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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총파업, 서곡이 흐른다

등록 2004-11-11 15:00 수정 2020-05-02 19:23

단체행동권 향해 본격 저항 나선 공무원노조… 정부 “노동3권 일부 보장만으로도 이미 전향적 조치”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 2001년 6월9일 공무원들이 경남 창원에서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대규모 집회(제1차 전국공무원노동자대회)를 열었다. 당시 집회는 공무원들의 건국 이후 첫 집단적 노동권 선언이었다. 그리고 2002년 전국공무원노조(조합원 14만명)가 출범한 뒤 공무원 집단 연가투쟁(연차휴가 활용)이 이어졌고, 이제 11월15일로 예정된 공무원 총파업이 임박했다. 1998년 이후 줄곧 제기돼온 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을 둘러싼 논란과 대립이 종착역에 이른 것이다.

11월15일 예정… 지도부 검거 시작

정부는 이미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안’을 당정협의를 거쳐 확정한 뒤 국회에 제출해놓고 있다. 그러나 전국공무원노조는 “(일반 노동법이 아닌) 특별법 형식인 정부 입법안은 공무원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전면 금지해 노동기본권을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며 “기존 노동조합법 등을 고쳐 일반법으로 공무원 노동기본권을 인정하고, 원칙적으로 단체행동권을 포함한 노동3권을 완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9∼10일 열리는 파업 찬반투표 등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의 집단행동을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고 공무원노조 지도부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나섰다. 상위직 공무원들이 제정한 법안에 6급 이하 하위직 공무원들이 집단 저항하고, 한쪽 공무원들이 다른 쪽 공무원들의 검거에 나서는 등 공무원 사회가 둘로 나뉘어 대결하는 양상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공무원노조 입법안을 보면 △파업·태업 등 일체의 쟁위 행위를 금지하고 △노조 가입 범위를 6급 이하 일반직 등으로 제한하고 △교섭 및 단체협약체결권 범위는 ‘조합원의 보수·복지 그 밖의 근무 조건에 관한 사항’으로 한정하되 ‘정책 결정에 관한 사항, 임용권의 행사 등 관리·운영에 관한 사항은 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단체협약의 내용 중 법령·조례 또는 예산에 의하여 규정되는 내용은 단체협약으로서 효력을 가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무원노조 이정수 정책기획부장은 “노동3권은 보편적 인권이므로 민간 사업장 노동자와 차별 없이 공무원 노동자에게도 보장돼야 한다”며 “필수적 업무에 대한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터놓고 논의할 수 있지만 아예 쟁의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건 노조활동을 봉쇄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단체행동권은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의 실효성을 담보하는 권리이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전면 금지할 경우 노동기본권은 껍데기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이정수 부장은 또 “이미 합법화된 전교조를 봐도 잘못된 특별법에 묶여 노조활동을 거의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는 단체행동권을 제외한 노동2권을 부여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단체교섭 내용이 크게 제한돼 노동2권은커녕 1.5권도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있는 법안”이라고 말했다. 또 “노조 가입 범위도 법으로 일률적으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노조가 규약을 통해 자주적으로 정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노조는 ‘일반법에 의한 노동3권 보장’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정부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노조 설립신고서를 내지 않고 계속 법외 노조로 남아 활동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노조 법안에 대한 정부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공무원에게 일부라도 노동기본권을 인정해주는 것이 너무 빠르다는 지적이 있음에도 정부가 전향적으로 수용해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법안을 마련했는데 노조가 왜 파업 운운하느냐?”는 것이다. 노동부 박화진 노동조합과장은 “공무원 노동기본권과 관련해 각국의 기본권 보장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딱히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할 만한 것은 없으며, 전교조 수준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 정부 법안”이라며 “공무원 노동기본권은 현재 우리 사회가 서 있는 자리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공무원은 집단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공감대 아니냐”라고 말했다.

