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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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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고 안에 둥지 튼 ‘수상한’ 특목고

등록 2005-02-23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부산 ㅎ여고 재단의 외국어고 설립 인가 논란…교장 정순택씨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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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과 2002부산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장을 역임한 정순택(63)씨가 지난 2003년 한 외국어고등학교를 설립한 것을 놓고 부산 교육계가 시끄럽다. 정씨는 부산시 초대 민선 교육감을 지내고 교육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통령 훈장까지 받는 등 부산 교육계의 거물로 꼽히는 인물이다.

재산 추가 출연 없이 설립을 인가하다

정씨는 2003년 3월 실업계인 ㅎ여고 교장에 취임한 지 5개월 만에 부산시교육청으로부터 외국어고 설립 인가를 받았는데, 이를 놓고 특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정씨의 부인이 이사장으로 있는 ㅎ여고의 재단이 별도로 학교 터를 마련하지 않고 기존의 ㅎ여고가 사용하던 건물에 외고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재단은 ㅎ여고의 노후시설 교체 명목으로 20억여원의 국고를 지원받아 건물 증·개축 공사를 끝낸 뒤, 이 건물을 외고 교실로 사용해 ㅎ여고 학생들의 큰 반발을 샀다.

정씨는 외고 설립 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지난 2월16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실업계 지원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듦에 따라 ㅎ여고의 규모를 줄이고 그 대신 외고를 설립한 것”이라며 “기존의 수익용 기본재산이 여유가 있기 때문에 외고를 새로 설립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부산시교육청(교육감 설동근)이 2003년 7월24일 허가한 이 외고의 설립 인가 서류에는 ㅎ여고 재단은 토지와 건물 11억여원의 수익용 기본재산(학교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위해 출연하는 재산)을 확보해, ㅎ여고와 신설 외고 설립을 위해 필요한 기준액 10억여원을 초과한 것으로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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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는 교육부의 방침에 크게 어긋난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 최순영 의원(민주노동당)의 국정감사 서면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학교법인(재단)이 새 학교를 설립할 때는 추가 출연에 의한 경우에만 인가 여부를 검토하고 있음”이라고 답했다. 기존에 학교를 갖고 있던 재단이 새로 학교를 설립할 경우 재산의 추가 출연이 있을 경우에만 인가를 검토하도록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새로 설립한 학교가 수익용 재산 부족으로 부실하게 운영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교육부의 방침대로라면 ㅎ여고 재단의 외고 설립은 추가로 재산을 출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인가 검토 대상도 안 된다. 하지만 부산시교육청은 이를 무시하고 이 외고의 설립을 인가했다. 부산시교육청의 논리는 이렇다. ㅎ여고 재단이 ㅎ여고를 설립할 때(1969년) 출연한 수익용 재산이, ㅎ여고와 새 외고를 함께 운영할 만큼 충분한 여유가 있기 때문에 인가했다는 것이다. 54학급이었던 ㅎ여고를 27학급으로 줄이고, 24학급 규모의 외고를 설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법정전입금도 제대로 못내는 재단이…

하지만 이는 ㅎ여고 재단이 그동안 법정전입금을 제대로 내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조처이다. 이 재단은 지난 1999년 학교 재정 규모에 따라 1억여원의 법정전입금을 내야 하는데 실제로는 1천만원밖에 내지 않아 부담률이 9.9%에 불과했다. 더욱이 이 재단은 2000년부터 외고 설립 인가를 받은 2003년까지 법정전입금을 아예 한푼도 내지 못했다. 법정전입금은 기껏해야 전체 학교 재정의 3%에 불과한데도 이 재단은 이를 제대로 못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재단을 “새 학교를 설립할 재정적 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부산시교육청의 근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ㅎ여고를 줄이고 외고를 설립한다 하더라도 그 규모는 51학급으로, 종전 ㅎ여고의 법정전입금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부산시교육청은 이에 대해 “법정전입금은 다른 재단의 사정도 비슷하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았다”며 “이 학교가 3학년 편제가 완성되는 2006년에는 법정전입금을 다 낼 수 있도록 돼 있는 설립 계획서를 참고했다”고 해명했다.

부산시교육청이 수익용 재산에 적용한 기준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모두 51학급(ㅎ여고+외고) 규모의 학교를 운영하려면 지난 1997년 강화된 규정에 따라 30억원 이상의 수익용 재산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부산시교육청은 ㅎ여고가 97년 이전에 설립된 학교라는 이유로 ㅎ여고는 옛 기준을, 외고는 새 기준을 적용해 수익용 재산 기준액을 10억원으로 만들었다. 이는 이 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수익용 재산 11억여원과 짜맞추려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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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여고 재단이 ㅎ여고에 대한 국고 지원금으로 학교 시설을 고친 뒤 이를 외고 시설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더욱 큰 문제로 지적된다. 그 피해가 ㅎ여고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순영 의원의 요청으로 부산시교육청이 제출한 ㅎ여고 재정지원 내역을 보면 이 재단은 지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28억여원을 노후시설 교체 자금으로 지원받았다. 이 재단은 이 돈으로 본관 건물에 최첨단 어학실습실과 컴퓨터실습실을 만드는 등 대대적인 증·개축 공사를 벌였다. 하지만 공사가 끝난 뒤 ㅎ여고 학생들은 본관 건물로 돌아오지 못했다. 본관이 외고 건물로 둔갑한 것이다. ㅎ여고 학생들은 현재 별관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이처럼 무리하게 학교를 만들다 보니, ㅎ여고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끊임없는 ‘민원’이 제기됐다. ㅎ여고뿐만 아니라 외고에서도 부실한 수업 등의 문제로 학부모들의 반발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부산시교육청은 이 학교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교육위원회에서 외고의 수업 부실 문제가 제기돼 특별조사반을 편성해 조사했는데, 교사 수가 부족해 일부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났다”며 “그러나 장학지도로 해결될 문제여서 특별히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막대한 재정지원금 받은 이유

