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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우리, 삼남매를 키운다”

등록 2005-09-28 15:00 수정 2020-05-02 19:24

‘비용 대비 산출’이라는 경제 공식 버리고 ‘큰 결심’을 감행한 부모들
부대끼며 자라는 아이들에 안도하지만 정부에 대한 서운함 버릴 수 없어라

▣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열린우리당 이상민(47) 의원은 지난 8월29일 오전 3.0kg의 첫딸을 얻었다. 7살, 4살짜리 아들에 이어 세 번째 아이였다. 이 의원은 딸을 얻은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평균 출산율이 1.16이라는데, 나는 3명이나 낳았으니 이것만으로도 애국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에 맞서 세 아이를 낳는다는 게 이 의원 같은 정치인에게는 떳떳하고 내세울 만한 일인지 몰라도, 평범한 부모들에게는 아직 힘든 일이다.

“제발 외계인 보듯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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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곳 대한민국에서 세 아이를 낳는 건 ‘외계인 취급 당하는 것’을 무릅쓰는 일인지 모른다. ‘무자녀’가 수모와 조롱의 대상이 되던 시대는 급속도로 지나가고 있다. ‘무자녀 혁명’이나 ‘출산 파업’과 같은 낱말이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 유행어가 될 만큼 출산과 육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치는 많이 변했다.

6살(영웅)과 4살(영진)짜리 아들에 이어 지난 5월 딸(영채)을 출산한 윤진숙(29·서울 종로구 창신동)씨가 셋째를 얻은 뒤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너 돈 많은가 보다”는 비아냥이다. “그런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그냥 ‘그래, 나 돈 많다’고 무시해버려요. 사실은 돈이 없지만요.”

윤씨는 최근 세 자녀 부모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몸소 체험했다고 털어놨다. “아이 셋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이 외계인 보듯 해요.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안 그래도 심란한 세상인데, 아이 많이 낳는 사람을 우대해줘야죠. 얼마 전엔 옷을 사러 아이들 셋을 데리고 동대문에 갔는데 주변의 시선이 이상한 거예요. 우리 애들을 보더니 사람들이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본 12명 자녀 가정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거 봤냐, 그게 사람이냐 동물이지, 그런 얘기하면서 수군거리더라고요. 그 뒤로는 아이 셋 데리고 길거리 나서기가 두려워요.”

그래도 윤씨는 셋째를 낳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딸을 원했고, 소원대로 딸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이들끼리 서로 잘 놀 때가 가장 보기 좋다. 아이가 셋이나 되지만,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면 허전해질 만큼” 그는 진짜 아이를 좋아한다. 세운상가에서 에어컨 등 냉난방기를 설치하는 일을 하는 남편의 상황이 안 좋아 경제적인 여건은 더 어려워졌지만, 남들이 하는 사교육을 따라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는 셋째가 태어난 직후 다음카페에 ‘세 아이의 엄마들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세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아이들 키우는 데 너무 힘이 들기 때문에 사회적 지원에 대한 관심도 많고 정부 지원책에 대한 정보 갈증도 심해요. 그런데 정부가 지원한다고 하지만 지원을 받으려면 자격 요건도 까다롭더라고요. 별로 혜택을 받을 만한 것이 없어요. 많이 낳으라고 하면서도 바뀌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주선희(35·서울 중랑구 망우2동)씨는 최진훈(7)·효광(6)·윤서(4)를 키우는 전업주부다. 2002년 그는 “정말로 큰 결심을 한 뒤”에 막내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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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타면서 기분 나쁜 이유

삼남매를 키우는 게 왜 좋은지에 대해 주씨는 “사회성이 길러지는 점”을 꼽았다. “큰애한테 ‘동생들하고 같이 놀고 있어라’고 하면 정말 동생들을 돌봐요. 여동생이 울 때는 달래면서 돌봐주기도 해요. 자기들끼리 아웅다웅 싸우는 것을 보면 ‘힘들어도 낳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가 하나밖에 없으면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 있어야 하잖아요. 저는 큰애 믿고, 맘 편하게 주변에 일보러 다닐 수 있어서 좋아요.”

홍해선(34)·채정희(32)씨 부부는 첫째딸 여진이(9)에 이어 두 아들 승하(6)와 승지(4)를 낳았다. 세 아이를 둔 이후의 변화를 묻자, 채씨는 “가족 사이에 사랑이 더 커진 것 같다”고 했다. 특히 남편이 막내를 많이 좋아한단다. “옛말에 셋째 아이한테는 돌부처도 돌아선다는 말이 있잖아요. 가족 모두 막내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죠.”

