-01-10 15:00 수정 2020-05-02 19:24

통일부 장관에 국가안전보장회 상임위원장 겸직, 노무현의 ‘몰빵’인가
새 외교안보팀 수장 능력, 6자회담 재개와 DJ 방북으로 실험대 오른다

▣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김근태·정동영의 당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가던 2005년 12월 하순의 어느 날.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은 자신의 통일부 장관 입각설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제 미래를 제가 어떻게 말씀드리겠냐”며 말을 끊었다. 그러면서 그는 좀체 하지 않던 자신의 스타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넥타이 매는 게 싫고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1986년 대학 졸업 뒤 잠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한 것도 판에 박힌 공식적인 생활이 싫어서였단다. 정무직 고위공무원인 그는 이날도 잠바 차림이었다. 그러곤 자기 취미가 민물낚시라며 “내년(2006년)에는 매주 토요일에 본격적으로 낚시를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긴 그는 2005년 들어서 여기저기 쏘다니며 낚시를 열심히 하겠다고 승용차를 아예 쏘렌토로 바꿔버렸다.

그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불편하다며 넥타이를 풀곤 한다. 그렇다고 자유분방한 스타일도 아니다. 그를 ‘형’이라고 부르는 이는 ‘성실하지만 건조한 인간형’이라고 평했다. ‘성실’은 꼼꼼한 업무 처리 방식과 ‘일 중독자’ 평판과 연관돼 있고, ‘건조하다’는 말은 ‘덕이 부족하고 재미가 없는 사람’이라는 일부의 평가를 연상시킨다.

꼼꼼한 일 중독자 “성실하지만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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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그는 2006년엔 평소 좋아하는 낚시를 많이 하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2005년 하반기부터는 토요일엔 모든 걸 끊고 낚시를 해왔다. 세상이 다 아는 ‘일 중독자’인 그가 말이다. 그의 이 말은 ‘청와대 생활을 접고, 민간 전문 연구자로 돌아가겠다’는 ‘주장’을 은근히 드러낸 것이었다. ‘청와대 생활은 이제 그만하겠다’는 뜻은 확고해 보였다. 2003년 1월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꼬박 3년을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으로서 노무현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며 격랑의 세월을 보냈으니 지칠 만도 하다. 2차 북핵 위기와 6자회담, 이라크 파병, 한-미동맹 재조정 등 일일이 꼽기도 어려운 초대형 현안들이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조정자인 그의 손을 거쳐갔다.

그는 정말로 ‘민간 전문 연구자’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그가 자기 입으로 통일부 장관이 되고 싶다고 한 적은 없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가 뭘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통일부 입성은 예측불허였다. 그를 ‘자주파의 우두머리’라고 부르며 틈만 나면 공격했던 보수 언론은 새삼스러운 건 아니었다. 지난 3년간 그와 함께 일했던 청와대 민정·인사수석실의 386세대와 국정상황실 등 개혁 성향인 진보 진영의 공격이 더 무서웠다. 게다가 정치권의 자천타천 인사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통일부 장관 자리가 그에게 갈지는 점치기 어려웠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인사권자인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이 관건이었고, 그 다음을 꼽는다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누구를 추천할 것인가였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12월27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노 대통령의 조찬 회동은 결정적이었다. 정 장관이 장관직 사의를 표명하며, 이종석을 천거했기 때문이다. 정 장관은 이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정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정 장관의 천거가 큰 힘이 됐을 것”이라고 평했다. 따라서 2일 청와대가 이종석의 통일부 장관 내정을 발표했을 때 더 큰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누가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 자리를 맡을 것인가인데, 이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구실과 한계, 나아가 노 대통령 집권 후반기 2년 외교안보·통일 정책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언론에는 김하중 주중대사가 국가안보회의 사무처를 대체할 청와대의 안보정책실 실장(장관급)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다. 그리고 그의 비중으로 볼 때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도 겸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렇다면 이종석으로선 형식적으로 차관급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에서 통일부 장관으로 ‘영전’하는 것이지만, 내용적으론 ‘힘’이 전만 같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권력은 문고리에서 나온다”는 속설처럼, 대통령의 청와대에서 멀어지며 영향력 또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게다가 통일부 장관이 외교안보 정책을 조정하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조선노동당 연구하며 정치력 키웠다?

