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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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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은 사랑받으리라

등록 2005-06-28 15:00 수정 2020-05-02 19:24

성적부진 탈출 지상과제로 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
‘4-3-3 포메이션’ 때 허리 담당하는 ‘3’ 자리에서 킨·스콜스와 함께 활약할 듯

▣ 한준희/ 문화방송 축구해설위원·사커라인 수석필진

맨체스터에 도착한 박지성의 제일성은 “나는 아시아 마케팅 시장 공략을 위해 이곳에 온 선수가 아님을 증명할 것”이었다. 그가 아직 그 ‘증명’의 첫발을 내딛기 전이라 하더라도, ‘꿈의 구장’ 올드 트래포드의 열성적 서포터들이 박지성에게 거는 기대는 애당초 마케팅의 차원이 아닌 순수한 ‘축구적’인 차원의 것일 게다.

‘즉시 전력감’으로 손색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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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맨유의 전설적 지도자 알렉스 퍼거슨이 박지성을 영입한 일은 몇 가지 순수한 축구적 의미에서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보이는 까닭이다. 우선 맨유와 퍼거슨 감독이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AC밀란을 상대로 득점을 터뜨리며 훨훨 날았던 박지성의 모습을 보고 그를 ‘충동구매’했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유럽의 클럽들, 특히 ‘극도로 영리한 승부사’ 퍼거슨이 이끄는 맨유의 선수 스카우트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박지성에 대한 그들의 깊은 인상은 2002 월드컵 직전에 치러진 한국과 잉글랜드의 평가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박지성은 잉글랜드와 프랑스를 상대로 멋진 활약을 펼쳐보였을 뿐 아니라 월드컵에서도 그 활약상을 이어갔다. 퍼거슨이 가지고 있을 수십, 수백의 ‘주목해야 할 선수 리스트’에 박지성이 포함되기 시작한 것은 필경 그 시절부터일 것이다(유럽 클럽들의 영입대상자 리스트는 실로 방대하고 정교하게 작성된다). 바로 지난 시즌 네덜란드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보여준 박지성의 꾸준한 플레이는 퍼거슨의 그러한 관심을 ‘완성’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 바야흐로 박지성이 절정기를 맞고 있는 ‘즉시 전력감’으로 손색없음이 판명된 것이다.

맨유와 퍼거슨의 ‘사정’도 박지성의 ‘그라운드 내 맹활약’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우선 맨유는 성적 면에서 과거에 비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티에리 앙리가 건재한 아스날, 최고의 금전 능력을 장착한 첼시가 이미 맨유의 아성을 무너뜨린 상황이며, 극적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일궈낸 리버풀도 과거의 영화 재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칸토나, 휴즈, 슈마이켈, 인스, 킨, 긱스, 베컴 등 맨유 간판들을 앞세워 밀어붙이는 것이 가능했던 옛날의 사정과는 크게 달라졌다. 또한 맨유는 중대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이윤 추구를 주목적으로 하는 미국의 맬컴 글레이저가 맨유의 지배권을 손에 넣으면서 반 니스텔로이, 베론, 페르디난드, 호나우두, 루니로 이어져온 ‘빅 사이닝’에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윤 추구를 위해서는 클럽의 성적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필연적 명제가 존재하는 까닭에, 퍼거슨은 그 어느 때보다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선수단 운영에 고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성적 향상은 티셔츠 판매보다 월등 중요하다. 박지성은 이러한 시기에 적지 않은 이적료로 맨유 유니폼을 입게 됐다. 박지성의 영입으로 클레베르손, 포춘, 필립 네빌 같은 선수들의 입지가 불투명해지고 방출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것은 박지성이 ‘마케팅용 선수’가 결코 아니라는 방증이다.

팀내 최대의 적수는 대런 플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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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맨유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다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다. 세계적 재능으로 칭송받던 베론이 실패를 경험했으며,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 멤버 클레베르손과 프랑스리그의 정상급 신예 젬바젬바가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글래스고 셀틱 최고의 젊은 자산이었던 밀러도 아직까지 이렇다 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박지성의 맨유 이적에 대해, 그를 아끼는 일부 팬들이 제기해온 근심 섞인 목소리는 이러한 사실에 기인한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박지성은 앞선 선수들보다 유리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가 요구하는 스타일에 잘 부합하는 재능이라는 사실이다. ‘미드필더에 대한 미드필더의 물리적 도전’이 가열차게 진행되는 리그의 특성을 견뎌내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빠른 무브먼트’, 그리고 물리적 투쟁을 마다하지 않는 ‘투쟁심’이 필요하다. 베론은 의심의 여지없는 패스 솜씨와는 별개로, 바로 그러한 부분에서 예상보다 부족한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박지성은 맨유에 입성할 당시의 젬바젬바와 비교한다면 큰 경기 경험이 훨씬 더 많다. 박지성은 이미 ‘즉시 전력감’으로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박지성은 또 브라질에서 갓 건너왔던 클레베르손과는 달리 에인트호벤에서 충분한 유럽 생활을 경험했다.

포지션 경쟁에서도 맨유는 박지성에게 긍정적인 환경이다. 퍼거슨은 잉글랜드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맨유 특유의 축구’를 다각도로 시도해온 전략가다. 그가 최근 추구해온 스타일은 ‘3R’(호나우두, 루드, 루니)를 일선에 포진시키는 ‘4-3-3’ 포메이션이다. 이 그림에서 박지성은 허리를 담당하는 ‘3’의 자리에서 킨, 스콜스와 더불어 활약하게 될 공산이 크다. 박지성의 경쟁자가 될 법한 선수들이 방출설에 연루되고 있는 가운데, 최대의 적수로 꼽힐 만한 인물은 공헌도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대런 플레처다. 하지만 플레처는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다. 박지성에겐 분명 플레처와 구별되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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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드라이어 트리트먼트’만 적응한다면…

‘첼시와 겨룰 만한 금전 능력이 있었다면’ 맨유의 ‘여름 1번 타깃’이 리옹의 에시앙이었다는 점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떤 의미에서 에시앙은 ‘검은 박지성’이라는 호칭이 가능할 만큼 박지성과 여러 특성들을 공유하는 선수다. 바로 그 에시앙이 영입됐다면, 맨유의 예상 포메이션은 ‘4-3-3’이 될 공산이 컸다. 물론 전설적인 선수 라이언 긱스가 가세하는 포메이션이라면 맨유는 ‘4-4-2’에 더 가까운 형태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경기에서 박지성은 좀더 첨예한 경합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여지가 있지만, 이 경우라도 박지성은 미드필드의 전 영역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일 뿐 아니라 긱스, 킨, 스콜스의 나이가 적지 않다는 점도 희망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무엇보다 박지성에겐 그 어떠한 스타도 능가할 수 있는 열정과 성실성, 체력이 있다. 그리고 이런 덕목이야말로 집념의 사나이 알렉스 퍼거슨이 가장 선호하는 것들이다. 일단 퍼거슨의 유명한 ‘헤어드라이어 트리트먼트’(선수의 머리에 바싹 붙어 호통치며 고문(?)하는 특유의 행동)에 적응하고 나면, 어느새 박지성은 퍼거슨과 올드 트래포드의 시끄러운 서포터들에게서 사랑받는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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