채씨는 또 “아이들이 형제관계 속에서 스스로 크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고 했다. “큰아이가 작은애들 공부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해요.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놓이죠. 부모로서 무책임한 말 같기도 하지만,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도 있잖아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서로 부대끼면서 자란다는 걸 느껴요.”

이은희(26)씨는 애초부터 세 아이를 낳으려는 계획에 따라 세 아이(6살과 4살짜리 아들과 2살짜리 딸)를 낳아 기르고 있지만, 여간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둘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데 셋 있을 때는 열 키우는 것같이 힘들어요. 오죽하면 선녀와 나무꾼 얘기에서 산신령이 애 셋 낳기 전까지는 날개옷을 보여주지 말라고 했겠어요. 큰애 때부터 기저귀가 떨어지지 않고 계속 있었어요. 6년 내내 고생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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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정부의 지원책이 너무 부족해서 서운함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이씨는 버스 탈 때 돈 내는 문제부터 꼬집었다. 애들 셋을 데리고 타면 어른 하나와 초등학생 두명분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버스운송규정을 보면 어른과 같이 타는 미취학 아동 1명만 무료 승차가 가능하다. 이씨는 “얼마 안 되는 거지만 기분이 매우 나쁘다”며 “이런 식이라면 누가 아이를 낳으려고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아들’목적으로 한 셋째 출산도 있지만…

김지연(43)씨는 늦둥이를 낳은 경우다. 고등학교 2학년인 큰딸에 중학교 3학년인 둘째 아들에 이어 지금 여섯살인 막내를 2000년에 낳았다. 그는 “느닷없이 생긴 막내 덕분에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 더 느껴진다”고 했다. 막내는 올해 3월부터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한달에 18만5천원이 들어가 다른 사교육은 엄두를 못 낸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11월23일 발표한 2004년 4분기 소비자태도 부가조사(노후 불안감 확산에 따른 가계의식 조사)를 보면 전체 조사대상 1천 가구 가운데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로 60.6%가 ‘양육비와 교육비 증가’를 꼽았다. 흔히 생각하듯이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나 ‘여성의 출산기피 현상’을 꼽은 응답은 각각 20.3%와 12.3%에 불과했다.

동덕여대 한국여성연구소가 지난 상반기 보건복지부에 낸 보고서 ‘출산 의욕 고취를 위한 사회적 대처방안’을 보면 전국 2767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상적인 자녀수’로 현재의 합계출산율(1.16명)을 훨씬 웃도는 평균 2.2명을 들었다. 낳고는 싶은데 못 낳고 있는 셈이다. 무자녀 선호 응답자들은 그 이유로 51%가 ‘경제적 부담’을 꼽았다. ‘부부만의 애정으로 충분하기 때문에’는 37.4%, ‘일에 부담이 간다’는 7.7%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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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전문가들은 형제자매 관계가 전체 인생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세 아이를 기르는 것이 아이들의 사회성을 높이고 정서지능(EQ)를 높이는 데도 유리하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형제자매는 동료적 관계, 도움, 정서적 지지의 원천이 되는 동시에 놀이친구·공부친구·교사·학습자·보호자·의존자·경쟁자 등 서로에게 다양한 구실을 한다. 특히 남자든 여자든 하나뿐인 ‘외동아’나 남자아이들로만 이뤄진 ‘형제’ 여자아이들로만 이뤄진 ‘자매’보다는 혼성의 ‘남매’가 정서지능 발달에 긍정적이라는 연구(상자기사 참조)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공주대 유아교육과 김상희 교수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형제자매 관계가 있어야 사회적 관계인 또래 관계로 넘어갈 수 있는데 동성일 때보다는 혼성으로 형제자매 관계가 구성되는 것이 다른 성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사회적 안전망 확보 뒤따라야

세 아이를 기르는 이들이 모두 자식 기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아들을 낳으려는 목적으로만 세 아이를 낳는 이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 출생·사망 통계 결과’를 모면 셋째 아이의 성비(여자아이의 수를 100으로 하고, 남자아이의 여자아이에 대한 비를 나타내는 수치)가 지난해 현재 132였다. 전체 출생 성비 108에 견줘 훨씬 높은 비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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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은 아이를 낳은 문제까지도 비용 대비 산출의 경제적 관점으로만 보는 사회적 풍조에 일정 정도 반기를 들고 싸우고 있다. 보육 인프라의 획기적인 개선,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지지와 지원, 임신-출산-육아로 이어지는 여성노동에 대한 사회적 재평가와 보상 등 사회적 안전망의 확보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들은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두개의 장벽에 둘러싸인 또 다른 이름의 ‘사회적 소수자’가 될지도 모른다.