그러나 이런 관측은 보기 좋게 어긋났다. 이종석이 상임위원장직을 맡게 됐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배려로 청와대 안보정책실 실장도 중량급이 아닌 인물이 추천됐기 때문이다. 이는 대통령이 이종석에 대한 신뢰와 이종석을 통해서 외교안보 정책을 펼쳐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초대 안보정책실장엔 이수혁 주독일대사와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추천된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 대사 쪽이 ‘낙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대사는 참여정부 초기 북핵 문제를 맡는 외교부 차관보로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이었던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또 안보정책실장 바로 밑인 안보정책수석비서관(차관급)에는 서주석 안보회의 전략기획실장이, 서 실장의 후임인 전략기획비서관엔 박선원 국장이 승진 기용되는 게 확정적이다. 둘 다 민간 연구자일 때부터 이 내정자와 관계를 다져왔고,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외교안보 정책 조율의 호흡을 맞춰온, ‘이종석의 동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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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새 외교안보팀은 ‘이종석 체제’라고 할 만하다. 그동안 정부 안에선 정치권에 기반이 없고 실무 전문가형으로 대통령의 참모 구실을 해온 이 내정자가 카리스마가 필요한 외교안보팀 수장 노릇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돼왔던 게 사실이다. 이런 외교안보팀 재편 구도는 무엇보다 노 대통령이 이 내정자에게 전적으로 힘을 실어줌으로써 가능했지만, 이 내정자의 잘 드러나지 않은 ‘정치력’이 발휘된 측면도 없지 않다.

지난 3년간 주한미군 감축 논란(2003년 7월),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상과 관련한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2003년 11월), 정동영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이 직접 조사한 전략적 유연성 및 ‘개념계획 5029’ 관련 논란(2004년 5월) 등 ‘낙마’ 위기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인들 사이에선 “조선노동당 전문 연구자인 그가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을 들여다보다 자신도 모르게 정치감각을 키운 것 같다”는 농담성 평이 오가기도 한다.

‘이종석으로의 힘쏠림’을 놓고, ‘남북관계만 중시하고 한-미동맹을 상대적으로 경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기조와 이종석의 위치를 고려할 때, 진실에 가깝기보다는 흠집내기식 정치 공세에 가깝다. 다 알다시피, 이종석은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외교안보 정책의 빛깔과 방향을 상징하는 ‘아이콘’에 가깝다. 김대중 정부 시절 외교안보 분야의 실무 총책임자였던 임동원 외교안보통일특보가 보수세력의 집중 공격을 받았던 것처럼, 현 정부에선 차관급에 불과한 그가 집중타를 맞았다. 그만큼 직급과 관계없이 그의 비중이 높았거나, 적어도 밖에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달리 말하면, 이는 이종석 체제의 새 외교안보팀이 그동안 정부가 다져온 평화번영 정책 등 대북정책과 외교안보 정책의 기조를 그대로 끌고 가리라는 전망을 낳는다. 다만 지난 3년간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조정자’ 노릇을 해온 그가 무대의 전면에 나선 만큼, 그간 정책 집행의 강도와 밀도가 높아질 수는 있다.

참여정부 평화정책, 강도·밀도 높아지나

그러나 실무 전문가형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그가, 강력한 카리스마와 고도의 정무적 판단으로 격동의 한반도 정세를 원만히 풀어갈 수 있을까? 현재로선 ‘기대 반 우려 반’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이종석 체제의 역량을 가늠해볼 시험대는 많다. 우선 6자회담의 재개는 첫 관문이 될 것이다. 또 지난 1일 “날씨가 풀리면 평양에 가겠다”고 밝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도 중요하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김 전 대통령이 방북한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게 확실하고, 한반도의 정세에 끼칠 영향도 클 수밖에 없다. ‘DJ의 방북’을 어떤 전략과 방식으로 현실화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 등에 중대한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 이 때문인지 벌써 보수세력은 ‘무작정 방북은 곤란하다’며 딴지걸기에 나서고 있다. DJ의 방북은 고도의 정세 판단과 정책적·정무적 판단이 결합돼야만 성과를 낼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이종석 체제의 솜씨를 가늠해보는 사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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