최순영 의원은 “ㅎ여고 재단은 돈 한푼 안 내는 절묘한 방법으로 설립에만 수십억원이 들어가는 외고 하나를 갖게 됐다”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인가가 날 수 없는 학교”라고 지적했다. 부산 교육계에서는 ㅎ여고와 외고 교장을 겸임하고 있는 정씨의 영향력에 주목하고 있다. 부산시 초대 민선 교육감 등 6년여 동안 부산 교육계 수장을 역임한데다 청와대 수석비서관까지 지낸 정씨의 경력 때문에 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부산 교육계의 한 인사는 “그 외고는 정 교장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허가가 날 수 없는 학교”라며 “부산에서 그런 방식으로 학교를 세운 것은 정씨가 처음”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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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의 ‘영향력’을 실감나게 하는 사안은 또 있다. 지난해 12월9일 부산시의회 예산결산특위의 심사 결과, ㅎ여고는 최근 3년간 부산시내 75개 사립고 중 가장 많은 43억여원의 재정지원금을 받았다. 임종영 특위 위원장은 당시 이 문제를 거론하며 “학교 증·개축과 관련해 일부 학교에서 지원 기준이 모호하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숙희 의원(사상1)도 “법정전입금을 적게 낸 재단에 수십억원씩 지원금을 준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김명훈 부산시교육청 기획관리국장은 주목할 만한 답변을 했다. 그는 “ㅎ여고의 경우 교육부가 직접 용도를 지정해서 교부한 것”이라고 답했다. 정씨가 부산시교육청뿐 아니라 교육부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의심할 수 있는 사안이다.

정씨는 이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정씨는 “국고가 최근 많이 지원된 것은 내가 교육감과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을 때 지원되지 않은 것이 한꺼번에 지원됐기 때문”이라며 “청와대에 있을 때 교육부에 ㅎ여고에 대한 지원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ㅎ여고에 실업계 지원자금이 교부된 것은 내가 교장으로 취임하기 전에 결정된 일”이라며 “외고 설립과는 전혀 상관없는 지원금”이라고 해명했다. 부산시교육청도 “정씨의 영향력 때문에 외고 설립을 인가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교육청 관계자는 “실업계 지원금으로 만든 시설이 외고에 사용되는 것은 자원의 효율적 이용 차원에서 일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이상한 논리를 댔다.

실업계 교육의 철학은 왜 바뀌었나

ㅎ여고는 독일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지난 1965년 설립됐다. 이 학교는 내실 있는 교육으로 많은 인재를 사회에 진출시켜 지난 1974년 한국과 독일 두 나라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는 등 명문 실업고로 꼽혀왔다. 정씨는 이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해 교감, 교장을 역임한 뒤 부산 교육계의 거물로 성장했다. 그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발탁된 것도 실업계 교육에 대한 그의 철학과 능력이 높이 평가된 결과다.

그러던 그가 10년 만에 ‘친정’에 돌아온 뒤 돌연 외고를 설립하겠다고 나선 까닭은 뭘까. 정 교장은 이 질문에 “외국어 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키우는 게 나의 오랜 (교육)철학”이었다고 답했다. 인재를 키우겠다는 욕심은 어쩌면 교육자로서 당연한 ‘권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욕심’ 때문에 수백명의 실업계 학생들과 학부모, 졸업생들은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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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건물은 쳐다보기도 싫어요”</font>

“저쪽 건물은 아예 쳐다보기도 싫어요.” 지난 2월16일 부산 ㅎ여고 교정에서 만난 한 학생은 언덕 위의 한 건물을 등진 채 이렇게 말했다. 그가 쳐다보기도 싫다는 건물에는 ‘○○○○외고’라고 쓰여 있었다. ○외고는 운동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ㅎ여고를 내려다보고 있다. “선배들이 사용했던 전통이 깃든 교실인데….” 묘한 감정이 복받치는 듯 학생은 말을 잇지 못하고 교실로 사라졌다.
지난해 11월 <한겨레21>에 제보된 ㅎ여고 학생들의 사연은 이렇다. 지난 2002년 여름 ㅎ여고는 본관 건물 증·개축 공사를 시작했다. 학교가 설립된 지 30년 이상 지났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노후시설 교체 명목으로 수십억원의 국고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공사 소음과 먼지로 수업이 중단되고 임시로 마련된 교실은 일어나서 돌아다닐 공간도 없이 비좁았지만, 학생들은 최신식 교실이 생긴다는 기대에 여러 어려움을 참았다. 하지만 공사가 마무리될 무렵인 지난 2003년 봄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ㅎ여고에 외고가 생긴다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공사를 끝낸 본관 건물은 외고 학생들이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학생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ㅎ여고 교사들은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학생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10년 만에 돌아온 정순택 교장은 그해 여름 외고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더불어 공사를 끝낸 본관 건물은 외고 학생들이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하소연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학생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그러나 학교는 이런 항의에 아랑곳 않고 졸업반 학생들을 동원해 본관 건물을 대대적으로 청소했다. 외고 신입생을 환영한다는 명목으로. <한겨레21>에 제보한 학생의 글은 이렇게 끝났다. “쉬는 시간에 본관 주위를 돌아다니다 교감 선생님께 걸리면 혼쭐이 납니다. 외고 애들 공부하는데 방해가 된다나요.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심한 모멸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정 교장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그때는 학생들이 많이 오해했지만, 지금은 ㅎ여고 교실도 보수 공사를 많이 해서 큰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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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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