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근리 사건에 대한 미국쪽의 태도는 더욱 문제다. 한마디로 그들은 진상규명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노근리 사건 대책위 사람들의 공통된 평가이다.
지난해 9월29일 미국 'AP'가 노근리 학살 사건을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전사자료를 발굴보도하면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도 공식 진상조사단이 구성됐다. 이에 따라 노근리 사건 미국쪽 대책단장인 루이스 칼데라 육군부 장관과 자문위원단이 올 1월10일 학살현장인 쌍굴다리를 방문했다. 이들은 증언을 듣고 탄흔도 조사했다. 미 국방부도 지난 6월6일 한국전쟁 당시 ‘진지로 접근하는 모든 피난민을 사살토록 하는’ 협조가 공군에 요청된 것을 입증하는 메모를 확보했음을 시인했다. 이에 따라 노근리 사건 유가족들은 망자들의 원혼을 풀어줄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리라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미국은 지금까지 이렇다 할 조사결과를 발표하지 않았고 조사상황도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내 언론보도는 물론
미국의 침묵은 정씨 등 피해자 및 유가족들로 하여금 “미국 정부가 노근리 사건에 대한 적극적 해결의지가 없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아가 미국이 이 사건의 본질을 축소시키거나 아예 왜곡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피해자 및 유가족들의 이런 우려는 그동안 미국쪽에서 보여준 여러 태도로 볼 때 충분히 가능하다.
먼저, 노근리 사건 피해자 대표들이 지난해 11월12일 미 국방부를 방문했을 때, 크레이긴 부차관 등 미국 정부 진상조사단은 “진상조사를 투명하고 신속히 그리고 객관적으로 벌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약속은 전혀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게 노근리 대책위의 판단이다.
“투명하게 할 작정이면 조사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질질 끌 이유가 없고, 객관적으로 조사하겠다는 말도 믿을 수 없다”는 게 대책위 대변인 정씨의 말이다. 올 1월 한국에 온 칼데라 미 육군 장관은 “한국전쟁 50주년이 되는 올 6월25일까지 사건의 진상조사를 최대한 끝내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의 공언도 공염불이 됐다. 칼데라 장관은 또 올 초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에 관련된 참전군인들은 조사결과에 따라 형사처벌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발언해 의혹을 샀다. 이 발언은 사건의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조사대상 미군들의 자발적인 증언을 가로막을 위협적인 발언이기 때문이다.
미국쪽은 한국 정부가 요구한 노근리 사건에 대한 한·미공동조사를 거부하고 사건조사에 필요한 주요자료들이 미국에 있는 점을 활용해 사건 규명에 핵심적인 자료를 제대로 한국쪽에 넘겨주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더욱이 지난 4월 미국은 1950년 8월6일 미국 항공기가 촬영한 노근리 사건 현장사진이라면서 엉터리 사진을 한국 국방부에 건네준 적도 있다고 대책위는 주장한다.
또한 미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5월11일 “그동안 미국 노근리 사건 조사단이 미국 제대군인 100여명으로부터 받아낸 증언과 한국 피해자들의 증언이 엇갈린다”는 이유로 조사 실시시한을 올 가을까지 연장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올 6월6일에는 미 국방부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1950년 7월25일에 작성한 터너 로저스 공군 대령의 메모에 노근리라는 지명이 없으므로 당시 미 육군이 미 공군에 대해 ‘미군진지로 접근하는 모든 한국 피난민들에 대해 기총소사를 해달라’고 한 요청이 노근리 사건과는 관련이 없을 것이다”고 망언까지 한 일이 있다고 대책위는 주장한다. 게다가 객관성을 위해 피해자들이 신청한 미국인 탄약감식 전문가를 조사에 입회시켜달라는 요구에 미국쪽은 거절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미국이 노근리 사건 발표를 질질 끌고 있는 데는 현 클린턴 정부가 복잡한 이 사건 처리를 차기 정권으로 넘겨 사건을 대충 무마하려는 게 아닌가”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 미국쪽이 오는 11월 대선을 맞아 재향군인회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추측도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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