국민들의 정서는 어디 있나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의 경우 민간기업 노동자와 동일하게 공무원 노동3권을 보장하는 반면 독일·일본·미국 등은 교섭체결권과 단체행동권에 일정한 제약을 두고 있다. 박 과장은 또 “공무원 조직에서 5급부터 ‘관’(사무관)이라고 이름 붙이고, 중앙부처 5급은 직접 기안자로 정책 결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노동자성보다는) 사용자성이 강하다”며 “이런 관념과 문화를 고려해 노조 가입 범위는 6급 이하로 제한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공무원노조와 교원노조는 탄생의 역사적 과정이 크게 다르다. 전교조는 10여년간 수많은 교사가 쫓겨나고 감옥에 갇히는 등 법외 노조로서 험난한 가시밭길을 거쳐 합법단체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공무원노조는 공무원조직 내부에서 먼저 노조 결성 흐름이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기존 노동운동 세력의 요구와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사회의 공무원노조 허용 권고라는 ‘외부적 힘’에 의해 노조 결성과 합법화 단계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공무원노조 조직은 어떤 의미에서 치열한 노조 건설 투쟁 과정 없이 무임승차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1999년 공무원 직장협의회가 발족한 뒤 2002년 법외 노조인 공무원노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별다른 탄압과 충돌은 없었다.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 수준은 각국의 민주화 수준, 공무원제도, 노동운동의 역량, 일반 국민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공무원이 무슨 노조고 노동자냐?”라는 국민적 정서를 초강경 대응의 원군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실 공무원노조도 여론 싸움에서는 노조가 어느 정도 불리한 지형에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는 일간지·라디오·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공무원노조가 세상을 개혁하겠다’는 광고를 내보내고, 특히 공무원노조에 우호적인 언론 사이트에 조합원들이 자주 들어가 해당 기사를 클릭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우호적인 기사가 다음·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의 뉴스코너 메인기사로 올라갈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공무원노조 비판 기사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댓글을 달아 비판 기사를 위축시키는 전략도 펴고 있다. 공무원노조 이정수 기획부장은 “국민적 동의 수준이 좀 낮더라도 당장 눈앞에 닥친 법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터라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는 요즘 벌이고 있는 행정자치부의 공무원 복무조례안 반대 투쟁(점심시간 근무 거부 및 동절기 연장근무 거부)이 국민 정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바람에 공무원노조법 싸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부소장은 “선진 각국의 공무원노조는 공무원들의 필요성에 대한 자각을 통해 탄생했고, 공무원노조의 활동이 국민들에게 긍정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통해 노동기본권을 획득했다”며 “그동안 공무원노조가 고위 공직자 비리 감시활동을 벌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위직이 다 깨끗한 것이냐? 공무원노조가 단체행동권 보장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국민들한테 다가서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무원노조 관계자는 “‘나도 사실 도둑놈이었다. 그동안 업자들한테 밥 얻어먹고,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노조 간부들도 많다”며 “과거에 지방의 군수 비리를 캐는 과정에서 하위직 조합원 60여명이 함께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는데, 당시 해당 조합원들도 양심고백을 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았다”고 말했다.

파업기금 100억원 돌파… 실제 위력은?

과연 공무원들이 예정대로 총파업에 나설 경우 그 위력은 얼마나 될까? 공무원노조쪽은 “파업기금 모금이 무려 100억원을 돌파했는데, 이는 거의 모든 조합원이 10만원씩 투쟁기금을 낸 것”이라며 “과거에는 권위주의에 젖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했지만, 2년간의 공무원노조 활동을 거치면서 조합원들의 노조 의식이 크게 성장했다. 총파업 때 상경 투쟁할 조합원 2만여명에 대한 소집 점검도 끝난 상태”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이 뭉쳐봐야 얼마나 뭉치겠냐’는 통념과 달리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는 공무원들의 단결력이 무시 못할 정도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노조 내부에서는 “총파업 때 공무원이 돌과 화염병을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경찰과 맞서지 말고 속 편하게 경찰서로 자진해 걸어들어가 집단 연행되는 방식이 어떠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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