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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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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공포콩트페스티벌]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등록 2004-08-26 15:00 수정 2020-05-02 19:23

야구방망이로 때려죽이고 토막까지 낸 부인이 멀쩡하게 돌아왔다, 홍장표씨는 어쩌란 말이냐

▣ 듀나/ SF 작가

홍장표씨는 30여년 동안 남자 고등학교에서 썩다가 은퇴한 대머리 화학 교사였다. 보험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뚱뚱하고 시끄러운 아내와 지금은 모두 대학에 다니는 덩치 크고 시끄러운 아들들 사이에서 그는 작고 조용하고 초라해 보였다. 그는 실제로도 초라한 남자였다. 그나마 아이들과 젊은 선생들 사이에서 으스댈 수 있었던 학교가 그를 밀어내자 그에겐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별명 ‘P.H’의 미스터리가 풀리는 순간…

은퇴한 뒤 몇 개월 동안 그는 그 이유를 만들어보려 했다. 그는 인터넷에 매달렸고 남은 시간을 보낼 만한 일거리나 취미 생활을 찾아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점점 더 커가고 아내가 버는 돈이 점점 더 늘어날수록 그의 존재는 콩알만 한 크기로 말라붙었다. 텅 빈 집을 지키며 어쩔 수 없이 청소와 요리라는 가사일을 익히는 동안 그는 자기를 무시하고 가장 대접을 안 해주는 가족들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임계점이라는 게 있다. 홍장표씨의 분노와 증오심은 2004년 8월2일에 임계점에 도달했다. 우연히 큰 아들의 컴퓨터로 인터넷 서핑을 하다 전에 다니던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으로 들어간 그는 수십년 동안 궁금해했던 미스터리의 해답을 찾았다. 그건 그의 별명 P.H.의 의미였다. 지금까지 그는 그것이 자신의 이니셜을 화학 교사라는 위치와 연결시켜 변형한 것이라고 짐작하고만 있었다. 그러나 천만에. P.H.는 ‘Penis Head’의 약자였다.

홍장표씨는 폭발했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대를 이어가며 등 뒤에서 그 야비한 농담으로 그를 조롱했던 수천 수만명의 학생들 모두에게 분노를 폭발시킬 수는 없었다. 그는 씩씩거리며 아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홍장표씨의 아내는 7시에 돌아왔지만 남편의 유치한 하소연에 신경쓸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날 처리해야 할 보험일과 교회일만 해도 그녀의 머리는 꽉 찼다. 홍장표씨는 그러는 아내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국 어느 순간 그의 분노는 두 번째 임계점을 넘어섰다. 그는 작은아들이 두고 간 야구방망이를 들고 아내의 머리가 곤죽이 될 때까지 휘둘러댔다.

살인이 끝나자 거의 종교적인 희열감이 찾아왔다. 그는 은퇴한 뒤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그 존재감을 감옥 속에서 느낄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홍장표씨는 끙끙거리며 아내의 시체를 욕실로 끌고 가 욕조에 던졌다. 그는 옷을 벗기고 물을 튼 뒤, 지하실에서 가져온 톱과 정원용 가위로 아내의 시체를 해체했다. 피와 배설물, 체액이 하수구로 쓸려가는 동안 아내의 몸은 다루기 쉬운 가죽과 뼈, 근육과 내장으로 분리되었다. 해체가 끝나자 그는 흐느적거리는 내장은 믹서기로 갈아 흘려보냈고 가죽과 뼈, 근육은 17개의 작은 덩어리로 만들어 쓰레기 비닐로 쌌다. 영화 보러 나갔던 아들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과 욕조는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고 시체 덩어리들은 지하실의 여행가방 속에 얌전히 들어 있었다.