삼남매의 최소 보육비 부담은?

주신희씨네 한달 지출 71만원, 내년엔 97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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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희(35)씨네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중산층이다. 남편 최영민(37)씨는 석재를 취급하는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한다. 남편의 수입은 경기에 따라 출렁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을 느껴본 적은 없다. 주씨는 “그래도 남들처럼 아이들 사교육에 들일 돈은 없다”고 말했다. 의식주에 들어가는 돈과 의료비를 뺀 이 집의 ‘순수 보육비’는 얼마나 될까.
한살 터울인 큰아이 진훈(7)이와 효광(6)이는 서울 중랑구 금파어린이집에 다닌다. 어린이집에는 한달에 보육료(21만7천원)와 특별활동비(2만원)를 합쳐 23만7천원을 낸다. 거기다 아이들 한글을 깨우치기 위해 매주 한글나라 선생님(3만8천원)을 부르고,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동네 태권도 학원(7만원)에도 보낸다. 그나마 서울시에서 막내 윤서의 어린이집 보육비를 내줘 가계에 큰 보탬이 된다. 그러나 애초 “셋째아이의 보육비를 모두 책임지겠다”는 서울시의 호언과 달리, 만 2살까지만 보육비를 부담하기로 해 내년부터는 윤서 보육비(26만4천원)도 주씨네 부담이다.
내년부터 주씨네가 부담해야 하는 순수 보육비는 한달에 97만5천원. 주씨는 “강남에서 한다는 영재교육이나 조기 영어교육은 꿈도 못 꾼다”며 사교육을 최대한 줄이고 줄인 게 이 정도”라고 말했다.




형제자매 구성, 당신은 몇점?

3명 이상>2명>외동아의 순으로 정서지능이 높게 나온 연구결과도

형제자매 관계가 다른 인간관계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무엇보다 생물학적 유전형질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형제자매의 99% 이상이 33~99% 정도의 공통된 유전자를 가진다는 게 생물학의 연구결과다. 또 인생주기 전체에 걸쳐 지속하는 인간관계라는 특징도 있다. 다른 가족관계와 비교할 때 본질상 더 평등하며 동료관계의 특징인 ‘호혜성’이 가장 큰 속성이다.
형제 수와 관련해 외동아보다는 형제자매 사이가 성격 형성이나 정서지능(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평가하고 표현하는 능력, 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조절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성취하기 위해 정서를 이용하는 능력)에 긍정적인 구실을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론이다. 그러나 형제가 너무 많은 것도 좋지 않다고 한다. 즉, 형제 수가 너무 많아지면 부모의 관심이 분산돼 한 아동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어들고 그만큼 아동의 자존감이 줄어들게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결국 적당한 형제 수는 상호 협조하고 경쟁하는 가운데 사회성과 안정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공주대 김상희 교수는 “이상적인 자녀 수를 숫자로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외동아가 아닌 다수의 형제자매들이라 해도 부모의 양육 태도에 문제가 있을 때, 예를 들어 편애를 하게 되면 분노와 질투가 커져 협력하는 관계에서 갈등하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형제 구성(외동아, 형제, 자매, 남매)에 따른 유아의 정서지능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연구한 것도 있다. <형제 자매 구성 형태에 따른 유아의 정서지능의 차이>(우은숙, 중앙대 교육대학원 석사)를 보면 자기 조절이나 타인 인식 측면에서 남매나 자매가 외동아나 형제보다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가족구성 형태 및 형제자매 수와 정서지능과의 관계>(정길화, 창원대 교육학과 석사)라는 연구에서는 형제자매 수를 외동아, 2명, 3명 이상으로 나누어 구분한 결과 3명 이상 > 2명 > 외동아의 순으로 정서지능이 높게 나왔다.
이런 연구결과들을 종합해보면 아이를 가진 엄마들 사이에서 떠도는 ‘딸 낳고 아들 낳으면 200점, 아들 낳고 딸 낳으면 100점, 딸 둘 낳으면 50점, 아들 둘 낳으면 0점’이라는 자녀 구성에 관한 우스갯소리는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화여대 박성연 교수는 “3명 이상 자녀의 형제자매 관계 연구는 출산이 활발히 이뤄졌던 70년대를 끝으로 최근까지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다”면서 “한명 또는 두명만 낳는 사회 분위기가 지속되다 보니 연구 샘플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혼성으로 3명 이상을 낳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경제사정도 고려해야 하니까 현실적으로는 3명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앞으로 출산을 장려하는 문화가 확산되는 것에 발맞춰 이와 관련한 연구도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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