“엄마? 해운대 놀러 갔잖아”

그 뒤 이틀 동안 홍장표씨는 토막난 시체를 처리하며 즐겁게 보냈다. 일부는 시멘트로 포장되어 한강 한가운데에 버려졌고 일부는 지나가는 고양이들의 성찬이 되었으며 일부는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이틀이 지나자 그의 살인 증거는 거의 완벽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아직도 그의 옷과 피부와 욕조와 공구들엔 핏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C.S.I.’의 시청자가 아닌 그의 눈에는 멀쩡해 보였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건 사흘 뒤의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들과 저녁을 같이 먹던 그는 둘 중 어느 쪽도 어머니의 실종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한동안 젓가락으로 먹지도 않은 나물을 뒤집던 그는 결국 아들들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시선도 돌리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틀 전에 어머니는 친구들과 함께 해운대로 놀러 갔는데, 그것도 몰랐느냐고 말이다.

처음에 그는 그 절묘한 우연의 일치에 감사하려 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아내의 친구들은 아내만큼이나 시끄러운 아줌마들이었다. 왜 같이 여행을 떠나기로 한 친구가 사라졌는데도 지금까지 전화 한통이 없었을까?

홍장표씨는 기다렸다. 하지만 집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아들들은 늦게까지 나가 있다가 한밤중에나 들어왔고, 그동안 경찰도 아내의 친구들도 집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왜 그 덩치 크고 시끄러운 여자가 세상에서 사라졌는데도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걸까? 그런 게 가능한가? 아무 일 없이 주말이 흘러가자 그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8월9일 오후 4시15분, 전화가 걸려왔다. 받은 사람은 어쩌다가 집에 붙어 있던 큰 아들이었다. 응응거리며 건성으로 전화를 받던 그는 전화를 내려놓고 휘파람을 불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홍장표씨가 누구였냐고 묻자 아들은 대답했다. 엄마인데 9시쯤에 집에 도착할 거고 저녁은 밖에서 먹을 테니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들은 냉동실 구석에 달라붙은 아이스크림을 꺼내느라 아버지가 새파랗게 질려 바닥에 쓰러지는 걸 보지 못했다.

비명을 질러대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다

그 뒤 홍장표씨는 토막난 신체 부위들이 엉성하게 연결된 아내의 시체가 피와 창자를 질질 흘리면서 문을 열고 그에게 다가오는 걸 상상하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상상 속에서 그는 아내의 십자가를 시체에 들이대며 고함을 질러댔지만 아내는 물러나지 않았다. 하긴 아내처럼 시끄러운 기독교인에게 십자가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9시가 되자 벨이 울렸다. 얼어붙은 채 식당 의자에 착 달라붙어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큰아들이 문을 열었다. 46초 뒤 현관문이 열리고 언제나처럼 동네가 떠나가라 고함을 질러대며 아내가 들어왔다. 홍장표씨는 비명을 질렀지만, 아내도 아들도 신경쓰지 않았다. 아들은 휘파람을 불며 화장실로 들어갔고 아내는 소파에 몸을 묻고 텔레비전을 켰다.

드디어 홍장표씨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존재는 너무나도 미약하게 졸아붙어 더 이상 바깥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아내를 죽이고 시체를 처리하고 아들들을 위해 저녁을 차리고 텔레비전을 켜고 비명을 질러대는 모든 행동들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환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조금씩 존재하기를 멈추었고 그의 아내와 아들들은 그가 한동안 존재했다는 사실마저도 잊어버렸다.

이제 이야기를 끝낼 때가 됐다. 하지만 나는 홍장표씨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고 이야기를 끝낼만한 관심도 없다. 그가 이 글의 작가인 내 앞에서 고함을 질러대고 울부짖고 애원하는 동안에도, 나는 그에게서 여름날 아지랑이만큼의 무게감도 느끼지 못한다. 나는 그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렸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8월 한달간 ‘엽기공포꽁트 페스티벌’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살랑살랑 가을바람과 함께 페스티벌은 끝을 맺습니다. 사실 담당자에겐 ‘작가섭외’가 공포였고, 작가들은 ‘마감’이 공포였다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 공포 없는 인생 즐기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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